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분식집에 들렸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한 순간 떡볶이, 순대가 땡겼다. 전화해서 분식이나 먹자 했더니, 와이프는 아이에게도 저녁을 먹여야 하니 참치김밥도 하나 사오라 했다. 예전에 살았던 선암동으로 차를 돌렸다. 떡볶이가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들리는 분식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분식집엔 항상 부부임이 분명한 남자 사장님과 여자 사장님만 계셨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대신 주문을 받았다. 그 나이의 학생이 매상이 높지도 않을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주문 받는 솜씨를 보아하니 사장님 내외의 딸인 듯 했다. 떡볶이, 순대, 튀김, 김밥을 1인분씩 시켰는데 여자 아이는 주문을 받다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장님 내외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떡볶이가 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이다.
남자 사장님은 떡볶이는 다 팔려서 팔 수 없다고 내게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아쉬워하며 순대나 튀김에 떡볶이 소스를 찍어먹고 싶다고 말했더니, 사장님은 남은 떡볶이 소스를 따로 데워 포장해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버릴 떡볶이 소스를 따로 챙겨주는 게 대단한 서비스는 아니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매대 앞에서 내가 주문한 음식을 포장하고 데우는 남자 사장님을 바라보는 동안, 유독 그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은 일식 요리사들이나 입는 파란색 쉐프복을 입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분식집에 방문할 때마다 그 분은 세월의 손길이 닿은 듯 여기저기가 낡은 쉐프복을 입고 있었다.
분식집에서 날마다 일본식 쉐프복을 입는 사장님이라니. 그 분의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를 테면, 근사한 일식집을 운영하다 뭔가 사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분식집으로 업종을 바꾼 건 아닌가 하는 사연 따위 말이다. 이래 저래 상상의 나래를 펴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넘겨 짚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사장님의 쉐프복은 요리에 대한 그 분의 태도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경력 있는 요리사들이라면 무시할 수도 있는 분식을 만들어 팔고 있지만, 어떤 음식을 만들던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름의 각오 같은 거 말이다.
선암동에서 신혼을 시작할 때는 막 개발되기 전이라 동네 자체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비교적 초창기에 생겨난 맛또랑 분식집에도 당시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은 테이블마다 손님이 가득해서 그런지 활기가 느껴졌다. 맞은편 초등학교를 끼고 주변에 분식집이 많이 생겨 가게들마다 어느 정도 매출에 피해를 입었을 법도 한데, 맛또랑 분식집만큼은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퇴근 후 오늘처럼 떡볶이, 튀김 같은 분식을 가끔씩 싸 들고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광산구에 살고 있을 동안엔 맛또랑 분식집이 늘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남자 사장님께서 매일 일식 쉐프복을 입고 계실 동안엔,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