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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y 05. 2024

제 롤모델은 선생님이에요.

사랑합니다.

"선생님, 나중에 크면 람보르기니 사드릴게요! 기다리세요."

"아유, 말만 들어도 고마워!"


고민이 생기면 항상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이 쉬고 계시거나 업무를 보시는 도중에도 시답잖은 고민을 안고 선생님 방에 문을 열었다. 고민이 있으면 고민이 있어서, 고민이 없으면 없다는 이유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항상 웃고 계셔서 몰랐다. 나와 내 친구들이 선생님의 쉬는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고 업무시간을 늘려 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내 바운더리 안에는 소수의 인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 선생님은 항상 포함시켰다. (선생님의 의사는 여쭙지도 않은 채)

 

4년간 학원을 꾸준히 다녔다. 중간에 형편이 어려워져 하나 다니던 학원마저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오자, 무거운 마음으로 선생님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 퇴원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관해 말씀드렸다. 그때 선생님은 내 작은 손을 꼭 잡아주셨다. 어른 손의 온기는 이렇게 따뜻하구나. 그때 처음으로 느껴봤다.

"당분간은 그냥 다니자."

선생님의 검지 손가락이 본인의 콧등으로 올라감과 동시에 쉿! 하고 잔잔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동안 죄송스러운 마음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는데 선생님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으셨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조금씩 내가 신세 지고 있다는 사실에 무뎌지게 되었다.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 생겼고, 지각을 하거나 농땡이를 피울때도 있었다. 그때 선생님 마음은 어땠을까.  


언젠가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는 날이 점차 줄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학원 안 다녀도 매일 보러 올 거예요!"

그렇게 말했던 나는 그 해에는 네 번, 그다음 해에는 한 번, 그다음 해에는 선생님을 찾지 않았다. 매해 챙기고자 했던 스승의 날도 이제 카톡으로 띄엄띄엄 감사 인사를 전하게 되었다.


뜬 구름 잡기를 좋아하고 겁이 많던 나는 항상 선생님께 커서 람보르기니를 사준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기 일쑤였고, 선생님과 멀어질까 봐 두려워 했다. 그땐 선생님이 나를 잊을까 무서웠는데 지금은 내가 선생님을 잊게 될까 무섭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잊게 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학생 신분이라 돈이 없었고, 주머니에 있는 현금 만 원을 털어 아기 옷을 사드렸다.

결혼식장에 가니 축의금 5만 원을 내는 나와 동갑인 다른 제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언제쯤 선생님께 람보르기니, 아 아니 보답을 해드릴 수 있을까.


대학교 1학년 땐 손을 놓아서 학점이 엉망이었다. 그러나 2학년 2학기 때부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고 4학년 때는 6개의 과목 모두 A+를 받으며 처음으로 학과 1등을 해봤다. 그때 뭐라도 된 것 마냥 으쓱해져서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다행스럽게 그 기쁨을 가지고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갔고, 선생님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내겐 이렇다 할 만한 좋은 소식이 없었고, 얼마  선생님과 같은 교육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며 다시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환대해 주셨다. 그때 나는 머쓱하게 괜히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의 자랑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전하지 못했던 말도 있다.

"아직은 아니에요. 이제 자랑이 되어 볼까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첫 제자인 나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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