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느낀 말러에 대한 단상
빈에 오고서야 말러가 왜 그리 평생 외로워하고 방황했는지 아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
새로운 걸 볼 줄 아는 사람은 예민하고, 예민한 사람은 괴롭기 마련이다. 말러는 빈 음악계의 모든 걸 새롭게 바꾸고자 했으니 그 얼마나 예민하고 힘들어 했을까.
슈타츠오퍼의 오페라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갈 때마다 나는 백년 전 똑같은 시간에 퇴근했을 말러의 심정을 떠올려 본다. 오늘 자신이 지휘한 연주에서 마음에 차지 않았던 부분이 계속 떠오르고 구태의연한 평론가들은 아침신문에 또 어떤 악평을 휘날릴지 죄책감과 낭패에 빠져든다. 빈 음악계는 겉으로는 진보를 향해 열려 있는 듯 하지만 너무 앞서간다는 이유로 또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말러는 배척받는다.
그렇다고 가정은 따뜻한가...금쪽같은 딸은 다섯 해도 넘기지 못한 채 곁을 떠났고 그 이후 아내 알마는 더 멀게만 느껴진다. 남편인 자신보다 더 젊고 잘나가는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아내의 모습을 못내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다. 말러가 진정 따스히 기댈 곳은 빈에 없다. 어쩌면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불꺼진 링케빈차일레를 걸으며 그렇게 많은 상념들이 말러의 예민한 성정을 스쳐갔을테다. 집에 도착한 말러는 하릴없이 그 심란한 마음을 오선지에 옮기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부활교향곡', '거인' 등 수없이 많은 말러의 걸작들이 그런 외로움과 갈등을 녹여낸 소산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가 괴롭고 복잡해질수록 말러의 작품을 찾는 이가 많아 지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말러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빈슈타츠오퍼의 가장 화려한 메인 로비에 들어서면 다른 역대음악감독과 함께 말러의 두상이 한쪽 벽을 지키고 있다. 로뎅이 디자인한 이 두상은 말러의 영민함, 외로움, 꿈까지 담아낸 걸작이다. 굳게 다문 입으로 모든 설움을 삼킨 채 가녀리지만 담대한 눈빛으로 미래를 응시하는 말러의 인상이 진녹색 대리석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 날의 공연이 베르디건 바그너건, 로얄박스건 입석이건 간에 슈타츠오퍼를 방문하는 날이면 나는 꼭 이 말러의 두상을 보러 온다. 백년 전 당신이 먼저 겪어준 덕에, 그리고 그 감정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 당신 작품 덕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위로받고 있다는 감사를 전하러.
- 2016년 비엔나에서 썼던 글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