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의사 표현은 부차적 요소가 아닌 필수
며칠 전, '서울 촌놈'이라는 예능에서 청주를 소개하는 주제가 방영되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줄곧 20년 동안 청주에서 지내온 나로서 당연히 영상을 보지 않고 지나칠 리 없지. 여러 광역시들도 있는데 청주가 세 번째 도시 소개라니..! (촌놈은 이런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영상은 한효주, 이범수 배우가 나와서 청주를 소개하는 내용인데, 그중 가장 신선하고 충격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충청도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어투라면서 소개된 내용이었다. 내 어투는 당연히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충청도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어투라니.. 그것은 바로 본인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이겠지만 난 그랬다. 음식을 먹으러 가서 메뉴를 정할 때도 '난 괜찮아 너희들이 먹고 싶은 것으로 먹자'라는 식으로 전개가 되어 항상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도 아니고 진 사람이 메뉴를 골랐다. 그리고 가기 싫은 곳이 있어도 나 빼고 모두가 괜찮다고 하면 같이 따라가서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도 점심에 팀원들이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밥 먹으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항상 모두가 원하는 곳으로 가시죠..'라는 말을 반복한다.
예능을 보고 난 후, 나에게 왜 이런 습관이 들었는지 생각해보니 그 기억은 5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적 (믿기지 않겠지만 순수했던 어린아이니까..) 아버지가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오해가 있으셨던 분이 매일 통화를 하면서 화를 내셨고 아버지는 친했던 사람에게 오해를 받는 것에 대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나는 어렸을 적, 그 내용이 당시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사채' 관련 내용으로 단단히 착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을 직접 부모님께 말씀드리기에는 어린 나이에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혼자 돈을 그때부터 아끼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갖고 싶은 것 있냐고 물어보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지만 소소하게 양말을 갖고 싶다 하거나 올해에는 갖고 싶은 것이 없다고 둘러댔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다 같이 문구점으로 불량식품을 사러 가거나, 학교 앞 포장마차에 있는 피카츄 모양의 튀김을 먹으러 갈 때도 나는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고 집으로 갔다. 몇 천 원 아끼는 것도 집안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이 오해는 2년 전 군대 휴가 때 가족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제야 밝혀졌다. 심지어 전혀 돈과 관련된 내용도 아니었다. 무려 18년 동안 혼자 오해를 했다.)
어렸을 적부터 남을 위해 나의 주관적인 의사표현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고, 반장, 회장 등을 맡아도 내가 주도적으로 리드하지 않고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에 대해 맞춰가는 리더의 자질만 길렀다. 이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고 인간관계를 이어나갈 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의견을 내비치지 않고 상대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춰주는 것이 배려하는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고, 남이 부탁하는 것은 정중히 거절을 하지 못한 채 다 들어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내가 생각했던 인간관계의 개념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의 특성상 팀플과 프로젝트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칼같이 본인의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내비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이는 나에게 굉장히 생소한 광경이었다. (아니 무서웠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결국 나는 항상 의사 표현을 하지 않다가 제일 어려운 파트를 맡아서 진행하기도 했고, 당연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다닌 지 어느덧 2달이 지났다. 일이 항상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고,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줄곧 앉아서 일만 한적도 있었다.
이렇게 나의 체력을 극한으로 밀어 넣은 상황을 겪고 보니, 남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춰주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제일 최상위일 거라는 나의 생각은 단 한순간에 무너졌다.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나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더니 체력적인 한계에 도달했던 것이다.
나의 업무에 더해 다른 팀원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려고 하다 보니,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겪으면서 일의 효율성이 굉장히 떨어졌고, 가끔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도 하며 잦은 실수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상황을 겪어 보니,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 그것은 마치 저울과 같다. 감정을 상하지 않는 쪽에 집중을 하면 나의 주장은 잠시 내려놓아야 하고, 상대와 대립된 주장이지만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상대는 감정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해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도 모두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며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노자의 명언 중 '진실함이 없는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다. 솔직하면서도 본인의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는 일. 그것이 리더가 가져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연구하고 효율적이고 효과를 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기획자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사람을 알기 위해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부차적 요소가 아닌 필수 요소라고 느끼게 된 오늘의 일기 끝.(물론 나는 내가 어느 정도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지 혼자만의 테스트 중이어서 모든 일에 욕심을 내서 다 맡으려고 하다 보니 느꼈던 감정일 수 있다. 2년 뒤에 내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
PS) 브런치에 게시하는 첫 글이다. 기획자로 나아가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라 굉장히 벅차오른다. #감성과 #이성으로 나누어 내가 생활하면서 느꼈던 감정, 느낌은 #감성 테마에, 기획자로써 공부하고 깨닫는 것들은 #이성 테마에 담아볼 예정이다.
뇌에서 이성적 판단이 나오고, 가슴에서 감성적 공감이 나온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감성은 뇌를 지배하고, #이성은 가슴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서의 공존을 잘 이뤄가며 2년 뒤에 이 글을 읽을 때 얼마나 성장해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