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안 들어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 말에 그때 나 힘든 거 다 알면서 다들 어떻게 이렇게도 관심이 없냐고 서운함을 토로한 거였다.
그저 공감과 위로를 바란 거였는데, 돌아오는 건 일하다가 나와서 전화했잖아. 안 그랬으면 나 벌써 화냈어
라는 말을 들으며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를 받으며 억지로 마음을 풀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화가 났고, 사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 또 자신의 하소연과 부모님에 대한 상처를 들어주는 통화가 되었더라도 그래도 괜찮았다.
"누나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줄 몰랐어. 앞으로 신경 쓸게"
그 말을 한 뒤로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얘는 늘 말만 번지르르하지. 라고 투덜대면서도 괜찮았다. 믿었으니까.
내가 불안에 떨면서도 동생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면서도
누나니까, 늘 그래왔으니까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만두게 되어 힘든 부분이 해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면서 동생이 나의 안위를 물어보길래 나도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다.
아무리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허세가 있는 동생이라지만, 그래도 그 말들은 진심일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내 마음 알아주는 건 딸밖에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실 정도로 나한테 별의별 말과 감정을 다 쏟고,
필요할 땐 나만 찾더니 정작 내가 필요하고, 내가 힘든 이야기 털어놓거나 기대고 싶을 땐 어떻게 그렇게 매몰찰 수 있는지에 대하여 어느정도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동생은 "누나랑 엄마랑 싸웠을 때 엄마가 나한테도 그랬어. 아들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굳이 그런 말에 의미부여 하지 마."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족 중요하게 생각 안 해. 누나도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 말했다.
그리고 동생은 나도 엄마한테 상처 받았었다며 그 일들을 나한테 이야기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마음이 불편했다.
동생은 위로의 말로 했을텐데 내가 마음이 불편한 게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좋게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은 상처 받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음 날, 동생에게 조심스레 용기내어 말했다.
너는 위로로 말한 거겠지만, 나는 니가 한 말들이 서운하게 들렸다.
그러자 동생은 "이해가 안 되네.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라고 말했다.
기분이 상했지만, 억누르며 나의 입장을 설명했다.
엄마가 누나한테 말한 그 말은 너한테 홧김에 한 것과 달리 늘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고,
난 그 말에만 의미부여라기보단 그만큼 나한테 기대고 하소연하고 필요할 땐 나 찾던 분이 정작 내가 필요로 할 때, 딸이 힘든 건 받아주지 않아서 그게 서운하다는 거였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동생은 "이해가 안 되네. 난 위로라고 말한 건데." 라고 말했다.
일단 그 말은 넘겨 듣고, 덧붙여서 너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쉽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애정이 깊었기에 나한테는 힘든 일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은 침묵했다. 기분이 나쁠 때나 회피하고 싶을 때 하던 버릇이다.
난 조급해졌고 답답해졌다.
그래서 또 설명했다.
너도 나한테 그 말은 위로가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나도 너의 위로가 위로로 안 느껴질 수 있다.
너한테는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상대방한테도 힘든 일이 아닐 순 없지 않냐고 말했다.
여전히 동생은 말이 없었다.
나는 눈치를 살피며 동생에게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말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니 그냥 내 문제야. 나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내일 이야기 하자" 라고 말했다.
화가 났다. 본인은 싫어하는 거 조금이라도 하면 집에 안 내려간다느니 말하거나 마음을 닫거나 화를 내면서
내가 싫어하는 걸 말했는데도 이렇게나 한 번도 존중해주는 적이 없을까.
그렇게 전화를 끊고 혼자 화를 삭였다. 그래, 일단 내일 이야기하자 라고 생각하며.
다음날이 되고,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 다음날 동생에게 먼저 퇴근하고 통화하자고 카톡을 보냈다.
동생은 밤에 퇴근하기에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간에 맞춰 통화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동생은 그저 침묵만 유지했다.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동생이 왜 아무 말이 없냐고 했었던 것 같다. (이건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내일 이야기하자고 했고, 말을 하다 만 것처럼 끊었으니까 네 말을 먼저 들으려고 했지 라고 말했다. 그러자 "난 할 말 없는데." 라고 말했다.
그럼 그 말은 회피의 말이었구나. 또 속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고도 남았다.
그 와중에도 동생의 저녁이 걱정되어 밥 먹었냐고 물어본 후, 밥 먹고 통화하자고 했다.
다시 전화 연결이 된 후 나는 동생에게 엊그제였으면, 좋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이미 난 지금 화가 많이 났고 필터 없이 말하겠다고 말을 한 뒤 서운했던 점을 말했다.
너 내가 이제는 너의 그런 회피하고 잠수타고 그런 거 안 맞춰준다고 했지. 나 그거 싫어한다고 했지. 너는 싫어하는 거 상대방이나 가족들이 하면 마음 닫고 화내고 그러면서 넌 어떻게 한 번을 존중을 안 해주냐.
