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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듣는 음악 Jun 05. 2020

[베르디] 우아하고 완벽한 열등감

'오텔로' - 카라얀/델모나코/테발디/프로티



베르디 <오텔로> - 델모나코/테발디/프로티/카라얀 DECCA. 1961




 베르디의 오텔로는 원체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오텔로의 실제 연주를 볼 기회는 드물지만 음반 리스트를 보면 외려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방대한 음반들이 남아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 면면들도 참으로 다양하다. 무려 오텔로 초연에서 주역을 맡았던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의 역사적인 아날로그 녹음을 비롯하여 2차 대전 시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실황중계 방송녹음,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봉을 잡은 라스칼라 비공식 해적반, 매끈한 음질의 최신 블루레이 영상까지 수다한 레코딩들이 오페라 팬들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실제 연주로 만나기 힘들다는 절박함이 오히려 역사의 오텔로 명연들을 꼼꼼하게 음반으로 기록하게 만든 건 아닐까.


 그 많은 명반들 중에서도 카라얀의 이 레코딩은 출시 이래 줄곧 넘버원을 놓치지 않은 챔피언이다. 5~60년대 오페라 황금기의 전설적인 존재 세 명이 주역으로 모였고 젊은 카라얀의 지휘봉 아래 빈필이 불꽃을 뿜는다. 이렇게 귀한 연주를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데카 사의 스테레오 음질로 담아 냈으니 이 음반은 음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어느 한 점 나무랄 곳이 없는 완전체다. 거기다 꿀팁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몇년 전까지 줄곧 탑프라이스를 달고 나오던 구판과 달리 새롭게 출시된 '오리지널스'판은 가격도 저렴한데다 리마스터링도 새로 하여 음질도 진일보하였으니 혜자도 이만한 혜자가 없다.


주역을 맡은 마리오 델 모나코의 음성은 견주어 볼 곳이 없을 정도로 일품이다. 아랫배로부터 힘차게 내지르는 발성은 베네치아 장군의 위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스타일의 발성은 디테일 표현에 약점이 있는데 오히려 오텔로의 거친 면모와 맞닿아 적절한 묘사가 된다. 무어인 노예 출신으로 베네치아 총사령관 자리까지 올라간 오텔로의 캐릭터를 설명하려면 델리케이트함보다는 구천직하의 직선적인 박력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이아고와 카시오,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과 지독한 열등감마저도 뱃심으로 쭉쭉 뻗어대는 박진감에 녹여져 강력한 울림으로 청자의 심장을 뒤흔든다.


데스데모나 역을 부른 레나타 테발디는 그야말로 최고급의 풍성함과 격조를 보여준다. <오텔로>에서 데스데모나는 조금의 다른 속내나 꼬임도 없이 순수한 인물이다. 베네치아 최고권력자의 딸로서 꾸밈없이 자라온 데스데모나의 순수함과 노예 출신으로 수모를 견디며 입신양명한 오텔로의 열등감이 만나 탄생한 비극이 바로 <오텔로>다. 그래서 데스데모나 역의 핵심은 그 무고한 순수성과 천부적인 귀티를 표현하는 것에 있는데 레나타 테발디야말로 지구 역사상 그에 가장 어울리는 질감의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일 것이다. 우윳빛 실크처럼 우아하게 빚어 나가는 그녀의 음성에 행복감을 느끼고 그렇기에 데스데모나가 무고하게 죽는 비극의 정점에선 더욱 극적인 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많은 감상자들이 이 음반의 약점으로 프로티의 이아고를 뽑는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를 작곡할 때 셰익스피어의 원제인 오텔로 대신 <이아고>라고 제목을 붙이는 걸 유력하게 고민했을만큼 이아고 역할이 극의 핵심인 것이기에 특별히 까다롭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티토 곱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같이 워낙에 기라성같은 명반을 뽑아내던 바리톤들이 맹활약한 '이아고'역이기에 알도 프로티는 지명도로 보나 감성으로 보나 무언가 힘빠지는 캐스팅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프로티가 출연한 오페라 라이브 음반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그 음반을 들어보면 프로티는 스튜디오보다도 라이브에서 훨씬 매력을 발휘하는 성악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함께 출연한 성악가들의 면면도 당대의 최일류들이기 때문에 알도 프로티의 스타성 또한 단순히 음반이 적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선입견을 조금만 지우고 들어보면 프로티의 이아고는 색깔이 확실하다. 현무암처럼 거칠고 어두운 흑빛의 톤으로 델 모나코의 트럼펫같은 음성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웅대한 음량을 뿜어낸다. 물론 주세페 발뎅고나 라이페르쿠스에 비해 섬세한 표현이 무르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스타일의 차이에 불과하며, 나아가 본 음반의 전체적인 방향을 볼 때 프로티의 스타일이 더 궁합이 맞다. 카라얀의 오케스트라는 심포닉한 박진감으로 가득차 있으며 델 모나코의 상대역은 쭉쭉 뻗어가는 고음으로 나간다. 그렇다면 거칠고 어둡더라도 큰 울림과 굵고 성긴 질감을 가진 프로티가 아주 적확한 캐스팅인 것이다. 2막의 '지옥의 복수심은 내 마음에 타오르고 - Si pel Ciel'과 같은 클라이막스에서 프로티와 델 모나코의 콤비가 얼마나 극적인 짜릿함을 폭발시키는지 느껴볼 지어다.


카라얀의 지휘에 대해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있을까?

빈 필하모닉과 최상의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던 젊은 시절의 카라얀이다. 빈필의 까슬한 마티에르를 최고조로 북돋아 내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세련된 미감을 불어 넣어 전례없이 수준 높은 반주를 만들어냈다. 성악가들의 노래에 박자 맞추는데 급급한 반주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이 극 전체의 장대한 생명력을 창출해내는 원천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혹시라도 베르디나 이탈리아 오페라를 그저 쿵짝거리는 멜로디 잔치로 치부했다면 카라얀의 베르디 해석을 반드시 들어볼 것이다. 피가 흐르고 살점이 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극적인 드라마가 오케스트라에 어떻게 담겨져 있는지 카라얀은 낱낱이 파헤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음반은 완전하고 완벽하다.

어느 연주나 장단의 요소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오텔로>에서 단점을 찾기는 매우매우 어렵다. 셰익스피어의 원작부터 지대한 명작이었던 것을 베르디가 역사적인 음악으로 다시 빚어냈으며, 카라얀과 대가들이 그 위대함을 현실에 일구어낸 최상의 순간이다.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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