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쭝 브런치 Feb 28. 2017

쿠바에서 온 안부

쿠바

  ‘Saludos desde Cuba. Cómo estás mi amigo?(잘 지내니 나의 친구? 쿠바에서.)’

  내 친구 찰리가 쿠바에서 안부를 물어왔다. 쿠바를 떠나온 지 8개월이 흘렀다.


  아바나La Havana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밤. 환상을 갖고 찾아왔지만, 아바나엔 별것이 없다고 느꼈다. 갑자기 조급함이 밀려왔다. 이제 며칠 후면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여행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쿠바 중심가의 밤은 어두우면서도 밝고, 차분하면서도 활기찼다. 바람이 불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몸집 큰 검은 피부의 남성, 정말 맛있는 모히토Mojito가 있으니 바Bar로 들어오란다. 첫날부터 겪었던 호객행위와 구걸에 질렸던 나는 이미 모히토는 마셔볼 만큼 마셔봤다고 했다. 그냥 지나치려는 내게 그는 “Coreano, Coreano(한국인, 한국인)!” 하며 나를 불렀다.  

  중미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치노Chino(중국인), 그다음이 아리가또ありがとう 혹은 곤니찌와こんにちは 같은 일본말들이었다. 초면에 한국인이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유명한 시의 한 구절처럼 그 몸집 큰 사내가 나를 한국인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느꼈다. 그가 나의 어디를 봐서 한국인이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바에 들어가 모히토를 마셨다. 정말 맛있었다. 그는 자신을 찰리라고 부르라고 했다.

  쿠바 여행이 어떠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적당히 꾸며대며 좋다고 답했다. 하지만 더는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내겐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할 얘기가 없어진 나는 카메라를 꺼내 며칠 동안 아바나에서 찍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가만히 사진을 보던 그는 몇 해 전 미국에서 온 어떤 사진작가의 가이드를 한 적이 있다며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진작가는 “아바나는 아무 데나 사진기를 들이대고 찍어도 멋진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진 찍는 게 더 어려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수수께끼가 풀린 느낌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기시감 가득한 쿠바의 모습이 나에게 실망감을 줬다.

  “그래서 그 사진가는 어떻게 했어?”

  “관광객이 없는 곳을 안내해 달라고 하더군.”

  관광객이 없는 곳. 구미가 당겼다. 그게 어디냐고 물었다. 다음 날. 찰리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나갔다. 약속 시각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그냥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가 지나자 내 앞에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멈췄다. 어제 본 말쑥하게 차려 입은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시계가 고장 난 것일까. 대충 아무렇게나 입고 나온 그는 제시간에 도착한 것처럼 당당하게 악수를 청했다. 그가 늦은 것에 대해 미안한 기색을 비치지 않은 것처럼 나도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목적지도 말해주지 않고 무작정 나를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있자 쿠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혼자 있을 때는 호객행위를 하려고 몰리거나 사진을 찍는 나를 대놓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심지어 모델료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모두 친절했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쿠바에는 두 가지의 화폐, 쿡Cuc과 페소Peso가 있다. 계산할 때는 늘 그가 나의 돈을 받아 훨씬 가치가 낮은 페소로 바꿔 계산해줬다. 덕분에 여행 경비를 조금 아낄 수 있었다.  

  한두 시간 정도를 계속 걷고 나서야 애초에 목적지를 정하고 걷기 시작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계속 앞장서 걸었다. 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 걸었다. 의도적으로 뒤따라 걸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앞만 보고 걷는 그의 걸음과 호기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는 나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거리가 벌어졌다. 끼니는 중간중간 길거리에서 대충 때웠다. 그는 늘 나에게 뭔가를 물었다. “더 걸을 수 있겠어?”, “이쪽으로 가면 야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사탕수수 주스 마실래?” 또 내가 오는지 안 오는지 돌아보는 것 같지 않은데도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멈춰서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어떤 관여도 하지 않고 멀찌감치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가끔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있을 때만 다가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갈 때, 정면에서 덮치는 주황색이 불편해 손차양을 만들자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커다란 선글라스를 건네며 쓰라고 했다. 선글라스가 너무 커 내 얼굴을 뒤덮는 모양이 되자 어울리지 않게 천진하게 웃는다. 그는 가끔 속도를 줄이기는 했지만 먼저 멈추지는 않았다. 나의 걸음도 그를 따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너처럼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렇게 많이 걸으면 사람들은 금방 지쳐 택시를 타자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너처럼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이야.”라고 말했다.  

