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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으니 이야기를 속삭일 줄 아는 남자가 좋다

by 엘샤랄라

나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

'아낌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의 한 페이지를

'나'라는 노트 위에 마음껏 적어 내려간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시간여행을 한다.

내가 모르는 그의 시간을 함께 여행하면서

어쩌면 그 시간조차 서로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는 착각이 일 정도다.

각자의 타임라인을 촘촘하게 공유하면서

사람마다 다를 심장의 모양새까지 비슷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와 6년간 연애를 했고,

12년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시간을 거스르는 남자다.

연애할 때는 오히려 전화통화 한 번 마음껏

하기가 힘들어서 애간장을 녹였었는데,

지금은 너무 자주 해서 종종

나의 일과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연애할 때는 업무와 관련된 전화로 들락날락하며

밥맛이 떨어질 정도였는데

결혼하고 이 남자는 주말이면 삼시 세 끼를 같이 먹는다.

뭐든 차려주면 반찬투정 없이 잘 먹는다.

연애할 때는 어디든 새로운 곳으로

데이트할 체력조차 없어 실망을 안기던 남자가

삼십 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더니

탄탄한 가슴팍을 자랑하며 틈만 나면 만져 보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으로 말하기 바쁘던 남자가

누군가가 있어야지 말이 많아지던 남자가

지인과 나눈 이야기, 혼자만의 생각,

사업적인 이야기, 일이 돌아가는 것까지

날마다 샘솟는 우물처럼 이야기를 길어다가

내 귀에 속삭여 준다는 사실이다.


이야기가 많은 이 남자는 어쩌면

사연 많은 남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다스러워지는 이 남자를 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아, 사랑이구나.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구나.'


12살인 아들과 9살 딸,

저녁밥을 먹으며 배고픔이 가시자

순서를 정해줘야 할 정도로

서로 이야기하려고 경쟁이다.

되려 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사춘기였다

생각될 정도로 입을 쭉 내밀던 아들은

초등 중학년을 넘어 고학년이 되자 딸보다도

수다스럽다. 덕분에 아들의 베프가 누군지 알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도 알기에,

폰압으로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도 친구들

번호를 꿰뚫고 있어서 걱정을 던다.

학교 점심시간에 어떻게 놀았고,

수업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전해주는 날에는 나도 아들과 학교에 다녀온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아들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여,

딸의 학교생활이 궁금하여 아들친구엄마나,

딸친구엄마를 수소문하여 사귀지 않는다.

아들의 입을 통해 학교 생활을 듣고,

딸의 입을 통해 학교 생활을 들으니

친구들과 내 자식을 비교하는 일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 이어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에 충실하면 되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이들이 서로 말하겠다 투닥거릴 때에

나는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아, 나는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사랑받는 엄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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