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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이 Mar 30. 2018

[#1] 웬 오로라 여행?

오로라탐험대의 시작

※ 본 여정은 지난 201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4일까지 진행되었던 여행을 리뷰한 내용입니다.


오로라탐험대의 출발을 보름 남짓 앞두고 있는 그때. 신나게 티켓팅도 하고, 숙소도 예약하고, 나름의 꿍꿍이를 가지고 준비하며 즐겁고 마냥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들은 주변의 몇몇 지인들로부터 나오는 질문들에 대해서 반복스럽게 답해야만 했다.


"너희 셋이 그렇게 친했던가?"

"언제 어떻게 시간을 내서 가려고?"

"여행 경비는 있어?"

"왜 캐나다야? 왜 오로라야?"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우리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친해졌어요. 저희 회사 그만뒀거든요. 퇴직금 여기에 불태웁니다. 오로라니까요.>라는 단답형보다 조금 더 성의 있게 이 여정의 배경과 시작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며, 또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이때의 행복했던 동기부여를 가능한 오래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1.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다


우리는 2014년의 가을에 나란히 한 PR회사에 입사를 했다. 우리들은 '공채 X기'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서로를 '동기'라고 부르며, 함께 본격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각자의 배경과 역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동기'라는 이 단어는 알 수 없는 유대감으로 서로를 이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서로 느끼는 온도의 차이는 다른 법. 입사한 지도 어느덧 해가 두 번이나 바뀐 2016년의 가을 어느 날. 7명이었던 동기는 이제 겨우 3명 만이, 그것도 서로 가장 친해질 기회가 적었던 이들만이 남게 되었다.


이직이 많은 이 업계의 특성상, 한 달에도 몇 번씩 퇴사 소식이 들려온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도 대부분 각자의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 자신들의 새로운 길을 걸어갔다. 창의성과 개성이 주요한 덕목 중 하나인 이 세계에서도 우리는 상대적으로 개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조용히 진득하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길을 벗어나기보다는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래서 꾸준히 회사를 다닐 것 같은 사람들,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특별한 개성이랄 것이 없는 세 사람은 비슷한 그들 세 사람만이 남겨졌을 때 드디어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떠들었기에 인지하지 못했던 서로는 마침내 덩그러니 그들만 존재했을 때 서로를 인지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편의점 나들이, 옥상 나들이, 복권 구매 등 사무실 일탈을 즐기며 예상치 못한 많은 감정들과 생각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 앞 복권방에서 인생 한방의 꿈에 도전하기도 했다.




2. 대안 없이 무턱대고 움직이진 않는다


우리 셋은 여느 다른 청년들이나 사회 초년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반복되는 야근과 생산적이지 못한 업무에 몸과 정신을 갈아 넣으면서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이 사회의 쓴 맛을 목구멍 깊숙이 느끼고 있었다.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기에 '내 언젠가 때려치우고 딩가딩가 놀고 말 테다'라는 호기로운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한번뿐인 인생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어쩌면 허황된 꿈과 망상을 나누기를 즐겼다. 그러면서도 한 편은 '회사를 그만 두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이 일을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 둘 이유는 많지만, 그만두지 못할 이유는 더 많다. 그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금수저가 아닌 우리들은 '생계'라는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항상 노마드(Nomad)를 동경하고 꿈꾸었지만, 우리는 본디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냥 훌쩍 떠나버리는 대안 없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시기와 상황과 손에 주어진 땡전 몇 푼,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우리의 퇴사와 여행은 나름의 치밀한 플랜B를 토대로 전략적인 선택에 의해 결정되었다.


백수(한시적)의 시간과, 퇴직금(몇 푼)이 우리에게 준비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순간을 즐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믿음이 있어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3. 그래서 왜 오로라인데?


퇴사를 결심하였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예정되어있지 않던 그때, 동기 중 한 명인 M이 하나의 사진을 단톡방에 툭 던져놓았다. M의 지인이 핀란드에서 직접 찍었다는 그 사진은, 어두운 밤하늘에 초록빛이 마치 커튼처럼 하늘하늘거리는 오로라 사진이었다. 오로라!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꿈꾼다는 오로라! 그런데 막상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낯선 여행인 오로라!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 셋은 오로라 사진을 보며, 감탄하고 부러워할 뿐 감히 오로라를 보러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즉흥과 낭만과는 거리가 있는 우리들이 오로라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나 현실적인 조건과 명분이 맞아져서다. 당시 C는 캐나다로의 1년짜리 어학연수-라고 쓰고 도피라고 읽는다-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C는 캐나다를 들리자마자 예전 동료이자 6개월 전 캐나다 캘거리로 이민을 가신 J과장님의 집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연결고리가 생긴다. 명분이 만들어진다.


"얘들아, 캘거리 과장님네 놀러 안 갈래? 로키산맥도 보고, 오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마 우리는 캘거리에 J과장님이 살고 계시지 않았다면, 아니 J과장님이 아니셨다면, C가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 아니었다면, 캘거리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화이트호스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었다면, 오로라를 보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회와 명분이 있어야만 떠나는 용자보다는 쫄보에 가까운 우리들 다운 결정이었다.




4. 오로라가 건네는 위로를 기대하며


현실성 있는 명분과 계획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갬-성이 생긴다. 과연 클라이언트(돈, 수주)를 따내야 하는 목적과 명분이 생기고 난 뒤 이를 포장할 수 있는 카피와 제안서(감성)를 만들어내는 PR인 다운 전개다. 보고 싶었던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연결고리들이 생겼으니 이제 이것을 감성지게 한번 포장해 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태양계의 유일한 별이자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은 지구 만물의 어머니이기도 하면서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열과 에너지를 우리에게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태양풍과 방사선을 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위험한 에너지로부터 지구를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지구 자기장이다. 무시무시한 태양풍과 방사선의 대전 입자들은 지구를 향해 달려오던 중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자기장의 힘에 이끌려 북극과 남쪽으로 끌려들어 가는데. 이때 대기 중의 산소, 질소 등과 만나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빛이 바로 오로라인 것이다.



출처 : Pixabay


다시 말해, 오로라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이 지구가 외부의 세계로부터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생명체들을 잘 지켜주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마치 구약 성경 속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을 하던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며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오로라를 보며, 이 땅에서의 생명과 삶의 평안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라는 보호이자, 위로가 될 수 있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목적을 잃고 길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오로라는 '넌 보호받고 있어', '널 지켜주고 있어'라는 아주 진한 위로를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황홀한 위로를 기대하며, 오로라를 만나기 위한 명분과 계획을 모두 마쳤다.


자,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계속)  



회사동기 3인방으로 이루어진 오로라탐험대의 캐나다 오로라 여행 시리즈

[Prologue] 결정적 순간

[#1] 웬 오로라 여행?

[#2]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래서 캐나다

[#3] 오로라, 너 이렇게 쉬운 친구였어?

[#4] 캐나다 숲 속의 작은 산장에서

[#5] '그 날' 오로라가 우리에게 건넨 위로

[Epilogue] We are Voya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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