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순례길

아오스타에서 로마까지

by 천영길
20250902_144811-1.png


via Francigena 1일차. Aosta to Chatillon


아오스타(Aosta)로 오기전에 나는 돌로미티(Dolomiti)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도시 Bolzano의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오르티세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사진으로 보았던 돌로미티의 아름다운 설경과 이제 겨울에서 봄으로 들어가는 초록색 평원을 트레킹하고 돌아왔다.


다음 날 나는 via Francigena출발을 위해 밀라노를 거쳐 Aosta로 이동했다. 오후 5시가 지나갈 무렵 여행자 안내소를 들러 순례자여권을 구입하고 주소를 확인하며 숙소를 찾아왔다.


아오스타(Aosta)는 스위스와 국경이 가깝고 알프스 자락의 계곡 마을이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마을이라 중심 거리에는 사람들이 매우 분주하게 지나다녔다. 이곳의 공립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시설도 매우 열악하다는 얘기를 들어 나는 부킹닷컴에서 찾아낸 개인이 운영한다는 숙소를 예약했었다. 내가 주소에 해당하는 숙소를 찾아 도착한곳은 4층 빌딩이었으며 출입문의 도어락에서 주인이 보내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무슨 비밀의 통로를 지나가듯 이곳에 다시 별도의 출입문이 있었고 또 한 번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이제 옥탑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야 배낭을 풀고 주인에게 왓츠앱으로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숙소를 예약했다는 것이 침대에 걸터앉고 서야 한숨이 나왔다.


5월의 Aosta하늘은 맑고 청명했으며 햇살이 무척 따가웠다. 로마로 가는 길 via Francigena 출발을 위해 숙소를 나와 출발점인 성당으로 들어갔다. 로마 베드로 성당까지 무사하게 탈이 없이 걷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순례길을 걷는 첫날은 항상 긴장을 하고 또 발걸음도 빨라지는데 이번에는 천천히 여유 있게 걷자고 다짐해 보았다. 사실 힘들 때는 무리하지 말고 방법을 바꾸기로 했으니까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해보았다.


어제 크리덴셜을 받은 여행자 안내소(tourism office)를 지나가며 문득 내년에도 순례길을 걷기위해 크리덴셜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아지며 체력이 떨어지고 걷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매년 걱정이 늘어갔다. 가끔 카미노 카페의 모임에서 뵙는 닉네임이 “로즈”이신 분을 생각해보았다. 그분은 80살의 연로한 나이에도 매년 프랑스길을 탈없이 즐겁게 걷고 오시기 때문에 나는 매번 생각을 바꿔야 할 처지가 되었다.


Aosta의 중심 거리는 이곳이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유명 브랜드 상품을 파는 상점들로 꽉 차 있었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좁은 도로 양쪽으로 가득했다.


순례길은 시내를 빠져나오고 주택들이 나란히 차지한 경사진 길을 지나갔다. 약간 높아진 길에 들어서자 도시의 풍경이 환히 바라보이고 공항의 활주로가 보였다. 주변에 계곡의 높은 산 정상과 하얀 구름들이 만년설로 쌓인 산 봉우리들을 감싸고 있었고 이곳이 계곡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듯 Aosta Valley는 내 앞에 들어왔다.


순례길은 이제 완전히 도시를 벗어나자 내 앞에 가끔씩 via Francigena 순례길 표식이 나타났다. 원주형 막대기에 붙어있는 스티커 표식이 약간은 빛이 바랬지만 그런대로 친밀감이 들기 시작했다. 산으로 나 있는 길에도 규모가 큰 전원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안을 들여다보며 지나갔다.


이 길은 좌우로 계속 휘어지는 경사진 고갯길 언덕이었다. 오를수록 점점 고도가 높아지며 시간이 갈수록 힘이 부치기 시작해서 길에서 쉬는 횟수가 많아졌다.


가이드북이나 앱에는 첫날 구간의 어려움을 평가하기를 도전(challenge)라고 적혀 있었다

중간 지점 Nus 마을에 들어왔다.

20250902_145203.png Nus 마을

이미 정오가 지나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구글 앱에서 찾은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갔다. 메뉴에 파스타가 있어서 그냥 제일 위에 적힌 것을 주문했다. 콜라만 있으면 왠만한 음식은 느끼하지 않게 느끼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이 주방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테이블로 가져왔다. 퓨전 음식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는데 내가 있는 동안 나이가 드신 동네 손님 부부가 들어왔다.


주인 부부는 점심 시간인 데도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내게 음식이 맛이 있는지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Chatillon에 들어와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오니까 조그만 성당의 부속 건물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이가 많으신 신부님이 직접 찾아오는 순례자를 안내를 하고 비용도 받았다. 그런데 모든 시설이 무척 열악하고 특히 샤워부스가 따로 없고 화장실 재래식 변기위에 발판을 두고 샤워를 해야 하는 특이한 체험을 해야 했다.


체크인 시간이 3시라고 해서 성당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아 호스피탈레노를 기다려야 했다. 그곳에는 아들과 함께 걷고 있는 미국인 조와 20대 아들 찰리... 특히 "조"는 20년전에 광주의 미공군부대에서 근무했는데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했다고 했다. 또 다른 영국인 30대 마이클은 켄터베리에서 출발했고 직장을 은퇴한 부부는 독일 하노버에서 기차로 이동하여 Aosta에 도착했고 그는 폭스바겐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숙소는 아주 오래된 건물로 모든 시설이 낡고 불편했다. 오로지 침대만 제공되었다. 샤워는 화장실 변기위에 목재 받침판을 얹어 사용하였다.


연로하신 호스피탈레노의 스테파노 신부는 크리덴샬에 스템프를 찍어주면서 손님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 출입문 열쇠를 주면서 다음날 떠날 때 기부금은 꼭 유로를 넣어라, 한국돈은 절대 안된다고 얘기해서 서로 웃고 말았다.

20250902_145228.png 숙소의 화장실과 샤워기


via Francigena 2일차 Verres


가이드북에는 오늘 도착지인 Verres까지 18.1km, 5시간 10분 소요. 난이도는 ‘challenge’라고 나와 있었다. 무거운 배낭과 경사진 산속 길. 가끔은 세차게 흘러내리는 폭포 소리와 끊임없이 마주치는 높은 산봉우리와 설산들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단순히 목적기까지 거리는 20km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출발했지만 Verres에 들어갈 무렵 나는 너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숙소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신부님이 아침 7시 미사를 참석하고 떠나라고 얘기를 해서 망설이다 성당으로 들어갔다. 노년의 신부님 세 분이 오래된 의자에 앉아 계셨다. 어제 숙소 체크인을 담당하셨던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은퇴하신 두 분의 신부님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시고 연로하신 복사들이 미사를 도왔다.


미사를 드리고 인근 카페로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미리 사논 빵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시간을 지체하여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카페 옆 골목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나왔다. 그리고 길을 건너 건너편의 폭이 좁은 구불구불한 경사를 오르자 다시 찻길이 나왔다. 이곳이 산악지역이라 그런지 대부분 산 허리에 주택들이 자리잡고 도로가 차곡차곡 지나가는 모양새였다. 단지 맨 아래 도로는 스위스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였으며 대부분 산허리를 지나가는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드디어 숲길로 들어섰다. 깊은 산속에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있었고 산악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주변은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물줄기가 폭포를 만들고 쉼을 제공하는 벤치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Aosta 시에서 조성한 트레킹 루트에 대한 안내보드판이 구간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고 내가 걸어가고 있는 via Francigena 표식과 3번 루트와 103번 루트의 화살표도 보였다.


평지에서 경사를 오르는 길로 들어서면 금세 숨이 많이 차올라 여러 번 배낭을 내려놓고 쉼을 반복해야 했다. 걷는 속도는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순례길 방향 표시대에 적힌 남은 시간을 보며 왜 남은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지 원망스러웠다.


오후 1시쯤되어 순례길은 이제 아래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첫번째 Montjovet 마을의 식당에 들어갔다. 이탈리어를 모르니까 옆 테이블 부부가 먹는 메뉴를 주문해서 먹었다.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믹스타(Mixsta) 셀러드와 콜라로 점심을 먹고 옆에 식료품점에서 생수 1.5리터를 사서 물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내가 걸어야 할 루트를 만난다. 아오스타벨리를 따라 낮은 곳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도로이고 주택들은 여건상 경사진 산 비탈들에 대부분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크게 두번의 높은 산악 지역 숲속 길을 저질 체력으로 오르내리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 어제 같은 방에서 지낸 독일인 은퇴부부는 산악 지역이 끝나는 Ivrea로 가서 다시 시작한다고 버스 시간을 알아보러 버스정류장에 다녀왔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경사를 오르는 산길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어깨가 아파 물주머니에 들어있는 물. 3분의 2를 버리고 말았다. 오후 4시를 넘자 경사를 따라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해서 자동차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걷기 시작해서 수도원 같은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호스피탈레노가 나 혼자 지낸다고 알려주며 도네이션이라고 했다. 주방 시설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깨끗했다.

20251023_162911.png


via Francigena 3일차 Pont Saint Martin


Aosta부터 이틀동안 주로 경사진 산길을 오르내리다 Verres 부터는 고도의 변화가 거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수도원으로 사용한 듯한 숙소에는 다른 예약자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내가 전체를 빌린 듯 아주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침 식사는 아오스타 빤데리아(Panderia) 가게에서 구입한 이름은 잘 모르는 네모난 빵을 종합 과일이 들어있는 주스와 함께 먹고 일어섰다. 빵을 담았던 종이봉지와 플라스틱 병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다. 벽면에 붙여 놓은 주의사항을 발견했다. ‘모든 쓰레기는 남기지 말고 가져가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기부제로 운영하는 종교시설 숙소는 관리자가 혼자 모든 일을 해야 하니까 이용자들이 시설 운영에 일을 덜어주어야 만했다.


어깨에 걸려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파른 골목 계단을 내려와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나왔다. 이미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다녔다. 나는 정신줄을 꽉 잡은 채 긴장 모드로 걸어갔다. 이미 이탈리아 사람들 운전이 거칠구나 생각했지만 좁은 보도블록까지 신경이 쓰였다.


마침 길기에 커다란 쓰레기 통이 있어서 내가 들고 온 쓰레기를 재빨리 안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 Via Francigena 공식 앱을 열어 근처를 지나가는 루트를 찾아 재빨리 들어섰다.


낮은 높이의 아파트와 학교가 있는 곳을 지나가다 마침 길가에 아담한 카페가 보여 들어갔다. 모닝 커피를 마시고 있는 노년의 여자가 갑작스러운 동양인의 방문에 놀란듯 쳐다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주인 여자에게 카페 아메리카노와 진열장에 있는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나는 여유로운 사람처럼 카페 밖의 원형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기다렸다. 이탈리아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신다. 그래도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동일한 맛으로 정말 괜찮았다. 주인이 커피와 함께 유리볼에 요구르트를 부어왔다. 그리고 섞어 먹으라고 필수 영양소인 여러 견과류를 가져와 섞어 먹으라고 했다. 아마 평소 본인이 먹는 방식을 서비스하는 그런 센스 만점인 주인이 참 고마웠다.


Verres 외곽지역에 들어서자 그때부터 아오스타벨리를 지나가는 고속도로에는 이탈리아 북부를 지나 유럽 전역으로 가는 긴 트레일러와 일반 자동차들이 줄을 이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오른쪽은 도라발테아 강물이 빠르게 흘러가며 밸리를 28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버티고 있었다.


아침이라 약간 쌀쌀하고 기온은 1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점점 기온도 올라가 따뜻하고 화창했다. 이곳은 아오스타 밸리에서 내려온 물들이 한곳으로 모여 흘러가느라 수량도 엄청나고 속도도 빠르며 그러나 강물의 색깔은 화강암을 거쳐 내려오느라 회색 빛을 띄었다.


한 시간 좀 지나 Arnad 마을을 지나가다 처음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마을은 더욱 조용했다. 가끔 차가 나타나서 천천히 지나갔다. 다음 마을로 Hone라는곳으로 들어갔다. 제법 사람들이 눈에 띄었으나 순례자들을 위한 아침에 열어 논 카페는 없었다. 바로 옆 산에 높은 건물의 Forte di Bard라는 성이 보였고 가까이 다가가자 가파른 성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탑승요금이 24유로이고 비싸다는 생각에 탑승은 포기했다.



