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울토마토는 어떨까요? 전에 병문안 갈 때 사갔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대요~~"
"음 가만있자... 손님 이 방울토마토는요, 그때 방울토마토와 확연히 달라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방울토마토는요, 이것보다 좀 더 동. 글. 동. 글. 하. 게. 생겼다고요. 그런데 이것도 맛'은' 있어요. 하지만 그때 방토만큼은 아닐 거예요. 그 방토로 설명하자면요, 백화점 납품으로서 소량만..."
그렇게까지 길게 방울토마토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슨 중대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파일러처럼 과일가게 사장님은 심각했다. 얼른 과일을 사서 병문안을 가야 했던 나는 어느새 사장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우리 동네 과일가게 사장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팩에 보통 4900원 정도 하는 방울토마토, 아니 바로 옆 동네 대형 마트에서는 3900원짜리 방울토마토도 먹을만했다. 그런데 여기선 같은 중량에 만 원짜리 방울토마토를 판다. 그런데 한번 맛본 사람은 '그런 방울토마토 처음 먹어봤다'고들 한다. 아이 학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요즘 나는 아직 그 집 방울토마토를 내 돈 주고 사 먹지 못했지만, 그 집 수박이 한통에 3만 3천 원 한다는 건 과일 가격 보지 않고 사 오는 남편이 사 와서 알고 있었다.
그런 고급 과일을 취급 판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할 것이다. 물건을 살 때 합리를 추구하고 꼼꼼한 편인 나도 이 과일 가게에 요즘 말로 '스며들었다'. 이 과일 가게 과일은 믿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또 있었다.
한동안 비어있던 아파트 상가에 과일가게가 생긴다는 현수막을 보고 든 첫 생각은 '이렇게 싸고 큰 마트 바로 옆에 과일 가게라니?'였다. 매장 규모도 작지 않은데 과일이라는 단일 업종을 그것도 대형 할인마트 옆에서, 될까...? 생각이었다. 김 빠지는 소리를 하려기 보다는 자영업자인 사장님을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이 부분을 쓰면서 생각한다 아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걱정이라니 오지랖도 참...)
동네 장사는 첫 3달이 중요하다고 했나, 따뜻한 등을 켜 둔 감성적인 디스플레이가 눈길을 끄는 과일 가게에는 손님들이 종종 드나들었다. 나도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 오가며 '오늘은 어떤 과일이 들어왔나?'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겨울이었나? 한 번은 남편이 사과를 사 왔는데, 노란 사과였다. 왜 이렇게 다 시든 푸석푸석한 사과를 사 왔어? 했더니 과일가게 아저씨 추천이란다. 신기한 사과였다. 한번 먹어보니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사과처럼 달고 배처럼 시원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개량 품종으로 시나노 골드라는 사과였다. 가격은 네댓 개에 만원. 과일 가게는 그런 과일들을 파는 곳인가 보았다.
가게 정면 말고 뒤쪽은 상가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과일 가게 안이 훤히 다 보이는 투명한 구조다. 어린아이 둘이 엄마와 함께 아빠를 기다리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더니, 언젠가부터 식탁이 들어왔다. 가정집에 있을법한 6인용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갈색 식탁이. 아이들은 그곳에서 숙제를 하고 밥을 먹기도 했다. 한쪽에는 미니 버너에서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가게는 늦게까지 문을 열어 두는지 가족들이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함께 귀가하나 보다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지나가는데 뭔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러닝머신이었다. 과일가게 한편에 러닝머신이라니? 그러고 보니 과일가게 사장님은 본래 운동을 한 사람처럼 보이는 육중한 체구 같아 보이기도 했다.
가게에만 있으니 활동이 적어 체중이 불었나 보다... 그래서 러닝 머신을 가져다 놨나 보다 생각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추측이었다. 손님이 뜸할 때면 러닝 머신에서 뛰는 모습을 오가며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일 가게에 러닝머신을 가져다 놓고 뛰는 일, 쉬울까?
방금 전까지는 과일에 대해 설명하다가 손님이 가면 러닝 머신을 뛰는 사람으로 바꾸는 일, 파는 사람이었다가 운동하는 사람으로 스위치를 켜는 일. 결코 아무나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을 팔다가 손님이 없는 시간에 러닝 머신을 뛰는 사장님. 난데없이?
움직임이 적어 체중이 불었고 운동할 시간과 공간이 없어 불어난 체중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러닝머신을 들였고, 썩히지 않고 틈틈이 10분이라도 달리는 그런 사람의 난데없는 결정, 난데없는 에너지. 난 종종 그런 난데없는 사람의 난데없는 에너지가 좋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뭐하러 그렇게 까지 해?' '그런다고 달라져?'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바꾸는 듯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걸리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꾸고 뭔가를 만들어내고 꿈을 이루는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뭐하러 그렇게 까지 해?' 라며 김을 빼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거기에 더해 나도 과일 가게 사장님처럼 가게에 썩 어울리지 않더라도 식구들과 편안하게 식사할 식탁을 가져다 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손님이 없을 때 전력 질주하기 좋은 러닝머신을 가져다 놓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매사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이 없을까? 그러한 열정은 자연스레 묻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건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그 열정에 사람들은 마음과 지갑을 연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보자고 결정하고 그 결정을 하나씩 실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가다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