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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Aug 20. 2020

김말고, 감태를 아시나요...?

푸른 감태같은 사랑

오늘 저녁은 감태를 굽기로 했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한장한장 아껴 먹느라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감태 대여섯장 꺼낸다. 김솔에 들기름을 묻혀 빠르게 바른다. 소금을 톡톡 친뒤 적당히 가열된 팬에 앞뒤로 구워낸다. 이내 알싸한 감태 냄새가  집안을 감돈다. 그래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자.


김 말고 감태를 아시나요?

내 고향은 서해안. 해산물을 수도 없이 많이 먹고 자랐다. 아버지 취미는 낚시. 늘 싱싱한 물고기들을 가득 잡아오셨다. 감태는 김처럼 해초류에 속하나 옥수수수염처럼 가늘고 길어서 이걸 틀에 얇게 펴서 널면 김 모 양처럼 나오는데 김은 촘촘하다면 감태는 성글다.


다 마른 감태는 들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서 구워 먹는다.알싸한 맛에 한번 먹으면 계속 찾게 된다. 별미다. 예전에는 서해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잡히지 않아 귀한 밥반찬이 되었다. 그런데 감태랑 아버지가 무슨 관련이 있냐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우리가 했던 일들

아버지는 목공예에 뛰어난 재능이 있으셨음에도 평생을 성실과 꾸준함으로 살아 오셨다. 나는 미련하게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아버지 죄송해요)했지만 그 성실함과 뚜벅뚜벅함을 내가 고대로 닮았으니 영락없는 아버지 딸이다.


오남매 중에 막내딸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벌써 마흔이니 세월이 흐르기도 참 많이 흘렀다. 그래도 난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시간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빠는 40여 년 정도 차이가 나는 한참 어린 막내딸이 뭐가 그렇게 말이 통했을까?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한자가 반도 넘는 종이신문을 펼치시고 나를 불렀다. 아니 내가 그 곁으로 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너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니? 이게 워떤 의민 줄 아니? 이 한자가 이렇게 쓰였을 때랑 저때 쓰였을 때 어떻게 다른지 아니? 참 하나를 알려주면 그걸 다 기억하니 아빤 너랑 이러는게 재미있고 니가 참 기특허다"


국민학생,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생이었던 막내딸에게 뭘 그렇게 가르쳐 주시고 싶으셨을까... 세 명의 언니와 한 명의 오빠에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아버지는 유독 나와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시길 즐기셨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지만 원체 하나를 깊이 연구하고 분석하길 좋아하셨다. 남들이 보면 희귀하게 보일 발명품들이 우리 집에는 많았다. 아빠와 이런 시간은 내가유.청소년기를 통털어 글짓기 대회를 나가는 족족 상을 휩쓸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도 글쓰기를 토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글수저를 물려주셨다.




나만 알고 지나갔더라면 좋았을 일

그 날 이야기를 어찌 꺼내면 좋을까... 나에게도 상처가 된 그날 이야기 말이다. 막내딸인 나를 각별하게 생각하시고, 집안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누구보다도 나를 불러 조용히 의견을 물으셨던 아버지에게, 내가 했던 말을...


"혜숙아, 엄마 병원에 보낼 의료용 쿠션 말이다. 그걸 얼른 사야겠어"

"아빠, 제가 인터넷에 알아보고 얼른 주문해서 보내드릴게요"


그때 당시 나는 직업이 3개나 되었다. 늘 나는 마감 일정이 빠듯한 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 일에는 다른 사람의 일을 챙기고 성장을 돕는 일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내일들은 사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뒤로 밀리기 일쑤였던 날들이기도 했다. 그날도 아빠께는 내가 알아보고 최저가를 찾아서 주문해드린다고 말씀드려놓고 아마 며칠이 지났을 거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혜숙아, 엄마 쿠션 사서 병원에 가져다 놨다. 아주 좋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아~ 아빠 힘들게 아빠가 사서 보내드렸어요? 얼마였어요? 제가 돈 보내드릴게요"

"응 놔둬라. 얼마 얼마인데 아빠가 돈 냈다"

"...? 아빠~ 그거 서울에서 사면 그거보다 싸게 구매할 수 있는데, 아빠 의료 상사에서 그렇게나 받아요? 그 사람들 너무 하네~~~ 아빤 내가 주문해서 보내주면 될 것을 왜 거기서 비싸게 사셨어요?? 네??"


