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거리에, 장기간 커플이다.
나는 서울, 그는 강원도. 12년째 연애 중.
우리는 언젠가부터 결혼이야기를 농담처럼이 아닌, 진지하게 나누었고 웨딩박람회도 방문했었다.
그럼에도 '다소 갑작스레, 어쩌다보니'의 흐름으로 우리의 결혼준비가 시작되었다.
(물론 연인의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두렵고, 무섭고, 불안했다.
보통 결혼준비하는 사람들이 겪는 그런 마음보다 무거운 마음이었다.
나의 현재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의 나의 사이가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나의 심리상태도 좋진 않았으니.
더 나아가 가족들과 겪은 일이 남편과 또는 남편의 가족들과 반복이 될 까봐 무서웠다. 이것은 (또) 자책에서 비롯된 두려움이었다.
그 시기에 용기가 생기는 말을 들었다.
상담을 받다가 잘 할 수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결혼 관련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 선생님도 알기 전이었다.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말도 듣기 전이었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알맞는 말을 건네듯이 타이밍 좋게 들은 그 말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비록 벌어진 현재 상황들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면 지금의 '나'가 훨씬 더 결혼하기 좋은 때였다.
여전히 결핍과 상처가 심하지만, 과거의 '나'보단 낫다.
결혼을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가 과거의 '나'는 결혼하기엔 매우 어둡고, 상처와 결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지금보다 더 스스로를 자책하고,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고, 위축되고 억압되어 있고 등등.....
많이 움츠려져 있고, 서툰 게 많다는 거였다.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무엇보다 이제 맞설 줄도 알고, 회피형이었던 나는 성장했고, '나'를 제대로 마주할 줄 안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또는 관대하게.
과거보다 지금의 나가 결혼하기에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상담사의 말처럼,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건 후에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며, 그동안의 과정이 헛되지 않았다, 안정기에 접어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말을 듣고 난 후 난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고, 할 수 있구나 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두려움, 불안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내려놓은 상태에서 결혼준비를 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또 다른 감정을 느꼈다.
외로움, 쓸쓸함, 착잡함이었다. 그 중 가장 컸던 건 외로움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결혼하면서 싱숭생숭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엄마들은 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데
난 그런 게 없었다. 딸의 결혼소식을 들었다면, 걱정되서 딸에게 연락을 해볼 법도 한데 아무런 제스쳐가 없는 엄마를 보며 서운하고, 속상하고, 슬펐다.
물론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동생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 보면서 그럴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참 서운했다.
도대체 나는 왜, 믿고 기대한 걸까.
특히나 같은 여자로 엄마가 딸을 챙겨주는 건 다르기에 더 외로웠다. 더 서운했다.
아빠와는 왕래를 하고 있는 상태라 아빠가 위로해주어도 엄마의 몫까지 채우기엔 역부족이었으며,
아빠도 또 어느 순간 나를 외면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했다.
평생을 속고 또 속으며, 반복되는 모습에 내 마음 한 켠에는 늘 불안감이 있었다.
매우 외로웠다. 결혼준비하면서 내편과의 미래를 준비하는 거라 안정감에 외로움이 묻힐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더 외로웠다. 결혼준비하면서 부모한테 하소연도 하고, 징징대고, 마음 놓고 감정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참 속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준비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었고,
나도 가족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하고 싶었다.(결혼 찬성,반대 의미에서의 축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상견례로 만났을 때도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상대쪽 가족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평범하고, 화목한 상대 쪽의 가족들과 비교 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결혼하면 지금까지 보다 가족을 챙기는 게 덜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덜할텐데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도 사실, 가족들에게 기대거나 하소연하거나 징징대고 그런 걸 맘 편히 못했을 것이다. 또 예민하고, 유별나고 이해와 수용받지 못했을 거다. 또 나도 힘들어 라는 가족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끝났을 거다.
상견례 때도 내가 긴장되고 눈치보는 걸 이해받지 못했다.
또 신경이 곤두선,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부정당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동생은 엄마아빠가 실수할까봐 눈치보고, 신경이 곤두섰었다고 말하고
그러면서 자신은 연인의 형제들에게서 위압감을 받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은 정당하고, 나의 행동이나 감정은 또 신경이 예민한 사람으로 단정되어서 억울한 순간을 겪으며 알았다.
(실제로 남자친구랑 남자친구의 형이 동생 왜 이렇게 수줍어하냐며 고개만 계속 숙이고 잘 먹지도 못했다고, 남자친구는 사람 만나는 걸 무서워하게 됐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아빠도 나는 긴장 안 할줄 알았다고 너는 그쪽 가족 두 번은 봤으니 긴장 안 되지 않냐며 이해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두 달전부터 싱숭생숭하다, 긴장된다라며 나한테 틱틱대고, 기운없이 말하셨다. 그런 아빠를 달래드리고, 위로해드리고, 공감해드리고, 눈치를 봤다.
엄마도 긴장해서 설사까지 했으면서 왜 나만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무엇보다 결혼 당사자인 내가 가장 긴장되서 정신없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나만 그런 거 아닌데....
더구나 나도 정신 없는데 엄마를 챙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옷부터 머리까지 상견례 자리와 안 맞게 하려고 하는 엄마에 스트레스 받았고,
또 상대방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할말만 계속 늘어놓고, 말실수까지 계속 해서 뒷수습을 하고, 동생과 아빠가 립스틱이 너무 진하다고 나더러 화장실 데리고 가서 지우라고 말하는 걸 분명 옆에서 들었는데도 남자친구가 있고, 그쪽 가족들이 뒤에 오는데도 '나 화장실 안 가도 되는데?' 라고 눈치 없이 말하는 엄마때문에 속터져하고, 크로스 백을 하고 가려는 엄마에, 나는 토마토 안 먹는다고 말한 엄마때문에 예비시어머니한테 알레르기 있냐고 그런 거 체크 안 했냐고 남자친구를 통해 듣고, 사람들 다 일어나려고 할 때 약을 꺼내서 한 알씩 느리게 먹는다는 걸 알아서 약은 나와서 드시라고 급하게 먹어야 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씀을 드려도 고집을 피우다가 아빠가 중재를 해주셔서 종결될 정도였다.
상견례 전에도 나는 가족들이 미운데도 어느 하나 소외되어 보이면 자꾸 그 사람이 신경 쓰이고 챙기지 못해 뭔가 미안해졌다. 세 명을 챙기고, 집에 오면 늘 원하는 걸 갖다주고, 평소에 걷는 걸 많이 안 하셔서 느리게 걷는 엄마를 늘 맞춰준 건 나였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안 하니 나의 빈자리가 내 눈에는 보였다.
동생은 엄마 조금만 걸어도 숨차하고 땀흘린다고 뭐라하면서 맞춰 걸어주는 걸 포기했다.
내가 안 챙겨주니 흩어지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동안 나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으로 확인한 듯 했다.
성인 가족들이 아니라, 애들을 챙기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엄마와도 왕래가 있었다면 아빠 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싱숭생숭한 그런 마음과 어리광을 내가 다 받아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결혼 준비하는 나도 힘든데 난 어떻게 됐을까. 아빠만 받아주기도 힘든데, 결국 또 폭발해버렸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아졌다.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전보다는 나아졌다.
버틸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