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자 회고록과 노병의 에세이를 읽기
존 키건의 “전쟁의 얼굴(The Face of Battle)”을 인용하자면 “나는 참전 경험이 없다. 전장에 가까이 간 적도 없고 멀리서 들어본 적도 없으며 그 여파를 느껴보지도 못했다.” 군생활을 22년 하면서 남북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최전방 야전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나는 참전 경험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전쟁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는 쪽과 모르는 쪽 중에 어느 쪽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전쟁을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또 다시 존 키건을 인용하자면 “물론 나는 전투에 관해 읽었고, 전투를 이야기했으며, 전투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중략) 진행중이거나 진행중인 것처럼 보이는 전투를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켜보았다. (중략) 그러나 나는 결코 전투에 참가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실제 전투 장면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확신이 점점 더 커진다.”
전쟁사와 전투사례 탐구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전쟁사와 전투사례 연구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특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방대한 1차 사료더미이다. 어떤 사료더미는 분류되지 않은 채 박스에 들어있는데, 과제 접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식료품 아이템 목록이나 유류 선적량 관련 서류가 수백 장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편으로는 모든 서류의 내용을 다 확인하지 않고는 ‘그 사료더미 박스에는 참고할 만한 것이 없었어’라고 결론 내릴 수 없는 연구자 특유의 고집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백 장 중 한 장에 “A지역에 고립된 a 대대에 공수하기 위해 식료품을 긴급히 하역”이라고 기록되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박스 속 문서 파일을 하나씩 꺼내서 모두 읽는 작업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난처한 것은 해당 전쟁의 한 장면이나 전투사례의 실시간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1차 사료조차 전쟁의 본질이나 전투사례의 실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이다. 6.25전쟁기인 1953년 5월 28일, 29일 양일 간 영연방군과 중공군이 싸운 ‘후크고지 전투(Battle of Hook)’를 보자.
중공군이 1953년 5월 28일에 경기도 연천에서 전면 공세를 펼쳤다. 중공군은 모든 포탄을 쏟아 부었는데 화력이 가장 집중된 곳은 영연방의 웰링턴공작연대(Duke of Wellington's Regiment) 제1대대(이하 웰링턴연대 제1대대)였다. 이들은 서울로 연결되는 사미천 협곡을 통제할 수 있는 후크고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웰링턴 대대는 후크고지 정상에 D중대를, 그리고 좌우측에 각각 B, C중대를 배치하는 전형적인 형태의 준비된 방어를 했다.
중공군은 중앙에 있는 D중대 앞으로 5개 중대를 투입하여 집중공격했다. 후크고지에서는 곧 육박전이 벌어졌는데 양측 모두 이곳을 반드시 차지해야 했기 때문에 교전의 치열도가 높았다. 중공군은 고지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유엔군의 포병에 노출되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웰링턴연대 제1대대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중공군의 최초공격은 5월 28일 야간에 격퇴되었다. 5월 29일 자정쯤에 다시 한 번 공격을 했으나 별다른 전과 없이 물러났다. 이때 영연방 제1사단은 예비대를 보내 철수하는 중공군을 추격하여 5월 29일 03시 30분부로 지역 내에서 완전히 격퇴했다.
전투가 끝난 뒤 추산한 피해 규모는 웰링턴연대 제1대대의 전사상자가 약 100명이었고 중공군의 그것은 약 1000명이었다. 영연방군의 대승리였다. 후크고지 사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웰링턴공작연대는 부대표창을 받았으며, 작전의 핵심이었던 웰링턴연대 제1대대는 ‘후크(The Hook)’, 대대의 본부중대는 ‘후크중대(Hook Company)’ 호칭을 부여받았다.
위의 전투 약사(略史)는 미 육군군사연구소와 영국 왕립전쟁박물관의 1차 사료와 그 사료를 바탕으로 쓴 6.25전쟁 공간사(Official History) 등을 정리한 것이다. 연구자의 직업적 숙련도는 이 정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가 타고난 글솜씨의 소유자든 복사기 같은 기억력을 자랑하는 걸어다니는 사전이든 상관 없다. 역사 서술의 수사학, 전투 분석의 과학에 능통한 연구자가 되려면 정리를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리’라는 작업은 양날의 검이다.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전투사례의 실시간이 일목요연하게 묘사되지 않고, 정리를 너무 잘 하면 전쟁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전자와 후자의 중간지점이 정해져 있다면 작업이 쉬울텐데, 짐작하다시피 그런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후크고지 전투 약사는 매우 정리가 잘 된 것이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중공군이 1953년 5월 28일에 경기도 연천에서 전면 공세를 펼쳤다”는 기술에서 ‘중공군’은 단일의 인물이나 행위자가 아니다. 정리를 위해 ‘중공군’으로 뭉뚱그렸을 뿐이다. 또한 중공군이 ‘경기도 연천에서 전면공세를 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천의 주요 접근로를 중심으로 한정된 공간에 집중하여 공격부대를 보냈을 것이다.
