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의 시대,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들의 손에 관한 이야기
며칠 전 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무언가 옷에 걸리는 느낌이 났다. 자세히 보니 정장 바지가 1센티 가량 찢어져 있었다. 탁자 밑 어딘가에 걸려 옷이 찢어진 것 같았다. 수선집에 맡기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수선 중 회사에 입고 다닐만한 정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겐 검은색 정장은 딱 한 벌 뿐이었다.
다음날 오전 회사 옆 백화점 1층에 있는 수선집에 바지를 맡겼다. 점심 이후에 찾으러 오라는 말을 듣고 오후에 수선집에 갔는데, 아직 수선을 안 했으니 한 두 시간 뒤에 다시 오란다. 3시간 쯤 뒤에 다시 수선집을 찾았다. 내 바지는 여전히 수선이 안 되어 있었고, 수선집 아주머니는 여전히 분주해보였다.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는 내 바지를 옆의 동료에게 건네며 대신 누벼달라고 했다. 재봉틀이 바지 위를 부지런히 지나다녔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요란했다. 크게 기대하며 받아든 결과물은 대실망이었다.
실은 내 바지는 1센티가 조금 안 되게 찢어졌었는데, 검은색 실들이 애초 찢어진 곳을 2센티 이상 에워싸며 한 눈에 보기에도 다른 바지를 만들어버렸다. 사방팔방 나 있는 검은색 실들이 ‘이 위치에 바지가 찢어졌거든요? 근데 보시다시피 엄청 튼튼하게 땜빵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난 순간, 바지를 찢어진 채로 놔두는 것이 누빈 것 보다 훨씬 나았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바지를 누비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바지는 전혀 다른 바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에워싼 실들을 칼로 한 올 한 올 뜯어내기 시작했다. 씨바- 바지 수선은 3초도 안 걸렸는데, 누비기 전 상태로 만드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실은 누비지 아니함만 못했다. 바지 구멍이 더욱 벌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누비는 것 대신, 짜깁기만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가게가 몇 군데 눈에 띄었다. 광주에는 그런 가게가 없어서, 나는 바지를 수원까지 택배로 보내야 했다. 번거롭게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고작 1센티 찢어진 것 때문에 정장을 새로 살 수는 없었다. 수선료는 1센티 당 1만원. 나는 수선료와 택배비를 포함하여 2만 6천원을 지불했는데, 며칠 후 돌려받은 바지는 대체적으로 만족이었다. 돌려받은 바지를 보니 그럭저럭 입고 다닐 만은 했다.
앞으로 정장 바지가 찢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신세계 1층 수선집과는 작별을 선언한 상태. 나는 또 다시 택배로 수선을 맡기겠지만 수선 중 마땅히 입고 다닐 만한 정장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2만 6천원에 액땜한 셈 치고, 정장을 한 벌 사기로 마음먹었다.
상무아울렛에 가서 정장집 몇 군데를 둘러보려 하였으나, 시간이 애매했다. 꼭 필요해서 정장을 사려 했다기 보단, 정장이 찢어졌을 때를 대비한 예비용 정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싸게 잘 사려고 공을 들이기보다는, 한 번 괜찮은 정장이 있나 가볍게 둘러보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 앞 사거리에 생긴 ‘로가디스’라는 정장집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8만 원 대, 11만 원 대의 정장들이 줄을 지어 걸려있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정장의 가격대는 대략 20만 원 대 후반~30만 원 대 중반까지이다. 더욱 싼 정장을 사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너무 값싼 정장은 핏감이나 선, 재질의 느낌, 신축성, 통풍성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내가 생각했던 선에 훨씬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가디스’매장에 있던 정장은 상식적으로 가격이 너무 낮았고, 질이 그닥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휙 한 번 둘러보고 나가려했다. 그러다 색이 마음에 드는 정장이 눈에 띄었다. 8만원 짜리! 사실 소재의 혼합율 따위는 잘 모르지만, 질이 썩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핏 감도 괜찮으려나 싶어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갔다. 마이의 핏감은 굿! 그러나 바지는 영 아니었다. 허리가 맞는 바지면 허벅지나 엉덩이가 펑퍼짐 했고, 반대로 허벅지나 엉덩이의 핏이 좋으면 앞 쪽의 단이 채워지질 않았다. 비교적 마른 체형에 비해 더 없이 늘어나버린 내 뱃살 때문이었다. 원래 정장은 수선해서 입는 법! 수선이 가능하냐고 물었으나, 사장님은 수선은 나가서 따로 해야 한단다. 바지만 어느 정도 내 몸에 맞으면 줄여서 입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은 후, 사장님께 물었다. 이 펑퍼짐한 바지를 내 체형에 맞게 수선하는 것이 가능한지 말이다. 사장님은 피식 웃더니, 광주에서 제일 수선을 잘하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을 소개시켜 주겠단다. 수선비가 몇 만원 들긴 할 텐데, 믿고 맡겨보란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정장을 사고 그 곳에 수선을 맡긴 사람들 모두가 만족했고, 단 한 명도 문제 제기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마음이 흔들렸다. 8만원에 정장을 산 후, 몇 만원 웃돈을 얹어 수선을 맡겨볼까? 그러다 수선이 잘못되면, 이 정장은 버리는 게 될 텐데. 살까 말까. 수선이 잘만 된다면 나는 고작 10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좋은 정장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계륵 같은 정장을 손에 들고 무수히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간 나는 브랜드 정장만 고수해왔다. 나의 체형에 맞게 정장을 수선하던 곳도 그런 정장집의 전속(?) 수선집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수선을 따로 해주지 않는다. 사장의 말만 믿고, 내가 광주에서 제일(?) 수선을 잘한다는 그 가게에 따로 내 옷을 맡겨도 될까?
