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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Jan 29. 2019

츠키지에서 초밥 만들기

도심지 한가운데 있고 주종은 한 가지인데 전 세계 관광객이 모여들고 고유의 색도 잃지 않는 독보적인 시장이 있으니 모두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츠키지 시장이다. 매해 장내시장에서 열리는 첫 참치 경매에 수많은 관심이 몰리고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초밥 가게가 있으며 세계 최대의 해산물 유통 규모를 자랑한다.


일본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츠키지 시장을 들리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새벽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꼭두새벽에 찾아가고들 하는데, 여행 중에는 어지간해서 아침에도 일어나기 싫어하는 나는 일찍 가봐야 오전 중이지만 그래도 항상 맛있는 식사를 했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간 여행, 출장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츠키지 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의외로 제일 신나는 경험은 초밥 만들기 클래스를 신청했을 때였다.


여행지에서 쿠킹 클래스를 듣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인데, 찾아보면 여러 나라에서 외국인을 위한 체험 투어를 많이들 제공하고 있다. '츠키지 시장 투어&초밥 만들기 체험'도 여행 사이트에서 찾아내 반나절짜리로 예약한 것이다.


사실 츠키지 시장에 처음 방문하는 동행인이 꼭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참가한 것이라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외국인에게 '표고버섯이란 무엇인가'부터 설명하는 영어 가이드와 다녀 봤자 비슷한 식재료를 공유하는 우리가 더 흡수할 지식은 없을 테니까. 그날도 우리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사람은 미국에서 온 남성 한 명과 도쿄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서 호주에서 온 여성 두 명이라 기본적으로 영어권 관광객을 중심으로 설명이 이루어지는 듯싶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투어는 단골 가게가 많은 지인을 따라다니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성격 좋은 가이드가 쉴 틈 없이 가게 주인들과 사이좋게 소통하면서 간장과 고추냉이를 뿌려서 수북하게 쌓아 놓은 참치회를 시식하게 하고, 외국인도 날로 먹기 좋을 만큼 신선한 오늘의 해산물을 추천받고, 탱글탱글한 생굴을 호로록 맛보게 해 주었다. 말이 맛보기이지 정말 손바닥만 한 굴이었다. 정말 돈 안 내도 돼?


물론 가쓰오부시가 생선 인지도 몰랐던 외국인에게 날씬한 벽돌처럼 생긴 말린 가다랑어를 가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 만난 그릴에 구운 큼직한 가리비는 돈 주고 사서 먹었다. 간장을 발라서 토치에 쓱쓱 그슬려 주는 맛이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 동안 달걀말이 가게로 돌아가서 달걀말이 샌드위치와 한 조각씩 파는 달걀말이를 사고 난 후 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긴자로 이동해 초밥 만들기를 배울 가게로 찾아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다다미 방에는 외국인을 의식해서인지 좌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인원수에 맞춰 미리 차려 놓은 네타(초밥 위에 얹는 재료)와 밥, 김밥 발, 김 등 초밥 재료 앞에 착석하면 셰프가 들어와 커다란 도미를 손질하고 세 장 뜨기를 하는 시연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가 받은 재료는 전부 손질한 상태이니 그냥 보면서 감탄하기만 하면 된다.


처음 직접 만든 초밥은 비교적 익숙한 모양의 데카마키로, 오이와 참치회를 각각 가운데에 올리고 가느다란 김밥처럼 마는 것이다. 김밥을 말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몸풀기 삼아 뚝딱 만들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만든 데카마키는 역시나 속재료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내가 처음에 저랬지. 완성한 데카마키는 셰프가 차례대로 모양내서 썰어 예쁘게 담아준다.



이윽고 본론이라 할 수 있는 니기리즈시(쥠초밥) 만들기에 들어갔다. 셰프는 우리에게 한 손으로 밥을 적당히 잡아 둥글게 모양을 잡으라고 시킨 다음 자리마다 돌아다니면서 밥 양이 적당한지 일일이 확인해 주었다. 이어서 다들 새우, 장어, 오징어, 연어, 참치를 순서대로 밥에 얹어가며 셰프의 손놀림을 따라 어찌어찌 초밥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평소에 보던 초밥 장인의 손은 워낙 빨라서 관찰하기 힘들었는데, 밥에 네타를 올리고 살짝 누른 다음 모양을 잡고 뒤집어서 다시 누르는 등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처음부터 척척 초밥을 쥘 수는 없으니 시연을 멍하니 보면서 한 단계씩 따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네타가 뜨끈뜨끈해지고 있군. 어느새 체온만큼 따뜻해진 초밥이 완성된다.


식사는 셰프가 쥐어준 도미 초밥과 직접 만든 초밥, 가게에서 차려준 튀김 등이다. 왜 츠키지 시장까지 와서 ‘내가 만든 초밥’을 먹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셰프의 도미 초밥과 비교해서 밥을 잘못 쥐면 식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전 처음 초밥을 만들어본 외국인들은 마트에서 연어만 사면 연어 초밥을 만들 수 있겠다고 즐거워하며 셰프에게 초밥용 밥을 양념하는 법을 질문했다. 물론 우리도 신선한 해산물만 사면 집에서도 어설프게 초밥을 만들 수 있겠다는 의욕에 고취되었다.


아, 재미있다. 그런데 이제 츠키지로 다시 돌아가서 2차로 제대로 된 초밥을 좀 먹으면 안 될까?


* <온갖 날의 미식 여행>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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