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이야기에서 둘 이야기

by 이은수

아동서적 출판사에서 이벤트로 받은 반려돌이 도착했다. SNS로 이름을 추천받았고, 심쿵이로 정했다. 쿵이라고 부르기도 좋고(물론 돌이라, 부를 일이 있을까 싶지만.) 요즘 모종의 이유로 계속 심장이 쿵쿵대서 내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 그렇게 정하기도 했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싶다가도 그렇다 치기에는 최근 내 기분이 너무 괜찮았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앞으로 심장이 쿵쿵댈 만큼, 설레고 좋은 일이 오려나보다 생각하고 넘겼다. 집에 돌이 하나 들어온 것뿐인데 이렇게나 기분이 좋다. 돌 말고도 내가 계속 직장에서 해내고 있다는 기분, 글 근육이 붙은 것 같은 기분, 꽤 보람찬 서른을 맞이한 것 같다는 기분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돌이 들어온 것 빼고는 다 내 힘으로 가져온 기분들. 이 들뜸을 이어가 올해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좋겠다.


평일에는 직장 동료들과 잘 지내고 주말에는 못 보던 사람들을 만난다. 요즘 직장 분위기는 평온하다. 그 평온함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밤비 선생님과 연두부 선생님과 내가 만든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그 분위기에 일조한 걸 자부하고 있다. 몽글몽글 동물의 숲 같은 분위기랄까. 그런 직장 분위기를 꿈꿔 왔는데, 꾸리고 나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게 가끔 실감 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게, 무탈하게 사이를 잘 이어가고 있다는 게 나를 참 기쁘게 한다.

언젠가 누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혼자 있는 것과 같이 있는 것 중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지. 물론 나도 혼자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지만, 웬만해선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같이 있는 데에 행복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단 한 번도 혼자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실제로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하고, 캄캄한 밤에 불을 꺼도 같이 자면 덜 무서울 테고, 밥을 같이 먹는 즐거움이라는 게 꽤 크니까. 그래서 예전에는 단짝 친구 만들기에 힘을 썼다. 나중에는 좀 더 얕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친하게 지내는 것을 더 원하긴 했지만.

얼마 전 동료가 남자 소개받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듣기로는 되게 좋은 사람 같았다. 재밌고, 나처럼 소설도 좋아하고. 나는 대답하기 민망하면, 헤헤 웃고 넘긴다. 그렇게 헤헤 웃으며 다른 말로 돌렸다. 누군가가 나를 자신의 좋은 사람과 연이 닿을 수 있도록 소개해 준다는 사실이 내심 기분은 좋았으나,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나는 소개 울렁증이 있다. 마지막으로 받은 소개가 십 년 전인데, 그때도 지인이 옆에서 말을 거들어주면 한마디를 겨우 했고, 단둘이 남겨지면 대화를 잘 이어가지 못했다. 만약 내가 소개를 받게 된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굉장히 크게 올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관계에서 소개를 받게 된 사람들 중 종국에 모두 잃게 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가만히 있다가 좋은 사람을 놓칠 수 있지만, 또 가만히 있어서 사람을 지키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 나름의 사람을 지키는 방어인 셈이다.

또, 나는 불편한 사람과 밥을 먹으면 숟가락을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린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물어본 적 있다. 너 밥 먹을 때 왜 그렇게 손을 떨어? 그때 나는 수전증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편한 친구 앞에만 가면 밥이 잘 먹히고, 손이 안 떨렸다. 둘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둘이 포개어져서 하나처럼 가뿐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둘을 좋아하는 것 같다.


돌 이야기에서 둘 이야기로 번졌다. 반려 돌과 잘 지내서 보기 좋은 둘이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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