이곳은 Bard 성 때문에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치형 게이트가 있고 오래된 석 축 건물들 사이로 상점들이 많았으나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가게는 없었다.


마침내 다음 마을 Donnas 로 들어섰다. 좁은 흙길에는 물론 나무가 없어서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걸어갔다.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식당들이 나타났다. 조금 더 가면 목적지 Pont saint martin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까 하고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한 식당 주차장에 자동차들이 꽉 들어차 있어 맛집이 틀림없다 생각하고 들어 갔더니 넓은 실내 테이블에 남은 좌석이 없었다. 입구에 대기자들이 보였고 12시 30분에 오라고 해서 기다려야 했다. 식당 이름에 Cave 단어가 들어가는데 정말 동굴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종업원들이 바빠 구글 번역기를 들이댈 수가 없었다.


메뉴를 말하라고 하는데 알 수가 없어 옆 좌석 손님들 먹는 거 달라고 손짓했더니 닭고기 튀김이 나왔다. 식사를 하고 자동차길을 따라 또 한시간을 걸어 마침내 Pont saint martin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숙소를 찾아 마을 끝까지 걸어왔다. 산길을 걷지 않고 자동차 길을 따라 걸으면 다가오는 자동차에 상당히 신경이 쓰이느라 오히려 더 피곤했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마을의 주택 담벼락에는 화가가 정성스레 그린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20251023_164257.png

오늘 도착 예정인 Pont saint martin 숙소는 구글 맵을 열어 확인해보니 도시가 끝나는 지점에 있었다. 도로를 따라 한참 걸어가는데 자동차, 오토바이들이 쌩쌩 지나가느라 굉장히 긴장을 해야 했다. 호텔 간판이 보여 다가갔더니 1층은 Bar가 있고 2층부터 숙소가 있었는데 아직 문이 닫혀 있어서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남자 주인이 급히 차를 가지고 달려와서 열쇠를 주며 내일 아침은 바에서 먹으라고 했다.


via Francigena D+4일차 Ivrea


출발 준비를 하고 바가 있는 1층으로 내려왔다. 조식 포함이라 바에서 아침식사를 주는데 커피. 요구르트. 빵.비스킷. 쨈. 구운 크라상이 제공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비아프라체치나 공식 앱을 열어 오늘 루트를 점검하다 숙소 근처에서 출발하는 대체 루트가 있는 것을 알았다. 오늘 원래 스테이지는 숙소 한참 전에 출발해 경사진 산길로 들어서는데 대체루트는 잠깐이지만 산 아래 마을을 지나 Carema에서 본래의 길로 들어서면 되었다. 약 800m가 짧다고 되어있었다.


숙소 건너편 골목에 세워져 있는 via Francigena 표지판을 만나서 가볍게 출발했다. 어제보다 아침 공기는 약간 차가웠으나 걷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Conard를 지나 Carema 마을을 9시반쯤 지나갔다. 도중에 순례자 형상을 그려 놓은 보드가 레스토랑 입구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모닝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지만 주인은 12시에 오픈이라고 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그런대로 주택들이 많았다. 곳곳에 크게 자라난 풀들을 제거하느라 제초기 돌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이곳을 지나면 이제 순례길은 근처 도라(Dora)강을 잠깐 따라가야 한다. 강변을 따라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찻길을 따라가며 걷는 내내 강물위로 비치는 반짝임과 회색 구름이 걸친 산봉우리를 보며 걸어갔다.

20251023_164424.png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적막을 깨트리고 들려왔다. 아마도 10시를 알리는 종소리인데 들을 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종소리는 소음 규제 때문에 들을 수 없다.


Ivrea가 가까워지면서 제법 도시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큰 호수가 두 개 있으며 걷는 중에 그 중 하나를 근처에서 볼 수 있었다. Torredaniele를 지나 montestruto를 지나면 호숫가 근처를 지나간다. 그곳에는 호수가 바라보이는 정원을 갖춘 커다란 주택들도 계속 나타났다.


오늘 숙소는 Ivrea 시내 중심지를 지나 다양한 건물들이 바라보이는 거리를 걷다가 도라이브레아 강물이 넘실대는 다리를 건너면 강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강변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단체로 찾아온 사람들이 테이블위에 먹을 것을 올려놓고 행사를 하고 있었다.


숙소는 이브레아 카누클럽에서 일반인들에게 개방을 하여 운영하는 곳이라 넓고 깨끗했다.



via Francigena 5일차 Viverone


머핀 하나를 오렌지 주스와 먹고 카누클럽 숙소를 나와 Dora Baltea강 다리를 건너갔다. 주말이라 외곽도로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아직 뜸하다. 시내로 들어가자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늘어나며 바쁘게 걷는 사람들과 시내 공원에 할 일없이 어슬렁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누가 옆에 따라오며 뭐라고 얘기를 해서 잠깐 들어봤더니 페레그레뇨냐고 묻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목에 차고 있는 신분증 같은 것을 돌려서 보여주며 자기가 쓰고 있는 모자에도 Via Francigena 라고 적혀 있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요지는 순례길에 대해 설명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들을 필요가 없어서 손사례를 치며 무시하고 그냥 걸어가버렸다. 그가 뒤에서 뭐라고 외쳤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이럴 때는 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시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벌써 땀이 나서 조용한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셔야겠다 고 생각했다. 눈에 자주 띄었던 카페가 보이질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열러 있는 카페에는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렸다. 조금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서 차분하게 차 한잔 마시고 싶어서 조금만 더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주택들이 몰려 있는 동네로 들어가면서는 카페는 나타나지 않았다.


첫번째 마을 Burolo에서 잠시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면서 하나 남은 납작복숭아를 먹었더니 갈증이 금방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Bolengo로 가는 시골의 좁은 도로에 자동차와 끊임없이 굉음소리를 내며 내 달리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심적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이곳에는 또 열을 맞춰 조성한 쭉쭉 곧게 자란 플라타너스 나무 조림지역이 넓게 있었다. 비포장 도로 흙 길은 평편해서 걷기에 좋았지만 곳곳에 빗물이 고인 웅덩이들에 생긴 새끼 모기들이 날라오며 일제히 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Blengo는 역사가 오래된 마을인지 골목을 따라 건물과 주택들이 있었으며 건물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들이 있어서 예전에는 꽤 번창했던 마을로 짐작되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넓은 밀밭이 바라보였다 그 사이로 나와있는 길을 두고 터벅터벅 앞만보고 걸어가는데 자동차가 멈추고 여자분이 내리며 손에 딸기가 담긴 박스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몇 개 집으라고 영어로 말했다. 아마 내 모습이 배낭을 메고 힘없이 걸어오니 무어라도 주고 싶은 생각이 난 듯하였다. 순례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푸는 천사가 이 곳에도 있었음을 생각하니 나는 더 자신을 얻은 듯했다.

20251023_164613.png

인정이 후한 마을을 지나고 계속 언덕을 오르내리다 Piverone에 들어갔다. 마을 중심에 자치센터 건물이 있는 것을 보니까 마을 규모 커 보였다.


오늘 목적지 Viverone에는 큰 호수가 있어서 포도를 키우는 곳이 많았다.

20251023_164840.png


Viverone은 호수가 가까이 있는 마을이다. 어제 이곳에 들어오는 순례길에서 바라본 Viverone 호수에는 조그만 배들이 호수위에 움직이고 선착장에는 조그만 요트들도 보이며 무척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순례길은 마을 중심으로 나 있고 점차 경사가 있는 골목을 지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 얘기를 하면 사실 예약한 숙소를 구글 맵으로 확인하여 찾아가는 동안에도 몇 번 쉬었다 가야 할 정도로 계단과 경사가 많은 동네였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찾아간 숙소는 예약할 때 앞에 B&B가 붙어있어서 시설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잘못 찾아온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숙소의 나무 대문이 잠겨 있어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여자가 뭐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려 다시 전화를 했다. 이탈리아어로 얘기를 해서 무조건 "레세르바" 라고 했더니 다시 남자가 전화에 대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는 대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며 바닥에 앉아있었다. 10분쯤 지나 주인 여자가 차를 가지고 나타나서 문을 열어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오래된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며 소리를 냈다. 이층에 식당과 주방 그리고 옆방이 침실이었다. 비용을 치르자 주인을 차를 가지고 돌아가고 나는 문득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간편 식 북어 해장국을 꺼내 주방으로 갔다. 찬장에서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 불을 켜기 위해 손잡이를 돌렸지만 딸깍 소리만 날뿐 불이 점화가 안되었다. 그러다 근처에 불을 붙이는 토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불을 붙였다. 된장과 북어건데기와 약간의 빨간 고추가 들어있는 한국의 진한 맛이 속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숙소를 찾아올 때 길가에 세워둔 식당 간판이 생각났다.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골목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시야가 트이고 호수가 바라보이는 전망이 좋은 장소에 고급스러운 식당이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예약을 했는지 물어와 아직 못했다고 하니까 무슨 장부를 들여다보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며 구석진 테이블로 안내했다. 주말이라 손님들 대부분이 가족끼리 식사중이었다. 식당 컨셉은 호수를 바라보며 토스카나 지역 와인을 곁들이며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나는 두 잔이 나오는 작은 병 와인과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로 식사를 했다. 까미노 순례자 형편에 사치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대신 오랜만에 마신 와인 때문에 밤새 일어나지 않고 잠을 잘 잤다.



via Francigena 6일차 Santhia



주인이 어제 아침 식사라고 알려준 소형 우유 한 개와 주스 그리고 비스킷을 가져와 내가 가지고 있는 머핀 하나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탁에 놓인 커피병을 들여다보다 출발전에 한잔 마시고 싶어 찬장에서 작은 냄비를 꺼냈다. 물론 커피를 내리는 포트가 있었지만 사용방법을 몰라 그냥 작은 크기의 냄비를 꺼내 수도물을 담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속이 검게 변한 냄비가 비위생적 일거라고 생각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물이 끓고 있는 동안 커피병의 라벨을 번역기를 통해 해석을 해보았지만 이해가 안 되어 일단 끓인 물을 머그컵에 붓고 분말 커피 한 스푼을 넣어 스푼으로 휘저어 마셔보았다. 잘 녹지 않았는지 커피 분말이 혀바닥에 느껴졌다. 이 커피가루는 포트에 뜨거운 물을 부어 서서히 커피 분말을 녹여 내려 마시는 커피임에 분명했다. 아쉽게도 모닝 커피의 도전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무언가 섭섭함을 느끼며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열심히 올라왔던 골목을 내려가다 via Francigena 앱을 열고 까미노 루트를 확인했다. 지도에는 언덕을 내려가 마을 중심까지 다시 가야 했다. 그래서 지도에서 가리켜주는 길을 무시하고 지도를 확대해서 까미노 루트와 만나는 최단거리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그러면 결국 루트와 만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오늘 까미노 루트는 대체적으로 평탄한데 대부분 자동차들이 다니는 길을 걸어가야 했다. Viverone 과 인접한 Roppolo에서 까미노 루트 안내판을 만났는데 공식 루트길과 대체길을 안내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마을을 지나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왜냐면 변화가 없는 무료한 산길보다 마을 구경도하고 가끔 신기한 소품들을 집 주변에 놓아두어 구경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목장이 있는 곳을 지나갔다. 이제 소들이 풀어놓은 분변 냄새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 진지 오래되었다.

20251023_165107.png

출발한지 두 시간 지났을 때 건물들이 많아 보이는 Cavaglia에 들어갔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보여 들어갔더니 의외로 손님이 없었다. 평소처럼 카페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미지근한 커피를 가져왔다. 아침에 남은 머핀을 꺼내 커피와 같이 먹고 카카오톡을 열어 아내와 통화를 했다. 매일 오전에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 의무 사항처럼 여겨졌다.


