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장애 극복기 2 - 극복한 줄 알았다.

by elsewhere
KakaoTalk_Photo_2025-07-12-17-15-26.jpeg 나는 평소에 빌딩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손편지를 보내고 며칠 뒤 자취방으로 우편이 하나 도착했다. 병원으로부터 온 우편.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우편을 열어보니 타이핑 된 편지가 들어있었고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당신의 요청에 따라 병원에서는 병원비에서 얼마 정도 차감을 해주겠다”


나는 기뻤다. 그러나 뛸듯이 기쁘다기 보다는 조그마한 안도감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칼같이 한국에 들어왔다. 본격적인 한국 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나는 취업에 대해 무지했다. 어떻게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는지, 면접에 갔을 때 어떻게 입어야하는지 몰랐다. 언제 한 번은 면접에 갔다가 신발을 지적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놀라웠던 건 그 때의 신발이 검은색 단아한 구두였다는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정부에서 취업청년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면접장에 가면 그 분위기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나는 희망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면접에서 번번히 떨어졌고 서류는 아마 100개 정도 떨어진 것같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알바를 병행하며 꾸준히 노력했고, 취업 준비를 한지 1년이 조금 안되었을 무렵 한 회사에 운좋게 취직하게 되었다.


나는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이직을 반복해 커리어를 쌓아갔다. 연봉도 오르고, 회사 내에게 인정도 받았다. 그 시기에 크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동료가 옆에 있으니 털어놓을 곳이 생겼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한국어가 기가막히게 늘었다.


한국어로 도배되어 있는 과학 서적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팩트풀니스 같은 책.


그러다 정신질환이 재발한건, 다름아닌 퇴사를 한 후 쉬고있을 때였다. 개인적으로 응원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생각은 이렇다.


공허함. 삶은 도대체 뭘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나 힘들게 하였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슬픔. 괴로움.


말로 다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결국에는 나도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죽고 싶었다. 베르테르효과라고 하던가. 그런게 나에게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전과 다른 정신과에 가게 되었다) 정신과에서는 이전과 같이 우울증 진단을 내렸고 몇 알의 약을 받았다. 나는 정기적으로 정신과를 내원해서 의사선생님과 짧은 면담을 했다. 우울증이 쉽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 복용하니 효과는 있었다. 그 덕분인지 다음 직장에서는 매일 웃으면서 다닐 수 있었다.


어떨 때는 너무 신나서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화가 날 때도, 혼잣말을 할 때도 행동이 거칠고 컸다.


-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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