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6번 - 자발리쉬/바이에른 (ORFEO)
잘나진 아니하여도 정이 가는 사람처럼
명작은 아니어도 애청하게 되는 작품이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이다.
브루크너를 깨나 들어봤다는 사람들조차도 6번 교향곡은, '나 이 곡을 제일 좋아해요' 그러면 '왜 하필 그 곡을...?' 하고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작의 동생격인 4, 5번은 브루크너 중기의 낭만적인 풍모가 담뿍 담긴 기린아요, 형님격인 7번, 8번, 9번 교향곡은 저마다 각자의 우주를 간직한 대작으로서 웅혼히 빛나고 있으니, 반듯하고 얌전해 보이기만 하는 6번 교향곡은 쉬이 눈에 들지 않을 법 하다. (꼬꼬마 젖먹이인 0~3번은 요람에 눕혀 두자)
그러나 이 6번 교향곡의 매력은 바로 그 빛나지도 특출나지도 않는 평범함에서 오는 친근함이다.
브루크너의 다른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높은 혁신과 완성도에 감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고뇌의 깊이가 너무나 넓고 방대하여 편하지 못한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신과 존재에 대해 고민한 적 없다면 넌 이곡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음반 표지에 적혀 있기라도 한 듯이.
반면 6번 교향곡의 메시지와 구성은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이라 누구나 쉽게 그 선율에 매혹된다. 올드 헐리우드 영화마냥 다소 촌스럽지만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는 오프닝에서부터 마지막 피날레까지 하나의 어두운 면면없이 넘치는 활력으로 가득한데 그 쾌속의 속도감과 박력은 단연 일품이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1악장 마에스토소에서 마지막 코다로 진입하는 장면이다.
산만하던 오케스트라 울림이 잦아 들고 꿈결같은 현의 울림 위에 호른이 아늑하게 노래하는데 그 안락하고 푸근한 정취는 산을 베고 강가에 누워 구름을 바라보는 듯 하다. 곧이어 햇살같이 피어오르는 트럼펫과 이에 견주는 호른의 거친 울림이 팀파니의 폭발하는 타격과 함께 힘차게 마지막으로 달려간다. 굳이 우주적 심연의 메시지가 아니어도 순수한 교향악적 울림으로 청자를 쾌감에 다다르게 하니 이 또한 음악의 카타르시스요, 브루크너의 친절함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6번은 명작으로 손꼽히진 못할지언정 곁에 두고 애청하기에는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이처럼 낙관적인 정감이 가득한 작품은 역시 북독일의 엄격함보다 남독일 오케스트라의 노래가 잘 어울릴 것이다. 볼프강 자발리쉬가 지휘하고 바이에른 주립교향악단이 연주한 이 레코드는 산뜻한 템포와 청명한 음색, 장쾌한 울림으로 6번 교향곡의 즐거움을 한껏 끌어 올린다.
브루크너라는 험준한 산령 앞에 막막하다면 6번을 들어보라. 저 높은 구름 위 성좌에 앉아 있을 것만 같던 브루크너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즐거운 노래 보따리를 푸짐하게 열어줄 것이니.
202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