날씨가 금방 더워져서 윗옷을 벗어 배낭위에 걸쳐 메고 걸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나처럼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주로 반대방향에서 배낭을 메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자주 나타났다. 나는 "짜오(Ciao)" 하고 인사를 하자 가끔 나에게 "부엔카미노"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Cavaglia를 떠나 가끔은 넓은 밀밭과 옥수수 밭을 지나다 3시간 가까이 지나자 Santhia 마을이 보였다.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마을 느낌이 들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식당과 바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아 지나가는 여자분께 레스토랑을 알려달라고 물었더니 그가 친절하게 열어 논 식당이 있다며 그곳까지 같이 찾아가 주었다. 내가 고마워서 몇 번이고 “무차스 그라시아스”라고 외쳐 댔다.



via Francigena 7일차 Vercelli


오늘 까미노는 본의 아니게 역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끔 인생도 뒤로 돌아봐야 하는 것처럼. 사실 어제 santhia 숙소에 체크인을 할 때 호스피탈레노 Mr. Marino가 친절하게 여권에 있는 생년월일을 장부에 적고나서 내일 구간이 28km인데 걷기 힘드니 아침에 기차를 타고 8km 떨어진 san germano에 내려 Vercelli까지 걸어가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하며 지도를 보여주고 설명을 했다. 동시에 기차표도 "TrenIt"앱에서 예약했다.


그의 안내대로 나는 역으로 가서 아침 8시16분 열차에 올라탔는데 5분후 san germano역에 정차하지 않고 목적지 Vercelli까지 가버렸다. 오후에 와야 할 vercelli를 벌써 왔으니 고민하다 문득 san germano까지 역방향으로 걸어가 그곳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일단 Vercelli 역 앞에서 출발하여 앱을 켜고 via Francigena 루트를 만나러 갔다. Vercelli는 큰 도시여서 시내를 벗어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30분쯤 지나자 인도가 없어지고 아예 자동차 도로가 나타났다. 역방향으로 가는 via Francigena 표지는 도통 보이질 않아 휴대폰 앱의 GPS 커서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서 무작정 걸어갔다.


자동차들은 Torino 방향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나는 도로의 갓길을 따라 한참 걸어갔다. 그러더니 Vercelli를 출발하여 한 시간 정도 지나면서 순례길은 이제 농로와 수량이 풍부한 농촌 지역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분홍색 볍씨를 논에 뿌리고 물을 채워 넣어 시간이 지나면 싹이 트고 그러면 농지에서 물을 빼 주면 벼가 자라는 순서 같았다. 농지들은 이제 물이 채워져 있거나 어떤 논은 물이 없고 초록색 잎이 벌써 나와 있는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지금이 농부들에게는 한창 바쁜 철인지 농사를 준비하는 트랙터들이 여기저기 일을 하고 있었다.

농촌의 드넓은 들녘은 시작되고 걸어야 할 농로에는 한줌의 그림자도 없는 길이었다. 그곳은 햇볕으로 달아올랐고 도무지 끝나지 않은 길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오늘 루트는 종일 평탄한 시골길이며 농촌 지역의 농로를 걷는다고 되어있었는데 지금 실감나게 체험하며 걸었다. 그런데 오늘 농로를 걸어가며 벼인지 밀인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넓은 논에 농사짓는 과정을 다 보는 듯했다. 농부들이 트랙터로 땅을 평탄화하고 씨를 뿌린 다음 물을 채우고 이후에 물속에서 싹이 올라오면 다시 물을 빼 주고 나서 초록색 잎이 올라온 광경이 모두 걸으며 다 확인이 되었다.

20251023_165300.png


두 시간쯤 지나 Montonero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 의외로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는 메모지에 이름이 적혀 있어서 오는 예약자가 많은 거 같았다. 주인이 12시30분부터 주문을 받는다고 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는 점심 식사는 포기하고 얼음이 들어간 콜라 한잔으로 이를 대신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농촌길에는 마을도 없었고 온종일 뙤약볕을 온몸으로 다 받으며 걸어야 했다. 오후 2시가 넘어 San Germano에 들어갔다. Vercelli에서 8시50분 출발하여 5시간만에 기차 타고 가야 할 역사에 왔다. 이곳에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역사는 폐쇄되어 흡사 창고 같았다. 플랫폼으로 가보니까 작은 전광판에 16시21분 Vercelli 가는 기차가 운행한다고 나와있었다. 나는 Rome2Rio 앱으로 예약을 했다. 승차 시간이 많이 남아 마을 구경을 하기위해 거리로 걸어 나왔다. 거리를 지나가다 다가오는 여학생에게 식당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까 직접 안내를 해주겠다고 해서 함께 걸어갔다. 자신이 Torino 대학생인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물어봐서 "코리아" 라고 했더니 한국 드라마 많이 봤다고 했다.


식당에서 간단하게 파스타를 먹다 조금전에 예약한 Rome2RIo앱을 열어보니 16시21분 기차가 취소되었다고 나타났다. 그러면 다음 기차는 2시간이나 지나 18시30분이라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 곧 도착하는 기차를 타고 일단 아침에 출발했던 도시 Santhia로 돌아가 그곳에서 Vercelli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왜냐면 Santhia역에서 17시53분 밀라노행 기차를 타고 가다 Vercelli에서 내리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열차도 24분이나 지연되어 역사에 들어오자 그동안 취소된 열차 손님들이 우루루 올라타며 객차내에는 온통 소란스럽고 북적거렸다.


그렇게 오늘 까미노는 끝이 났다. Vercelli 숙소의 호스피탈레노가 챙겨주는 파스타와 화이트와인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너무 피곤해서 금방 잠들어 버렸다.



via Francigena 8일차 Nicorvo


비가 내리는 아침. 숙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를 했다. 빵. 주스. 커피가 전부이다. 어제 내 옆 침대에는 왼쪽 다리를 수술하여 제대로 걷지 못하는 프랑스인 남자가 있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Via Francigena 길을 따라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즉 걷지는 못하지만 간접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늘 구간은 25km 거리를 걸어야 한다. 비를 맞고 계속 걸을 수 없어 Robbio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니꼬르보(Nicorvo)에는 걸어서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먼저 숙소를 빠져나와 우산을 쓰고 근처 역사 플랫폼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딱 두 칸짜리 전동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역을 짧게 운행하는 열차 같았다. 기차는 10분만에 Robbio역에 도착했다. 나는 지도를 보며 순례길을 찾아갔다.


로비오(Robbio) 주택지를 지나가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터를 만났다. 오늘이 장날인지 일렬로 자리한 상품 매대 앞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시골 장날은 분주하고 구경거리도 많아 한바퀴 돌아보고 가기 위해 장터로 들어갔다.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동양인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장사꾼도 있었다. 처음 보이는 잡화상에서 충전 어댑터(한국제품이 코가 커서 잘 안들 어감)를 사고 다음 과일 좌판에서 납작 복숭아와 사과 한 개를 샀다. 그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큰 카페로 들어가서 커피와 크림 빵을 아침 보충용으로 먹었다. 카페에는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를 떠는 여성들, 동네 남자들도 모여서 연신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었다.

20251023_165426.png

순례길은 어제와 똑같이 들판을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길에는 가로수가 없어서 조금씩 흩날리는 가랑비를 바로 맞으며 걸어갔다. 농로 같은 길이 끝나고 이제 자동차 도로에 들어섰다. 지나가는 차들이 뜸해서 나도 긴장을 풀고 걸었다. 주변이 조용해서 휴대폰을 꺼내 CBS 방송을 켜서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게 걸었다. 문득 이런 체험이 이곳을 걸어야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나는 홀로 딴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via Francigena 방향표지판에 Roma라고 적힌 표지판을 처음 보았다.

20251023_165541.png

12시가 넘어서 노꼬르보(Nocorvo) 마을 표지판이 나타났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고 주민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이 구간이 거리가 꽤 길어 적당히 두 구간으로 쪼개느라 머물게 된 마을이다. 숙소 예약을 할 때 답장 메일에 이곳은 숙소에 키친은 있으나 상점은 없고 카페가 하나 있다고 했다. 마을로 들어갔다. 성당 종탑이 보이는 곳에 숙소가 있어 찾아갔더니 문 앞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물론 예약 메일에 도착하면 전화를 해달라고 했었다. 순례길에서 작은 마을 숙소들은 주인이나 호스피탈레노가 모두 거주하고 있지는 않는다.


숙소 호스피탈레노한테 전화를 했더니 조금후에 와서 문을 열어주며 다시 일하러 가니 내일 아침에 나갈 땐 키는 원래 자리에 두고 비용은 “도네이션”이라고 했다. 이곳 성당에서 via Francigena 순례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조금 일찍 숙소에 도착하니 모처럼 여유가 생겨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면도를 했다. 한결 얼굴이 깨끗해진 거 같아 기분도 상쾌했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며 건물 창밖으로 빗물이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방에 혼자 있으니까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옷을 입고 호스피탈레노가 얘기한 카페테리아를 찾아갔다. 노년의 남자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 구글 번역기로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손으로 적은 메뉴판을 가져와 하나씩 설명을 했다. 내가 파스타라고 적힌 것을 가리키며 달라고 했다. 그러자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냉동 파스타 4개를 가져와 골라 달라고 했다. 사실 파스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감자가 들어가는 파스타를 선택했다. 주인은 전자 레인지에 파스타를 넣고 해동이 되자 콜라와 함께 가져왔다. 그래도 나는 파스타를 맛은 무시한 채 콜라와 함께 끝까지 모두 먹었다.


순례길 8일차에 봄비를 맞으며 걸어본 하루였다.


via Francigena 9 일차 Garlasco


새벽까지 빗소리가 들렸다. 옆 건물인지 바람에 문짝이 부딪히는 소리가 자주 들려 아래층으로 내려가 어제 밤에 사용한 키친 창문이 열렸나 확인하고 왔더니 잠이 달아나버렸다. 네이버 뉴스 다 보고 유튜브로 박인희. 유익종. 어니언스 명곡 모음집을 듣다 잠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이 내려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날씨 예보를 열어보니 다행히 비 소식이 없어졌다. 그럼 오늘은 힘차게 걸어보자 생각하고 어제 카페에서 산 빵과 남은 주스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숙소 바로 앞에 via Francigena 방향표지판이 있다. 전형적인 시골 도로에 들어서고 편도 1차선을 걸어갔다.

20251023_165655.png

그런데 의외로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다녀 나는 길 끝에 바짝 붙어 걸어가야 했다 자동차들도 경주하듯이 커브길을 휙휙 지나갔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우측 농로로 들어서자 이제 물기가 많은 풀 사이를 지나가며 바지와 신발이 젖기 시작했다. 농로는 Madinna del Campo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빨리 걸어 나오느라 1시간만에 4km를 걸었다.


마을에는 낡은 벤치가 있어서 신발끈을 풀고 어제 Robbio 장터에서 산 사과를 먹었다. 마을을 지나갈 때 이곳에서 로마까지 거리를 안내하는 그림을 보았다.

20251023_165831.png

이제 Mortara까지 3km를 더 가면 큰 도시라서 커피를 마실 수가 있었다. 정말 나도 모르게 부지런히 걸어 어느새 Mortara역 지하 보도를 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근처에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역사를 들락거렸다.

20251023_165946.png

카페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길 밖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열심히 걷고 마시는 커피가 피로를 줄여주는 거 같았다. 이제 14.5km 떨어진 Tromello를 향해 출발했다. 넓은 들녘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벼농사가 한창이었다. 이탈리아의 곡창지대인 이곳은 하루 종일 걸어도 그냥 그대로 내가 멈춰 있는듯 변화가 없었다.


중간에 Remondo라는 마을을 지나가며 기찻길을 보았다.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철로는 한적했다. 계속 따라가면 아마도 제노바로 들어갈 것이다.

20251023_170059.png
20251023_170154.png

Tromello 로 들어가는 한적한 길 주택 앞에 밴 한 대가 있었다. 차량에 Sellmart라는 문구를 보아 식료품을 운반하는 차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남자가 나에게 물 마시는 흉내를 내면서 뭐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나에게 물 한 병 줄까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가 차량에서 생수 한 병을 가져오더니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부엔 까미노” 하길래 감사하다고 하며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20251023_170300.png


via Francigena 10일차 Pavia


오늘은 티시노(Ticino)강을 따라 걷는 날이다. 어제 묵었던 Garlasco 숙소는 지자체가 관리한다. 이멜로 예약을 신청했는데 왓츠앱 동영상으로 연락이 와서 도착하면 대문 박스에 까만 통이 있고 열면 4개의 다이얼이 있다. 비밀번호를 돌려서 맞추고 방 열쇠를 가져간다고 했다.