고민, 또 고민... 결국 나는 정장을 사버렸다. 더욱 싼 정장을 찾아 나선 나의 위대한 도전과 모험 스토리라 이야기하고 싶건만, 현실은 단 돈 몇 만원이라도 아껴보자는 무모한 수작이자 도박에 불과했다. 최근 신세계 1층 수선집에서 내 정장 바지를 망친 후, 내가 들여야 했던 공이 모두 개고생이었다는 생각도 여기에 한 몫 했다. 이 한 번의 모험을 통해, 앞으로는 정장을 수선하더라도 더욱 여유롭게 수선할 수 있게 해줄 완벽한 예비용 정장을 꿈꾸어보기로 했다.
소개 받은 수선집의 이름은 미래세탁크리닝. 수선집 사장님께 전화를 넣었더니, 저녁 식사 중이란다. 수선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대충 이쯤이면 저녁을 다 드셨겠구나 싶어 30분 정도 후에 수선집을 찾았다. 갔더니 문은 잠겨 있고, 안에 있던 개가 날 보고 짖었다. 10분을 더 기다린 끝에,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바지를 줄이러 왔다하니, 벗어서 입어보란다. 규모가 작은 세탁소라 따로 탈의실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구석진 곳에서 엉거주춤 바지를 갈아입었다. 어쩔 수 없이 보여야만 했던 내 속옷 차림이 창피했다.
갈아입은 옷은 뭐랄까. 통은 넓고 밑단은 길어, 다리를 들 때마다 바지가 흔들거렸다. 허리는 너무 커서 손 하나가 쉽게 들어갔다 나왔다. 허벅지 쪽은 너무 커서 앉는 시늉을 해도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딱히 들지 않았다. 엉덩이, 허벅지, 바지통, 밑단을 모두 줄여서 나의 체형에 맞추어야 했으니 바지 수선은 대공사가 될 터였다.
이 바지를 내 체형에 맞게 줄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지만, 사장님은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다. 사장님은 어느 부위를 얼마만큼 줄이길 원하는지 묻고, 내가 바지를 잡고 이리 저리 잡아당길 때마다 초크로 그 길이를 표시했다. 아저씨의 주름진 손이 너무도 듬직해보였다.
사장님은 돈이 조금 들 텐데 수선비가 비싸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한 4~5만원을 생각했는데, 다행히 수선비는 2만 6천원이었다. 그 정도는 당연히 드려야죠, 라며 웃으며 돈을 꺼내는데 사장님이 수선비는 2만원만 달라고 하더라. 너무 비싸게 받는 것 같으니 깎아서 2만원에 해주겠단다. 당연히 안 된다고 했다. 내 바지를 정말 내 마음에 딱 들게 수선해준다면 2만원 6천원에 웃돈까지 더 얹어드릴 계획이었다.
사장님은, 자기는 완벽하게 바지를 수선해줄 자신이 있다. 자기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바지를 수선해줄 터이니, 일단 2만원만 내고, 나중에 바지가 완성되면 그때 한 번 입어보고 돈을 더 주던 말던 알아서 하란다. 그렇게 타협(?)을 하고 세탁소를 빠져나왔다.
사장님에게서 자기 일과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유명한 수필 윤오영의 ‘방망이 깎는 노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백 번 천 번이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무료로 수선해준다니? 한 땀 한 땀 사장님의 손이 지날 때마다 내 몸에 알맞게 바지가 줄어드는 풍경이 그려졌다.
이틀 뒤, 기대를 안고 세탁소를 찾아갔다. 바지는 잘 다려져있었고 수선한 티는 나지 않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제법 맵시가 있었다. 바지를 입어본 나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고, 옆에 서 있던 사장님도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께 연신 고마워하며 돈을 조금 더 드리려 했더니, 절대 받지 않겠단다. 자기 때문에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좋다며, 주변에 옷 수선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자기 가게에 올 수 있도록 홍보나 잘 해달라고 덧붙였다.
실력이 있으면 자연히 입소문이 퍼지는 건 당연한 일. 언뜻 홍보가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인터넷에서 광주 수선집을 검색했을 때 여기 수선집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이 가게를 찾지 않아서였을까? 사장님 내외분이 혹여나 본인의 나이가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다는 생각 따위는 안 하셨으면 싶었다. 나도 수선된 바지를 받아들고는 알게 되었다. 이 가게에 탈의실이 없는 것도, 가게가 넓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전혀 단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해서 장롱에 새 정장 한 벌을 들여놨다. 최근 이 정장을 입고 멀리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정장이다. 값싸게 정장을 산 것도 좋지만, 앞으로 수선할 옷이 생기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게 되어 좋다.
- 그들에겐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있다. 그들의 섬세한 손이 닿을 때마다 명품이 탄생한다. 복제의 시대에 살지만, 그 어떤 기술로도 그들의 손을 대신할 순 없다. 우리는 그런 손을 가진 사람을 장인이라 부른다.
정장을 산 날, 나는 그런 장인을 만났다. 광천초등학교 옆 ‘미래00크리닝’에서였다.
언젠가 사장님과 가게를 사진 찍은 후 블로그에라도 사진을 올려 홍보를 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블로거가 아니며, 당장 카메라를 들고 그분을 찾아뵐 시간도 없다. 하여 여건을 탓하며, 이곳에 글 한 편을 올린다.
"잘 만들어진 옷 한 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새로 수선 된 이 정장을 입을 때 마다, 그 사장님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