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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y 20. 2021

<구의 증명>

소설 리뷰

  완전히 다른, ‘인간적’이라는 말의 정의가 지금과는 다르며 인류의 삶을 휘감고 있는 것이 돈이 아닌, 신인류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온전하게 애도할 수 있겠지. 그때의 누군가는 구와 담의 이야기를 오롯이 슬퍼하기만 하겠지. 구의 시간과 목숨을 값으로 매긴 세상에 대해. 그토록 하나가 되고 싶었던 둘의 이야기에 대해. 고작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평생을 싸워야 했던 구에 대해.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시간의 흐름이 일의 강도와 비례한다는 현실을, 구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여유를 가질 때야 비로소 잔잔히 흘러간다. 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균일한 속도 속에서 끝끝내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삶이다. 끊어내지 못한 가난의 굴레는 구의 곁에서 끝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구는 굴레 속에 갇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대관람차의 케빈 들처럼.

  구는 곧 담이고, 담은 곧 구였다.     



  “말이 되어 나와버리는 순간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말이 진심에서 가장 먼 것이라고”

  생각은 말이라는 통로로 전달된다. 하지만 그곳으로 전달되기 전에 심사를 거친다. 그 심사내용은 때때로 바뀐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내가 하는 말로 인해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불화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등의 이유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유 들은 통로를 막거나 아주 미세한 크기만큼의 공간을 열어두기도 한다. 그렇게 말은 본질을 잃어버리거나, 보류된다. 진심은 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남겨두는 것이다. 하지만 구와 담은 다르다. 구는 담이고, 담은 구이기에. 들을 과거조차 없이 모든 것을 함께 겪은 그들이기에. 구는 죽기 직전 담이 오길 바랐다. 담과 가까운 공기 안에서 죽길 바랐을 것이다. 구는 그 사실을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 담도 분명 그런 구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구는 담이 먼저 죽게 된다면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구였고, 담은 구를 조금씩 삼켜가게 된다. 구를 먹고 오랫동안 살아남아 자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볼 것이라고. 그 이후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담이 죽어야 구도 죽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죽을 것이라고. 담은 오래 살아서 구를 그 기간만큼 기억하고자 했다. 구를 먹으면서 구 역시 자신의 몸속에서 함께 살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둘은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지만,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다른 세계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닿을 수 없이 미끄러지는 두 세계 속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남길 수 있는 것은 기억뿐이고, 부둥켜안을 수 있는 것도 기억뿐이다. 구와 담의 과거가 남긴 것도 기억이었고, 현재와 미래가 남기게 될 것도 기억뿐이다.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이 얘기를 담에게 꼭 해주고 싶었는데 해주지도 못하고 나는 죽었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

  구는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살고 싶었던 이유가 담이라고 했다. 죽음을 맞이했지만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담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그 세계 속에는 담을 볼 수 없으니까. 구는 말했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고. 천 년토록 살아남아 담을 느끼고 싶다고. 구는 죽었지만 담을 기억한다. 담은 죽은 구를 먹는다. 기억 속에 구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먹고 있을 것이다. 구가 자신에게 남도록. 그 안에 구가 살도록. 그리고 운다. 기억이 파편이 되어 날아와 울고 있을 것이다. 날아 올 파편은 여전히 많고 담의 기다림 속에 남을 상처도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담은 기다린다. 상처마저도 버리지 않는다. 상처마저도 끌어안아야 구를 온전히 기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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