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영어그림책 읽을 일이 없다. 업으로서 영어를 매일 접하지만, 업이 아닌 일로 영어를 접할 일도 딱히 없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성인들을 위한 영어그림책 동아리'에서 신입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첫 공개모임을 해보고 결정해도 된다 하여 냉큼 신청하였고, 저번주 수요일에 모임을 다녀왔다. 그날 함께 읽어 볼 그림책에 대한 담소를 나누기 앞서,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한 분씩 담백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이읔고 마지막 분이다.
"저는 지적허영이 있어, 이 동아리에 지금까지 가입하여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입니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입담 넘치는 소개에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웃음꽃을 피우며 우리는 자연스레 활동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눔으로 또한 색다르게 나의 뇌에 비타민을 대량으로 집중 공급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동아리에서의 활동 시간을 하나씩 곱씹어 보는데, 유독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 하나가 있다.
'지적 허영'
보통 허영심이라 하면,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를 말하는 말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여 아무쪼록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또한 상황에 맞지 않는 '지적 허영심'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초래하니, 때로는 사회성이 떨어진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단어가 자꾸만 내 주변에서 윙윙대며 맴도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은 용기가 생기는 게 아닌가.
그 어떤 허영보다 '지적 허영'이라니, 그 누구에게 피해 줄 일도 없고,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의 또 다른 발로가 아닌가. 스스로가 궁금한 게 많고, 그 호기심을 건전하게 풀고자 하여 모임에 참석하고, 단순히 모임에 참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을 바탕으로 사고함으로 책을 매개로 한 활동까지 이어서 하고 있으니, 단순히 '허영심'이라 치부하고 제쳐두기에는 너무도 고상하며, 스스로 깨어있게 만드는 허영이다. 비록 작가가 의도한 바를 모두 깨치지 못한다 하여도, 어떻게든 씨름하며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면서 분수에 넘치는 수준의 책도 어느새 한 권, 한 권 섭렵해 나가는 성취를 이룬다.
읽고 또 읽어도 나는 변화가 없어 실속 없이 괜한 허영심에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 같아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본받을 것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니 그래도 한 권 읽고 나면 냇가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이 내는 파동만큼이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허영심으로 줏대 없이 사들인 물건들은 처분하기 곤란하나, 뭣도 모르고 그저 읽고 싶어서 산 책들은 당장은 읽지 못해 한동안 꽂혀만 있다 하더라도 '꽂혀 있는 그 자체로' 오며 가며 우리의 마음을 훑는다. 그러다 문득 때가 되면 책을 꺼내게 되니, 사놓아도 하등 해 될 일이 없는 것이 '지적 허영'으로 구매한 책이다.
겸손함을 비틀어 '지적 허영'이라 소개했지만, 되려 그녀의 마음속에서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느껴지니, 나는 되려 이 동아리에서 그녀들과 함께 마음껏 '지적 허영'을 뽐내고 싶어졌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할 때에 '잘난 체한다'라는 멸시 아닌 멸시로 눈을 흘기던 어린 시절 공교육의 분위기를 탈피하여 이제는 마음껏 자신의 지식을 뽐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풍부한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함께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겸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