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요리 프로젝트
손에 잡히는 작은 성취감이 필요해서 주말이면 뭐라도 만드는 요리 프로젝트를 혼자 하고 있다. 주중에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내가 들어가는 모든 레시피 사이트를 뒤지면서 주말에 뭘 만들지, 그러면 뭘 미리 사둬야 할지 생각하는 걸로 자투리 시간을 때운다.
그리고 이번에는 생일 선물로 가정용 수비드 머신을 받았고, 빵 반죽에 반년 넘게 푹 빠져 있으므로 머신도 개봉하고 찐빵 레시피도 테스트할 겸 차슈 바오 번을 만들기로 했다.
바오 번을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우선 찐빵류의 반죽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레시피를 찾아보면 오븐에 굽는 빵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매우 큰 결격 사유가 있었으니 나는 물 끓이는 것을 싫어한다. 이유는 짚이는 것이 있긴 한데 뚜렷하게는 모르겠고. 그래서 지금까지 궁금하다는 생각만 하고 만들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바오 번은 저 모양이 유지되는 형태로 찐빵이 된다는 것도 신기하고? 약간 오븐용 장갑으로 고기 집어서 장갑째 먹는 모양새이지 않나? 그리고 레프트 코스트에서 옛날에 먹었던 바오 번 버거가 매우 맛있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난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Serious Eats 레시피를 참고해서 차슈 양념과 함께 삼겹살을 진공 포장하려고 했는데 수비드 머신과 따로 산 진공 포장 기계가 진공이 안돼…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다가 집어던질 것 같아서 그냥 최대한 공기만 빼고 밀봉했다. 나는 기계에 쉽게 화를 내는 편이다. 여하튼!
진공-ish 포장한 삼겹살을 우리 집에서 두 번째로 큰 냄비(압력솥)에 넣고 물을 넉넉히 채운 다음 77도에 8시간 조리했다. 자는 동안 익히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소음이 컸다. 문제는 나는 우리 집 아기가 밤에 자주 모빌 노래를 틀기 때문에 귀마개를 끼고 자서 새벽 6시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6시에 일어나서 당황하면서 껐다. 다른 식구들은 어떻게 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만 잠귀가 밝아서 그동안 귀마개가 필요했던 것인가?
그렇게 8시간 수비드로 익힌 차슈는 냉장고에 넣어서 식혔다. 완전히 차갑게 식으면 삼겹살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양념과 분리되면서 하얗게 굳어 분리하기 쉽다. 기름을 제거하고 차슈만 꺼내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 오븐에 살짝 굽는다. 그러면 또 기름이 줄줄 흘러나온다. 고인 기름을 보고 있으면 삼겹살을 베이컨처럼 빠짝 구워서 먹고 싶어 지지만 그럴 바에는 목살을 쓰는 것이 낫겠지.
차슈를 꺼내고 남은 양념은 기름을 제거한 다음 약한 불에 보글보글 끓여서 졸인다. 충분히 졸면 마요네즈랑 섞어서 차슈 마요네즈를 만든다. 이게 맛있다. 양념도 맛있고 차슈 마요네즈도 맛있다. 돼지기름이 들어갔으니까 당연하겠지.
생강과 잔파를 썰고, 나는 없어서 다음날에 넣었지만 고수랑 절인 오이를 넣어도 좋다.
그리고 이날 오후에 미리 중국식 찐빵 레시피로 반죽을 한 다음 1차 발효를 했다. 두 배로 부푼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서 둥글게 찍어내고, 오일을 발라서 반으로 접은 다음 다시 밀대로 살짝 밀어 바오 번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랩을 씌워서 30분간 2차 발효. 여기까지 해놓고 차슈를 꺼낸 것이다.
2차 발효까지 끝난 바오 번은 종이 포일을 깔고 끓는 물에 10분간 쪘다. 아무 생각 없이 번만 들어내려고 했더니 종이 포일도 같이 딸려 나와서 호빵 밑에 종이 벗기던 생각을 하면서 그냥 매번 종이 포일째로 갈기로 했다. 딱히 다른 방법은 없다.
근데 먹어야 하니까 종이 포일을 살살 뜯어내는데, 너무 그냥 찐빵 냄새가 나는 것이다. 아 찐빵도 그냥 만들면 찐빵이 되는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 반년 넘게 매번 빵 반죽을 하고 구울 때마다 물과 가루를 치대서 빵이 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다.
꺼낸 빵에 차슈 마요를 바르고, 구운 차슈는 양념에 살짝 담갔다가 꺼내서 끼우고, 생강이랑 잔파를 뿌려서 먹었다.
…맛이 없을 이유가 없지 않나? 질감도 맛도 전부 생각대로 나왔다. 차슈는 촉촉하고 찐빵 바오 번은 말랑말랑해서 양념을 쏙쏙 흡수하고. 달콤 짭짤한 간장 양념과 마요네즈는 오코노미야키와 타코야키에서 볼 수 있듯이 당연히 어울리고.
이제 찐빵 반죽을 할 수 있으니까 꽃빵, 호빵, 고기만두를 전부 만들 수 있다는 얘기지! 다 죽었어! 아무거나 넣어서 찐빵 만들어주지!
그런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주말 마무리였다. 그저 뭐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먹을 수 있는 성취감이 최고다.
TIP: 남은 차슈는 다음날 차슈덮밥으로 먹었다. 햇반을 깔고 차슈 양념을 살짝 두른 다음에 차슈를 올리고 고수/생강/잔파 그리고 당근 라페와 송송 썬 오이. 차슈는 냉장고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니까 또 하얗게 기름이 굳어 있어서 프라이팬에 살짝 데웠는데 또 기름이 줄줄 흘러나와서 진짜 기분이 애매하다. 삼겹살 녀석… 내 배에도 지금 이렇게 지방이 끼어 있나…? 다음엔 기름기 덜한 부위로 만들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