그런데 건물에 도착해보니 철문은 열러 있고 안쪽으로 도서관과 3층 건물이 있어서 먼저 도서관으로 들어가니까 사서가 키를 주면서 3층에 순례자 숙소가 있으니 사용하고 가라고 했다. 그러니까 호스피탈레노가 오질 않고 지내는 방법을 앱 문자로 알려만 준다. 방으로 들어와보니 사용한 베드커버를 치우지도 않고 베개는 커버가 없어서 때가 묻었고 실내등은 계속 깜박거리다 들어왔다. 식탁 테이블위에 스탬프와 기부함이 있고 방명록도 있었다.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Conad라는 수퍼마켓이 있어서 먹거리를 사기위해 들어갔다. 그곳에서 야채볶음밥. 올리브오일로 볶은 문어 그리고 와인 350mm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혼자 먹는 문어요리에 와인을 마시면서 야채볶음밥까지 제대로 저녁 식사를 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대도시 파비아로 가는 날이다. 그런데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를 빼고 하루 종일 비 예보가 있었는데 우려한대로 새벽부터 비가 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식사를 일찍 하고 비가 멈추는 7시쯤 출발해서 7km떨어진 Gropello Cairoli에서 열차를 타고 Pavia로 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마을의 오래된 도로에는 돌을 사용하여 만든 길이 많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시골길을 걸어가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다시 세차게 내리기를 반복했다. 자동차들이 돌을 깔아 만들어진 길을 덜컹거리며 지나다녔다.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가이드북에서 알려준 운하를 만나서 잘 조성된 옆길을 따라 걸어갔다. 예전에 르퓌길에서 만났던 미디운하(Canal du Midi)가 생각났다. 그때도 운하 길이가 길어 이틀 동안을 내가 물위를 걸어가듯 운하는 햇볕에 투영되었던 기억이 났다. 운하폭은 넓지 않아 물살은 빠른 편인데 중간에 물을 회전시켜서 내려 보내는 시설이 있었다.

20251023_170425.png

이곳을 지나자 빗방울이 더 심하게 떨어지기 시작해서 우비대신 우산을 꺼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얼마후에 gropello Cairoli 마을이 보이면서 이제 좀 안심이 되었다. 구글맵을 열어 위치를 확인하고 기차 도착 시간을 확인했다. 시골역에는 역무원이 없으므로 이탈리아 철도앱에서 티켓을 구매해야 했다. 결재는 Travelwallet으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Pavia에 도착했다. 대도시라서 역을 나서자 주변에는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사실 나한테는 스틱이 들려 있어서 그런지 지금껏 별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Pavia 신작로를 직선으로 걸어가다 규모가 클래식한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갔다.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일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크라상과 아메리카노를 받아 창가 테이블로 왔다. 배낭을 메고 파비아 대성당이나 산 미켈레성당을 다니기에 힘들 것 같아 먼저 숙소에 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나오기로 했다. 비가 줄어들면서 걷기에는 나아졌는데 숙소까지 무려 35분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파비아 순례자 숙소가 만실이라고 해서 부킹닷컴에서 예약했는데 사전에 위치를 확인못한게 이 고생이 될 줄 몰랐다. 한참동안 걸어 신도시 같은 지역으로 들어갔더니 주택단지 한 모퉁이에 Pavia Hotel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출입문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더니 문이 덜커덕하고 열렸다. 청소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주인과 전화를 하고나서 룸으로 안내되었다.


룸에는 이층침대가 3개있는데 1층은 모두 다 차지하고 있고 이층만 남아있었다. 이곳은 순례자 전용 숙소가 아니라 장기간 투숙하는 손님도 있었다. 이제는 이층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었다. 백팩에 우비를 넣고 우산을 쓰고 나왔다. 사전에 지도를 열고 성당 가는 방법을 확인했다. 시내 버스를 타러 가까운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기사한테 목적지를 말하며 차비 2.5유로를 꺼내 드렸다.


구글맵으로 지나가는 정류장 이름을 계속 확인하면서 가다 운전사가 가리키는 곳에서 내려 성당으로 찾아갔다.


로마네스크양식 옛 주교궁이 있었던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 두오모 성당이다.

20251023_170535.png

레오나르도다빈치도 성당 건립에 기여했다고 했다. 비가 조금 그친 틈에 카페로 들어가 크라상과 카페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먹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 비가 다시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먹고 들어가려고 숙소 주변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메뉴 고르기가 어려웠다. 메뉴 사진을 보다 나폴리 치즈 리조토를 선택했다. 치즈를 철판에 갈아 가루를 만들어 뿌려주니까 그런대로 맛있었다.

20251023_170639.png

숙소에 들어오니 건너편 침대에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아들들을 만나러 두 달간 여행증이라는 마리오와 인사를 했다. 아들들이 이탈리아 파비아. 독일 퀼른. 영국 에든버러에 산다고 했다. 내가 배낭을 메고 나타나니까 무슨 여행을 하는지 물어봤다. 얘기를 듣고 나한 테 나이를 물어보더니 그는 놀라는 기색으로 나에게 최고라고 엄지손을 들어 보였다.


그런데 룸에는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도 숙박객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건너편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은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더니 바로 화장실로 가서 무엇을 하는지 한참 있다 다시 밖으로 나갔고 얼마후에 다시 들어와 또 화장실로 바로 들어가 상당한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나가는 이상한 행동을 계속했다.


내가 지내는 침대 1층의 장기 숙박객은 새벽 5시쯤 나타나 침대에 누워서 음악을 틀어놓고 시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또 새벽에 다리가 가려워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확인했더니 베드버그가 다리를 물어 부위가 약간 빨개지고 있었다. 배낭에서 물파스를 꺼내 부어 있는 부위에 발라주고 침낭을 걷어내고 침대 주변을 살피다가 기어가고 있는 베드버그를 발견해 휴지를 꺼내 도망가는 베드버그를 잡았다.


나는 다른 숙박인들의 들락거리는 소음과 베드버그에 물리는 참상을 겪어야 했다. 내 눈꺼풀이 부었고 몹시 피곤해서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배낭을 들고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거실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새벽 6시쯤에 밖으로 나왔다.

20251023_170743.png


via Francigena 11일차 Santa Cristina


최악의 숙소에서 밤새 뜬 눈으로 지내느라 몹시 피곤했다. 내가 겪은 상황과 불편을 숙소를 예약했던 Booking.com에 신고하기 위해 베드버그에 물린 부위를 사진을 찍어두었다. 어제 오후에 건물에서 만난 젊은 주인은 청소 아주머니가 퇴근하고 나면 오후 두 시쯤 나와 책상에 앉아 체크인 하는 손님만 만나고 돌아가는 거 같았다. 그러니 각각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룸에 있는 동안 찝찝하고 답답했던 공기 대신 바깥의 청량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는 거 같았다. 어제 종일 비가 내린 후라 아침은 약간 쌀쌀하고 몸을 움츠리게 했다. via Francigena 앱을 열고 루트를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한참 뒤에 Pavia 외곽지역인 Monteborone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한숨 돌리기 위해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 커피와 쿠르와상 그리고 물주머니에 넣을 생수를 두 병 샀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중국인들은 유럽 어느 나라에서, 시골에 가서도 가끔 만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거 같다.


커피와 빵을 먹고 나니 이제 좀 여유가 생긴 거 같아 긴장이 풀렸다. 카페를 나와 자동차들이 다니는 길을 지나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동네 작은 공원이 나오고 그곳에는 잘 조성된 산책길이 있고 운동을 위해 런닝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요즘 며칠 간은 대부분 평탄한 시골 농로를 지나가거나 차선이 없는 도로를 지나가야 했다.

20251023_170909.png

지나가는 농로를 곁에 두고 양귀비꽃 들판과 또 다른 밭에는 옥수수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2시간쯤 지나 작은 마을 San Leonardo를 지나갔다. 마을 중심에 있는 아주 작은 성당으로 들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촛불을 하나 켜서 세워 놓았다. 땀을 닦고 나와 마을을 빠져나왔다. 자동차가 가끔 지나가는 시골 도로에는 오래된 아스팔트가 이곳 저곳 파헤쳐져 물웅덩이가 나 있었다.


Opedalleto를 지나다 길에 테이블이 있는 쉼터가 있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열을 식혔다. 그동안 비닐봉지 넣어두었던 납작 복숭아를 꺼내 먹고 있는데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 앞에 정차를 하고 노년의 남자 두 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서 순례자인지 물었다. "빼레그리뇨"라는 말에 "씨" 라고 했더니 번역기를 이용해 자기가 2018년에 생장피데르포트에서 프랑스길을 걸어 산티아고까지 갔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사진을 열심히 찾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오브라이도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고 로마까지 간다고 했더니 나에게 부엔카미노(Buen Camino)하고 돌아서서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반쯤 남아있는 납작복숭아를 마저 먹고 일어났다.

20251023_171050.png

. 악몽의 밤을 지냈던 숙소를 출발해서 4시간쯤 걸려 Sangiacomo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어디를 가나 마을 중심에는 항상 성당이 있다. 오래전부터 성당은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의 장소로 중요한 곳이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을 이곳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여러 행사를 치룬다. 터벅터벅 마을을 지나가다 성당 앞에 멈추었다. 성당 입구에 순례자 형상의 그림과 메모가 붙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잠깐의 휴식을 하면서 먹을 음식이 있으니 가져가도 좋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성당 오른쪽 문을 밀고 들어갔다. 성호를 긋고 제대를 마주하고 긴 장의자에 앉았다. 온몸에 땀이 젖어서 수건으로 우선 얼굴과 가슴을 닦아내고 잠깐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햇볕을 피해 휴식을 주시고 저를 이곳까지 건강히 걸을 수 있도록 은혜로이 인도해 주셔서 감사 하나이다” 라고 기도를 드렸다. 성당안에는 바깥의 기온과 차이가 나서 훨씬 시원했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순례자들을 위한 음식이 비치되어 있고 얼마든지 가져가서 먹으라고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영어로 써 놓았다. 또 성당 앞 200미터에 벤치와 테이블이 있고 휴대폰 충전기도 있으니 이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스박스에 생수가 있고 빨간 사과. 작은 머핀, 비스킷도 두 종류가 있어 나는 사과와 비스킷을 챙기고 2유로를 촛불 함에 넣고 나왔다. 사과는 내일 아침 식사용으로 사용하고 비스킷은 걸어가며 먹기에 좋은 간식이었다.


Belgioioso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구글로 근처 레스토랑을 검색하여 평점이 높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Mixed Salade(믹스드 샐러드)와 빵. 콜라를 주문했는데 참치와 토마토가 많이 들어간 양상추에 올리브오일과 식초를 비벼 맛있게 먹고 나왔다. 10유로에 만족할만한 식사였다.


오늘 Santa Cristina 숙소는 성당에서 예전에는 성직자님들이나 순례자들이 사용하는 장소였다. 3개의 방에 침대가 10개 있었는데 관리하시는 노인분이 출입문 열쇠를 주면서 사용법을 설명하고는 그냥 돌아가셨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적막한 숙소에서 기분 좋은 낮잠을 잤다.


마침 오후 햇살이 좋아 베드버그때문에 찜찜했던 옷들을 모두 세탁기에 넣고 돌려 햇볕으로 말렸다. 침낭도 뒤집어서 말리고 배낭도 속을 비워 널었다.



via Francigena 12일차 Orio Litta



Santa Cristina를 출발하며 다음 마을의 Centro로 걸어갔다. 딱히 중심을 정하지는 못하지만 자동차들이 자주 지나가는 삼거리가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용한 마을은 반대로 순례자들에게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특별히 구경할 곳이 없으니까 매번 마을의 성당으로 들어가본다. 대도시로 갈수록 성당의 건물은 화려해지고 시골로 갈수록 검소하다.


Pavia숙소에서 베드버그에 물린 빨간 자국이 좀 커진 거 같아 가져간 물파스를 자주 발라주었더니 피부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18km 구간이라 어제 구입해둔 빵과 주스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숙소 근처 약국으로 갔다. 약국은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성당으로 들어가서 출발 기도를 올렸다.


