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 이야기

by 이은수

휘휘 바람 소리와 함께 눈발이 거세졌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을 때,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가는 비비의 뒷모습이 보였다.

언젠가 비비가 녹음했던 라디오 송출 시간을 놓쳐서 끄트머리 부분만 듣게 된 적 있다. 누군가 시간을 통째로 싹둑 잘라 놓기라도 한 듯이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비비의 끝인사가 지나가고, 고정 출연진이 한 번 더 마무리 멘트를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지루할 만큼 광고가 연이어졌다. 다음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에 멀거니 라디오 앞에 서서 전원을 껐다. 비비의 방송이 지나가면 비비가 나오지 않는 방송이 이어질 테니까.

비비가 지나간 후에도 언덕 위로는 하염없이 눈이 포개어졌다. 비비 앞으로 어떤 길이 이어질지, 비비 다음으로 저 길을 지날 사람은 누구일지, 알지 못한다. 나는 비비가 지난 눈 길을 딱 저기까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다. 눈 한 송이가 이리저리 흩날리다 내 얼굴 쪽으로 살포시 날아왔다. 이마께까지 와서도 떨어질 듯 말 듯하던 눈 한 송이가 속눈썹 위에 맺혔다. 물방울이 되어 턱 밑으로 흐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서 뜨거운 물방울이 한 번 더 뺨을 타고 흘렀다. 눈도 아닌 것이 눈인척하며 턱밑으로 떨어졌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톡 하고 터뜨리면 없어져버릴 방울. 방울이 터짐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내 눈물일지, 이 세상일지 몹시 궁금해졌다.

비비의 뒷모습이 지나가고 또 다른 비비의 뒷모습이 저 언덕을 넘어간다. 수차례 지나간다. 만난 지 한 달 된 비비가, 석 달 된 비비가, 일 년 된 비비가, 뒤통수로 우는 비비가, 뒤통수로 웃는 비비가, 뒤통수에서 잠깐 정면을 내보여주는 비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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