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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y 25. 2021

<악몽 수집가>

동화 리뷰

  잠에든 여인의 몸 위로 몽마가 짓누르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 있다. 덴마크의 화가 니콜라이 아빌고르의 작품 ‘악몽’이다. 각자가 그려 내는 악몽의 형상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의 형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악몽 수집가’가 형상화해 낸 악몽은 마치 니콜라이 아빌고르가 형상화한 ‘악몽’의 모습만큼이나 강렬했다. 악몽은 행복을 좀먹는다. 우리가 가진, 우리가 가질지 모를, 작은 행복들마저 삼켜 버린다. 우울의 늪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다가올 행복을 삼키고, 행복의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쌓여 있던 행복을 가져가 버린다.

 

  ‘악몽은 불안에서 비롯되는데, 왜 행복한 순간에도 불쑥 찾아오는가.’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문이 많다.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는 조금씩 불안이라는 감정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의 농도가 짙어질 때도, 옅어질 때도 악몽은 꿈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초대되지 않은 손님은 그렇게 우리의 꿈을 헤집고 나간다.

  악몽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악몽 수집가’를 통해 해답을 얻었다. 우리는 악몽으로부터 구제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여야 한다는 것을.     


1<나는 악몽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단다>

    42p “악몽은 꼭 술래가 없는 술래잡기 같다고.”

    악몽에 술래는 없지만, 꿈을 빼앗긴 채 형체가 없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음은 틀림없다. 내가 잡히면, 그 술래잡기는 끝이 나고. 악몽에 삼켜진 순간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는 것까지 똑같다. 역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술래가 되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술래의 자리는 비어 있고, 삼켜지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 쫓기는 자에서 맞서는 이가 되는 과정은 아플지 모른다. 그래도 악몽을 꾸는 많은 이들이 삼켜지지 않길 바란다.


2<꿈에서는 몽땅 울고 오너라>

    46p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도착하게 해주는 ‘시간을 뛰어넘는 문’, ‘현실에 기반한 악몽을 비현실적인 꿈으로 바꿔주는 시계’, ‘기억을 잊게 해주는 향수’, ‘진실을 비추는 손전등’, ‘꿈을 꾸지 않게 해주는 찻잎’

  수집가가 그간 악몽을 수집하게 되며 만난 특별한 물건들이다. 자신과 같이 악몽으로부터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


3<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요?>

    81p “그건 악몽이 아니었어. 삶이었지.”

  결혼하게 된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린 누군가가 있었다. 등에는 아이를 이고, 주방 도구들을 만지고, 걸레를 만지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누군가의 꿈이었다. 동시에 현실이었다. 수집가는 짙은 안쓰러움을 느꼈고, 그녀를 보고 생긴 애타는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돌아가신 수집가의 어머니였고, 수집가가 서 있는 방은 35년 전의 어머니가 살던 방이었다. 수집가의 어머니는 35년 전 그런 악몽을 머리에 이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녀에게 삶은 악몽이었고, 꿈은 매번 생생한 악몽을 재현해 주던 장치였다. 결국, 그건 악몽이 아니라 삶이었다.


4<나도 악몽으로부터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까?>

    103p “평범한 곳에서도 얼마든지 악몽은 찾아온단다.”

   수집가는 환희를 데리고 어떤 집으로 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집이다. 그때 환희는 어리둥절하며 묻는다. “그냥 평범한 집이네요?”라고. “평범한 곳에서도 얼마든지 악몽은 찾아온단다.” 수집가의 말처럼, 어느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도 악몽은 존재할 것이다. 평범한 삶 속에서 숨을 쉬고, 꽤 만족스러운 오늘을 보냈던 누군가에게도 악몽은 찾아올 수 있다.


5<한바탕 악몽이 지나간 뒤>

   120p “강아지는 깨워도 악몽을 이야기해줄 수 없겠는걸.”

   딸랑, 딸랑. 목에 달린 방울 소리와 앓는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이번엔 악몽을 꾸는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깨워도 악몽을 말하지 못한다. 병을 앓고 있어도, 혼자 있어서 외롭다고도.

소리 내어 단어로 내뱉지 못한다. 힘껏 짖어 보는 것. 그렇게 의사를 전달한다. 때로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슬플까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가슴이 시큰했다.     


  악몽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악몽에 지치지 않는 밤을 선물 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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