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순댓국을 먹다 술을 시켜보았다

혼밥 혼술, 어디까지 해봤니

by 엘슈가

올해 2020년은 아이가 14살 되는 해이다.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그간 따로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상품을 결제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름방학을 기다렸을 것이다. 여름방학을 활용해 유럽 몇몇 나라를 여행하며 아이가 세계사 책에서 배울 내용을 눈으로 몸으로 먼저 만나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정대로 돌아가는 일들만 존재하지 않음을 나는 불혹을 넘은 올해, 그러니까 2020년도에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혼밥의 추억

"엘 대리, 어떻게 혼자 밥을 먹어? 자기 대단하다~~~”

나는 20대 중반 저 말이 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방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서울로 유학을 와 사립대를 다니던 대학시절, 과외를 하러 가기 위해서는 친구들과 학교 밖 밥집을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아니, 마음의 여유가 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촌에서 일산 행신 마을로 가는 광역버스는 몇 번이었지? 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버스 안에서 틈틈이 학과 공부도 하고 부족한 잠도 자고 과외 예습도 했던 시간들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과외를 하는 학생들도 나를 잘 따랐고 어머님들도 만족도가 높으셨다. 그래서 한번 가르친 학생들은 꾸준히 가르쳤었다. 하지만 철칙이 하나 있었다.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하실 때가 많아도 식사를 하면 직장인들 퇴근 시간과 맞물려 신촌으로 돌아오는 길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정중히 거절하곤 했었다.


과외를 마치고 나오는 길 주방에서는 칙칙 밥이 지어지고 있을때가 있었다. 분명 엄마가 지어주는 것만큼이나 따뜻할 밥이었겠지만, 내 방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먹었던 혼밥이 더 마음 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의 나는 학관 식당에서나 일과 후 혼밥을 먹을 때가 많았는데, 이십 대 후반 세련된 직장 동료들은 나를 보며 놀라 물었었다. 대단해... 혼자 밥을 먹다니?(아니, 그럼 때마다 누구랑 같이 밥을 먹어야만 하나? 그게 더 어려운 일 같은데...)


2020년, 내 혼밥에 새로운 지평 열리다

평일 밤이었던 것 같다. 아이 학원이 10시가 다되어 끝나는 날이니 금요일 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일찍 퇴근한다고 하더니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온다고 연락이 왔다.


코로나가 점점 퍼지기 시작할 때라 걱정도 되었지만 회사의 중간 간부를 맡은 사람이 매번 칼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만 하고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다가 남편이 식사를 하고 온다는 말에, 나는 지가 오기 전까지 산책이나 해야겠다. 하고 집을 나섰다. 에코백에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생수 한 병을 손에 든 채. 아, 무선 이어폰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이어폰도 함께 였을게다.


6월이었나... 평일 9시경 동네는 선선했다. 사람들도 서둘러 집으로 향했는지 거리는 한산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문득 미친 듯이 허기가 몰려왔다. 이대로는 아이 학원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에 가끔 남편이나 친언니랑 같이 같던, 뚝배기에 담아주는 순댓국집이 보였다. '그래, 뜨끈하게 순댓국이나 한 그릇 하는 거야!' 마침 내가 지은 밥에 물리기도 했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가게에도 손님은 한두 테이블 밖에 없었다.


보글보글 순댓국이 나왔다. '오늘 메뉴 참 잘 고른 것 같아. 밥 먹을 식구도 없으니 끼니 해결하고 들어가면 시간이 딱 맞겠어' 나는 순댓국을 먹기 시작했다. 부추를 잔뜩 넣고 다진 양념은 반만 풀고 고기는 건져서 스테인리스 밥뚜껑에 놓으면 먹기 좋게 식었다.


그럼 적당히 익은 깍두기랑 돼지 머리 고기랑 부추를 먹고 밥을 먹으면 환상의 궁합! 그런데... 그런데... 문득 한 가지가 빠진 것이 생각났다. 이렇게 땀을 흘리며 순댓국을 먹는데 시원한 맥주 한잔이 있으면 얼~마나 맛있을 거란 말이냐!


혼자 순댓국에 술을 마셔보았다

사실 1초간 망설이긴 했다. 애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금요일 9시, 세련된 펍에서 병맥주도 아니고, 순댓국집에서 혼자 순댓국을 먹고 맥주를 주문하다니... 저 여자 사연 있나? 생각들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저러니 해도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잔만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생각이 굴뚝같았다. 여기 맥주는 병으로 파려나? 캔맥주는 없으려나? 에라 모르겠다~


"사장님, 여기 맥주 하나 주세요"

"!"

주방을 겸하고 계신듯한 풍채 좋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사장님이 재빨리 냉장고 문을 열었다. 개의치 않는 듯했다. 문제는 홀서빙을 하고 계신, 익숙한 나이 지긋한 이모님께서 나를 흘끔 쳐다보신 것도 같았다. 그럼 뭐 어쩌랴~ 소주도 아니고 맥주인데~(소주이면 또 어떠랴...)


업소용 냉장고에서 꺼내 가지고 오신 것은 병맥주였다. 병맥주도 그냥 병이 아니고 '대'자. 큰 병맥주를 혼자 드셔보셨나요?^^; 사실 술은 잘 못해서 맥주도 딱 한 캔이면 세상 행복한 사람인데... 댓 자 병은 좀 과하다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그리고 내 생애 처음으로 순댓국집에서 혼밥에 혼술을 한 날이니까 라는 의미를 부여하니 술이 술술술~ 넘어갔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면면들

20대 때는 광고대행사에 어카운트 이그제크티브(account executive), AE 즉 광고기획자로 일했다. 경쟁피티를 해서 광고를 수주해오기도 하고 광고주에게 시안(콘티)을 설명하기도 한다. 서슬 퍼런 제작파트 분들께 기획 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고 설득하는 등 보이는 일들을 많이 했고 그것에 익숙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라이프스타일 상품의 착용 모델로 직접 나서기도 했었다.


집 근처 동네를 다닐 때에도 집안에서 입는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가지 않았다. 조금은 갖춰 입고 나가야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 나를 보고 지의 친구 엄마들은 내가 회사를 다니는 줄 알았다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전염병 이슈 시대에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의 평온함 아닐까-


불편하고 옥죄이는 옷, 바지보다는 편안한 핏의 옷들을 꺼내 놓았다. 보기에 예쁘지만 불편한 신발도 이 참에 정리했다. 대신 편안하고 통풍이 잘되는 신발들, 길을 걷거나 운동하는데 불편함을 주지 않는 신발들을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놓았다.


어쩌면 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순댓국집에서 혼밥에 혼술은 먼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뭐 어떠랴? 혼밥도 혼술도 이젠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대안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같이 마실 사람이 있으면 같이 마시고 혼자이면 한잔 하고 일어서면 된다. 더 어릴 때라면 '혼술 하는 나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 그것을 헤치지 않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 하는 삶. 반대로 말하면 내 몸과 마음의 평온을 멋대로 침해해 헤치는 것을 그대로 관망하지 않는 삶.


보이는 것보다 본질에 충실한 일상. 코로나가 바꿔놓은 것들 중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 아닐까 -끝-


* 브런치에 연재하는 모든 콘텐츠(글, 사진 포함)의 저작권은 생산자(원작자)인 엘작가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저마다의 소중한 저작권 보호에 동참해주세요! Copyright2020.엘슈가.All rights reserve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