이제 성당을 나와 약국으로 갔다. 내가 한쪽 바지를 걷어 올리고 빨갛게 부어로른 부위를 보여 주었더니 항히스타민제가 들어간 연고라며 벌레 퇴치 스프레이와 함께 건네 주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약값은 울나라보다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나는 약을 당장 바르기 위해 벤치에 앉아 환부에 골고루 연고를 바르고 출발했다.


오늘도 아침은 여전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온은 점차 상승해 오후에는 20도가 넘을 예정이었다. via Francigena 루트는 Santa Cristina역을 지나 우회전해서 근처의 풀이 길게 자라 잘 보이지 않는 소로를 걸어야 했다. 물에 젖은 풀 때문에 신발과 바지가 젖어 들었다. 순례자들이 자주 지나가면 길도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지건만 그렇지는 못하다. 주변에는 이곳도 밀.옥수수. 때론 양귀비꽃이 사방에서 자라고 있었다.


Chignoloppo를 지날 때 규모가 큰 성이 보였다. 그러나 들어가려면 사전에 지자체에 예약을 신청해야 한다고 오른쪽 작은 출입문에 적혀 있었다.

20251023_171210.png

성 안쪽으로 관람을 하고 있는 단체관광객들이 보였다. 성곽을 따라 길이 있었다. 이곳을 지나서 언덕을 내려와 주택들과 넓은 체육 시설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Lambronia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에 자동차들의 대기줄이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지나가는 남자에게 구글번역기로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더니 오늘은 마을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을 뒤따라가 보았다. 작은 광장에 부모들과 어린이들이 모여 스스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머리에 노란색과 분홍색 모자를 쓴 어린이들이 편을 갈라 시합을 준비중이었다.

아마도 지자체에서 어린이날 잔치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단체로 공을 가지고 시함을 하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어린이들의 그림 솜씨가 담긴 작품들을 전시도 하고 있었다.

20251023_171330.png

나는 마을을 빠져나와 자동차들이 씽씽 다니는 시골 길의 한쪽 갓길을 오랫동안 지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Orio Litta 마을로 들어갔다. 숙소를 찾아 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지자체가 순례자들을 위해 건물을 제공하여 시설뿐만 아니라 환경도 그리고 접수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성심껏 도움을 주었다.


내 옆 침대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사람이 왔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어디서 부터 걸었는지 물어보니 4월10일 영국 켄터베리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분은 via Francigena를 온전히 걸어가는 순례자였다.


via Francigena 13일차 Piacenza



오늘은 Soprarivo까지 배를 타고 포(Po)강을 건너 선착장에 내려 Piacenza까지 17.5km를 걸어가는 날이다. 만약 강을 건너지 않고 걸어가면 약 Piacenza까지 22.5Km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숙소에 모인 순례자들은 전날 숙소 호스피탈레노에게 승선을 예약했다.


Orio Litta 숙소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주방 시설이 좋아 1.2km떨어져있는 Crai Extra 마켓에 가서 볶음밥을 사와 올리브오일과 계란 2개를 넣어 약불에 볶아 맛있게 먹었다.


아침 6시부터 침대에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주방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마켓에서 사온 크라상과 종합과일 주스로 식사를 하고 7시 넘어 숙소를 나섰다.


Corte Sant' Andrea 선착장까지는 약 4km 거리이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잘 꾸민 공원의 나무들과 꽃들이 주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오늘도 아침 공기는 약간 쌀쌀하다. 겉옷을 하나 더 입고 걸어가다 더우면 벗기로 했다. 이곳은 보리 농사를 많이 하는 곳인지 배 타러 가는 길에는 보리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Ivrea 지역을 지날 때는 쌀농사를 많이 보고 지나왔는데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북부지역은 대표적인 농사 지역이었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숙소에서 같이 지낸 이탈리아노를 만났다. 그는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 걸음걸이도 빨랐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은 성격으로 나의 인사에도 웃음만 지울 뿐이었다. 그는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다리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9시 예정시간에 맞춰서 연락선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연락선이 점점 선착장으로 다가오며 머리가 하얀 노인 선장이 키를 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20251023_171534.png

그러자 주변에 흩어졌던 순례객들이 하나 둘씩 출항 시간에 맞춰 나타났는데 그 중에는 며칠 전 시골 길에서 뵌 분이 나타났다. 그 분은 진정한 순례자 복장을 하고 걷는 분이었다.


그때는 내가 걸어가는 via Francigena 길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서 몹시도 궁금했던 분이었다.

20251023_172058.png

모두 12명이 작은 배를 타고 물길을 질러 Po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모두 신이 난 듯 떠들고 있을 때 이십 분이 지나 건너편 Soprarivo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요금은 내릴 때 받지않고 모두 선장 다닐로 집으로

안내되어 갔다. 다닐로는 집 앞에서 사람들을 세워놓고 순례길과 관련된 인물들을 석상으로 만들어 세워놓고

한 분씩 설명을 해 나갔다.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다닐로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이후에 그는 자기집 마당으로 순례자들을 안내한 다음 테이블에서 순례증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승선비용 10 유로를 받았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두꺼운 표지를 넘기고 방명록에 각자 이름과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살고있는 도시와 직업까지

작성하도록 권유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려 방명록에 내용을 기입하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20251023_172821.png

순례길은 다닐로 집을 나와 포(Po)강가의 강둑을 따라 보리밭과 수로를 보며 한참 걸어갔다. 어느정도 걸어가자 순례길 방향이 둑 아래로 내려간 다음 조그만 마을 Calendasco로 들어갔다. 이 길에는 배를 같이 타고 온 순례자들이 줄을 지어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걸어가느라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마치 단체로 순례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 모습과 비슷한 것이다. 잠시동안 앞서 걷는 일행들이 달려오는 자동차들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스틱을 들어 신호를 보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차들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며 조심스레 지나가고 있었다.


Cotrebbia Nuova 마을로 들어갔다. 오늘이 장날인지 도로는 자동차 통행을 차단하고 그 자리에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시장 모퉁이에 있는 넓은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뒤 따라오던 순례자 일행들이 무리를 지어 카페로 들어왔다.

그들은 테이블이 넓은 내 옆좌석에 자리를 하고 둘러 앉았다. 내가 옆에 있는 분에게 중세 복장에 멋진 모자를 쓰고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분이 혹시 신부 님이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커피를 다 마실 즈음에 성당의 미사 시간을 알리는 중소리가 울렸다. 나는 미사에 참석하러 가야 한다며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성당은 이미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로 꽉 차 있었다. 신부님의 강론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영성체를 하고 나면 마음이 항상 편안 해졌다. 성당을 나와 구경하지 못한 시장 골목을 잠깐 둘러보고 다시 입구로 나왔다. 시골 장터는 우리나라나 이탈리아의 시장은 분위기가 비슷했다.


순례길은 다시 농촌 마을을 떠나 차로(車路)를 걸어가야 했다. 나는 질주하듯 다가오는 자동차를 피해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면서 걸어갔다.

20251023_172922.png

이제 Piacenza까지 4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만났다. 그러면 한 시간이내로 시내로 들어갈 것 같았지만 의외로 시내는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아 지루해졌다. 현재 기온이 28도라는 약국의 초록색 십자 네온사인이 나타났을 때야 이제 한숨이 나왔다.



via Francigena 14일차 Fiorenzuola d'Arda



오늘 목적지 Fiorenzuola d'Arda의 이름이 길어 몇 번을 외웠다 잊어버렸다. 거리도 32km라서 걷는 데만 8시간 걸리니 나에게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호스피탈레노가 알려준 대로 근처 Pontenure 기차역에 내려 22km를걷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차는 오전에 딱 한차례 7시에 있고 오후에 3차례있는 간이역이다. 숙소에서 일찍 역으로 출발했다. 기차는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었고 대부분 대학생들이 승객이었다.


Pontenure는 대도시 인근이라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선 처음 나타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여기도 주인이 중국인인데 인사성이 밝아서 손님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20251023_173031.png

까미노는 광장을 질러 잠깐 주택들 사이를 지나 바로 들판으로 접어들었고 농사를 위해 물을 끌어들이는 기구와 엔진이 달린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넓은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식은 주로 밀 농사이고 옥수수 그리고 오늘은 완두콩 재배 지역도 지나갔다.


어느 곳에는 이른 봄부터 씨앗을 뿌려 밀이 벌써 누렇게 익어서 추수를 하는 곳도 보였다. 특히 농사를 짓는 구간을 걸을 때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가로수가 없어서 마땅히 쉴 곳을 찾지 못해 무척 긴 하루를 걸어야 했다. 농로가 끝나는 곳 창고 옆에 응달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호주머니에 넣어둔 광고 팜플렛을 펼쳐놓고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물을 마시면서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는 땀을 닦아냈다.


오전내내 지난하게 걸어왔던 농로를 벗어나 이제 오랫동안 다시 가로수가 없는 아스팔트길을 햇살을 온전히 다 받으며 걸어야 했다. 땀이 이미 가슴을 타고 흘러내려 여러 번 수건으로 닦아내야 했다. 그러나 Chero라는 중간 마을에 바 겸 레스토랑이 있는데 문을 닫아 버려 시원한 골라 한잔 마시고 가겠다는 희망마저 사라져버렸다.


멀리서 마을이 보이지만 순례길 방향이 차츰 그곳으로 부터 멀어져갔다. 다시 농로를 계속 걸어오다 자동차들이 자주 지나가는 도로에 들어서자 도로 곁에 성모상을 모시는 작은 움막을 지나가다 건물의 그늘진 자리에 앉아 쉬었다. 그때 얼마전에 숙소에서 만났던 영국인 닥터 로버트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로버트에게 오늘 숙소를 확인했더니 다행히 나와 같은 숙소여서 이따 보자고 하면서 먼저 가라고 했다.


숙소는 성당에서 운영하고 요금은 저렴한데 시설은 매우 부실했다. 로버트는 먼저 와서 쉬고 있었고 우리는 다섯시에 수퍼마켓을 다녀오기로 했다. 로버트가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고 해서 숙소를 나와 근처의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갔다. 피자와 하우스와인 그리고 샐러드로 저녁 만찬을 갖게 된 하루였다.



via Francigena 15일차 Fidenza.



어제 저녁에 영국인 로버트가 일기 예보를 보여주며 내일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이 싫어 비가 그치는 11시에 출발 예정이라고 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그래서 각자 아침식사를 하고 기다렸다 8시반쯤 숙소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성당으로 같이 들어갔다. 아침 미사를 드리고 나서 카페로 이동해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일기 예보를 보자고 했다. 아침에 로버트가 위성레이더 그림을 보여주며 11시 이후에 비가 그친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방에서 지낸 불굴의 이탈리아노는 비가오는 것 상관없이 5시30분에 숙소에서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씩씩한 이탈리아노 순례자를 우리는 부러워해야 했다.


계획대로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로버트가 앞장서고 나는 뒤따라 성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9시부터 미사가 있는지 신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연로하신 신부님 세 분이 제단으로 올라오셨다. 미사는 평소처럼 순서대로 집전 되고 끝날 때까지 사십 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계획대로 성당을 나와 바로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탁자가 네 개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 벌써 손님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로버트와 나는 구석에 있는 작은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배낭은 공간이 좀 있는 벽 쪽에 붙여놓고 일어나서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로버트가 일기 예보 앱을 열어놓고 위성 레이더의 비구름 이동상황을 들여다보다 10시30분쯤 비가 개일 수 있겠다고 했다.


로버트와 나는 옆 자리에 있는 젊은 독일인 커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via Francigena를 여행증이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서울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로버트가 유리창 너머로 빗줄기가 약해진다고 말하더니 그냥 출발하자고 했다. 우리는 10시 30분 카페를 나와 Fidenza 로 떠났다. Fiorenzuola d'Arda 역의 지하보도를 지나 이제 어제처럼 농촌의 들판을 지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20251023_173142.png

로버트의 발걸음은 청년처럼 빠르게 걸었다. 내가 로버트에게 내가 걸음이 느리니 먼저 가라고 하고 나는 내 페이스대로 걷기로 했다. 사실은 나의 왼쪽 종아리에 아침부터 약간의 통증이 있어 천천히 걸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길을 나서 이제 한 시간쯤 지나 키아라발레 델라 콜롬바(Chiaravalle della Colomba) 수도원, 성당을 만났다. 이곳은 12세기에 지어진 중세 시토회(Cistercian) 수도원/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로 현재까지 보존이 잘되어 있었다. 나는 잠깐 쉬었다 갈 겸 안으로 들어갔다.

