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당신에 대한, 어쩌면 모두에 대한 이야기

매일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by 와니

한 동안 서울에서 지내다가 유스퀘어(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일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왔다. 어느날 출근 길에 유스퀘어 앞 지하보도를 지나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어렸을 적 한 동네에 살았던 그가 지하보도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20년 전 쯤 동네 교회에서 한 두 번 만났을 뿐이었지만, 난 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처음 본 당시 그는 다리가 심하게 뒤틀려 있어서, 교회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할 때 몸 전체를 심하게 흔들어댔다. 어떤 질병에 걸리거나 무슨 사고를 당한 건지는 몰랐지만, 보행이 불편해보이는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게 너무나 짠했다. 그를 기억해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걸을 때 마다 살짝 뒤뚱대는 것도 아니고, 몸 전체를 심하게 흔들어대는 풍경이 그 당시 너무 강렬했기 때문.


제발 도와주세요. 배가 고픕니다, 라고 적힌 그의 팻말을 지나칠 순 없었다. 혹시라도 얼굴이 마주치고, 그가 날 알아보면 서로 민망해할까봐 박스에 천원 짜리 몇 장 넣어주고 슬쩍 지나쳤다. 그는 추레하게 해진 츄리닝을 입고 있었는데, 적어도 서로 알아보게 되는 때가 내가 정장을 입고 있는 지금은 아니었으면 싶었다.


가끔 지하보도를 지날 때마다 구걸하는 그가 보이면 난 여전히 천원 짜리 몇 장 넣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천원 짜리가 없어서 오천원 짜리나, 만원 짜리를 넣은 적도 한 두 번 있다. 내겐 그것이 일종의 인사 아닌 인사다. 실은 난 그의 이름도 모르고, 이름을 물어볼 생각도 없다. 다만, 그가 내 얼굴을 기억하더라도 나는 모른 척 하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10년 전 교회에서 한 두 번 봤다고 아직도 날 기억하겠느냐만은, 날 보고 알은체 하더라도, 난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뗄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나마 그의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유스퀘어를 돌아다니다 보면, 지하보도가 아닌 곳에서 그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는 가끔 유스퀘어 광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담배를 다 피우면, 심하게 몸을 흔들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곤 지하보도의 찬 바닥에 앉아, 또 구걸을 시작한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어렷을 적 살았던 동네를 찾았다. 친구와 차를 마시고 거리를 나서는데, 우연히 저 앞 버스에서 그가 내리는 게 보였다. 때 마침 같이 있던 친구가 어렸을 적 함께 교회를 다녔던 녀석이라, 그를 기억하는지 물어보았다. 아직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더라. 그는 버스에서 내리더니 양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실은 버스에서 그가 내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계단 폭이 더 높아서인지, 그는 유스퀘어 계단에서 보다 더 힘겹게 거의 주저 앉은 듯한, 그렇다고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버스 뒷문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저렇게 몸이 불편한 그가, 더 큰 불편함을 감수하고 버스를 탄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아침 출근길에 유스퀘어에서 구걸하는 그를 떠올렸다. 그도 구걸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는 구나, 버스를 타야만 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니 버스를 타고 다니던 내 아침 출근길이 떠올랐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기 전 나는 한동안, 그 동네 종점역에서 매일 같이 첫 버스를 타고 유스퀘어로 출근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깜빡 졸았다가 눈을 뜰 때마다 달라진 버스 안의 풍경 때문에 깜짝 놀라곤 했다. 파란색 두툼한 비닐봉다리를 옆에 내려놓은 시장 상인들, 나처럼 정장을 입고 회사로 출근하는 듯한 직장인들, 등산복을 입은, 그러나 등산하기 위해 버스를 탄 것 같지는 않은 이들이 언제 탔는지도 모르게 버스 안에 가득차 있었다. 그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나처럼 날마다 유스퀘어로 향했던 걸까?


하루의 구걸이 끝나면, 그는 내가 그랬듯 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리고 그는, 다음날 아침이 되면 유스퀘어에서 구걸을 하며 또 하루의 생계를 이어갈 것이다. 오전에는 유스퀘어 지하보도에 있다가, 오후가 되면 또 다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구걸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를 보면서 매일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거. 그냥 삶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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