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비츠 [마지막 레코딩]
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곤 피아노와 친하지 않다,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나의 관심사는 사람의 목소리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고 사람 목소리만큼 그 전달력이 강한 악기가 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땀내가 베여 있는 목소리에 비해 고상하게 똥땅거리는 피아노는 어딘가 엘리트스럽고 현학적으로 들려 정이 안 간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간혹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피아노 연주가 있다. 호로비츠의 마지막 레코딩이 그 중 하나다.
호로비츠가 누구인가… 웬만한 피아노는 그의 타건을 견디지 못해 고장날 정도로 압도적인 힘과 박력의 피아니스트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힘이 넘치는 연주가 호로비츠 평생의 트레이드마크지만 마지막 레코딩만큼은 확연히 결이 다르다. 그리고 그 달라진 면모의 틈새만큼 사람이 느껴지는 것이고 덕분에 피아노에 무감한 내 마음까지 와 닿는 것이 아닐지.
자기 삶의 마지막 레코딩에 어떤 곡을 남기고 싶을까? 호로비츠의 선택은 하이든과 쇼팽, 바흐 그리고 바그너다. 어느 것 하나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숭고함이 넘친다. 여전히 화려한 힘의 기운이 넘실대면서도 그 갈무리는 극히 원숙하고 자연스럽다. 짐짓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그 어떠한 과욕도 없이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대가의 농익은 시선이 고루고루 베여 있다.
나의 손길은 마지막 트랙인 바그너로 간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 Liebestod 장면을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트리스탄이 죽어가는 순간, 연인의 죽음에까지 동참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졸데의 마지막 노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심정을 노래하지만 그 멜로디는 일면의 비탄도 없이 고귀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졸데의 죽음은 괴로움을 회피하는 몸서림이 아니라 사랑의 영속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숭고한 의식이다. 호로비츠 생의 마지막 연주다운 선택이다. 주름살 패인 대가의 손 끝에서 꿈결같이 굼틀대고 아스라이 사라지는 음렬들이 영원이 된 환상을 노래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 고통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202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