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어메니티를 가져오는 진짜 이유

by 엘슈가

"프런트죠? 아, 샤워타월 1장이랑 음... 어메니티 추가로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상냥)”


"아, 고객님, 저희 호텔 어메니티는 추가 요금이 있으신데 괜찮으실까요?


"아.. 아니에요. 괜찮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웃음)"


남편은 체격이 큰 편이었다. 아이와 내가 쓴 후에 남은 바디워시로 씻는데 행여 부족할까 프런트에 수건 요청 시 물어본 것이었다. 수건도 꼭 필요한 분량만 요청한다. 5분 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욕실에서 마지막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빼꼼히 문을 열고 직원이 건네는 타월을 받았다. 2장을 건넸지만 한 장만 받는다. 가벼운 목례와 미소도 잊지 않는다. 그때 머리를 말리고 있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어메니티가 뭐예요?"

"아, 네가 머리 감을 때 썼던 샴푸, 바디워시, 로션 같은 거. 욕실에 있던 조그만 것들. 그게 어메니티야"


이윽고 타월로 툭툭 머리를 치며 남편이 나왔다. 방금 받은 새 타월을 내밀자 '고마워'하며 마저 머리를 털어 말렸다. 나는 남편이 나온 욕실에 들어가 우리가 가져온 것들을 가지고 나온다. 이를테면 여유 있게 가져온 팩이며, 머리끈들, 각자의 칫솔 같은 것들. 작은 타월로 꾹꾹 눌러 물기를 제거한 후 파우치에 넣는다. 잠시 뒤 다시 들어가 어메니티도 같은 절차를 거치기 위해 수건으로 꾹꾹 누르고 있을 때였다.


"그건 왜 챙기는 거야? 가져가면 잘 쓰지 않을 거면서..."

"응 아니? 나 얼마나 잘 쓰는데... 그리고 여보. 이 어메니티는 뉴욕 브랜드라고! 시중에 잘 없어"

"아, 뉴욕? 뉴욕!"


남편은 자신이 말려도 내가 그것들을 가져갈 거라는 걸 안다는 듯 가볍게 지나갔다. 하지만 아내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내심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더 예전에는 그런 것들 때문에 투닥투닥 부딪힌 적도 있었으니까.


신혼을 갓 넘겼을 때였다. 식당에서 늘 풍족하게 시키는 남편 덕에(?)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도 음식이 남자 '오빠 이거 우리 싸갈까?' 했더니 남편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왜, 먹을 게 없어 우리 집에? 그러지 말자~' 지금은 여간해서는 정색하지 않는 남편의 진짜 속내가 살짝 궁금했지만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때가 때이니만큼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에 가고 싶었고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강원도 고성, 이 해변은 그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곳이었다. 남편이 얼마 전 1박으로 워크숍에 다녀온 다음 날, 릴레이 회의도 힘들고 다음날 트레킹도 힘들었다는데 얼굴이 밝았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궁금했는데 남편이 입을 열었다. '워크숍 갔었던 숙소가 너무 좋았어. 다들 가족들이랑 다시 오자고 할 만큼. 당신 생일 때 가자. 예약은 내가 할게!'



어렸을 때부터 소풍 날 보다 소풍 전 날이 더 설레던 아이였다. 엄마가 김밥 재료를 사 오고 깨소금을 볶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할 때, 엄마가 너 무슨 과자랑 음료수 먹고 싶냐고 물으셨을 때, 언니들에게 물려받은 낡은 소풍 도시락 대신 엄마가 빨간색 체크무늬 가방이 포함된 2단짜리 소풍 도시락 통을 사 왔을 때. 그때가 정작 소풍을 가던 날 보다 기분 좋았다고 생각했다. 정작 전날 밤을 설쳐서 소풍 당일엔 반쯤 감긴 눈을 하고서도 좋았다.


남편의 '너무 좋아서 가족이랑 꼭 다시 가기로 사람들이랑 얘기했어'그 말을 들은 순간, 이 여행을 실제 가고 안 가고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특별히 살갑고 다정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 그도 나이를 먹나? 일단은 지켜볼 심산이었다. 정말 예약을 하실는지...


