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빨래 개는 것만 같았다면
저녁을 지어먹고 주방을 마감한 뒤
물을 팔팔 끓여 보리차 한 봉지를 툭 넣는다
취향이 제각각인 식구들이
각기 좋아하는 음식 냄새가 사라지고
구수한 보리차 냄새가 주방을 감돌 즈음, 그때다
어지간히 비가 내리는 날이 아니면
세탁기에 빨래를 가득 넣고 돌린다
큰 얼룩이 아니더라도
밖에서 묻히고 온 세상의 때를 없애려고
그렇게 돌린 빨래는 어지간히 바쁘지 않으면
바로 탈탈 털어 베란다 빨랫줄에 널어 놓는다
햇볕이 쨍한 날이라면 더 좋다
너 좀 오늘 제대로 말라봐라 하는 심정이다
하지만 젖은 빨래, 너도 원하는 일일 테니
우리 둘 다에게 좋은 일 아닌감?
그러고 나는 고된 세상으로 나간다
대여섯시. 일마치고 돌아오면 빨래는 바짝 말라있다
우리 둘이 다 원하던 일이었다...
그럼 빨래는 도대체 언제 개냐고?
저녁상을 물리고 보리차 향이 집안을 감돌 때 즈음
매일 돈 벌러 출근했다 돌아온 남편이
티비를 보는 건지 조는 건지 헷갈릴 때 즈음
아이가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는 건지 제 할일 하는 건지 헷갈릴 때 즈음
나는 오늘을
마무리하는 건지 내일을 준비하는 건지 헷갈릴 때 즈음
그때다, 그때가 빨래를 갤 절호의 타이밍이다
나는 거실 한 구석에 앉아 빨래를 갠다
세탁기 속 돌돌 말려 틀어진 티셔츠도 반듯하게 펴고
살 땐 직사각형이었는데
비뚤어져 보이는 수건들도 쫙쫙 펴 반듯하게 갠다
수건을 꺼내서 젖은 몸과 젖은 얼굴을 닦을 그를 위해
세수하는 사이 야구 공들어갈라 얼른 손 씻고 나갈 때
탁 풀어 기분 좋게 닦을 수 있도록
모양을 잡아 잘 개어 둔다
이건 내가 쓸 수건이기도 하니까
속옷은 더 반듯반듯하게 접어둔다
행여 집을 비우는 날 서너개 툭 집어
여행 가방에 바로 넣을 수 있게
속옷이 풀어져 있으면
내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아서 더 꼼꼼하게 갠다
여보 내가 도와줄까?
하는 날이면 보너스를 받는 것만 같다
그 한마디가 종일의 내 수고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자기도 땀으로 젖은 양복을 해가지고 돌아왔으면서
이건 이렇게 개는 거야 다정하게 훈수 둘 수 있어서
하지만 내가 먼저 빨래를 개 달라고 하는 일은 잘 없다
세상 일이 빨래 개는 일만 같으면 좋겠다
빨래 개는 일은 이렇게 방법이 있는데
세상 일에는 방법을 모르겠는 일들이 있다...
세상 일이 빨래 개는 일만 같으면 좋겠다
빨래를 갤 때는 재지 않아도, 머리 굴리지 않아도,
손의 촉감으로 그저 아는대로 척척 개면 되는데
잠깐 졸아도 잘 개지는데, 세상 일은 그렇지가 않다
오늘도 빨래를 갠다
나는 빨래를 개는 이 시간이 정말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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