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듣는 음악 Apr 21. 2020

[모차르트] 모성애란 이름의 절규

나탈리 드세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


모차르트 <마술피리>중 밤의 여왕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은 내 가슴에 불타오르고' - 나탈리 드세 / 파리. 2001년 연주



'밤의 여왕' 아리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령 그 제목은 모르더라도 음악을 들어보면 누구나 아 이 노래! 하며 알아챌 것으로, 단언컨대 모든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이 훌륭한 고음노래를 우스꽝스레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아 오페라팬으로서 안타까운 때도 있으나, 그만큼 널리 친근한 작품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니 꼭 고고함을 고집할 일만도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 <마술피리>오페라는 정말 해석할 여지가 넓고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노래 하나를 단순히 코메디로 희화화해도 인상적일 정도니, 본격적으로 오페라 전체를 음미해본다면 얼마나 흥미롭고 다채로운 감상이 나올 것인가. 그래서 <마술피리>는 청각뿐 아니라 모든 무대와 요소에 오감을 바짝 세워 감상할 만한 작품이다.


오늘 선보이고 싶은 연주는 나탈리 드세가 밤의 여왕을 부른 2001년 파리 공연의 한 대목이다.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


프랑스 태생의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 Natalie Dessay 는 한 때 조수미의 라이벌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콜로라투라'란 화려한 고음 기교를 뜻한다) 조수미가 풍성하고 고운 결의 깨끗한 고음이라면, 드세는 보다 까슬한 질감의 드라마틱한 톤의 고음으로 서로 다른 스타일을 뽐내며 세계 오페라팬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드세가 가진 특장점이라면 특유의 인상적인 드라마틱함으로 연극적인 깊이감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드세가 출연한 오페라 무대는 유달리 실험적인 연출들이 많다.

이 파리 공연 <마술피리>도 아주 의미있는 새로운 해석이 있다. 




'밤의 여왕'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이러하다.


일반적인 <마술피리>연출에서 이 콜로라투라 기교 부분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딸에 대해 분노하여 화를 폭발하는 악다구니로 해석된다. 딸 '파미나'에게 자신의 경쟁자인 현자 '자라스트로'를 살해하라고 명령하지만 파미나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에 분노하면서 '밤의 여왕'아리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누가 이 고음을 더 표독스럽게, 서슬 퍼렇게 표현하냐는 데로 경쟁의 촛점이 모인다. (이 점에서 조수미의 '밤의 여왕'은 너무 목소리가 곱다는 불평도 나온다.)


그런데 드세가 부른 이 연주는 사뭇 다르다.

분에 못이겨 순간 딸에게 손찌검을 했으나 곧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딸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내지르는 두려움의 비명으로 노래한다. 드세가 벌벌 떨며 내뿜는 저 자기환멸의 절규를 들어보라! 자신의 경쟁심이, 폭력성과 야욕이 한계를 넘어갔을 때 그 공격의 칼 끝이 자신의 딸에게까지 미친다는 점을 목도한 어머니의 끔찍한 탄식이다.


모차르트가 비인간적인 고음 기교를 요구한 것은 그만큼 비인간적일 정도로 참담하게 어그러진 모성을 그려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설득력있고 인간적으로 와닿는 해석이다. 왜 여태껏 어느 연출가, 성악가도 이렇게 당연한 해석을 시도하지 못했던 걸까? 보통의 다른 연주에선 이 화려한 고음 기교가 나올 때 다만 청각적 쾌감을 느낄 따름이지만, 이 연출에서 드세의 고음을 들을 때는 진정으로 눈물이 나온다.


드세의 '밤의 여왕'은 이후 눈물을 삼키며 딸을 끌어안지만 결국 딸에게 칼을 쥐어준다. 파탄적인 결말을 직감하지만 그 또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에 그렇게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말은 모두가 알다시피 파미나는 어머니의 폭력적인 요청을 거부하고 자라스트로의 사랑의 힘 앞에 모두가 화해한다. 그리고 밤의 여왕은 몰락하여 지옥으로 떨어진다.



왜 전부 밤의 여왕을 ‘여왕’으로만 보는 것인가, 그는 동시에 파미나의 ‘어머니’이기도 한데.

모성애란 사랑과 인자인 동시에 질시와 폭력, 통제가 수반된 교묘하고도 복잡한 관계다. 프랑스 철학자 바댕태르의 말을 인용해본다.  


“모성애는 인간적 감정일 뿐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며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것이다. 상식과는 달리 모성애는 여성의 본성에 깊이 새겨진 것이 아닐 수 있다. 모성적 태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과 헌신이 관찰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성애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상 거의 극과 극만이 존재한다."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만들어진 모성> 중에서



어릴 적부터 세상 닳고 닳으며 자란 모차르트가 어머니와 딸의 노래를 그리는데 그리 단순하게 뽑아 냈을리 없다. 그래서 모차르트가 나탈리 드세의 이 연주를 본다면 분명 기뻐할 것이다.



2020.04.21. 안성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