  찰리는 아바나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걸 보고 싶다.”고 하면 불법 닭싸움이 일어나는 교외의 도박장으로, “싸고 질 좋은 시가Cigar를 구할 수 없을까?” 물으면 시가 공장에서 관리자로 있었던 친구의 아파트로, “쿠바의 청년들은 뭐하며 시간을 보내?” 하고 물으면 공 소리가 매섭게 들리는 그들만의 맨손 스쿼시 경기장으로 데려갔다. 한 번은 “쿠바의 초등학교에선 아이들에게 낮잠을 재운다던데 그 모습이 참 예쁘다며?”라고 했더니 이 말을 기억했다가 뜬금없이 한 건물 모서리에서 망을 보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낮잠 자는 아이들이 보이는 사각지대로 안내한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광경들은 늘 내 예상을 벗어났다. 마치 벽장 뒤의 세계처럼 그와 걷는 길의 끝에는 매번 색다른 아바나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는 출근해야 한다고 떠났고, 나는 말레꼰Malecón에 혼자 남겨졌다. 노을을 머금은 말레콘엔 활기가 넘쳤다. 방파제로 달려드는 파도가 거셌다. 방파제 위에 걸터앉아 낮에 산 시가를 하나 꺼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불을 붙이고 낮에 찍은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 별 이야깃거리가 없었던 아바나 여행에 실망했지만, 찰리와 보낸 반나절은 썩 마음에 들었다. 처음 피운 시가는 좋았다. 마치 럼을 몇 잔 마신 것처럼 몽롱해졌지만 나는 연거푸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들뜬 기분이 달아나는 게 싫었다. 강하게 불어치는 바람이 내뿜는 연기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그렇게 시가 하나가 금세 꽁초가 돼 가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두 번째 시가를 꺼내 끝을 앞니로 대충 베어 자르고 피우던 시가에 바통을 터치하듯 이어서 불을 붙였다. 철썩철썩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함께 밀려오는 바람이 내 주변을 감쌌다. 두 번째 시가의 열기가 손끝에 느껴질 즈음 나는 몰려오는 피로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가 쓰러지듯 세상이 핑 돌았다. 균형을 잃었고 두 손은 가까스로 방파제 외벽을 짚었다. 순식간이었다. 토사물이 어디로 튀든 상관없이 낮에 길거리에서 사 먹었던 것들을 모두 뱉어내야 했다.  

  다음날 찰리는 내가 연달아 시가 두 개를 피워 말레꼰 너머로 물고기 밥을 줬다는 얘기를 듣더니 말레콘에서 시가 향이 들어간 물고기 밥을 준 건 네가 처음일 것이라며 깔깔댔다.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하며 나를 놀려댔다.그 모습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바나 여행 마지막 날에도 나와 찰리의 목적지 없는 걸음은 계속됐다. 갑자기 그의 걸음이 자전거가 진열된 쇼윈도 앞에서 멈췄다. 처음이었다. 그가 먼저 자신의 걸음을 멈춘 것은. 상점 안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살피던 그는 작은 사각형 바구니가 달린 핑크색 유아용 네발자전거 앞에 멈추더니 쪼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모습을 살폈다. 그 모습이 꼭 생일이 오기 한 달 전부터 생일선물을 미리 정하고 매일 그것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상점을 나온 그는 다가올 딸의 생일에 방금 본 자전거를 선물하고 싶지만, 자신은 가난해 그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와 그렇게 많이 걸으면서도 그의 삶이 어떤 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 후에도 물을 수 없었다. 어떤 말로도 위안을 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를 이끌고 아바나에서 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갔다. 랍스타 요리가 맛있는 그곳에서 나는 그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아바나에서의 마지막 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 사람이 찰리라서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무너질 것 같은 집들 사이를 걸었다. 가로등이 만들어 내는 두 개의 그림자가 마침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찰리의 집이 가까워져 오자 그의 오랜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조금은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어투로 술을 사달라고 조른다. 마치 아바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인상을 찌푸리게 했던 호객행위처럼 느껴졌다. 찰리가 그들을 제지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친구들에게 술 한 병 대접할 수 있겠느냐고 정중하게 청했다. 럼 한 병만 사달라는 그들에게 나는 두 병을 사줬다. 잠시 후 그들 중 하나가 집으로 들어가 그 럼으로 모히토를 만들어줬다. 럼이 많이 들어간 모히토는 아바나의 밤과 잘 어울렸다. 내가 묵고 있는 아파트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찰리의 말에 나는 그냥 혼자 걷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쉬웠는지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나는 주소를 적어주었지만, 그가 메일을 보내올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는 흐느끼진 않았지만, 남자들끼리 한 것치곤 꽤 진한 포옹을 했다.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시가를 꺼내 물고 말레콘을 걸었다. 어떤 경험은 뒤로 돌아서는 즉시 꿈을 꾼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시가는 금방 재가 되어 사라졌고 이미 추억이 된 아바나에서의 며칠이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찰리의 안부에 답을 한 건 3개월 정도가 지난 후였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늦게 답을 한 건 아니었다. 단지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그제야 동했을 뿐이다. 그의 안부 덕분에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그때를 추억했다. 문득 찰리가 딸의 생일 날 자전거를 사줬을지 궁금해졌다. “Hola mi amigo, estoy bien y tú?(안녕 찰리, 나는 잘 지내. 너는 어떻게 지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