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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듣는 음악 May 07. 2020

[모차르트] 황희와 맹사성

피아노 협주곡 23번-호로비츠/줄리니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 호로비츠/줄리니/라스칼라오케스트라 DG 1988.



조선시대의 명재상이라 하면 '황희'와 '맹사성'을 꼽는다.

세종대왕 치하의 조선에서 황희는 영의정으로, 맹사성은 좌의정으로 활약하며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가는데 큰 업적을 세운다. 각각의 능력이 출중한 덕도 있지만 두 인물의 성향이 크게 달라 서로 좋은 궁합을 만든 것이 그 시너지라는 분석이 많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황희는 꼿꼿하면서도 강직한 원칙주의자였고 맹사성은 넉넉하고 낙천적인 성품이어서 황희가 엄격한 법도를 세워 조정을 총괄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할 때 맹사성은 현장에서 원활하고 융통성 있는 감각을 발휘하며 실무를 이끌어갔다. 두 인물의 성격은 확연히 달랐지만 나라를 위한 충심은 같았기에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존중하는 콤비를 이룬 것이다. 서로 다른 이가 만나 한마음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정반합이다.


여기 음악계의 황희와 맹사성이 있다.

호로비츠와 줄리니가 만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호로비츠는 강력한 타건과 박력있는 다이나믹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반면, 줄리니는 부드럽고 그윽한 해석으로 손꼽히는 지휘자다. 이 둘이 만나 모차르트를 연주했으니 모 아니면 도의 복불복이 아닐까 싶지만 그 결과가 너무나 훌륭하다.


줄리니의 반주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높은 격조를 느낄 수 있을만큼 우아하다. 값싼 인조섬유가 아니라 고급스러운 실크를 한껏 깔아둔 듯한 광택과 결이 넘친다. 레가토를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한음 한음의 잔향을 풍부하게 울려내어 끝없이 멜로디를 이어간다. 더불어 느긋한 템포 안에서도 명확한 강약의 뉘앙스를 두어 약동하는 맥을 살려낸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한없는 멜로디와 드라마를 그려내듯 모차르트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분명한 낭만과 서사를 부여한다. 이만큼 풍부한 오케스트라 반주를 받아 연주할 독주자는 그 얼마나 자유로운 자신감을 가질 것인가, 호로비츠가 이를 놓칠 사람이 아니다.


호로비츠의 피아노는 힘이 넘치는 선명함으로 가득하다. 손가락이 아닌 망치로 건반을 두들기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타건 하나하나에 걸리는 박력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물론 단순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하지 않는다. 힘이 실린 음표 하나하나마다 색채를 부여하며 간다. 채도와 명도를 극한까지 높인 색채감, 그리고 이를 계속해서 뿜어내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 이 모든 것이 계속해서 모이고 흘러가 익스트림한 탄성력을 가진 모차르트가 탄생한다. 또한 그럼에도 피아노가 자극적인 피상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호로비츠의 노하우와 천부적인 음악성 덕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꼭 언급해야 할 이 음반의 조역은 라스칼라 오케스트라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좌 라스칼라를 지키는 오케스트라답게 반주의 격에 있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유연한 움직임과 기민한 반응이 없었다면 두 거장의 개성이 어울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로 오페라만 연주하는 라스칼라 오케스트라가 모처럼 전면에 나선 음반이다. 교향악전문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비단결같은 사운드를 음미하는 것도 이 음반의 즐거움 중 하나다.


한 마디로 이 협주곡 녹음은 다채로운 메뉴를 한데 모은 최고급 부페라 할 수 있다.

부드럽고 편안한 전채음식부터 강렬하고 자극적인 바베큐, 이 모든 음식에 적절한 마리아쥬의 와인까지 모아 두었다. 조화를 고려해 정찬의 시너지를 높이는 구성이며 각 음식마다 질높은 맛이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고로 청자는 이 각각의 강렬한 개성을 음미해야 하며 귀와 머리로 그 조화를 바라보고 느껴야 한다. 



-2020.05.07.



P.S 본 음반의 레코딩 세션을 기록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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