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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Mar 17. 2017

폴의 아도보






    폴에게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폴은 제이와 함께 바탐방 교사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필리핀인 선생님이다.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러 늘 말꼬리 모양으로 묶고, 필리핀에서 자신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어머니가 보셔야 한다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셀카를 찍어 SNS에 게시하는 친구다. 

    폴은 내가 교사교육원을 방문했을 때 만나 일면식이 있었다. 그는 바탐방에 온 걸 환영하는 의미로 필리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초대에 응했다. 폴은 동료인 일본인 선생님 유미코도 초대했다. 유미코와 나는 두어 번 스치며 인사한 정도의 사이였다. 이렇게 해서 제이와 나, 그리고 유미코는 함께 툭툭을 타고 폴의 집으로 갔다. 

    툭툭을 타고 가는 동안 나는 유미코에게 뭔가 말을 걸고 싶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 전에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하면 좋을지 수십 번은 더 생각한다. 마침 유미코의 손톱에 알록달록한 매니큐어(손톱마다 다른 색을 칠했다)를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칭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캄보디아에는 얼마나 있다가 가세요?」

    「아마 3개월~4개월 정도요.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세요?」

    「저는 아이들에게 음악과 체육을 가르치고 있어요.」

    유미코는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작은 액정 속으로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너무 작아서 책상이 가슴 높이까지 왔다. 유미코는 아이들을 향해 서서 일정한 리듬으로 손뼉을 쳤다. 아이들은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유미코를 따라 손뼉을 쳤다. 손뼉 치기가 점점 빨라졌다. 손뼉 치는 소리만으로도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흥겨워졌다. 나는 유미코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모두가 행복해 보여요.」

    「네. 행복해요. 모두가.」  

    유미코의 눈이 초승달이 됐다. 



    어느새 폴의 집에 도착했다. 폴도 막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해 있었다. 

    폴은 2층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대문과 출입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데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집에는 문턱이 없었다. 문턱이 없다는 건 비가 와도 빗물을 막아줄 게 없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턱이 없고 배수도 잘 안 돼 비만 오면 홍수가 난 듯 집 안에 물이 들어찬다고 했다. 캄보디아는 1년 중 절반이 우기인데 비가 올 때마다 집이 물바다가 되는 것이다. 폴은 자신이 집을 구할 땐 건기여서 이런 건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2층은 너무 더워서 웬만하면 올라가지 않지만 1층에 물이 고이는 날엔 어쩔 수 없이 올라가 생활한다고 했다. 폴은 애초에 왜 문턱을 만들지 않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턱을 안 만든 건축가나 물이 들어차든 말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폴이나.   

    집은 4인 가족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컸다. 안은 매우 습했고, 퀘퀘한 냄새도 났다.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책상이 있고, 벽에는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커다란 달력이 붙어있었다. 그 옆으로 캄보디아어와 영어를 비교해 놓은 낱말 카드도 보였다. 폴은 텔레비전 전원을 켜고 쌀과자를 한 움큼 가져다주며 요리를 하는 동안 허기를 달래고 있으라고 했다. 

    유미코에 의하면 며칠 전에 바탐방대학교 졸업식에 캄보디아의 총리가 방문했다고 한다. 바탐방대학교는 전통적으로 유명 인사가 오지 않으면 졸업식을 하지 않는데, 이번 졸업식은 무려 5년 만에 열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흩어져 살고 있던 졸업식 없이 졸업한 학생들이 모두 모여 성대하게 졸업식을 했다고 한다. 정말로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였다. 

    잠시 후 폴이 음식을 내왔다.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좋은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다. 메뉴는 필리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인 아도보(Adobo)였다. 거기에 크림소스를 곁들인 생선튀김, 야채샐러드, 그리고 바탐방 특산품인 자스민 쌀(Jasmine rice)로 지은 밥도 함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요리 솜씨에 반해버렸다. 특히 아도보는 처음 맛보는 독특한 요리였다. 나는 레시피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폴, 아도보는 처음 먹는 음식인데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만들죠?」

    「아도보는 필리핀 가정식인데, 집집마다 만드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서 수많은 레시피가 존재해요. 이건 우리 엄마한테 배운 방식으로 만든 거예요. 특별한 건 없어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큼지막하게 썰고 코코넛밀크와 간장, 레몬즙, 마늘로 만든 소스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돼요.」

    「그렇게 간단해요? 하지만 내가 해도 똑같은 맛이 날지는 잘 모르겠네요.」

    「시도해 보세요.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게요.」

    「정말요? 그럼 나중에 한번 배우러 올게요.」

    「언제든지요.」

    폴이 냉장고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한 병 꺼냈다. 그는 연초에 사람들을 초대해 마시려고 샀는데 아무도 자신의 초대에 응한 사람이 없어 꺼낼 일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잔을 채웠다. 

    「오늘 모두 와줘서 고맙고 또 여러분들과 친구가 돼서 기쁩니다. 자, 건배.」 폴이 건배사를 했다.

    우린 모두 잔을 부딪쳤다. 바탐방에 와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눅눅하고 퀘퀘하던 집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우린 함께 식탁을 정리하고 툭툭을 기다렸다. 그사이 폴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우린 그가 이끄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네 명이 함께 찍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하나도 빠짐없이 찍었다. 폴의 셀카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잠시 후 호텔로 돌아왔을 때 SNS에 폴이 찍은 사진들이 하나둘씩 게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에는 폴과 그의 어머니의 댓글들(댓글이라기보다는 대화에 가까웠다)이 연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잘 지내니?’, ‘즐거워 보이는구나’, ‘함께 아도보를 먹었다고?’, ‘네가 말한 한국인 친구가 이 남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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