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호흡이 온 걸 몰라서 그 지경이 되었다.

by Eloquence

다시는 마음을 닫지 않으려고 했지만, 또 마음을 닫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아빠를 왜 걱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나도 오죽하면 그러겠냐며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왜 있는 걸까. 내 마음인데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루 지나서였을까. 아빠한테 연락이 왔고 난 받지 않았다. 그 뒤로 계속 연락을 피했다.

똑같이 겪어보라는 심보 때문인지, 닫힌 마음 때문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미열증상은 가끔씩 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러웠다. 가슴이 답답했고, 숨 쉬기 힘들 때가 잦았다. 두근- 거리는 느낌이 들면서 헛기침이 새어나오는 일이 잦았다.


초등학생 때, 중고등학생 때도 미열증상과 어지러움증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증상이 있었다. 병원에 몇 번이나 갔으나 결과는 이상없음이었다. 나를 마주본 이후에 모든 게 심리적인 요인에서 나타난 증상이며, 그때의 그 증상들이 불안과 우울 증세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스트레스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긴장되어 있고, 잠도 잘 못자니 그럴 만하다. 그때도 별 탈 없었듯이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율신경계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만이라도 나를 돌봤어야 했다. 아니, 지금 가장 힘든 건 나라고 지금 누굴 챙기고 하소연 들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경고를 들었을 때 나를 챙겼어야 했다.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를 하면서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된 나는 사라져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데이트도 잘 하고, 밥도 잘 먹고, 애써 웃으며 나름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통이 심해졌다. 집에 돌아가는 연인을 배웅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평범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자극적이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무언가를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재미난 것을 보고 있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뒷목 쪽에서 시작된 통증이 머리 전체 그리고 눈까지 퍼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거북목으로 인한 두통이 평소에도 있었으니까. 몇 분 동안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두통이 시작됐고,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누워보기도 하고, 다리를 올리거나 목 커브에 맞춰 베개를 베는 등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가슴이 답답했다.

문득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적이 떠올랐다. 그때도 두통이 매우 심했고, 타이레놀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구토를 짧은 시간에 다섯 번 넘게 했다. 결국 응급실에 갔고 당장은 진정되었지만, 다음날에는 어지러움증과 함께 구토증상이 있었다. 며칠 동안 어지러움증이 심했다. 그때처럼 구토를 연달아 할까봐 겁이 났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게 아닌지 뇌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됐다. 매우 불안했고 무서웠다.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119를 부를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아파도,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도 택시 타고 가던 사람인데 119가 생각났다.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려는데 너무 울렁거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119 부르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택시를 부르려고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또 울렁거렸다. 밖에 나가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겨우 패딩을 입고 현관까지 가놓고 바로 옆 화장실로 향했다. 구토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하지 않았고, 현관 앞에서 드러누웠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 참을 있다가 정신력을 모아 겨우 일어나 집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와 앞을 보는데, 꿈꾸는 것처럼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평소보다 양 옆이 잘 안 보였다.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밖으로 나오니 핸드폰 화면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어서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도, 그 짧은 거리도 못 참고 너무 울렁거려 내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약 십분 거리가 십년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내가 응급환자가 아닐 수도 있는데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괜히 왔나 더 참아볼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근처 가까운 응급실은 모 대학병원 밖에 아는 게 없었고, 나도 지금 당장 버티기 힘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들어갔다. 나를 보자마자 보안요원직원분께서 증상을 질문했고, 대답을 하는데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평소와 달리 어눌하게 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조금 놀랐다. 또박또박 발음하려고 애쓰며 말하고 있는데 간호사님이 와서 안으로 데려갔다. 혈압을 재고, 간단한 질의응답을 했다. 갑자기 손발이 저리고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응급실 안으로 무전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한 두통과 울렁거림을 이야기했고, 과호흡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간호사님은 내게 지금 호흡이 너무 빠르다고 비닐봉지를 주며 호흡을 천천히 해보려고 노력하라고 말했다. 그제야 내가 과호흡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를 보던 보안요원직원분의 얼굴에 왜 놀람이 스며있었는지도 눈치 챌 수 있었다. 스트레스 받을 때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 힘들다는 것만 인지했을 뿐, 그 정도로 과호흡 증상이 심각하다는 걸 전혀 몰랐다.


간호사님은 두통 때문에 너무 아파서 과호흡이 온 걸 수도 있다고 말했고, 응급실로 가라고 안내해주면서 휠체어를 가져다주겠다며 걸어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온 몸에 힘이 없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걸 어찌 아셨는지 그렇게 물어봐주시는 간호사님에게 매우 감사했다. 그 와중에 씩씩한 척 하며 걸어가 보겠다고 말하고 혼자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다. (참 나답다.) 베드에 누운 후, 교수님이 오셔서 나에게 증상과 언제부터 그랬는지, 이런 적이 처음인지 등을 물어보셨다.