나도 니가 힘든 부분이 나한텐 힘든 거로 안 느껴질 때 많아. 하지만 너랑 나는 다르니까 너의 성격에서 생각해서 이해하고 공감한 거야. 넌 매번 내가 힘든 거 이야기하면 이해 안되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식으로 그러는데 그거 진짜 상처 받는 거 아냐. 너 힘든거만 중요하고, 네 일만 중요하고 어떻게 너만 생각하냐.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말을 중간에 끊더니
동생이 소리를 지르며 "아, XX ! 말 좀 하자. 나도 말 좀 하자고!" 라면서 "그만하자. XX" 라고 했다.
화가 나서 동생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나?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억울함이 더 앞섰다. 본인은 화가 난다고 나한테 어떤 말이든 다 했으면서.
화났다고, 요즘 본인 힘들다고 나한테 연 끊자고까지 하고, 지금처럼 소리 지르면서 욕을 퍼부었으면서.
동시에 어이없었다. 할 말 없다고 하면서 침묵을 유지할 땐 언제고 말 좀 하자라니.
그리고 내 말을 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인 본인이면서.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지?
그때 당시에는 동생에게 바로 맞대응하느라고,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같이 소리 지르면서 너 내가 욕을 안 하니까 난 뭐 못해서 그러는 줄 아냐 라고만 했지만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보다 더 화가 났던 건 동생의 태도였다.
내가 잘못해놓고 고집부리고 그러면 답답해서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동생이 그럴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리 지르고 욕할 건 나이고,
중간에 말 끊고 말도 못하게 막은 건 동생인데 왜 나한테 잘못을 뒤집어 씌울까.
그래놓고 그만하자니. 또 연 끊자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
난 이미 이성을 잃었다. 점점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몸이 가려웠다.
그럼에도 동생한테만큼은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 난 동생에게 너는 네 이야기에 공감받길 원하면서 상대방을 공감을 안 해주냐.
존중 받고 싶으면 너도 존중을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넌 네가 듣기 싫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반대되는 의견이 나오면 무조건 회피하거나 이해를 하려고도 안 하는데 언제까지 그럴 거냐.
네 말 들어보면 남들 입장을 그렇게 잘 헤아리면서 왜 가족들한텐 안 그러냐, 가족 중요하게 생각 안한다고 했지. 그것도 잘 못된 거다 라며 화를 냈다.
그러자 동생은 "내가 누나 말 쭉 들어보니 내가 나쁜놈이네. 내가 회피형이 맞네. 난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맞네. 누나 말이 다 맞네. 미안해." 라고 했다.
이게, 사과인가?
사과 안 받아주고 화내면 또 내가 사과 안 받아줘서 그런 거라고 하겠지.
그 생각에 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또 죄책감이 들었다.
내 말을 듣고 본인이 나쁜놈이고, 회피형인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 걸 보면
가족들이 나를 가스라이팅 한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나도 그런 게 아닐까.
동생이 위로한 말 가지고 내가 괜히 서운해하지 말았어야했나.
다섯 살이나 많으면서 그냥 좀 너그러이 이해해주면 될 것을.
서운함을 느낀 내 자신이 싫어졌다.
그때, 동생이 나한테 "누나 같은 사람은 없다" "엄마아빠가 누나한테 왜 예민하다, 이상하다 하는지 아냐고"
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홧김이었겠거니 했는데, 진심이었구나.
설마 설마 했는데 동생한테도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허망했다. 죽고 싶었다. 무기력했다. 공허했다.
나는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다들 진짜 사람이 힘들고 가족이 필요한 시기에 이렇게 매몰차게 하면 평생 가는 거 아냐고 나 평생 안 잊을거다. 진짜 다들 너무한다. 내가 그렇게 이상하냐. 등등 그때 정신이 나가서 뭐라 말했는지 기억 안 나지만 공허함을 담은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동생은 나한테 콧방귀를 뀌며 "하! 누나" 라고 하다가 "아니다 됐다."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동생에게서 서늘함을 느꼈고, 감정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서웠다.
나는 무슨 말 하려고 했던 거냐고 물었고 동생은 말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동생의 말투와 콧방귀를 뀌던 것을 미루어봤을 때,
꼴값 떤다, 쇼하지 말라 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난 그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가족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서라면,
나도 중요하지 않아서 그러는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 뒤에는 중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냥 헛소리같았다.
이제 난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고, 한바탕 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울음을 참았다.
그리고 연락 온 연인에게 괜찮은 척 했다.
모든 게 내가 참지 않고, 화를 내고, 서운한 걸 말하고, 힘들다고 징징대고,
내 생각을 주장하고, 이젠 가족들에게 맞춰주려고 하지 않고, 나도 내 방식을 표현하고,
나를 지키고자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았다.
다행히 연인의 도움으로 다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그만 두었고,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노력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억지로라도 웃기도 하며 잘 지내보려고 했다.
애써 일어선 나를 다시 넘어뜨리고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 남아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