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남겼던 글을 브런치에 올립니다. 2016년 이탈리아행에 올랐습니다. 10년 전부터 꿈꾸던 저만의 낭만의 도시 피렌체를 가기 위함이었지요. 이 글은 아름다운 꽃의 도시 피렌체에 보내는 헌사이자 고별사입니다. 여행의 기록이면서 정보를 제공한다기보다는 당시의 제 마음을 담은 푸념, 청승, 그리고 주저리이지요. 그럼 1부에 이어서 2부입니다.
피렌체는 또한 낭만의 도시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지고지순 하다 못해 한편으로는 집착까지로도 느껴지는 단테의 사랑,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과 일본인들에게는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과 영화 속의 주인공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이 담긴 무대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렌체를 돌아다니다가 만난 한국 가이드 투어의 설명을 들어보면 꼭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다리에 대한 이야기와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 속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한 마디 씩은 나온다. 또한,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도시라 그런지 신혼부부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명품 아웃렛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피렌체 낭만의 절정은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는 뜻을 가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했고 브루넬레스키가 마지막 쿠폴라를 얻혀 완성시킨 이 성당은 그야말로 르네상스의 심장이다.
프랑스에서 보았던 그 빼곡한 고딕 형태의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로마의 4대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성당들과도 다른, 피렌체 만의 따뜻함과 화려함 그리고 색의 조화는 마치 하나의 풍성한 꽃다발을 보는 것 같았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느낌과 감동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쥰세이와 아오이가 서른살 생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돔 꼭대기로 올라가 보았다. 아찔한 높이에 피렌체 시내가 모두 내려다 보인다. 저 주황색 지붕들이 햇살에 비추어 따뜻한 온기를 더한다. 쥰세이와 아오이는 이 곳에서 그들의 약속대로 다시 만났다.
로맨틱한 곳이다. 수많은 연인들이 함께 이 곳에 올라와 손을 잡고 피렌체의 전경을 감상한다. 나 역시 이 곳의 낭만을 꿈꾸었기에 난간에 몸을 기대 한 동안 피렌체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복잡한 감정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분명 멋진 곳이다.
쿠폴라에서 내려와 피렌체의 골목골목을 걸었다. 쥰세이의 삶이 그려진 영화 속 배경을 찾아다녔다. 그 영화를 꿈꾸며 나도 쥰세이처럼 자전거를 타다가 돈이 모이면 오토바이로 바꿔야지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미켈란젤로 언덕을 올라가 피렌체의 야경도 바라봤다.
단테의 생가라고 박물관처럼 꾸며 놓은 곳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과거 아르노 강의 범람으로 피렌체가 물에 잠겼던 사건을 상징하는 듯한 갈릴레이와 단테의 물안경 그림을 보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제 그다음은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갑작스럽게 스스로에게 찾아온 이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너 여기서 살고 싶다며? 오고 싶었다며? 그래서 왔잖아. 근데 너 그저 기쁘고 행복하기만 하니?'
사실 계속 억지로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있었다. 그토록 꿈꾸던 도시,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한 듯한 '감명'과 '행복'과 동시에 나에게 찾아온 것. 피렌체에서 이미 느끼고 있었고 집에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느끼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난 바로 그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 마침내 발을 딛고 난 그 순간, 낭만과 함께 찾아온 그것은 '허무'였고 '공허'였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여기 피렌체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그려보니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꿈꾼 것은 오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탈리아어도 공부했고,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봤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여기에서 사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블로그나 SNS로 수소문해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요리로, 그림으로, 가이드로, 숙박업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서 이탈리아에서의, 피렌체에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피렌체에서 살고 있는 선구자들에게서 현실적인 이야기와 함께 용기를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이 단순한 질문에 답을 확신하지 못했다.
피렌체는 나에게 현실이 되지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일해왔던 것. 그리고 지금 이 시기를 넘어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방향, 내 경제적인 여건 등등 꿈꾸던 것을 생각하니 뒤이어 찾아오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자꾸 피렌체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피렌체 너를 정말 사랑하니까 마땅히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 그토록 바라던 것이니까 그렇게 하면서 살면 되지! 하면서 스스로 자위했던 생각들. 다 계획이 있으시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살다 보면 잘 살 수 있겠지 하면서 무책임하게 다짐했던 이야기들. 그것들이 다 무너진다. 피렌체는 나에게 그저 꿈속의 낭만이었던 것이다. 피렌체에서는 부정하려고 했던 이 현실적인 고민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피렌체를 여전히 너무 사랑한다. 여전히 내가 꿈꾸던 그 이상향이다. 하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낭만이 현실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오랜 고민 끝에 피렌체를 다녀온 후에야 결국 나는 그토록 바라던 피렌체를 그저 낭만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10년 동안 꿈꾸던 이탈리아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2016년 12월 피렌체에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