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탁소 아주머니가 사라졌다

뒤에 남겨지는 사람이없게 하라

by 엘슈가

"왜 와이셔츠 2개인데 2400원이 아니고 2600원일까여.."

"이상하다... 왜 내가 그렇게 결제를 했을까요?"


"저 지난번에 카드로 했다가 취소하고 현금으로 했는데 둘 다 결제된 거 같아요"

"이상하다... 왜 둘 다 결제가 됐을까잉?"


집 앞 프랜차이즈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러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주인 내외는 50대가 넘어 보이는 부부셨는데 아저씨는 활력이 있고 노련했고 아주머니는 피부가 고왔다. 언제 노련해지실까 싶게 서툴러 보이긴 했다.


정작 아주머니는 자신의 실수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편은 아니신듯 했다. 손님들도 처음에는 웃으며 '그럴 수 있죠'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100원 200원 또는 천포인트 이천포인트에 왈가왈부하고 있는 자신이 행여 쪼잔해 보일까 '그럼 그냥 놔두세요'하며 세탁소를 떠났다. 그때 주인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펴보면 다행히 민망함이나 난처함 등이 보이지 않았는데, 뒤에 기다리는 손님인 나에게는 그 편이 나았다.


그리고, 자영업 아닌가? 종업원이 아니라 자기 가게인데, 얼마나 좋나. 노후를 생각하며 한 번도 세탁소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는데 이 내외분을 보고는 세탁소도 괜찮겠다 싶었다. 단 매뉴얼을 숙지하고 계산만 틀리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지 않았다. 한동안 일이 많이 바빠서 내가 직접 세탁소에 들릴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들렀는데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표정은 평소보다 사뭇 경직된 것처럼 느껴졌다.


"여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때는 코로나 확진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단계였고, 물어봤을 때 확진이 되었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시기였다. 민감했다. 나는 그저 세탁물 맡기러 온 손님 아닌가. 타인의 힘든 구석, 아픈 구석이 있다면 그것을 들출 필요 있겠나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혹시 내가 지난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와이셔츠 2개인데 3개로 되어 있어요'라고 말한 게 원인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실수를 너무 많이 하시니 그냥 집에 있기로 하셨나? 생각도 들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안주인분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지도 모른다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때 왜 나는 그런 소릴 해가지고 일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었다. 나는 나이 안 드나? 나도 실수할 수 있는데 굳이 지적을 해가지고서는...나는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세탁물을 맡기러 종종 들렀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으셨다. 주인 아저씨는 그런 상황에 점점 적응하는 듯 보이기도 했고 여전히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아저씨는 좀처럼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6545요, 저 아시죠? 와이셔츠 3개요!"


여느 날처럼 세탁소에 세탁물을 가지고 들렀는데 거짓말처럼 아주머니가 계셨다. 내 얼굴에는 나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을 것이다. 어쩌면 오랜만에 만난 친척 아주머니를 보는 눈빛이었을지도 몰랐다. 반가웠다. 지금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팬데믹이라서. 누가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날들이라서...


"우리 아들이 신길동에 세탁소를 냈잖아. 거기는 여기보다 한 단계 더 좋은 거. 프리미엄. 알지? 거기는 코인빨래방도 되는데 기계가 새 거야. 세 개나 들어왔는데 내가 세팅해줘야지 누가 해줘?"


"아 아드님도 이걸 내신 거예요? 그렇지 처음이니까 누가 도와줘야지~~그쵸?"


"에긍 그래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우리 아저씨는 어떻고? 이제 내가 왔다 갔다 해야지 깔깔"


"어느새 그렇게 후딱 내셨대요? 도와주셔서 얼른 자리 잡으셨겠어요. 그럼 저는 갈게요, 또 뵈어요"


이번에도 들릴 듯 말 듯 기어가는 소리로 말하고는 세탁소를 나왔다. 나오는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럼 그렇지. 무슨 일이 있으신 게 아니었어. 아니지, 그동안 좋은 일이 있으셨네.

다행이고 잘된 일이야. 그나저나 세탁소 업이 요즘 괜찮은가 보네. 신길동 세탁소는 얼마나 크려나? 부모 자식이 같은 업종이면 앞으로 얘기거리도 많겠네. 어느새 내 머릿속은 가지를 쳐 뻗어나가고 있었다.



책 [새로운 가난이 온다]의 저자이자 경희대 김만권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뒤처져 버려서 다시는 대열에 낄 수 없는 사람들, 즉 뒤에 남겨지는 사람이 있는 것은 비극이라고도 했다.


힘든 시대, 위기의 시대,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 누가 누굴 밟고 일어서야만 하는 건 비극이다. 길을 지나다보면 어제까지 장사를 하고 있던 점포가 비워지고 ‘임대’ 두글자가 붙은 걸 보기도 한다. 그럴때면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동네를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아주머니는 더 좋은 일로 돌아오셨지만, 뒤에 남는 사람이 없는지, 낙오자는 없는지 한번쯤 살펴보며 가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오래갈 수 있음을...나만 좋은 길이 아니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을 택할 때 더 멀리,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그간의 오랜 시간, 오랜 경험들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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