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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Mar 30. 2017

프사 봉축






    과거에는 내가 특별히 한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면 김치가 생각난다’,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같은 말들은 나와 상관없는 얘기인 줄 알았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지 무슨 한식을 찾느냐고 흥분해서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줄 알았던 게 별 거였다.

    바탐방에 온 후 대부분 외식을 했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밥을 먹을까, 고민하며 여행자로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한식이 그립기 시작했다. 캄보디아도 쌀을 주식으로 하지만 촉촉하고 점성이 강한 한국의 쌀은 아니었다. 또 쌀밥을 먹으면서도 김치 한 조각이 간절했다. 빨갛게 볶아낸 제육볶음도 먹고 싶었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나도 김치가 먹고 싶고,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한국인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재래시장을 들락거리며 장을 봤다. 제일 먼저 김치부터 담그고 하루에 한 끼는 꼭 한식을 만들어 먹었다. 


    처음에 바탐방의 재래시장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는 제이에게 프사 낫(Phsar Nath)에 가서 장을 보자고 했다. 그녀는 ‘프사 낫? 더 괜찮은 곳이 있어’ 라며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그녀가 나를 이끈 곳은 프사 봉축(Phsar Boeung Chhouk)이었다. 

    바탐방엔 프사 낫과 프사 봉축이라는 두 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프사 낫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로 상커 강 바로 앞에 위치하고, 독특한 모양의 외관에 커다란 시계탑까지 달려있어 눈에 아주 잘 띄는 랜드마크다. 반면에 프사 봉축은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힘들어 이 시장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유명하기로는 프사 낫이 더 유명하지만 시장의 규모는 프사 봉축이 훨씬 더 크다. 판매하는 물건의 종류도 더 많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제이는 프사 낫보다는 프사 봉축에서 장을 봤고, 내게도 프사 봉축을 추천해 준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시장을 그리 많이 온 건 아니라며 한두 개의 가게만 소개시켜줬다. 또 재래시장에서는 간단한 영어도 통하지 않는다며 장볼 때 쓸 수 있는 캄보디아어도 가르쳐줬다. 

    프사 봉축에선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상인들이 빼곡하게 좌판을 깔고 앉아 물건을 팔았다. 야채, 건어물, 해산물, 정육, 유제품, 생필품, 곡물, 과일, 향신료 등 웬만한 건 다 있었다. 

    시장에서 주로 구입한 식재료로는 삼겹살(제육볶음과 김치찌개용), 양파, 쪽파, 양배추, 고추, 마늘, 두부, 새우, 오징어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의 100분의 1도 안 됐다. 다 열거하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두꺼운 책 한 권이 될 것이다.   

    시장을 자주 다니면서 식재료 별로 단골이 된 곳들이 생겼다. 모두 비슷한 물건을 파는 것 같지만 이 중에서도 특별히 더 좋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파는 물건은 조금만 늦게 가도 동이 났다. 그래서 장은 늘 아침 일찍 봤다. 단골집 주인들은 점점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덤을 주거나 값을 깎아주기도 했다. 단골집이 늘다 보니 손질이 필요한 고기나 매번 같은 양을 사가는 것들은 살 때마다 어떻게 손질해 달라거나 양을 얼마만큼 달라는 둥 일일이 얘기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재래시장에서는 물건만 파는 게 아니었다. 한쪽 면에 작은 미용실들이 줄지어 모여 있었는데, 미용실 안에는 의자와 거울이 겨우 들어가 있고 조금 더 여유가 있는 곳은 그 앞에 샴푸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이곳에선 커트나 드라이, 펌, 염색 등은 기본이고 피부 관리와 매니큐어, 페디큐어까지 웬만한 건 다 가능했다. 특히 결혼식 같이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아침부터 시장에 있는 미용실을 찾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을 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치안도 안전했다. 캄보디아에 있으면서 누군가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바탐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다들 경계 없이 다니는 것 같았다. 보통 치안이 안 좋은 곳에 가면 강도나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 한 분 정도는 만나기 마련인데 바탐방에는 그런 아주머니조차도 없었다. 장을 볼 때 타고 온 자전거도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는데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덕분에 마음 편히 장을 볼 수 있었다.

    시장에는 한량처럼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이 많았다. 특히 오토바이 위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는 남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은 나이가 사십에서 오십 정도 되는 거 같았는데, 늘 피곤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아무렇게나 오토바이에 누워있는 것 같지만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눕기 전에 배와 등이 드러나도록 상의를 가슴 바로 밑까지 들어 올렸다(끈적한 맨살이 오토바이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계기판을 베개 삼아 베고 팔짱을 낀 채 누웠다. 다리는 쭉 펴고 발목을 포개서 오토바이 안장 끝에 뒀다(간혹 이것과 정반대로 눕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를 쓰거나 모자를 얼굴에 덮어 빛을 가렸다. 그렇게 미동도 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낮잠을 잤다.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바닥에 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자나,하는 걱정을 하곤 했지만 캄보디아를 떠날 때까지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간혹 자전거에 누워 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쯤 되면 서커스다. 이런 아저씨들을 보면 다가가 귀에 대고 ‘그냥 집에 가서 편하게 주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보다 편한 곳은 세상에 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라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오토바이 위에서 오래 잠자기’라는 기네스북 종목이 있다면 단연코 이 아저씨들 중 한 명의 기록이 등재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등재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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