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에세이 고쳐쓰기

by 이은수

내 어릴 적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읽은 사람들은 아마 내가 불운하기만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물론 내가 겪은 일들은 남들이 그리 쉽게 겪을 일은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끄집어내 보면 꽤 재밌게 살아온 것 같다.


언니가 자주 아팠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보충수업도 전에 조퇴를 하는 날이 잦았다. 그때마다 언니는 초등학생인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여유롭게 누워있었다. 그때 항상 우리 자매는 '냉정과 열정사이'를 봤다. 보고 또 봤는데도 재밌었다. 스토리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진 그들의 먼 훗날 약속이 내가 머물던 몇 평 남짓 방 한 칸에서도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적인 울림이었다. 그 순간은 아직도 행복이 잔뜩 묻은 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밤이 되면 언니는 나랑 할머니를 안방으로 불러 모아 책을 읽어주었다.

- 괭이부리말 아이들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할머니는 일상에서도 종종 인물들의 이름을 말하곤 했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는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언니와 할머니 몰래 책을 몰래 꺼내어 본 적도 있다. 근데 언니가 읽어주는 것과 느낌이 달랐고 혼자서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해석을 못 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밤이 되면 할머니와 나, 언니가 안방에 모이고 야근을 한 아빠가 방으로 들어온다. 아, 한 사람이 빠졌다.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기 방을 좋아해서 안방에서 자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난 가족들이 한 방에서 오순도순 자는 모습을 기다려왔으므로 할아버지를 끌고 안방으로 왔다. 다 같이 잠을 자면 누구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언니도 언니의 방으로 사라진다. 나는 세 방을 옮겨 다니다가 그날 가장 편한 방에서 잠을 자곤 했다. 방과 방사이의 거실이 그리 넓지 않았음에도 왜 나는 그렇게 붙어 있고 싶었을까. 아마도 같이 있으면 지루하도록 행복해서가 아닌가 싶다.


우리 할아버지는 호탕한 성격이었다. 우리가 농사지은 호박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식업에 종사하는 어떤 분이 살 것처럼 말하다가 결국은 다른 곳에서 샀다. 그럴 수 있는 일인데 할아버지는 꽤나 속상했나 보다. 나는 종종 그 집에서 밥을 시켜 먹었는데 배달올 때마다 할아버지가 호박이야기를 꺼내서 곤욕을 치렀다. 한동안 부끄러움에 그 집 밥은 잘 시켜 먹지 못했다.

또, 매년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는데 4학년 때는 아바타스티커를 사느라 돈이 없어서 준비를 못했다. 불안 불안했는데, 역시나 할아버지는 온 동네방네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까지 소문을 내고 다녔다.

"야, 이은수 할아버지 카네이션 안 드렸냐?"

"어, 왜?"

"할아버지가 나한테까지 얘기하셔."

결국 할머니한테 돈을 빌려서 해드렸고 할아버지는 카네이션을 달고 당당하게 마을 산책을 나갔다. 그 모습은 4학년 꼬맹이였던 나에게도 귀엽게 비쳤다.


나름 뭐, 재밌었던 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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