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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Mar 24. 2017

차야 아파트







    못 견디게 더운 날이었다. 차야 호텔 130호도 찜통처럼 데워졌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실링팬만으로 견디기엔 역부족이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폭염 때문에 점점 지쳐갔다. 사람들은 우기 치고 비가 많이 안 내린다고 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먼지가 잔득 쌓인 에어컨을 켜보기로 한 것이다. 에어컨은 잘 작동되는 듯 보였다. 안에서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곧 바람도 나왔다. 먼지를 토해낼 거란 최악의 상상도 현실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바람이 전혀 시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방에 가득 찼다. 첫날 에어컨이 있는 방은 10달러인데 왜 여기만 5달러냐는 목구멍에서 되돌려 보낸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바탐방에 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굳이 에어컨이 아니더라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마침 비자 업무 대행을 맡긴 여행사에서 비자가 연장됐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이제 몇 달은 더 캄보디아에 머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지낼 곳이 차야 호텔 130호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차야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이사라고 하기엔 캐리어 하나와 배낭을 옮기는 게 전부였지만). 차야 아파트에서 내가 지낸 곳은 104호였다. 이곳은 원룸식의 큰 방이었는데, 옷장, TV, 에어컨, 책상, 침대, 세탁기, 냉장고 같이 기본적인 가구와 가전을 갖추고 있어 오래 머물 목적으로 지내기엔 이상적이었다. 흰 벽에 흰 타일 바닥, 흰 침대보까지 차야 호텔과 달리 매우 깔끔하고 쾌적했다. 실링팬은 흔들림 없이 힘차게 돌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켠 에어컨도 잘 작동했다. 주방이 있어 요리를 할 수 있었고, 욕실에 있는 세탁기로 언제든 빨래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전보다 나아졌다.  

    차야 아파트의 차야는 아파트 주인아저씨의 이름이다. 차야 아저씨는 차야 아파트, 차야 호텔 그리고 차야 레스토랑까지 소유한 바탐방의 부호(富豪)지만, 소박하게 옷을 입고 낡은 사각테 안경을 썼다. 그리고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 접이식 의자 겸 침대를 두고 생활을 하는 괴짜 같은 사람이었다. 끼니도 주로 아파트 로비에서 혼자 소박하게 해결했다. 제이가 다니는 영어 학원의 선생님도 8년 전 잠시 차야 아파트에 살았다면서 ‘그 아저씨 아직도 주차장에서 자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차야 아저씨의 주차장 생활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차야 아저씨가 아파트 주차장에 상주하는 경비인 줄 알았다. 심지어 어떤 외국인 세입자는 주차를 도와주는 차야 아저씨에게 팁을 준 일도 있었다고 하니 나에게만 그렇게 보인 건 아니었나 보다. 

    캄보디아에서는 보통 양손을 모으며 인사를 한다. 이건 썸뻬아라고 하는 전통 인사법인데, 합장한 손을 인중 높이까지 올리고 목례를 하면 된다. 손의 높이는 인사를 받는 상대방의 나이, 지위 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인사를 받는 사람이 연장자거나 특별히 존경을 표하는 경우엔 손이 이마나 머리 위까지도 올라간다. 물론 인사를 할 때 꼭 썸뻬아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먼저 썸뻬아를 한다면 썸빼아로 답하는 것이 예의다. 

    나는 어떤 나라에 가면 현지 인사법에 맞게 인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건 캄보디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야 아저씨는 간이침대에 누워있을 때가 많았는데 내가 인사를 할 때마다 몸을 일으켜 함께 썸뻬아를 해줬다. 매번 누운 몸을 일으키는 것이 귀찮았을 만도 한데 늘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나중에 썸뻬아의 인사 예절을 알고 나서야 더 이상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지 않게 목례만 했다.

    차야 아파트는 바탐방 중심에 있어 어디든 다니기가 편했다. 주차장에는 언제나 이용 가능한 수십 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이 자전거들은 대부분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두고 간 것들이었는데, 차야 아저씨가 그것들을 보수해 입주자들에게 유료로 대여해 줬다. 1년에 20달러지만 그냥 타고 다녀도 특별히 문제 삼지는 않았다. 

