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남겼던 글을 브런치에 올립니다. 2016년 이탈리아행에 올랐습니다. 10년 전부터 꿈꾸던 저만의 낭만의 도시 피렌체를 가기 위함이었지요. 이 글은 아름다운 꽃의 도시 피렌체에 보내는 헌사이자 고별사입니다. 여행의 기록이면서 정보를 제공한다기보다는 당시의 제 마음을 담은 푸념, 청승, 그리고 주저리이지요.
낭만에서 허무까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10년 전 중2병에 걸린 그 시기부터 나에게 꿈의 도시는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고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도시, 쥰세이와 아오이가 사랑을 이루는 냉정과 열정의 도시,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숭고한 사랑이 담긴 도시,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이기에 그 이름조차도 꽃을 뜻하는 곳. 피렌체는 마치 사랑처럼 이유 없이 나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필생의 소원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아르노강과 폰테 산타 트리니타에 가서 그 마음을 느껴보는 것.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그곳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20대 후반에 들어선 2016년의 12월. 드디어 나는 고대하고 꿈꾸던 이탈리아에 갔다. 그 감정을 느끼고자 그리고 이곳에 살리라 다짐한 답사의 목적으로.
그러나 이 여행은 또 한 번 나를 변화시켰다.
피렌체와 이탈리아는 내가 꿈꾼 것만큼 아름다운 땅이었다. 12월의 겨울에도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정리정돈이 덜 된 듯한 도시 분위기, 곳곳에 반쯤 무너져 내린 수많은 유적들. 조금 난잡하고 어지러워 보였지만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웠다. 파리에서 경험한 높은 건물과 무채색의 차가운 느낌보다 이탈리아의 낮은 건물과 따뜻한 느낌이 더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친절했다.
특히, 홀로 여행을 다니는 나를 자신의 가정으로 초대해 머물게 하고 많은 정을 베풀어 주었던 비첸차의 Zordan 가족을 절대 잊을 수 없다. 또한 밀라노에서 함께 강아지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나를 반겨주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Federica와 그녀의 강아지 Asia도 감사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이탈리아인들과 축구장의 울트라스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너무나 친절했고 정겨웠다.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당시 이탈리아 여행의 절정이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답게 거리는 아름다웠고 고풍스러웠다. 가장 먼저 찾은 아르노강은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했다.
날씨가 좋든 좋지 않든 매일매일 숙소를 나서면 가장 먼저 아르노강을 찾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근처를 출발해 폰테 알라 카라이아(Ponte alla Carraia)를 건너 폰테 산타 트리니타를 다시 건너고, 폰테 베키오 다리를 향해 가며 피렌체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아르노강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 폰테 산타 트리니타에서 폰테 베키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관광객들, 가죽 패션의 도시 답에 세련되고 멋진 옷을 입고 다니는 피렌체 시민들. 내가 꿈꾸던 그 모습 그대로다.
인간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던 중세시대에서 모든 예술 작품들은 신(神) 중심이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에게 감히 인간의 감정을 담을 수는 없었다. 인간을 초월한 그들에게 감정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결코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 슬픔, 증오, 애환, 기쁨, 행복 수만 가지 언어로도 담을 수 없는 그 감정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감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기쁨이자 축복이다. 르네상스의 시대가 온 것이다. 피렌체는 그 르네상스가 꽃처럼 만발한 곳이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등 위대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보카치오, 단테 알리기에리,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소설가와 정치인 그리고 과학자들도 모두 이곳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다.
중세시대를, 신성 시대를 싫어하는 나에게, 인간의 감정을 가장 사랑하는 나에게 피렌체는 이상향과도 같은 곳이다.
2016년 피렌체에서...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