20251023_173257.png

그리고 Castione Marchesi 마을을 지나 Bastelli라는 주택이 고작 몇 채 안 되는 곳을 걷다 길가의 허물어진 건물에서 쉬고 있는 프랑스인 7명을 다시 만났다. 이전 Orio Litta의 강을 건널 때 배에 함께 탔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남자 2명과 여자 5명이 걷고 있었다.


Fidenza 외곽에 들어서고 나서 비로소 도시의 모습을 느끼기 시작했다. 구글 맵을 열어 숙소를 검색했더니 기분좋게도 고작 1.7km E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래서 나는 더 부지런히 걸었다.


구글 지도에서 커서가 가리키는 목적지에 왔으나 건물에는 번지가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때 어떤 꼬마가 나에게 뭐라고 묻더니 안으로 들어가 여자분을 대동하고 나왔다. 친절한 꼬마가 영리하게 보여 감사하다고 하며 여자를 따라 조금 떨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QR코드를 대고 문을 열어야 하는 숙소였다.


숙소는 2층인데 호스피탈레노가 메신저로 어느 침대나 골라서 사용하고 스탬프는 주방에 있고 화장실은 한층 내려가 1층에 있다고 사용방법을 알려왔다. 참으로 현대 사회는 비 대면 세계에 잘 적응해가는 단계인 거 같았다. 왜냐면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via Francigena 16일차 Medesano



숙소에 프랑스 부부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연배가 나와 비슷하고 점잖은 분들이라 조용했으며 아침 7시에 먼저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나와 동일한 Medesano. 숙소도 같다.


오늘 Fidenza를 떠나면 이전까지는 농사를 짓는 평원의 길을 걸었지만 오늘부터는 가파른 경사길을 여러 번 오르내리는 길을 걸어야만 했다. Via Francigena 앱에 나타난 고도 표시는 사람을 기죽게 만들었는데 오늘 거리가 22km로 길지 않지만 상당히 힘든 날이 예상되었다.


숙소를 나서 via Francigena 표식을 확인하면서 도시를 빠져나갔다. 도심 외각으로 산책길이 이어지면서 걷기에 수월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런닝하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어린 손주들을 학교에 대려다 주는 할머니도 보여서 서양이나 동양이나 자식들이 직장에 나가도록 할머니가 도와주는 형편은 비슷해 보였다.


한동안 이어지던 산책로를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다 via Francigena 표식이 나타나지 않아 앱을 열어 확인을 했다. 대부분 길을 따라 전신주나 가로수 또는 건물의 벽에 표시된 로고를 확인하고 걸어가는데 이쯤에 이상함을 느끼면 우선 앱을 보고 확인하곤 했다. 나는 왼쪽으로 나 있는 루트를 지나쳐 계속 쭉 뻗어 있는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되돌림을 해야 해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20251023_173410.png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산책길이 조금 더 이어지더니 점차 경사가 있는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농촌의 넓은 들판에 토양의 거름용이나 동물의 사료로 쓰이는 건초를 기르는 지역이 나타나고 그곳은 이미 무성한 풀들로 가득한 들판이 나왔다. 그곳에는 보기도 아름다운 빨간 양귀비꽃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는 풍경이 들어왔다.


이때부터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길이 계속 나타나고 멀리 Fidenza 도 바라보였다. 그리고 지대가 높아지는 곳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초지와 소를 키우는 축사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분뇨 냄새는 그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익히 익숙해진 반가운 추억이었다. 이제 경사진 길을 내려와 잠깐 숲 속을 지나가며 개울이 나왔다. 졸졸 흘러가는 맑은 물이 보기에도 좋았다. 물론 개울을 건너가는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돌을 놓아 징검다리로 활용해도 될법한 간격이고 나는 잠깐 물가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20251023_173457.png

Fidenza 를 출발하고 4시간이 지나서야 식당이 있는 Costa del Mezzana에 들어섰다. 기온이 점차 올라가면서 경사진 길을 오르는 일은 숨이 차오르고 기운이 빠져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Costa del Mezzana 마을의 식당이 Casa. Pellegrino이다. 그런데 메뉴를 보니 값은 엄청 비싸다. 완두콩과 파스타. 토마토 소스로 볶은 Pisarei de Cusa를 주문했다. 막상 음식을 먹어보니 콩보다 파스타가 많아 실망이었다.


점심을 먹었으니 좀 더 기운이 나서 잘 걸을까 했는데 여전히 힘이 벅차다. 어느 길에 선가 고개를 넘어섰더니 경사가 20도 이상은 될 거 같은 길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먼 꼭대기에는 집 한 채와 대형 십자가가 보였다.

20251023_173555.png

경사진 길을 남은 힘을 다해 올랐더니 안내표지판에 Medesano 가는 두 갈래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하나는 원래 공식 루트이고 다른 하나는 8km를 더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내용의 표지판이 있었다. 힘이 남는 사람들은 "그리로 가라"하고 써 있는 길이었다.

20251023_173647.png

시내로 들어와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다 주소가 적힌 돈보스코 건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유치원 건물에서 뛰어나와 마당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와 길을 따라 시내를 걸어가다 피자를 테이크아웃하는 가게로 들어갔다. 버섯이 들어간 피자를 콜라와 함께 주문하고 바깥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주인이 피자를 들고 나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내가 “꼬레아”라고 얘기를 하자 자기 자동차가 기아 ‘쏘렌토’라고 하며 괜찮은 차라며 나에게 자랑을 했다.


나는 마트에 들러 저녁 식사거리를 준비했다. 보리밥을 새우와 홍합 그리고 야채가 조금 들어간 볶음밥을 포장해서 가지고 왔다.


숙소에는 며칠간 같이 머물고 있는 프랑스 부부. 그리고 켄터베리에서 로마까지 걷고 다시 자기 집이 있는 스위스 로잔까지 걷고 있는 젊은이를 만났다. 로마에서 받은 순례완주증을 나에게 보여주며 자기는 지금 " 반대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라고 했다. 나는 하루하루 걷기도 힘든데 그 젊은이는 자랑하며 나에게 별거 아니라고 했다.



via Francigena 17일차 Sivizzano



6월에 들어서서 날이 갈수록 기온이 빨리 올라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 7시에 숙소인 돈보스코 유치원 건물을 나와 자동차들의 왕래가 많은 도로로 나왔다. 사람들은 인도를 바삐 걸어가고 있고 자동차들은 소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침이라 공기는 상쾌하고 하늘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20251023_173746.png

순례길은 타로(Taro) 강변과 나란히 가고 있었다. 넓은 강은 높이 자란 나무들과 풀 때문에 강물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앞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직시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조금후에 순례길은 강변으로 내려갔다. 숲이지만 거칠게 자라는 나무들과 갈대들이 가끔 길을 덥고 있어서 스틱으로 헤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가끔 향기가 나며 냄새가 짙은 유채꽃을 만나기도 했다.


순례길에는 맑은 물이 잔잔히 흘러가는 깊이가 얕은 개천도 나왔다. 강으로 흘러가는 물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곳에는 누군가 돌을 나란히 놓아두어 징검다리를 만들어 두었다. 나는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가서 돌들을 밟으며 개울을 건너갔다.

20251023_173837.png

10시가 가까이되어 지루하던 강변길이 끝나고 Fornovo로 가는 긴 다리를 건너갔다.

20251023_173941.png

Fornovo did Taro는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다. 거리를 지나갈 때 레스토랑. 상가들과 은행 점포도 보였다. 순례길이 도심을 벗어나며 그곳에는 경사가 꽤 있는 주택가를 올라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마치 산자락을 따라 종주하는 코스처럼 지루했다. 물론 나의 발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느려졌다. 너무 힘이 들어 도로 한쪽에 그림자가 있는 아스팔트위에 종이를 깔고 앉아 쉬기로 했다. 가끔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그런 생소한 장면에 나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강변의 낮은 고도에서 점차 거의 300미터 정도로 올라가는데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어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차선도 없는 시골길에는 자동차들이 최고의 속도로 앞뒤로 달려들었다. 나는 운전자들이 알아서 비켜가겠지 하고 포기하고 걸어갔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벗어나자 이제 구릉지대로 들어섰다. 물론 이곳에는 목장들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 여러 축사들이 있고 분뇨 냄새도 자주 느껴졌다. 소들을 방목하여 기르기도 하지만 풀이 많이 자라지 않는 지역은 축사들이 있었고 사료를 저장하는 싸이로도 있었다.


이곳에는 축사 앞에 주인이 나무를 활용해 아기곰 형상을 만들어 길 옆에 세워놓았다. 나도 지나가다 나무곰을 바라보다 금세 웃고 말았다.

20251023_174048.png

축사를 지나가자 멀리 Fornovo가 보이고 급격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Respiccio마을로 들어섰다. 이곳은 작은 마을인데 가축을 기르는데 필요한 싸이로(Silo)와 축사, 그리고 설비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20251023_174143.png

경사가 만만치 않아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는 스틱에 의지하고 속도를 줄여가며 걸어야 했다.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목에 힘을 쏟았다.


Sivizzano라는 마을 입구 표지판을 보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주택이 몇 채 안보였다. 나는 이곳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주소를 따라가며 너무 작은 마을이라 걱정을 했다. 마을 뒤편 산에 수도원 같은 건물이 보였다. 혹시 저곳이 내가 예약한 숙소 아닌가도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숙소가 있을까 생각하며 주인에게 전화를 하기위해 예약 확인 메일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구글맵으로 우선 숙소의 위치를 검색했다. 그런데 휴대폰에 네트워크 표시가 사라지고 통신 연결이 안되었다. 숙소 위치를 검색할 수 없어 나는 당황스러웠다. 숙소 예약 파일에 주인의 WhatsApp 전화번호를 찾아 주인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내가 길로 나와 이동을 하면서 전화벨이 울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더니 마침내 주인이 전화를 받았다. 내가 숙소 위치를 못 찾고 있다고 했더니 남편이 곧 갈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길바닥에 다시 앉아 남편을 기다리다 우연히 건너편 집의 주소 표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분명 "139"라고 적힌 건물이 길가에 있었다. 그러면 내가 찾아야 할 " 135" 번지는 한 건물을 지나 도로 가에 있었다. 입구에는 순례자 표징과 "Strada Val Sporzana"라고 적힌 안내 글씨를 발견했다.


나는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 그림자가 있는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얼마후에 농사일을 하다 온 듯한 남자 주인이 아주 오래된 낡은 차를 몰고 들어왔다. 아무튼 반가웠다. 그가 문을 열어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니까 주인은 다른 곳에 살고 이 주택은 순례자에게 방을 빌려주는 숙소였다. 그리고 통신이 잘 안되는 지역이라 주인은 와이파이 중계기를 설치해주어서 인터넷은 잘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20251023_174236.png

주인에게 근처에 식품을 파는 수퍼마켓이 있는지 물었더니 수퍼마켓이나 바도 식당도 없다고 했다. 주방 식탁에 놓여있는 음식이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라며 말했다.


주인은 내일 Berceto에 숙소 예약은 했는지 묻고 내일 구간은 높은 산길을 계속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면서 노트를 꺼내 구간별 지명과 거리를 써가며 설명을 했다. 산속에서 27km를 걷는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그때 주인이 내 표정을 보더니 내가 중간쯤 데려다 줄 테니 20유로를 달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머지 절반을 걷는다는 생각에 아무 고민 없이 얼른 동의하고 말았다. 그러나 자기 일이 끝나는 11시30분에 오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via Francigena 18일차. Berceto



오늘은 via Francigena 루트에서 난이도 별 4개(5개중)인 고도를 계속 올라 높이 950m 지대의 산길을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날이었다. 어제 Sivizzano 숙소 주인이 자기 차로 11시에 나를 Cassio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기에 오전에 여유를 부리느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방과 냉장고에 있는 우유와 사과를 가져와서 빵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까미노 카페에 일기를 쓰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주인이 차를 가지고 마당으로 들어와 나를 보더니 준비가 되었냐고 물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나는 그의 아주 낡고 오래된 차량에 올라타고 출발을 기다렸다. 주인이 열쇠로 숙소의 철 대문을 잠그고 자동차로 돌아와서 먼지가 달라 붙어있는 스틱 기어를 옮기며 출발했다. 조수석 앞 유리창에 비치는 산간 마을과 초지대를 번갈아 만나며 구불구불 산길을 낡은 자동차는 힘겹게 소음을 내고 달리고 있었다. 남자는 말이 없었고 빨리 카시오(Cassio)에 나를 내려주고 20유로를 받아 내는데 관심이 있을 것이다.