몇 가지 안내사항을 들은 후, 모든 게 빠르게 진행 됐다. 산소호흡기가 씌워졌고, 왼쪽 손목 부근에 피를 뽑은 후 집게로 알콜솜을 고정했다. (내가 지혈할 정신이 없을 거라 판단을 한 건가? 그렇다면 센스가 최고인 듯하다.) 오른쪽에는 링겔주사를 꼽고 있었다. 몇 명의 의료진분들이 내게 왔다 갔고, 의식적으로 호흡을 천천히 쉬라고 말해주셨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과호흡이 심하면 손, 발이 안으로 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짐작하건데, 돌려서 말한 것 같다. 그러니까 손, 발이 저리면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던 걸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안으로 말리고 있었던 듯하다.


산소호흡기와 수액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도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팔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작하듯이 움직이기도 했다. 산소호흡기가 있는데도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았고, 어지럽고 기운이 없었다. 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여긴 병원이고, 친절하고 믿을만한 의료진들이 바로 옆에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간이 좀 흐른 후,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의사선생님을 호출했다. 미처 못한 소변검사를 해야 했다. 그러자 가다가 쓰러질 수도 있어서 자리에서 보는 게 좋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리 아파도 그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택시 타고 응급실에 왔다고 어필하며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도 참 나답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은 걱정된다고 하셨고, 고집부리는 나에게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해주시며 가다가 어지러우면 그냥 주저앉으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운동화를 내가 신기 좋게 배치해주시는데 매우 감사했고, 작은 친절이 아픈 나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복도를 지나쳐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데 어지럽고 몸에 힘이 빠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앉아 있다가 겨우 일어나 다시 화장실 문을 열려는데 숨이 가빠지는 걸 느껴 주저앉았다. 계속 시도했듯이 의식적으로 숨을 천천히 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자 차도가 있는 걸 느꼈다. 모든 증상이 약해진 걸 느꼈다. 하지만 손, 발이 저리는 건 여전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가고 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선생님 두 분이 나오셨다. 그 중 한 분은 나를 따라와 베드로 오셨다. 나는 그 분에게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말씀 드리면서 손, 발 저린 건 좀 더 기다려야 괜찮아지냐고 여쭈어봤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베드에 다시 누웠다. 숨 쉬기가 마냥 편한 건 아니었지만 산소호흡기의 도움 없이도 정상적으로 숨을 잘 쉴 수 있었다. 그 후, 엑스레이와 CT를 찍었다. 처음 보는 두 분의 의사선생님이 교대로 오셔서 (기억을 못했던 걸 수도 있다.) 이젠 괜찮은지 물었고, 피검사와 소변검사 결과를 들었다. 다행히 뇌나 심장(이 맞나?)에 이상은 없고, 과호흡으로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한 분은 두통과 숨 쉬기 힘든 것 중 어떤 게 먼저였는지 물었고, 나는 확실하게 두통이 먼저 왔었다고 대답했다.

이런 증상이 또 나타나면 공황장애, 공황발작일 수 있으니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다시 숨 쉬기가 힘들어졌지만 견딜만 했다. 그때 시간이 새벽이었고, 기진맥진 된 상태였지만 가슴이 답답해서인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어지럽고, 꿈꾸는 것 같은 비현실감이 느껴지고, 숨 쉬기 힘들었던 게 그동안 공황장애증상이었던 걸까. 과호흡을 평소에는 잘 눈치 챘으면서 그 때는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몰랐던 걸까. 그렇다면 두통이 먼저가 아니라 과호흡이 먼저 왔던 걸 수도 있겠구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상담 받는 날, 그 일을 이야기하니 분명 전조증상이 있었을 거라고 하셨다. 스트레스를 받는 또는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상담사님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걸 뒤에 알아챌 때가 많은 나였던 만큼, 공황발작이 오기 전 내 마음이 어떤지 그때그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대방의 욕구를 빠르게 캐치하면서 왜 내 기분과 감정은 빠르게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그제야 정말 온전히 내게 말해줬다. 그동안 고통스러웠구나. 가족들의 행동과 말들을 감당하는 동안 너는 병들어가고 있었구나.




발작에 이를 지경이 될 때까지 과호흡이 온 걸 몰랐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인지한 나. 그동안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정신없었던 만큼 응급실에서의 상황순서가 틀릴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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