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삶의 온도는 이보다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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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해. 그래서 위험요소가 될지 모르는 이방인들을 자기 발 밑에 두려 애쓰지. 자신이 소수에 속하는 것을 그들은 절대로 견디지 못한 거야. 사람 수가 많으면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멍청이들. 나는 종종 ‘생각’이란 걸 해본 적이 없으면서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는 멍청이들에게 조롱받을 때가 있어. 그러면 난 오히려 힘이 나고 즐거워지지. 내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어 안달난 경쟁자들을 보는 일은 참 유쾌한 일이야. 20년 뒤에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어른이 되어있을지를 상상하면 아주 신이 나.
나는 내 삶을 열렬히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낯선 이와의 대화는 내게 항상 기쁨을 주지. 물론 그 대화는 마약과 같아서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망가뜨릴 때가 있어. 하지만 그 파괴적인 열정은, 내게 늘 영감을 줬어. 위대해질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많은 용기를 주는 것 같아. 내가 여자에 미친 놈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처럼 마약은 하지 않아. 나는 유혹과 중독에 굉장히 약한 사람인 걸 아니까. 약하지만 약은 안 할 거야.
고흐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어. 한 번은 그가 먼 친척관계에 있는 미망인을 사랑한 적이 있는데. 만날 방법이 없어 결국 등불에 손가락을 대기도 했대. 불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 그녀를 보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런 점에서, 나는 고흐보다는 덜 미친 것 같아. 어느 책의 제목처럼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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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종종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곤 해. 감정이 격해진 그는 내게, 집을 떠나라고 했고, 나는 두말없이 집을 나와 서울로 다시 올라왔지. 빈센트 그 사람은 의지할 동생 테오라도 있었지, 나한테는 나만 믿고 의지하는 엄마 밖에 없어.
내가 취직에 실패한 직후, 한 번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 ‘니랑 니 아들내미한테는 더러운 피가 흐른다’고. 엄마와 나는 혈액형이 AB형이라서 내게 엄마 피가 흐르고, 여동생이랑 아버지는 B형이라 깨끗한 피래. 그래서 동생을 더 예뻐하는 거라는 말을 듣고 욕지거리가 입밖으로 튀어나왔지. “빨리 뒈져버려. 이 씨발새끼야.”라고 말이야. 시발. 아버지란 사람이 멘델의 유전법칙조차 몰라. 아니, 모를수도 있지만 저 사람은 생각하는 게 짐승만도 못해. 내가 저런 괴물의 자식이라는 게 수치스럽고. 군대에서만 10년 넘게 썩어있던 인간.
그날 나는 진심으로 아버지란 사람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절대로 저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내가 결국 저 사람을 닮게 될까봐 두려워지곤 해. 가끔은 내 감정이 주체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순간 거울에 비춰진 남자를 보면. 나는 없고 아버지를 닮은 추한 얼굴이 보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식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늘은 우연히 동생이 50만원 짜리 월세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나는 한 달에 29만원을 내는 다중주택에 살고 있는데 말이야. 아빠 카드로 한 달에 100만원을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비참한 심정이었지. 아버지가 동생에게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 억울하진 않아. 내가 입학할 때는 학자금 대출 받게 했으면서, 동생 등록금은 전부 내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도 동생에게 못난 감정은 들지 않았어. 다만 조금 서글펐을 뿐. 엄마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대학생이면 어른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했는데 말이야. 뭐.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이야. 나는 그래서 더 많이 노력했거든. 장학금도 5,000만원이나 받았어. 내년에는 장학금에 관한 책도 나올 예정이고. 내 경험과 결과물들은 나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줄 테니까. 그때가 되면 나는 두말없이 아버지를 내 삶에서 추방시킬 거야. 그러기 위해 밤마다 혀를 잘근잘근 깨물어가면서 글을 쓰곤 해.
최근에는 학원 수학강사 일을 시작했어. 가끔 중학생들이 고등학교 문제를 들고와 질문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긴장해서 등이 땀으로 적곤 해. 세포 하나하나가 뜨겁다 못해 따가워지는 기분이지. 과학고등학교를 2학년 때 졸업하긴 했지만, 물리와 화학, 수학을 전부 포기한 사람. 그게 나야. 참 모순적이지? 하긴. 내 대학생활도 모순덩어리인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나는 가난한테 돈 버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소득분위는 9분위고, 평균평점 3.17로 졸업했는데 장학금은 그렇게 많이 받았으니까 말이야. 사람들은 종종 그런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하더라. 나는 더 큰 괴물이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삶을 세상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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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만났어. 결혼을 했는지 옆에는 남평르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였고 배가 조금 볼록했어. 얼어붙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나는 걱정스럽게 지켜봤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행복하겠지? 분명 그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두 사람의 뒷모습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어.
나는 사실 그녀를 떠올리며 분량이 꽤 많은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어. 겨우내 그녀에 대한 기억을 움켜쥐고 작업에 몰두했지.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렸고 피부가 새하얗게 빛나는 아이였어. 그러면서도 슬픈 소의 눈을 가진. 무언가 보는 이로 하여금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밝고 깊은 갈색 눈에 빠져든 것 같아. 아름답지만 왠지 슬퍼보이는 그녀의 눈동자 말이야. 언젠가 내가 등단을 하면, 그녀를 생각하며 완성한 이 소설을 소설집 맨 앞에 두고 싶어. 그녀는 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기를 매일 밤마다 기도해주곤 했어. 이제는 누가 날 위해 기도해줄까.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지 가끔은 궁금해지곤 해.
아차. 방금 전 코를 세게 풀었는데,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시야가 잠시 흐릿해졌어. 벌써 새벽 3시네. 쓰고 싶은 글이 완성될 때까지 내 체력이 잘 버텨줘야 할 텐데 말이야. 가끔은 내가 목적만 있고, 감정은 없는 물건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감정을 문장 속에 담아내지 못할 거야. 그래도 내 소설에는 어린 시절의 내 감정들이 조금은 보존돼있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위안받을 때가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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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로부터 같이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 이미 책 제목도 생각해놨다고 하더라. 제목이 『전지적 청년 시점』이야. 청년들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 사회의 여러 파편들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하자고 했어. 나는 우리 세대의 목소리를 책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가 될 거야. 누구나 청년기를 거쳐가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청년은 아니잖아. 나는 지금 이 순간, 푸르른 봄과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20대들의 표정과 감정을 책에 담아내게 될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사실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야. 내가 속한 세계가 망해버리는 생각을 자주 하고, 가끔은 실제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 오늘도 내가 한 일이라고는 넷플릭스로 영화 한 편 본 게 전부더라. 그 사실이 오늘 내내 자괴감을 줬어.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 새벽에 이렇게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어. 요즘들어 이 사회가 영상매체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각 잡고 뜯으면서 사유를 확장시킬 여유가 없는 것 같아. 깊게 사고하는 능력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분? 아무런 생각없이 웃다가 울다가, 어느 순간 자괴감 비슷하게 덜떠름한 기분이 들곤 해. 철학자 한병철씨 말을 빌리자면, 오늘날은 성과와 최적화를 중시하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면 그 사람은 성과주체로서 망가지지 않은 거야. 정상인이라는 거지. 한 개인의 내면이 파괴되거나, 혹은 피폐해지다 못해 우울증에 시달리더라도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인으로 분류되는 거야. 한 개인의 내면은 자본의 입장에선 알 바 아니니까. 어차피 고장나도 버리고 다른 부품으로 갈아끼우면 되잖아. 안 그래? 장그래 같은 감동은 만화 속이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