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소설을 붙잡고 읽었다.
나는 오늘 산에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기여코
그녀의 소설 탓을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클레어 키건으로 아일랜드 문학의 맛을 보았고,
에드나 오브라이언으로 말뚝을 박게 생겼다.
산에 가고자 하는 나의 열망을 붙잡을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는 높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결국 나는 아침에 일어났던 모습 그대로,
오전을 보냈다.
태양은 점점 더 강력하게 햇살을 쏟아내는데,
나는 한없이 책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책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며 결국 씻으러 들어간다.
다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는데,
머리 숱이 제법 풍성하고 속옷의 후크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다.
'머리 기르는게 원래 이렇게도 쉬운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말리다가 들었고,
문득
'나에게 이토록 쉬운 일이 또 뭐가 있을까?'
하는 당돌한 생각으로 번졌다.
이를 악물며 힘이 들어가야지만,
세상 일에 성과를 내는 법이라 생각했는데,
나답지 않게 다소 엉뚱하게
그런 일이 아닌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머리 기르는 일,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는 일,
뭐든 잡고 끼적이며 쓰는 일,
뭐, 운전하고 주차하는 일,
말하는 사람 앞에서 웃으며 맞장구 치는 일,
나무가 빽빽한 길을 걷고 또 걸어보는 일,
생각이 꽂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일,
끝까지 쓰는 일 (학창 시절에는 학용품을,
지금은 생활용품을 바닥 끝까지 완전히 쓰는),
그리고 내 사람 끝까지 사랑하는 일.
아,
지우개를 잃어 버리면
교실 바닥을 샅샅이 뒤져 어떻게 해서든
꼭 찾아내서 쓸 수 없을 때까지 썼던 나,
하나를 써야하는 상황이 전혀 싫증나지
않듯이, 나도 사람에 어쩌면 쉽게 싫증낼 수
없는 사람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