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김창수(2017)”의 주인공은 죽음을 대면한 채로 옥중에서 투쟁하는 구한말의 젊은이이다. 영화의 절정부는 강제 노역 장면인데 김창수는 피땀과 죽음이 가득한 철도 건설 현장에서 다른 죄수들의 기본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며 리더로 성장한다. 주인공으로 분한 조진웅이 선보이는 밀도 높은 연기력에 집중하다보면 구한말 민중의 좌절과 분노, 헌신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영화 속 대장 김창수의 삶이, 역사 속 김창수 실제 그것보다 감동이 덜 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화사가 ‘상상력을 가미한 가상역사물’이라고 밝히고 강조했지만 소용없었다. 평자들은 그런 영화적 장치들이 역사적 인물 김창수와 그가 살았던 인생의 가치를 훼손한다고까지 비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창수는 상상력과 영화적 장치가 필요 없는 ‘영웅’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영웅’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서 소속 공동체에 위대한 공헌을 하고 구성원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들의 일생에는 ‘공통된 전기적 서사유형’이 있다고들 한다. 한 인간이 영웅이 되기까지 통과해야하는 필수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고귀한 혈통을 가졌으나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 고난을 겪는다.
ⓑ 성장 과정에서 보통사람은 견딜 수 없는 역경을 만나지만 이를 극복한다.
ⓒ 능력을 갖추고 공적을 세우지만 박해자 혹은 라이벌을 만나 투쟁한다.
ⓓ 투쟁에서 승리하여 권좌를 차지한다.
ⓔ 권좌에 올라 일정기간 통치를 하다가 이례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한 인간의 삶이 위와 같은 요소를 갖출 때 ‘영웅’이라고 한다면 다음의 인물, 김창수는 어떨까?
19세기 말 몰락한 귀족가에서 태어난 김창수는 관직에 오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민중 혁명운동에 참가하여 리더로 공을 세웠으나 혁명이 실패하자 세상을 돌며 눈을 넓혔다.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자 돌아왔으나 시비 끝에 압제국의 시민을 살해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 신세가 되었다. (ⓐ)
옥중에서 김창수는 고문과 구타로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김창수는 굴하지 않고 옥중의 약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대신 투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의 처지를 알게 된 왕이 형집행 정지를 명령하여 사형만은 면했다. 김창수는 압제국이 사형을 강행하기 전에 탈옥했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주유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조국에 대한 압제국의 탄압이 거세지자 민족 저항운동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은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김창수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
시간이 지나 김창수는 특별사면으로 출옥했다. 그는 다시 민족 계몽운동에 투신하다가 해외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해외 임시정부의 중요한 축을 맡았는데 초기엔 무장투쟁을 지도했고 공적과 리더십을 인정받은 후에는 임시정부의 지도자가 되었다. (ⓒ, ⓓ)
민족이 해방되었을 때 A는 귀국하여 독립한 조국의 초석을 닦고자 정치활동에 돌입했다. 노선을 달리하는 리더들 간에 경합이 있었는데 주변국의 국제정치적 마찰이 겹치면서 민족 통합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 되었다. 그러던 중 김창수는 노선을 달리하는 일군의 무리에게 기습 암살당했다. (ⓒ, ⓔ)
민중, 민족을 위해 투신한 김창수의 생은 다했으나 그의 애민정신, 투쟁의지는 온 국민에 두고두고 전해졌다. 특히 김창수의 민족정신과 자주의지는 식민, 전쟁, 위기를 극복하고 강대국 대열에 선 조국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위에 요약한 김창수의 삶은 연구자들이 정리한 영웅 전기의 서사 구조에 잘 들어맞는다. 한 번만 훑어보더라도 영화 대본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상상력이나 영화적 장치로 더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극적이고 스케일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 김창수”를 본 평론가들이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역사 속 인물 김창수의 행적이 주는 감동에 못 미치며, 상상력과 영화적 장치가 오히려 김창수 인생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평했던 것이다.
평론가들의 비판이 과했다고 여겨진다면, 인간 김창수가 생전에 남긴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읽어 보자. 그 어떤 영화대사보다 큰 울림이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최고 배우의 연기력보다 더 큰 감동을 주고 떠난 민족의 영웅. 현대 영화의 거대자본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처절한 삶을 살았던 “대장 김창수”는 과연 누구일까? 대부분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자주, 민주, 통일에 일생을 바친 겨레의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