그리고 3주 뒤 우리는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 시골 작은 해변 마을 같은 이곳에는 남편의 말대로 숙소 바로 앞에 바다가 있었다. 5분만 걸어가면 다른 곳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거짓말 같게 그 집만 대기줄이 늘어선 횟집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 복어회라는 것을 먹어보았다. 찰지고 꼬순 인상적인 맛이었다.


"엄마, 밤중에 바다 보면서 음악을 들으니까 여기가 현실세계 같지가 않아!"

"정말? 린이 기분 좋아?"

"응. 정말 좋아!"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 없다는 어른들 말씀처럼, 아이가 좋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할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좋단다. 그래서 난 이번 여행이 좋았다.


"짐 다 챙겼지? 이제 체크아웃하러 내려가자"

"아빠 마스크 해야지~"

"응"


남편이 무거운 가방 두 개를 들고 먼저 나갔다. 나는 최종 놓고 온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난 후 카드키를 뽑았다. 방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통창이 예뻐서 아이더러 한번 서보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려오니 남편이 호텔 로비에 있는 크고 멋진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미리 입수한 정보를 가지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여기 루프탑이 5시에 연대. 둘러볼 수는 있다는데 올라갔다 갈래?"

"응 아니~ 난 짐 지키고 있을 테니까 린이랑 다녀와. 커피는 주차장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마시자."


이 호텔은 루프탑 카페가 핫플레이스라며 다녀간 사람들은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리곤 했다. 나는 인증 사진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꼭대기에서 이 작고도 스케일이 크고 소박하면서 화려한 바다를 한번 더 눈에 담고 싶었다. 객실에서 보는 것 이상일 것이었다. 난 늘 산이랑 바다 중에 고르라면 바다가 1순위였다. 루프탑 순례까지 마치고 차는 출발했다. 강릉 경포에서 1~2군데를 더 머물다가 집에 갈 생각이었다.



"엄마, 이 쪼끄만 것들, 이렇게 나란히 놓고 왜 안 써?"

"그러게~ 엄마는 관상용으로 가져왔나 보다?"


뉴욕에서 왔다는, 흔한 브랜드 제품이 아닌 그 어메니티는 우리 집 욕실 잘 보이는 곳에 놓였다. 갈색병에 노란색 띠지가 한눈에 봐도 세련돼 보였다. 그런데, 왜 놓고 바라만 보냐고?


사실 나는 저 어메니티를 당장 쓰려고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 욕실에도 내 경험으로 고른 나에게 꼭 맞는 샴푸와 컨디셔너, 바디워시와 바디로션이 있다. 피부가 얇고 건조한 편인 나는 두피도 예민한 편이라 아무 제품이나 잘 맞지 않아 제품을 쓸 때 조심스럽다.


그때의 추억을 추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물건으로 보고 있으면 그 기억이 어디 가지 않을 것 같아서. 반대로 말하면 손에 잡히는 무엇,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면 여행에서 얻은 휴식, 쉼, 배려, 기분 좋은 서비스, 개운한 잠, 맛있는 음식 그리고 돌아와 다시 열심히 일상을 살아야겠다는 결심들을 금방 잊을 것 같아서.


이러한 것들을 기억하기엔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은 적합지 않다. 그런 것들은 가져와 수납장 어딘가에 쑤셔 넣고 잊어버리기 마련이었다. 어찌 보면 여행지에서 쓰다만, 귀여운 미니어처 같은 이 어메니티가 딱이지 않겠느냐고. 또 어딘가 어메니티가 제공되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떠날 때 유용하게 쓸 수도 있으니 이쯤 되면 꽤 실용적인 기념품 아니냐고. 그래서 팍팍 쓰지 않고 일단은 놔두고 본 다음 천천히 쓸 예정이라고... 나는 대답 대신 쪼르르 놓여있는 4개의 어메니티를 보고 있었다. -끝-


* 함께 보면 좋은 글, 엘슈가의 브런치북

https://brunch.co.kr/brunchbook/ore100


* 저의 글은 에세이에서 출발하지만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글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한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일상에서 끌어올린 인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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