아마 뙤약볕 밑에서 전화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우리 형제 중에 총무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부모님께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사는 일은 내 담당이었다.


그뿐인가? 나는 그때 당시 한참 인터넷 쇼핑몰 운영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가격에 사서 저 가격으로 판매를 하는 일. 그래서 같은 제품이라도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현저하게 가격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1인이었다. 지방에 의료상사는 더 받아도 너무 더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아빠가 잘못했네. 내가 어수룩했네..."

"아, 아빠..."


풀 죽은 아빠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면 그럴 수 있는데 당시 여전히 당찬 막내딸이었나 보았다. 일흔이 넘는 아버지에게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만큼 속이 상했었나 보았다.


언니들하고 얘기하고 말 것을 나는 왜 그 이야기를 그날 아버지께 길게 늘어놓았을까... 아버지 그건 잘.못.하.신. 일.이.에.요, 라고 꼭 짚어 말했었어야 했을까...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하루라도 빨리 편안한 쿠션을 가져다 드리고 싶으셨던 그 마음까지는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내 마음도 편치 않았던 그 날이 3~4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철이 든 막내딸은 그날 이후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이란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것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친정집에 가면 맡을 수 있었던 알싸한 냄새

"아빠, 저희 왔어요. 지도 왔어요, 지야 외할아버지께 인사드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장인어른, 잘 지내셨어요?"


아빠는 거실에서 뭔가를 하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미역 같은 해조류 냄새도 나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감태를 김발 같은 틀에 널어 말려놓은 걸 쭈욱 걷어다 거실 한쪽에서 마저 말리고 계셨다.


"난 장인어른이 하신 음식 중에 감태가 제일 맛있더라 쩝쩝"

감태 한 장을 식탁에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지 언제는 아빠게 여쭈어 보았다. 듣기만 해도 사 먹는 게 낫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 남자, 참 해맑게도 말한다 생각하면서도 남편의 그 이야기를 그대로 아버지께 전했었다.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해서다.


"아빠, 김서방이 감태가 정말 맛있대. 아빠 우리 이번에 내려가면 감태 있어요??"

"가만... 있어봐라... 지금은 감태가 귀혀. 너네들 오면 그때 감태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어. 그런데 일단 와봐"


그러고 집에 갔는데 감태가 있었다. 잘하면 저녁 상에 감태를 먹을 수 있다! 막내 딸네가 오는 날에 맞춰서 감태를 구워주려고 부랴부랴 바다에 나가서 감태를 뜯어오고, 수작업으로 만든 틀에 얇게 펴서 그늘에 말리고, 말릴 땐 또 어떤가, 아파트 경비원들이 어르신 여기서 이런 거 말리시면 안돼요 한다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거 반나절만 말리면 되는데, 곧 다 된다고 하시다가 정 안되면 걷어서 거실로 가지고 들어오시고. 그렇게 감태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수고를 할바에야 중앙 시장에 나가서 8000원짜리, 또는 조금 오르면 10,000원짜리 한 봉지를 사다가 저녁상에 내면 된다. 그건 다 잘라져 있어서 보기에도 좋았다. 향이 얼마나 진한지, 사다 놓은 어떤 날은 집에 들어가니 알싸한 감태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어, 이거 감태 냄새 아니야?" "바다 물때가 안 맞아서 도저히 못 나갔어. 시장에서 사 왔으니 김서방 많이 먹게"


아버지는 딸과 사위가 좋아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셈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깟 쿠션이 뭐라고 애쓰며 사 오신 아버지께 비싸게 사셨다고 면박 아닌 면박을 드렸는데 아버지는 어떻게든 자신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오셨다. 둘이 대비가 되어 떠오르는 날이면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



감태는 푸르다. 감태는 성글면서도 꼿꼿하다. 감태는 알싸하다. 감태는 귀하다. 감태는 바닷속에서 늘 그렇게 변함이 없다. 그런 감태가 꼭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언제고 어디서고 푸르른 감태를 만난다면 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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