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는 되고 집에서는 안 되는 일

by 엘슈가

"자기야 미안한데 나 강냉이 좀 줄래요?"

"응 그래 오빠 이왕 먹을거면 강냉이가 몸에 좋지"

“물도 좀... 아니다 내가 가져다 먹을게^^”


"엄마! 내 까만 바지 어디 갔어?"

"거기 두 번째 서랍에 늘 있던 곳에 있지?"


주말 점심. 파스타를 해서 세 식구가 먹고 먹은 접시와 피클 종지는 한번 헹궈서 싱크대 볼에 담가 둔다. 우선 밥 먹은 테이블부터 뜨거운 물을 묻힌뒤 꼭 짠 행주로 닦으면 절반은 치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편은 티브이 보기 가장 좋은, 소파 가운데쯤의 바닥에 쿠션을 두 개 겹쳐놓고 누운 건지 기대앉은 건지 애매한 자세다.


린이는 학원 시간이 다 되었는데 가기 전 친구와 5분만 만나겠다고 해서 1차로 내 속을 긁더니, 친구가 보내온 문자를 보여주며 나의 설득을 이끌어냈다. '가족들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 잠깐 만날 수 있음?' 중요한 학원 수업이지만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때 매몰차게 거절하는 아이로도 키우고 싶지 않았다. "린아, 그럼 5분만 늦어"라는 애매한 충고를 해주고 나는 에코백에 주섬주섬 노트북이며 마우스며 핸드크림이며 립밤을 넣기 시작했다.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주고 나는 학원 근처의 카페에 갈 생각이다. 2시간 수업이 끝나면 함께 돌아올 생각이었다. 물론 학원 차량도 있었지만 나는 그 김에 부른 배를 꺼뜨리고 2시간만 집중하고 올 심산이었다. 예능을 보며 너그러워진 표정의 남편이 물었다.


"집에서 하지 왜, 나가게?"

"응, 배불러서~ 린이도 데려와야 하구. 쉬고 있어!"


아이를 학원 건물 앞에 내려주고 나는 익숙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카페로 간다. 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중요한 기획서를 쓸 참이었다. 그런데 왜, 편안하고 안락한 집에서 안 하고 굳이 나오려는 것일까?


첫째, 집에 있으면 자꾸만 눕고 싶어 지고 집중이 잘 안된다. -> 마음 가짐 문제다. 요즘 같은 때일수록 집이 가장 안전하다. 집은 가성비가 좋다. 손만 뻗으면 원하는 것들이 다 있다. 심지어 온도/ 습도 조절도 된다.


둘째, 카페엔 커피가 있다. -> 그럴까봐 집에 각종 커피를 다 구비해 두었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 캡슐커피부터 드립 가능한 원두까지. 그뿐인가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도 두어 종류 있다. 그뿐인가? 초코가 들어간 것, 안 들어간 것, 소프트한 것, 하드한 것, 종류별 달달한 간식도 있다. 집에 커피가 없다는 말은 맞지 않다.


셋째, 카페엔 음악이 있다. -> 유료 음악 서비스를 2개나 결제해서 듣고 있다. 하나는 모바일에 강한 과일 그 음악 서비스이고 하나는 N사에서 유료 멤버십에 포함되어 있는 그 서비스다. 전자는 주로 이동할 때, 핸드폰에서 듣고 후자는 노트북으로 뭘 쓸 때 듣는다. 강의안이나 기획서 작업, 글을 쓸 때는 가급적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익숙하다 못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들은 음악을 반복해 듣는다. 일종의 백색 소음인 것이다. 늘 듣던 음악을 듣노라면 바로 업무로 들어갈 수 있달까. 이걸 심리학 용어로 뭐라고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넷째... 또, 또 뭐가 있더라? ‘진정 모르겠다!’싶을 때 주문한 빵이 나왔다. 시나몬롤. 이 카페는 어째서 빵 하나를 주문해도 감동을 주는지. 그냥 비닐에 싸인 시나몬롤만 내어주는 카페가 수두룩하다. 조금 나아가면 트레이에 올려주는 집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일단 우드 트레이에 빵을 담아준다. (얕은 주부 9단 지식으로는 우드트레이는 씻은 후 잘 말려야 하는 등 관리가 쉽지 않다)


빵을 주문했다고 해서 빵만 주지 않는다. 살구와 복숭아, 이 작은 것들은 대체 뭐지? 버찌인가? 나는 이름도 모를 각종 설탕 졸임 과일을 함께 내어주는데, 그 맛이 환상이다. 이것만 판다고 해도 사 먹고 싶은 맛이다.


끝이 아니다. 하얀 가루 보이시나요? 슈가파우더까지 뿌려야 이 집 시나몬롤의 완성이다.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한 커트러리는 가벼우면서 그립감도 최고다.


쓴 커피와 달달한 빵과 설탕 졸임 과일들을 먹고 있노라면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이걸 어렵게 풀면 '자기 효능감'이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빵을 먹다보니 또하나 떠올랐다. 집에서는 안되고 카페에서는 가능한 일. 그것은 커피를 마신 컵과 접시, 포크를 설거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집콕 일상이 길어지고 집에서 3끼를 먹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주부들의 집안일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뭘 먹을때도 치울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여기까지 정리를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집에서는 느낄 수 없고 카페에서는 가능한 일. 그것은 바로, (Served:제공해줌)이라는 것.


누가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고 차를 우리고 구워진 빵을 가져다주는 일. 그것도 툴툴거리지 않고 정성을 담아 기쁘게, 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 제공해 주는 일.


그렇게 제공된 커피는 맛있고 빵은 폭신했다.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진 빵을 입안 가득 물면 마음 속으로 좀 미워했던 누군가가 용서되는 그런 맛이었다. 그런 빵을 그런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은 날은 고운 말이 나오고 재미있는 글이 써질 것만 같다.


이 비밀을 알게 된 건 오늘의 수확이다. 그런데, 짧고도 은밀한 시간이 끝나간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집에서 쉬던, 강냉이를 먹고 한숨 잤던 남편이 창밖에서 무선이어폰을 빼고 나를 향해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집에서 무료함을 느낀 남편이 커피를 마시러 내 홈그라운드 카페에 익숙한 듯 침입(?)하고 있었다!



아래는 카페 문 닫을 시간에 본 귀여운 소품. 크리스마스 때 약속이 없다면(약속을 잡을 수 없는 요즘이라 더욱)

여기 이 카페에 와서 따뜻한 커피와 시나몬롤을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서 먹어야겠다.


그날 카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일 것이다. 오늘처럼 좋다 못해 매혹적인 커피 향과 맡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앞에 앉은 사람과 달콤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고소한 빵 냄새로 가득 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카페에서 누릴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것들, 바로 (Served;제공해줌)이다.

-끝-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엘슈가의 브런치북

https://brunch.co.kr/brunchbook/ore100



* 브런치에 연재하는 모든 콘텐츠(글, 사진 포함)의 저작권은 생산자(원작자)인 엘작가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저마다의 소중한 저작권 보호에 동참해주세요! Copyright2020.엘슈가.All rights reserve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자 순댓국을 먹다 술을 시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