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코이카 해외봉사단원 이야기
태권도 수업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도장 예절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조한 건 바로 차려, 경례를 하는 인사였는데, 현지인들에게는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인사였다. 이곳에서는 만나면 베소Beso라고 하는 볼키스 인사를 한다. 보통 여자끼리, 또는 여자와 남자가 만날 때 가볍게 포옹을 하면서 볼을 맞댄다. 그리고는 '쪽'하고 소리만 내든지 아니면 진짜로 입술을 볼에 맞춘다. 처음에는 이러한 인사법이 낯설고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점점 익숙해졌다. 남자끼리는 악수를 하거나 팔씨름을 하듯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대는 식으로 인사를 한다. 물론 남자끼리도 포옹을 하기도 하는데 조금 특별한 사이일 경우나 그렇다.
친한 사이에는 턱을 위로 쳐들며 짧게 눈인사를 하기도 한다. 이 인사는 정서적으로 매우 친근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런 인사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나와 조금 친해졌다고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그 모습을 못마땅해하며 차려, 경례를 하도록 바로잡곤 했다. 나는 태권도 수업에서 만큼은 격식을 갖춘 인사법을 가르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모두 어색해했다. 차려를 해도 가만히 서 있지를 못했다. 나는 차려가 부동자세라는 걸 가르치며 이때만큼은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강조했다. 이걸 연습하느라 차려 자세를 하고 한참을 그대로 서있기도 했다. 학생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듯 차려 자세로 서서 몸은 그대로 있고, 눈만 좌우로 굴렸다. 그러다가 내가 '경례'라고 말하면 봉인이 해제된 듯 해방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경례를 했다.
도장에서는 엄격하게 차려, 경례로 인사를 했지만 몸에 밴 습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현지의 인사법대로 먼저 인사를 하고 깜박했다는 듯 다시 차려, 경례를 했다. 차려의 부동자세를 강조해서 그런지 학생들은 서로 차려를 하며 놀기도 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누군가 차려,라고 말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누가 더 오래 서 있나 서로 경쟁을 하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차려는 "멈춰"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통근 버스가 늦게 도착해 수업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지각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내가 늦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통근 버스에서 내린 후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체육관까지 내달렸다. 학교는 아직 수업 전이라 그런지 밖에 나와있는 아이들로 붐볐다. 학생들은 교실 밖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었고, 플라스틱 공으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내가 지나가자 알은체를 했다. 여전히 "치노"라고 부르거나 이소룡이나 성룡 흉내를 내며 장난을 걸어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이날은 어떤 학생이 교문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후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는데 급한 나머지 알아보지 못한 거였다. 나는 적당히 대꾸를 하면서 체육관을 향해갔다. 그 학생은 나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뒤에서 무어라 말하며 소리쳤다. 나는 그 학생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멈춰서 그 얘기를 들을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계속 뛰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익숙한 외침이 들려왔다. 나를 멈추게 할 수밖에 없는 외침이었다.
"차려~엇!"
내가 뒤를 돌아서 차려,라고 외친 학생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외침이 들렸다.
"경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그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학생은 턱을 쳐들며 현지식으로 인사를 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학생을 향해 턱을 쳐들었다. 학생의 입에서 미소가 스며 나왔다. 그리고는 이내 뛰노는 학생들 사이로 사라졌다.
아슬아슬하게 도장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도착해 있었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차려, 경례로 인사를 했다. 나는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며 턱을 쳐들며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학생들은 나의 의외의 행동에 놀란 듯 한껏 친근한 미소로 답인사를 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인사를 두 번씩 했다. 학생들은 차려, 경례로 하는 인사를 어색해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들의 인사에 맞춰 똑같이 답인사를 했다. 이제 더 이상 차려를 연습하느라 가만히 서 있을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