정리된 전투의 경과와 내용을 보면 부대들이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했는지 조감하듯 알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 공격과 방어의 주체인 인간이 제거되어 있다. 만약 연구자에게 “인간이 제거된 전쟁사, 전투 사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라고 질문한다면 당황하면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화를 낼지 모른다. “공격명령을 받았을 때 두려움을 감추고 전진해야 했던 중공군 병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정면으로 중공군이 돌격해올 때 탄약이 떨어진 기관총 진지에 탄알통을 전한 영국군 병사는 어떤 각오를 했을까?” “포탄에 맞아 전투불능이 된 부상자들은 교전이 한창일 때 무엇을 했을까?”
"후크고지의 영웅들"의 부제는 ‘6.25 참전 영국 노병들의 수기’이다. 말 그대로 젊은 시절 참전했던 영연방군 장병들이 노년에 남긴 짤막한 수기 모음집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1953년 5월 28일 후크고지에서 중공군과 싸웠다. 그 중 당시 상병이었던 짐 리차드의 수기는 상황을 매우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다.
“우리 중 첫 번째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텐트로 된 막사에 있을 때였다. (중략) 어느 날 한 병사가 어둠 속에서 휴대용 램프를 들고 기름을 채우다가 기름통과 램프를 자신의 몸에 떨어뜨렸다. 병사는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가 몸에 불이 붙어 결국 죽고 말았다. (중략) 취사병 중 한 명이 동료와 장난을 치다가 자신의 총이 장전된 것을 잊고 진짜로 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전선으로 간다고 통보받던 날 저녁. 나는 전선에 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때 두려움과 불안에 온몸이 떨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렸었다.”
“후크고지는 끊임없이 포탄이 떨어지고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오는 위험한 장소였다. (중략) 포탄은 몇 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떨어졌다. 대규모 공격을 예상한 우리는 밤마다 방어시설을 보강했다. 우리는 ‘오늘 밤이 그 밤이다’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 밤’은 1953년 5월 28일, 오후 7시 45분에 실제로 찾아왔다.”
“중공군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함성을 질렀다. 그 모습은 나를 지옥 같은 공포로 몰아넣었다. (중략) 어느 순간 포탄이 참호 앞에서 터졌고, 그 파편이 날아와 총신의 소염기를 날려버렸다. 내 오른팔과 코, 볼에 파편이 스쳤다. 피를 심하게 흘렸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반면 기관총 사수 터커는 폭팔이 일어난 쪽에 있다가 팔과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다른 병사가 그를 대신하여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인용한 부분들은 수기의 일부를 무작위로 발췌한 것이데, 앞서 제시한 후크고지 전투 약사보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이다. 그 이유는 첫째, 약사에서 인위적으로 제거한 우연성, 비연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역사 서술의 수사학은 원인과 결과, 시간적인 선후 관계 등을 분석하여 밝힌다. 그러나 전장에는 원인이 없는 혹은 무엇이 원인인지 알 수 없는 결과,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동시다발적 사건이 흔하다. 짐 리차드는 이를 가감없이 그대로 적고 있다.
둘째, 전투 경과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제외된 감정이 생생히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전투 분석의 과학은 개개 장병을 단위로 묶고 오감을 포함한 감정을 생략한 채 행동만 부각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특히 전장 속의 전투원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평소 훈련 받은 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은 전투원은 극히 일부이고, 대다수는 오감이 이끄는 대로 즉각 반응한다. 짐 리차드의 수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지적 호기심이나 정보의 적층을 위해 전쟁사, 전투 사례를 연구하고 탐구하지 않는다. 방대한 사료 박스를 뒤져 수천 장 중에서 한 장의 의미있는 1차 사료를 찾고, 이를 엮어 시간적 선후나 의미적 인과를 엮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연과 마찰의 살풍경을 상상하여 떠올리고 수백만의 죽음을 간접 체험하면서까지 전쟁과 전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전쟁의 얼굴’인 인간을 알기 위해서이다. 짐 리차드의 수기를 통해 우리가 읽고 마음 속에 떠올리는 것은 ‘얼굴이 있는 전투’이다. 존 키건이 자신의 저서에 붙인 제목 “전쟁의 얼굴”도 같은 맥락이다.
‘얼굴이 있는 전투(혹은 전쟁의 얼굴)’은 언제 드러날까. 전쟁사와 전투사례 연구의 직업적 한계를 넘어 건조하고 무감각하며 기계적이고 비약적인 서술, 기술, 묘사 속에 인간을 담으려는 노력을 할 때 드러난다. 전쟁사 연구의 대가들은 전장에서 쓴 병사의 편지와 일기, 장교의 회고록, 전장에서 급히 발송된 메모를 전쟁사, 전투 사례 정리에 적극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전장 속 인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할 때 ‘전투원이 스스로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후크고지의 영웅들"은 건조하고 무감각하며 기계적이고 비약적인 서술, 기술, 묘사가 많은 기존의 6.25전쟁사 및 전투 사례를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수기이다. ‘참전 경험 있는 노인이 말년에 쓴 두서없는 에세이’라고 생각하면 읽을 흥미가 안 나는 책이다. 그러나 분명 "후크고지의 영웅들"은 6.25전쟁과 그 속의 전투를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고, 투쟁의 본질과 인간 삶의 토대에 닿을 수 있는 통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