    자전거 얘기를 하니 썸낭 아저씨가 떠오른다. 이 아저씨는 차야 아저씨 다음으로 주차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꺼운 몸에 그을린 피부, 부리부리한 두 눈과 커다란 코, 늘 심각한 미간, 이런 모습 때문인지 썸낭 아저씨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 아저씨는 평소에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인사를 건네면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차야 아파트의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썸낭 아저씨는 차야 아저씨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 같기도 했고, 그냥 신뢰받는 직원 같기도 했다. 

하루는 자전거 하나를 골라 타고 나가려는데 썸낭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내가 고른 자전거를 유심히 살폈다. 브레이크 레버도 잡아보고, 페달도 돌려보고 바퀴의 바람이 적당한지도 눌러봤다. 뒷바퀴를 눌러 본 아저씨는 뭔가 이상을 감지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에어펌프를 작동시켜 뒷바퀴의 바람을 채워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을 다녀오던 길에 자전거 뒷바퀴가 터졌다.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나를 썸낭 아저씨가 발견했다. 아저씨는 자전거를 뺐듯이 가로채 차야 아저씨에게 갔다. 자전거를 본 차야 아저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구나 싶었다. 

    두 아저씨는 타이어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차야 아저씨가 고치고 썸낭 아저씨가 보조 역할을 맡았다. 둘은 말 한마디도 없었는데, 호흡이 척척 맞았다. 차야 아저씨가 쳐다도 안 본 채 손만 내밀어도 썸낭 아저씨는 뭐가 필요한지 안다는 듯 공구를 건넸다.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수술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바퀴를 터뜨린 게 미안해 근처 구멍가게에 가서 시원한 음료수 두 병을 사가지고 왔다. 썸낭 아저씨는 고맙다고 말하며 한 번에 다 마셨지만, 차야 아저씨는 차가운 걸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며 거절했다. 그래도 내가 안 가고 옆에 있자 차야 아저씨가 캄보디아 말로 무어라 말했다. ‘괜찮으니까 이만 가 봐. 네 잘못이 아니야. 나 자전거 고치는 거 좋아하는데 심심하던 차에 아주 잘 됐어. 하하하’ 아마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을까. 썸낭 아저씨는 내가 캄보디아어를 모른다는 걸 알고 차야 아저씨의 말을 영어 한 마디로 요약해줬다. 

    「No problem!」

    썸낭 아저씨가 멋쩍게 웃었다. 나도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주차장 입구에는 개조심 포스터가 있다. 포스터에 적힌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납게 생긴 개가 입을 벌리고 톱니 같은 이빨과 긴 혀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그림을 보면 이곳에 사나운 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 그림을 붙인 사람은 배려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개조심’이라고만 써도 주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일 테지만, 혹시라도 글을 몰라 봉변을 당하는 사람이 생길까 이런 그림까지 붙여 놓은 게 아닌가. 어쩌면 거주자의 대부분이 외국인인 차야 아파트에서는 필수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개가 갑자기 나타나면 어쩌나 주차장을 지날 때마다 잔뜩 긴장하곤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대체 사나운 개가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해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찾아보는 무모한 짓까지 감행했다(물론 손에는 호신용 무기를 들고). 대체 포스터 속의 개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나타나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개가 한 마리 있기는 했다. 차야 아저씨의 애완견인 크마우였다. 캄보디아 말로 크마우는 검정색을 의미하는데 털이 검정색이라 그렇게 부른 것이다. 성대 결절이 온 건지 나는 크마우가 짖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 데나 똥을 싸는 것으로 보아 훈련이 잘 돼서 조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마우 외에 다른 개가 없는 거로 보아 크마우도 분명 사나운 개일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평소에는 사나운 면을 감추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왜 겁 많은 개들이 잘 짖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논리라면 절대 짖지 않는 크마우는 상대가 누구든 전혀 겁이 나지 않는 대담한 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아저씨 옆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크마우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바보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해 내 엉덩이를 향해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니 늘 경계했다. 굳이 광견병 주사를 찾아 캄보디아 병원을 떠돌 일은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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