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제주도에서 중국까지, 조선인의 표류기를 읽다

표해록, 중국 3개 기행문의 하나를 만나다

by 와니

표해록(漂海錄)

-최부 씀


제목 그대로 바다를 표류하게 된 자의 기록이다. 성종 18년에 부친상으로 인해 제주도에서 나주로 향하던 최부는 태풍을 만나 14일간 표류하다 기적처럼 중국의 동남쪽 저장성 지역에 가 닿는다. 해적이라는 모함 속에 죽다 살아난 이후에도, 왜구로 의심 받아 또 다시 죽을 고생을 한다. 명나라 황제를 만나고 6개월 만에 무사히 귀국한 후, 임금의 명을 받고 바다에 표류하게 된 때부터 중국에서 살아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글로 남긴 게 이 책 표해록. 중국 3대 기행문의 하나로 손꼽힌다 한다.


분명 오래 전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도중 너무나 생생한 풍경이 그려져 솔찬히 재미가 느껴졌다. 귀국하자마자 부친상을 치르고자 했던 최부에게 성종은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우선 기록으로 남기라 명한다. 하루 빨리 부친상을 치르려던 터라 조금 소홀했을 법도 한데, 최부는 단 8일만에 중국에서 겪었던 거의 모든 일들을 꼼꼼히 기록해 바친다. 몇 월 며칠 누구를 만났는데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 사건을 겪을 때 함께 있었던 주변 인물은 누구이며, 당시 어디를 지나고 있었는지, 그때의 장소는 물론 날씨 또한 어떠했는지 등 서술과 묘사가 소름이 돋을 만큼 세세하기 그지 없다. 이런 글을 그때그때 써두었던 것도 아니고, 귀국 후 순식간에 써내려 가다니 최부는 정말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하긴 과거에 두 번이나 급제했다고 하니 어쩌면 그럴 지도…)


다음은 표해록에서 만난 인상 깊은 대목 몇 가지.


- 바다에 표류하던 일행 모두가 죽음을 앞두게 되자 하인들 중 일부는 최부를 대놓고 씹는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바다로 나와 죽을 지경이 되었다며… 지배, 피지배 계층의 구분이 엄격하던 때라 이런 장면은 상상을 못했었는데, 최부는 자신을 욕하는 하인들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저 안타깝다고 서술한다.


- 중국 관리가 최부를 향해 조선인임을 증명하라며 조선의 행정, 지리, 과거 제도, 의복, 문화 등에 대해 묻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그때마다 최부는 어쩌면 복잡하달 수 있는 내용들을 핵심만 뽑아 간결하게 답하고, 해적이나 왜구로 모함을 받아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을 때에는 의연한 자세로 이치에 맞는 대답을 한다.


- 최부는 과거에 합격했다며 자랑하는 어느 중국 관리에게 본인은 조선에서 2번이나 과거에 합격했다며 장난을 친다. 중국 관리는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가 최부가 합격증명서를 꺼내 보이자 무릎을 꿇고 최부를 인정한다.


- 고구려가 어떻게 수당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 시비조로 묻는 중국 관리에게는 고구려가 강한 국가였다는 것을 자부심 있게 알린다.


- 최부가 해적을 만나기 전, 함께 있던 선원들 대다수가 상대편이 해적일 경우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국가의 명령을 받고 배에 오른 관리직답게 의복을 갖춰 입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최부는 부친이 상을 당했는데 상복을 벗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옷을 갈아입지 않다가 결국 최부 일행을 얕잡아본 해적들에게 수모를 당한다.


- 최부가 어느 지역에 배를 정박한 후 마을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았는데, 최부 일행이 오랜 표류 생활 끝에 기력이 떨어졌다는 걸 알아챈 마을 사람들이 저녁에 단체로 도적으로 돌변하여 최부 일행을 죽이려 한다. 거꾸로 매달아 매로 때리기도 하고, 일행을 죽이려 시늉하며 재물을 내놓으라 협박한다. 진짜 법과 제도, 인권도 없던 옛날이 무법천지긴 했던 모양.


- 최부가 중국 관리들의 인도 끝에, 마침내 중국의 황제를 뵙게 었을 때 일. 중국의 황제를 알현하기 전, 최부는 부친상을 이유로 절대 상복을 벗을 수 없다고 하는데, 중국의 신하들은 황제를 뵐 때는 상복이 아니라 길복을 입어야 한다며 최부와 논쟁한다. 결국 최부는 중국의 예에 따르기로 하고 길복을 입는다.

그리고, 이건 표해록의 부록으로 딸린 최부의 연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 최부는 귀국하자 마자 부친상을 치르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종에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표해록을 써서 바친다. 임금의 명령에 따랐으나, 후에 중요한 관직에 오르게 되었을 때 많은 신하들이 ‘아무리 왕명이라 해도 한가하게 기행문이나 쓰고 있었던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며 최부를 비난한다. 결국 최부는 몇 차례나 관직을 맡지 못했고, 성종은 이를 안타까워하여 최부에게 옷도 하사하는 등 나름 신경을 썼으나 많은 신하들에 의해 인사를 관철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최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 최부는 후에 연산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작성하고 좌천된다.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고문을 당하고, 귀양 간다.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결국 연산군의 명령으로 효수된다.


그리고, 이건 표해록을 읽은 후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사실. 바다에 표류하다 최부가 중국에 닿은 것처럼, 반대로 네덜란드 인이었는데 조선에 오게 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 1627년에 항해하다 조선에 귀화한 네덜란드인 얀 야너스 벨터브레이. 귀화 후 하사 받은 이름은 박연.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의 하멜이 표류 끝에 조선에 도착했을 때 같은 네덜란드인이었던 박연이 하멜 일행과의 통역을 도맡았다. 한데 26년이 지나서였는지 박연은 통역을 못하고 엄청 버벅였다고 함. 당시 통역에 쩔쩔 매던 박연을 향해 조선인 관리들이 자랑스럽게 웃으며 “역시 조선사람 답다.”고 칭찬했다고 한다.(졸라 웃겼다ㅋㅋ)


여담으로, 조선 관리들이 박연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란 하멜 일행들에게 박연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 같은가?’라고 물었을 때 하멜은 ‘분명 같은 네덜란드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함. 대답을 들은 조선인 관리들은 역시 껄걸 웃으며 ‘아니다, 이 사람은 조선사람이다.’라고 했다고…;(또 한번 웃겼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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