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반투명 휴지통이 있다

by 엘슈가

우리 집 거실에는 화이트 컬러의 반투명 휴지통이 있다. 이 휴지통이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휴지통을 사러 간 날에 대해, 그날의 추억을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그렇다.


굳이 기억을 더듬자면 결혼 전 혼자 살 때 구입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가격대도 괜찮으면서 심플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휴지통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러다 이 휴지통을 발견했고 구매했을 것이다. 그렇게 크지도, 그렇게 작지도 않아서 작은 원룸에 두기에도 제격이었을 휴지통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십여 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나는 같은 휴지통과 함께 하는 중이다. 색깔도 질리지 않는 화이트인 데다가 가벼워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누군가가 음료를 깨끗이 먹지 않고 버려서 휴지통 안쪽에 흘렀거나 아이가 쭈쭈바를 먹고 껍질을 휙 던져서 남은 쭈쭈바가 바닥에 흘렀어도 욕실로 가지고가 물을 부어 부드러운 솔로 쓱쓱 닦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금세 새것 같아졌다.


이 휴지통의 특이한 점은 살짝 투명한 재질이라 안에 내용물이 차면 어느 정도 비친다는 것이다. 좋게 해석하면 얼마나 찼는지가 보이기 때문에 '이따 저녁때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겠네'예측이 가능하다는 것. 나쁘게 해석하면 지나다닐 때마다 그 '내용물'이 거슬린다는 것. 내용물이 70% 이상 차 올랐을 때는 내 마음도 그렇게 잡다한 것들로 차오른 마냥 답답해져 오는 것만 같다.


우리 집 거실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주로 식사를 하고 아이가 숙제를 하거나 나와 단어 시험을 볼 때 가장 많이 활용했는데 올해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그 테이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강의안을 작성하고 책을 읽다가도 내용물을 가득 머금은(?) 반투명 화이트 휴지통이 눈에 들어오면 하던 것을 멈추고 기어이(?) 쓰레기통을 비우게 된다.


휴지통 바닥에 지우개 똥이라도 남아있거나, 머리카락이 몇 개 들러붙어 있거나, 커피나 우유 등 음료가 흘러 말라 붙어 있는 걸 보면 욕실로 가져가 닦곤 한다. 그렇게 뽀득뽀득해져서 제자리로 돌아온 휴지통을 바라보면 또 금세 마음이 평온해진다. 희한한 것은 비어있는 휴지통을 보고 평온함을 느끼는 것은 잠시, 나는 다시 그 휴지통을 채우려는 행위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치 비워놓으면 안 된다는 듯이.


가득 차 있으면 비우고 싶고, 비어 있으면 또 채우고 싶은 마음. 휴지통이라는 물건 자체의 태생이 그러해서일까? 아니면 가득 차 있으면 비우고 싶고 비워놓으면 채우고 싶은 알 수 없는 내 마음 때문일까?


우리 일상, 삶도 그렇지 않나. 무언가 비어있으면 채우고 싶고, 또 너무 채워 무거우면 좀 비워내고 싶다. 자질구레한 것이 점점 쌓이다가 가득 차 버렸을 때, 그걸 비워내고 깨끗해진 걸 보는 건 참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래서 채우고 또 그래서 비우는 것 같다. 휴지통도 머리 속도 물건도 내 일상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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