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향에 내려가서 엄마나, 할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보고 곤란할 때가 있다. 감, 곶감, 홍시, 고구마 등을 잔뜩 쌓아두실 때다. 그 음식은 분명히 내가 좋아해서 준비한 음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몇 년 전까지 쌓아두고 먹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가족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사돈의 팔촌이 알 정도로 즐겨 먹었던 음식인데. 어느 순간 더는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고, 예전만큼 찾아서 먹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좋아할 내 모습을 생각하며, 날 위해서 준비한 음식들을 보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까 잠시 고민한다.
반대로 한 젓가락도 먹지 않던 음식이 좋아질 때도 있다. 고사리 나물, 회, 맥주, 꼼장어 같은. 특히, 맥주랑 회는 안 좋아하는 걸 떠나서 정말 싫어했다. 맥주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싫었고, 회의 물컹한 식감이 끔찍했다. 그러다 스무살이 된 지 얼마 안 지난 어느 날, 대학교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회가 먹고 싶어졌다. 그 후로 회도 초밥도 좋아하게 되었다. 맥주는 서서히 좋아진 케이스다. 맥주 냄새도 냄새고, 맥주만 먹으면 유독 술 먹고 탈이 많이 나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맥주가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지금은 가끔 맥주 양조 하러 다니기까지 한다. 근 2년 사이에는 와사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간장이나 초장에 잔뜩 풀어, 코가 뻥 뚫릴 농도로 먹기 시작했다.
희한한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내 입맛도 변하는 모양이다. 비단 음식 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교 다니는 내내 나랑 별로 안 맞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어느 순간 둘도 없는 절친이 되어있을 때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좋았고,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좋은 음식도,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나보다. 심지어 내 취향도 이렇게 변하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언제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엄마랑 할머니가 챙겨 준 음식들은 여전히 좋아하는 척 하며 맛있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