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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면을좋아하는타입 Nov 01. 2018

다이어트 하려고 갑자기 복싱 배운 후기

복싱을 배우게 된 계기

올 여름 거울 앞에 섰다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외면하고 외면하고 외면했는데, 거울 속에 나는 살이 너무 쪄있었다. 체중계 위에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육안으로도 살이 찐 게 보였다. 혹시나 싶어 작년 겨울에 입었던 옷들을 꺼내 입어봤더니 거의 터지기 직전이었다. 원래도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과학적으로 저체중보다 과체중이 오래사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옷이 안 맞기 시작하니 과학적인 사실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살이 가장 많이 빠지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복싱’이 생각났다. 평소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복싱이 과격한 운동이란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복싱장 선택 기준

 당장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복싱장을 검색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가까운 곳으로 복싱장 두 곳을 추렸다. 후보 1은 집에서 10분~15분 정도 거리에 시설이 깔끔하고 헬스장에 있을 법한 기구까지 겸한 다이어트 복싱장, 후보 2는 집에서 2~3분 거리에 시설이 비교적 노후한 정통 복식장. 시설과 거리 중 무엇을 선택할 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게으른 내 성격을 고려해서 집에서 가까운 후보 2를 선택했다. 사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챔피언 많이 배출한 곳, 다이어트 복싱과는 차원이 다른 정통 복싱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가오가 사는 글들이 많아서 후보 2를 선택하기도 했다. 복싱을 배우기도 전에 복싱뽕이 차버렸다. 27만원에 복싱 3개월을 끊었다.


복싱장에 가면 하는 운동

복싱을 하러 가면 하루 동안 하는 운동은 아래와 같다.

먼저 줄넘기를 3라운드(1라운드 당 3분, 약 9분) 한다.

자유롭게 복싱 연습을 한다. (틈틈이 관장님이 자세도 봐주고 새로운 것도 알려주신다)

사람이 4명 이상 모이면 체력훈련을 한다. (플라잉 체인지, 버핏, 다리당기기, 90도 달리기, 빨리 달리면서 주먹질 하기, 다리밀기, 다리 올렸다가 내리기 등등)


복싱 도전 초기 소감

첫 날은 말 그대로 녹초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본 적도 없는 줄넘기를 하려니 종아리도 아프고, 숨도 차서 폐가 아팠고, 특히, 사람 4명이 모였을 때 하는 ‘체력훈련’이 아주 끔찍했다. 헬스맨들이 보는 영상이나, 콘텐츠에 나오는 온갖 맨몸 체조를 다 했다. 게다가 올 여름은 최악의 폭염이었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고, 눈 앞이 어질어질 했다. 운동한 지 3일 째가 되던 날,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체중계에 올라갔다. 몸무게는 작년보다 7키로나 쪄있었다. 아주 화가 났다. 도대체 운동 시작 전엔 몸무게가 어떤 지경이었던 걸까! 몸무게를 재고 내려오니 눈 앞에 여동생이 보였다. 여동생도 나처럼 살이 아주 많이 쪄있었다. 함께 복싱을 하러 가자고 꼬드겨서, 결국 복싱장으로 데리고 갔다. 가족은 고통도 나눠야 하는 존재니까. 이 고통을 나 혼자 당할 수 없지. 대신 복싱 1개월치 회비를 내가 내주기로 했다. 평소 덩치에 비해 형편없는 체력을 가지고 있던 여동생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았다. 첫 3일은 체력훈련을 할 때 마다 토했고, 4일 째엔 과호흡 증상이 잠깐 왔다. 하지만 5일 째 부턴 체력이 붙었는지 제법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관장님 말론 여동생 같은 케이스는 처음 본 특이 케이스라고 하니, 보통의 체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복싱 도전 3개월차

어쨌든 최대한 개미같이 성실하게 복싱장을 나가려고 노력했다.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약속은 나가되, 일주일에 최대 2회만 복싱장을 빠지기로 나와 약속했다. 그래서 복싱장 오픈하는 6일 중 3~4일 정도는 꼭 운동을 하러 나갔다. 관장님한테도 우리 체육관에서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복싱 시작한 지, 1개월이 지나갈 무렵에는 한 번씩 링 위에 올라가 스파링을 했다. 요즘은 너무 늦게 진도 나가면 사람들이 금방 흥미를 잃어서 그만둬버리니까, 조금 빨리 진도를 나간다고 했다. 복싱을 잘 하는 남자분과는 매도우(약하게 스파링 하는 것)를 하고, 여자분들이랑은 그냥 하면서 엄청나게 두드려 맞았다. 맞기 싫어서 도망 다니고, 막다 보니 조금씩 느는 것도 같았다. 어영부영, 복싱 3개월차가 되었다. 


복싱의 장점

복싱을 3개월 간 하면서 느낀 장점은 이렇다.

체력이 좋아져서, 잘 지치지 않는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다보니 어깨와 목이 자주 아팠는데, 최근에는 거의 아프지 않다.

동생이 까불 때 빠르고 세고 깔끔하게 때리고 빠질 수 있다.

밤 길 걸을 때 괜히 복싱뽕이 차서 덜 무섭다. (머릿속으로 괴한이 접근하면 쨉쨉원투훅투 하고, 재빨리 도망치는 시뮬레이션을 늘 해본다)

술 약속을 덜 잡아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헬스나, 빨리 걷기, 줄넘기 등과 비교했을 때 덜 지겹다. (자세도 계속 바뀌고, 중간중간 체력훈련이나 다른 운동도 해야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연습하기도 하고, 스파링도 하고... 지겨울 틈이 없다)


복싱의 단점

반면, 복싱을 3개월 간 하면서 느낀 단점은 이렇다.

장비충(충은 충실할 충)이라서 돈이 많이 든다. 복싱 용품 고르는 걸로도 글을 하나 쓸 판이다. (장비 상세 : 연습용 글러브, 붕대, 운동복 상하의 세트 1개, 레깅스 1개로 시작해서 -> 스파링 글러브, 헤드기어, 마우스피스, 복싱화, 땀복, 언더레이어 2개, 레깅스 2개 추가 구매, 운동복 바지 2개 추가 구매, 스포츠용 반팔티 2개 추가 구매 등)

양 손등에 세번째 손가락 뼈 튀어나온 곳이 까매진다. (샌드백을 제대로 치면 세번째 손가락 뼈, 제대로 못 치면 다섯번째 손가락 뼈 있는 곳에 까매진다고 한다)

스파링 하다가 가끔 한대 세게 맞으면 화가 난다.


복싱 하고 나서 몸무게의 변화

복싱 시작 전에 몸무게를 재보지 않아서, 정확히 몇 키로가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4~5키로 정도가 빠진 것 같다. 특별히 식이요법을 병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운동을 하니 배가 고파서 평소에 안 먹던 아침까지 추가로 먹었다. 식이를 병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이어트 효과가 대단히 대단하다고 할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복싱은 하루종일 활동 없는 회사원이 (반드시 강하게) 마음먹고 해보기에 좋은 운동인 것 같다. 그래서 거금 50만원을 내고, 6개월치를 더 끊었다. 사실 3개월만 더 추가 해보려고 했는데, 관장님이 꼬셔서 6개월 끊어버렸다. 엄청난 팔랑귀.


앞으로의 포부

이번에야 말로 식이요법까지 병행해서 30년 만에 다이어트를 성공하고야 말겠다. 요새 관장님이 자꾸 잊을만하면 내년 봄 생활체육대회에 나가자고 주입식 동기부여를 한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혹시 나가게 되면 반드시 상장을 받아와야겠다. 트로피를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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