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레벨 : 새로운 일을 발굴하자.
'좋은' 기획자, 라고 써 둔 나의 글을 보면 대놓고 마음가짐에 대한 글이 일색이다. 어떠한 분야에 공부를 해야하고 연구하여 발전시킨다, 라는 내용은 정말 한 줄도 없다.
모든 이유는 나에게 있다.
사람마다 공부할 범위는 다르다
지능을 발휘해서 해결하는 것은 알아서 잘 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조언으로 해 줄 이야기도 아니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닥치면 다 배우는 게 맞다. 필요하면 SQL도 하면 되고 급하면 운영을 위한 공지사항도 잘 써야하고 정말로 디자이너가 말도 안되게 바쁘면 포토샵도 간단하게나마 쓸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 부분을 통째로 비워둔 것도 있다. 그리고 각자가 처한 영역에 따라 필요한 지식의 분야는 너무나 다르니 쓸 이유가 없다. 음악서비스, 매칭서비스, 메신저서비스, 결제플랫폼, 광고플랫폼 모두 필요한 내용이 달랐다. 그리고 글을 보는 다른 기획자들도 그에 맞은 내용을 잘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음악서비스를 할 때 공부가 필요했던 범위
- 앱스토어 정책
- 사용자 패턴
- 음악장르분류
- 스트리밍을 위한 데이터처리 구조
- 로그인 값 관리
- 화면 크기변화에 따른 사용성 차이
- QA 시 확인 범위
매칭서비스 때 공부가 필요했던 범위
- 심리학
- 결혼정보회사의 로직
- 교환가치
- 아이템에 따른 금액 설계
- 어드민 설계
- 배포 주기 산정
메신저 서비스
- 통계
- 사용성
- 트래픽과 연간 이벤트
- 사용자 패턴
- OS별 차이, 관리
결제플랫폼
- 로그와 추후 처리 프로세스
- 회계 및 대차대조표
- 사업자 정보 관리
- 충전, 결제, 환불 로직
광고플랫폼
-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플랫폼 설계
- 온라인 광고 산업 구조
- 소셜 로그인
- 유관 서비스에 대한 이해
- 대량 데이터 처리 흐름 이해
공부가 쉽고 사람 대하는 것이 더 어려워요
더 예전이었다면 꼭꼭 숨겼을 말이지만, 대인관계를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 열다섯배는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스스로 정리해둔 내용이 모두 애티튜드만을 다루었다. 의외로 직장생활에서는 남이 나에게 가르쳐 줄 수 밖에 없다. 내가 알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보니, 알아먹을 때까지 떠먹여준다. 좋은 사람을 잘 만나면 더 친절하게 떠먹여줄 수 있다. 좋은 사람을 잘 만나면 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신중할 수 밖에 없어졌다. 의식하지 않고 무심결에 말을 했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이후에 그 사람과의 업무진행은 꽤나 힘들어진다. 담당자 배정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한 번 사이가 틀어지면 마주하는 내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기획자는 업무 특성상 다양한 역할을 하는 이들은 많이 만나고 자주 만나다 보니, 순간순간을 괴롭게 만들면 하루 여덟시간 업무가 많이 힘들어진다.
저는 회사 친구 사귀러 다녀요
유치한 이야기지만, 진심이다. 24시간 중 8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인생의 목표 수준으로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미움을 받거나 소원해지는 것이 싫다보니, 안정적으로 화목한 관계가 보장되어야만 일을 할 수 있다. 감정적인 패널티가 있다보니 이부분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인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서툴다보니 일을 하면서 천천히 다가가도 방해되지 않게 작은 사담을 한 줄 정도만 건넨다.
연봉인상을 위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것보다 같이 일하는 동료 한 명이라도 더 나를 좋아해주는 게 좋다. 지극히 소시민적이지만 삶의 기조가 그렇다. 더 나이든 부모님의 말을 들어도 이 방향이 맞는 것 같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데, 사람이 훨씬 귀하다고.
'유능'한 기획자
'유능'한 기획자 라는 말에 인용부호를 넣은 이유가 이부분이다.
무엇을 유능하다고 볼 것인가.
여러 필드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 혹은 자신이 있는 필드에서 새로운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어떤 요구사항이든 되게 하는 사람.
나의 연차에 대해 놀라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목표였다. 다채로운 분야를 경험하고자 했고 그 경험이 어디든 빠르게 적응하여 찰떡같이 할 수 있는 것이 기획자로서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주니어 기획자라면 맞는 말이다. 제너럴리스트, 필요하면 다 하는. 다 할 수 있는 사람.
주니어들을 잘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 익명의 상사 A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고나니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는 부모만 된 것이 아니라 시니어 기획자가 된 것이라는 자각을 했다. 손으로 햇수를 세어보니 어느새 10년이 지나있었다. 그 때 알게 된 친구는 거의 열살이 차이가 나고, 그 시절의 내 모습을 간직한 이들도 있고. 한 세대가 바뀌는 것처럼 뉴비들을 보고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빠르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역할은 비단 나 아닌 누구든 가능하다. 빠릿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뉴비들을 보니, 어쩌면 그만큼 연차 값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보다 뇌도 젊고 체력도 좋은 이들이 다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시킨다고 하는 것 아니었나 싶었다.
보다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을 찾아요. - 익명의 상사 B
내가 여지껏 생각한 것과 정 반대의 요구사항이다. 어쩌면 다른 스테이지로 진입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새로운 유능을 찾으러 가자.
새로운 유능은 아마도 '새로운 할 일을 발굴할 수 있는 사람' 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