자동차가 Cassio 산간 마을로 들어왔다. 주인은 내가 내민 20유로를 받아 쥐더니 아무 말없이 근처의 펜시온으로 들어가서 여자와 대화를 나누며 나오지를 않았다. 나는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떠나려 했으나 그가 펜시온에서 나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마을을 떠났다. 아스팔트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스틱을 바로 세우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구불구불한 도로에 까미노 형상의 돌기둥들이 거의 100미터 마다 길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대관령 옛길처럼 한가로운 주변의 숲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 도로는 자동차들이 그리고 오토바이 폭주족 들이 미친듯이 속도를 내면서 지나다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긴장해야 했다.


산길을 내려오며 멀리 내려다 보이는 주변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산 능선을 따라 우거진 숲과 비탈을 따라 듬성듬성 작은 산간 마을과 목초지대가 어우러져 목가적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51023_174330.png

도로를 따라 30분쯤 걷다 카바졸라(Cavazzola)라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까미노 표식을 만났다. 길은 이제 계속 숲 속을 지나가야 했다. 까미노 표시는 나무나 돌에 표시된 빨간색과 하얀색 페인트 표식이 자주 눈에 띄었다. 길에 가끔 세워져 있는 via Francigena 작은 표지판은 넘어져 있기도 하고 흐릿하게 퇴색된 표지판도 있어서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았다.


이때부터 어둠침침한 숲길에서는 표식을 잃어버릴까 봐 보이지 않으면 휴대폰의 까미노 앱을 열어 GPS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또 가야 했다. 좁은 숲길을 걸어가다 회색 바탕에 까만 줄들이 있는 뱀이 길 앞을 막고 있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스틱을 바닥에 세게 내려쳤더니 그때서야 사라졌다. 아침에 숙소 주인이 나에게 이 산에 늑대도 있는데 밤에만 나온다는 얘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숲으로 나 있는 좁은 소로를 따라 걸어가다 한동안 까미노 표식이 보이질 않아 의심스러워 까미노 맵을 확인하니 나의 위치가 루트를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순간 매우 당황스러운 게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어졌다는 것이다. 이곳이 임도인지 모르지만 길에는 굵은 타이어 자국이 남아있어서 임야에서 작업하는 차량이 지나갔다는 생각에 미치자 맵을 확대해서 보이는 작은 선을 따라 정상 루트로 연결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이때부터 스틱으로 길게 자라 있는 풀을 제치고 정상루트가 있는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파른 경사길을 허겁지겁 올라 마침내 까미노 정상 루트로 들어왔다.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마음이 불편했다. 혼자 걷고 있는 길에는 순례길 표식을 열심히 확인하고 걸어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했다는 자책감이 들 정도였다. 이후로 이어지는 정상 루트에도 숲길은 밝지 않았다. 덩치가 큰 트랙터가 지나갔는지 깊고 넓은 물웅덩이가 계속 나왔다. 나는 길을 뒤덮고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서 풀과 나뭇가지들을 제치면서 앞으로 나가야 했다. 숲을 겨우 빠져나오니 조금후에 길가에 외딴 주택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놓은 다음 바닥에 주저 않았다.


카스텔론치오(Castellonchio) 라는 곳을 지날 때도 정작 오늘 목적지 베르세토(Berceto) 근처에 왔을 때도 오르내림을 반복하느라 나는 지쳐 있었다. 베르세토(Berceto) 마을이 멀리 보이는 곳으로 들어서다 길 옆 바위에 남자 순례자가 지쳤는지 배낭을 머리에 대고 누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나의 스틱 내려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부시시 일어나더니 "로마" 가느냐고 물었다. 젊은 청년은 허리에 작은 칼을 차고 있고 팔과 다리에 문신을 많이 해서 나를 약간 긴장하게 했다. 그가 손으로 앞 방향을 가리키며 풀이 자라 까미노 길이 보이지 않으니 이쪽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곧 "부엔까미노" 하길래 나는 “그랏시아스”를 외치며 바삐 그곳으로 들어갔다. 높게 자란 풀 때문에 길이 사라졌다. 그러나. ‘베르세토(Berceto)’라고 방향 표지판이 나타났을 때는 이제 다시 길을 잃고 허둥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을 더 내야 했다. 길이 꽤 급경사난 내리막길이었다. 더군다나 길 바깥쪽이 일부 무너져 내린 곳이 있어 매우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와 비로소 도로에 들어섰다. 베르세토(Berceto) 마을로 진입하는 아스팔트 길은 오후의 햇살이 강하게 내리고 있었다. Seminario di Berceto 숙소에 들어왔다. 나는 침대를 배정받고 그 위에 드러누워 한참을 낑낑대며 누워있어야 했다.



via Francigena 19일차 Pontremoli



그론세(Gronze)가이드 앱에서 확인한 오늘 구간 난이도 별 5개중 5개다. 다시 via Francigena 앱을 열어 확인한 구간 안내에는 난이도가 ‘Challenge’ 로 까미노의 ‘마(魔)의 구간’ 이었다.


Berceto 수도원 숙소를 출발하여 19km 떨어진 그로포달리시오(Groppolidalosio) 도착을 목표로 하고 그곳에서 다시 폰트레몰리(Pontremoli)까지는 버스를 이용할 예정이었다.


아침 7시30분에 Berceto를 출발하였다. 숙소 근처에서 via Francigena 표지판을 확인하고 바로 산으로 오르는 방향을 확인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늘 구간의 첫째 지명은 8.5km를 걸어가면 만나는 파소 델라 시사(Passo della Cisa)이다. 이곳은 이전 시비자노(Sivizzano)에서 테렌조(Terenzo) 그리고 카시오(Cassio)까지 지나오는 동안 고도가 점점 높아지다 베르세토(Berceto)를 지나 파소 델라 시사(Passo della Cissa)까지 이어지는 고도가 1223m인 바로리아(Valoria) 산 정상이다.


베르세토(Berceto)를 떠나 이곳에 오르는 동안 여러 차례 힘이 들때마다 그 자리에서 멈추어야 했다. 3시간을 걸어 파소 델라 시사로 (Passo della Cisa)에 올랐다. 그동안 너덜길과 진흙탕 길을 지나느라 시간은 지체되었고 계속 1000미터 이상 고도를 높이며 올라오는데 몇 번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상 고도 1223m의 monte varolia가 적힌 표지판과 정상석이 나왔다. 나는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남성 세 사람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뒤에서 올라왔다. 그분들은 근처의 Fidenza에서 출발했는데 이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별로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20251023_174450.png
20251023_174533.png

정상에는 마침 식탁이 달린 벤치가 있었다. 그곳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산간 마을의 주택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을 마시고 토마토를 꺼내 빈 속을 채웠다. 그리고 오래 있을 수 없어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시 좁게 나 있는 내리막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드디어 파소 델라 시사(Passo della Cissa) 산간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에는 생각치 못한 고급 모터사이클들이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많은 드라이버들은 이곳의 바와 레스토랑을 들락거리며 샌드위치나 커피 그리고 맥주를 마시느라 난장판인 풍경이 나타났다. 바에는 손님들로 넘쳐나고 시동을 켜고 시끄러운 굉음을 내며 사라지는 광경이 흡사 장터 같았다. 고개를 넘어가는 자동차들과 구비구비 커브길에서 스릴을 느끼기 위해 찾아온 모터싸이클족들은 이곳 고갯길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커브길을 따라 내려가는 스릴을 맛보는 장소였다.


나는 이곳에서 며칠간 숙소에서 같이 지낸 프랑스 낭트에서 오신 부부를 만났다. 이분들은 6시반에 Berceto를 출발하여 이곳 도착하여 오후 1시에 출발하는 Pontremoli가는 버스를 타려고 대기중이었는데 너무 빨리 도착해서 이제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분들과 헤어져 다시 걷기위해 헤어졌다.

20251023_174627.png

이곳은 파르마(Parma) 지역에서 투스카니(Tuscany)지역으로 넘어가는 경계 구역이고 1921년에 노스트라 시그니라 델라 과르디아(Nostra Signira della Guardia) 성당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이탈리아의 반도를 종단하는 아펜니뇨(Appennino)산맥이 지나가는 곳이라고 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자 검정 피부의 성모상이 있었다. 성당 옆에는 기념비가 있으며 가이드북에는 산지오르지오 필라티에라(SanGiorgio did Filattiera) 라는 분이 이곳에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세워 성모 마리아께 봉헌한 곳이라고 했다. via Francigena 순례길은 바로 이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20251023_174724.png

성당을 나오면 다시 바로 옆을 지나가는 좁은 산길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다시 길은 오르막이다. 또 여전히 끝도 없는 산길은 계속되어갔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진흙길이 계속나와 걸음은 느려지기 시작했다.

20251023_174829.png

고도가 점차 낮아지는 듯 내리막길이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이제 작은 돌멩이들이 깔린 길이 나타나며 돌뿌리를 조심하며 걸어야 했다. 그렇게 험한 산길을 8km 내려오자 그로폴리(Groppoli) 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다. 잠깐이라도 쉬었다 갈까 하고 주변을 두리 번 거리다 주택 모퉁이를 지나가는 남자를 붙들고 이곳에 혹시 바가 있느냐고 번역기를 들어 보이며 물었더니 다음 마을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또 지침 걸음으로 계속 걸어야 했다. 프레비데(Previde)를 지날 때 건물 앞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어서 내가 그로포달로시오(Groppodaosio) 가면 폰트레몰리(Pontremoli) 가는 버스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내가 Rome2Rio에서 검색해서 캡처를 해둔 버스 스케줄 사진을 확인하려 했더니 이곳은 통신이 안되는 지역이라고 나왔다.


나는 그로포달로시오(Groppodalosio)로 향했다. 까미노는 다시 고갯길로 향했다. 땀이 얼굴과 가슴안으로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때부터 목이 말라 물을 계속 마셔 대야 했다. 오후 3시20분이 지나 지명을 알 수 없는 곳에 주택들이 몇 채 있었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아이들과 엄마가 무슨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폰트레몰리(Pontremoli)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이곳에는 버스가 없다고 하면서 뒤에 있는 남편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다. 부인이 나에게 물을 마시겠냐고 물어봐서 나는 얼른 달라고 했다. 유리컵에 물을 가득 담아 내왔다. 내가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시고 나자 나를 보고 있던 남편이 폰트레몰리(Pontremoli)에 나를 데려다 줄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나와 함께 좁은 골목을 나와 자동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길로 나와 자신의 Jeep차를 타라고 했다. 그와 함께 9km나 되는 고갯길을 돌고 돌아서 폰트레몰리(Pontremoli) 시내로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시내 입구에 내려달라고 했다. 숙소는 주소를 보며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며 얼마를 드리면 좋겠냐고 했더니 그는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남자의 이름을 물었더니 Mr. Denis라고 하며 이전에 밀라노에서 살다 식구들과 함께 산골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조건 없는 선행을 베푸는 방법을 내게 전해주었다.


폰트레몰리(Pontremoli)는 주교좌가 있는 성당과 수도원 등 오랜 역사를 기진 도시이다. 도시 주위에는 높은 산자락을 끼고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물이 많이 흘러가는 마그라(Magra)강이 있으며 시내를 넘나드는 고풍스러운 돌다리도 인상적이었다.


숙소인 수도원을 나와 슈퍼마켓으로 가는 길에 돌다리를 건너다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돌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으로 넓은 광장이 보였다. 무엇이 있을까 하고 호기심에 들어갔더니 마침 12세기 복장을 한 남여들이 광장으로 지나가고 있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20251023_174935.png

via Francigena 20일차 Aulla



아침 8시에 숙소를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상가가 있는 건물들 사이로 나 있는 비아프라체치나 루트를 따라 걸어갔다. 골목을 나와 이제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나왔다. 9시쯤 폰티첼로(ponticello) 마을안으로 들어갔다. 역사가 오래된듯한 짙은 회색 빛 집들이 많았다. 그런데 마을 골목에 들어섰을 때 양쪽에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다. 아마 서로 간에 왕래가 용이하게 하기위해 만든 다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다리를 몇 개 지나면 이제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로 들어섰다. 이제 넓은 도로에 들어서고 한적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런데 도로에 나와 300m쯤 걸어갈 때 앞에 시커먼 큰 개가 다가오며 계속 짖어대 나는 더이상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개가 짖고 있는 동안 앞 집에서 남자가 나와 개를 불러서 집으로 들여놓고 나보고 손짓으로 아래쪽을 돌아가라고 소리를 쳤다. 나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공식 루트를 계속 걸을까 생각하다 용기가 없어 포기를 했다. 까미노앱을 열어 근처를 지나가는 다른 길을 찾았다. 올라왔던 길을 조금 내려가다 왼쪽에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미리아리나(migriarina) 마을 가까이 들어가자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이 일요일임을 확인하고 주일 미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임을 알아냈다. 성당의 문은 활짝 열러 있었다.

20251023_175049.png

나는 성당으로 들어가 뒤편 자리에 앉아 오늘 순례길 출발을 주님께 보고하듯이 기도를 드리고 일어섰다. 그때 제단 앞으로 신부님이 미사를 준비하러 나오셨다. 아마 주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방문하시는 신부님 일 것이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더니 “살루테”하고 인사를 받았다. 동양인 순례자가 성당에 방문하여 잠깐이지만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신 것 같았다. . 이탈리어로 살루테는 “건강과 구원”을 의미한다. 나는 성당 문을 나서다 할머니 두 분이 장애우 신자를 한 분씩 동행해서 미사에 참석하러 오시는 것을 보고 "본조루노"하고 인사를 했더니 장애우 한 분이 무릎을 구부리고 나에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존경을 의미한다는 제스처에 나도 무릎을 구부리며 그 분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가 웃음을 띄우며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보이자 기꺼이 응해 주셨다.

20251023_175148.png

나는 천사로 부터 인간들이 갖는 원초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하나도 때묻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사랑을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나를 깊은 골짜기 마을에서 숙소까지 아무 대가 없이 차를 태워 데려다 주는 남자 천사가 생각났다.


조금 전 사나운 개 때문에 원래의 루트를 벗어나 천사들이 있는 성당을 만나고 다시 출발하는 순례길은 발걸음조차 가벼운 느낌이었다. 성당 주변으로 주택들이 모여 있고 바도 보였다. 나는 바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거스름돈을 받아 성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다행히 미사가 진행되기 전이라 촛불 봉헌을 바치고 나왔다.


까미노 방향이 적힌 안내 표지판을 찾아 정작 길에 들어섰을 때 안도감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단지 조금전에 개 주인이 동네를 지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줘서 지나간 길을 돌아 나오면서 인색했던 그를 원망했었다. 그러나 성당의 종소리는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고 나는 그곳에서 몇 분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한적한 시골 길로 들어섰다. 일요일임에도 도로에는 어디론 가 떠나는 차량들의 행렬이 많아 보였다. 필라티에라(Fillattiera)까지 자동차 길의 아슬아슬한 갓길과 때로는 농로를 지나거나 단지 몇 가구가 있는 마을도 지나갔다.


약간은 개량된 상가 건물들과 공장들, 창고 같은 시설들이 있는 필라티에라(Fillattiera)에 들어갔다. 여행자안내센터 간판을 보고 방향을 틀었을 때 오래된 성당이 있는 공원 벤치에 어제 산길에서 마주쳤던 ‘댄디’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남자가 나를 보면서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앞에 보이는 성당이 1200년전에 지어진 것인데 내부를 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내부 공사 중이라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자기 부인이 아울라(Aulla)에 와서 같이 지내기로 했으니까 내일 만나자고 하면서 먼저 출발하겠다고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구간 32km에 대해서 오전부터 고민을 했다. 내 체력으로 거리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을 했다. 나는 이제 나이가 칠십이 넘었으니 절대 무리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가부를 결정하는데 이미 도보 여행의 하루 거리를 25km에 고정시킬 참이었다.


오늘은 19km를 걸어 루니지아나의 빌라프랑카(Villafranca in Lunigiana) 도착한 다음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아울라(Aulla)에 가기로 했다. Rome2Rio앱으로 13시21분 아울라(aulla) 가는 기차를 예약했다. 루니지아나의 빌라프랑카(Villafranca in Lunigiana) 기차역까지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어서 여행자안내센터에 들러 지역의 지도를 얻어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납작복숭아를 먹었다.


그러나 이후에 출발부터 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마주쳤을 때는 기차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어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산길은 빨리 끝나지 않았고 나는 바삐 걷느라 지쳐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걸음이 늦어졌다. 산길은 비가 온 뒤 물이 길로 넘쳐흐르기도 하고 질퍽질퍽한 흙도 자주 나타났다. 그러다 왼쪽에 들고 있는 스틱이 가벼워 들어보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틱 아래 땅을 찍는 부분 고리가 빠져나가 팁(Tip)이 보이질 않았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는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황해서 근처를 둘러보았지만 이미 이전에 빠져버린 듯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뒤 돌아서서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가 팁을 찾아 비상조치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드디어 지나온 길을 다시 내려가면서 팁(Tip)을 찾기로 했다. 길 바닥을 열심히 뚫어져라 보면서 경사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러나 팁(Tip)은 좀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려간 거리는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쯤에서 멈추고 다시 올라가야 갰다고 생각했다. 일단 포기하고 다음 큰 도시에 가면 새것으로 구하기로 했다. 나는 이전에 팁(Tip)이 빠졌을 때 단단히 테이프로 묶어야 했던 것을 못한 게 결국 이런 고생을 만나게 됐다고 생각했다. 예약한 기차 출발시간이 촉박해 더 이상 내려가기를 포기한고 내려온 길을 되돌아오며 길 바닥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기적이 또 일어났다. 진흙길에 팁(Tip)이 박혀 위 부분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그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사실 돌아서 다시 올라오며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꼭 저에게 밝은 눈을 주시어 제에게 필요한 팁(Tip)을 찾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다행인것은 못 찾으면 아무 쓸모없는 스틱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 스틱을 들고

뛰다시피 기차역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제 숙소에 도착하면 테이프를 사서 안 빠지도록 돌돌 말아서 다시 잘 사용하기로 했다.

20251023_175529.png

상당한 시간이 이 팁(Tip)을 찾기 위해 버린 시간을 기차를 타기위해 서둘러야 했다. 예약한 기차를 놓치면 2시간반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는 오토캠핑장이 있었고 이미 많은 캠핑카들은 여러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캠핑족과 일반 관광객을 위한 식당들도 많아 보였다.


나는 겨우 출발 시간에 맞춰 기차역에 들어왔다. 땀이 온 몸에 범벅이 되었다. 손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닦으며 기차를 기다렸다.

20251023_175612.png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검은 색 피부를 갖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난민들이나 이민자들이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도시를 가는데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같았다. 기차를 6분타고 내려서 시내까지 1.7km를 걸어가 레스토랑에서 믹스타 살라다와 수프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오늘 숙소의 성당 주변에는 주말이라 벼룩시장이 열러 있었다. 여러 곳에 개인들이 가지고 나온 잡다한 물건들로 시장은 구경 나온 사람들까지 뒤범벅이었다. 노인들은 그냥 구경삼아 둘러보고 먹거리를 파는 가게만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숙소는 성당에 부속된 건물이고 나는 순례자 접수처로 들어갔다. 호스피탈레노가 ‘웰컴’하며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체크인을 해 주었다. 그리고 식료품을 파는 슈퍼마켓은 숙소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다는 정보까지 알려주며 돌아갔다.



via Francigena 21일차 Sarzana


프랑스 부부는 아침 6시에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워낙 부지런하고 점잖은 분들이라 순례자들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식당에서 배낭을 꾸리고 아마 간단한 식사후에 일찍 떠나셨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식사전에 머어야 하는 갑상선 약과 식사 후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출발할 수 있어서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출발했다.


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숙소를 나와 다리를 건너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섰다. 오늘도 등산하는 기분으로 스틱에 의지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어제 잃어버렸다 겨우 찾은 스틱 꼭지는 클립을 끼워 고정시키고 그 위를 스카치 테이프로 단단히 감아두았다.


좁은 산길은 약간 미끄럽고 뾰족한 돌이 많은 길이었다 나는 길 바닥을 보며 정신을 집중하고 걸었다. 길 뒤에서 사람들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봤더니 같은 방에서 숙박했던 일행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맨 앞에 걷는 사람이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노” “꼬레아노”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그에게 꼬레아노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나를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까미노는 계속 좁은 산길로 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끝내 넓은 휴식 공간이 나오며 벤치와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트레일을 다니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라왔다. 이탈리아는 via Francigena와 비슷한 자전거 루트를 만들어 파란색 스티커를 길가에 붙여 놓아 안내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내리막 경사가 있는 길이라 고도가 낮아지며 발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작은 산간 마을 5km쯤 지났을 때 마을베치에또(Vecchietto)를 지나가는데 골목에 우리나라 자동차(현대)가 2대가 있어서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셀카로 기념 촬영을 했다.

20251023_175714.png

마을 골목은 소형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폭이 좁다. 마을 중간쯤을 지나갈 때 예전에 집마다 전화가 없던 시절에 아마 이곳에 와서 전화를 걸기도 하고 받기도 했던 오래전에 폐쇄된 점포를 만났다. 이곳에서 담배도 팔았는지 Tobaco 라고 쓰인 문구가 지금은 흐려진 채 남아있었다.

20251023_180122.png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늘 구간 거리는 짧은데 역시 산길은 평균 시간보다 늘려 잡아야 했다. 마을을 지나갈 때 뒤에서 누가 "천"하고 불러 돌아봤더니 어제 길에서 만난 Parma에서 살고 있는 "댄디"가 인사를 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되는데 붙임성이 좋아 간단한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골목 담장을 따라 향기가 나는 꽃나무를 가리키며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정확한 철자를 알기 위해 내가 휴대폰을 꺼내 구글 검색창을 열고 이름을 입력하라고 했다. 꽃 명은 "giglio" 백합과에 속한 식물로 나왔다.

20251023_180214.png

댄디는 어제 발목을 다쳐서 오늘 Sarzana까지만 걷고 집으로 간다고 하며 갔다.


폰자노 수페리오레(Ponzano Superiore)까지 한시간 이상을 고갯길을 올라가야 했다. 물론 자동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길이라 걷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아무튼 나는 좀 유유자작하며 산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멀리 사르자나(Sarzana)가 보이면서 바다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앞으로도 두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20251023_180311.png

산길을 내려와서도 여전히 도시의 들러리로 길을 옮겨가며 겨우 시내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곳은 좀체 속내를 들어 보이지 않은 비밀의 도시 같았다. 구글맵을 켜고 숙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예약한 주소에 숙소 이름이 없어서 잠시 서있는 동안 건물에서 부부가 밖으로 나와 파로치아 델 까미네(Parrocchia del Carmine) 위치를 물었더니 따라오라고 하며 친절하게 성당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바로 성당 옆에 붙어있는 작은 건물이 내가 예약한 숙소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침 일찍 출발한 프랑스 리옹에서 오신 부부가 바닥에 앉아있다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남아있어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실 이곳 사르자나(Sarnaza) 숙소는 via Francigena 숙소 예약을 하면서 까미노 카페에서 다녀온 분의 후기에 "시설이 굉장히 나쁘다" 라고 말씀을 하셔서 궁금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내 일정표에 ‘시설이 나쁨’ d이라고 명기를 했던 숙소였다.


정각 3시에 어떤 여성이 나타나서 우리를 성당 옆 가건물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숙박 비용 20유로를 받았고 차례대로 건물안으로 들어가서 침대는 골라서 선택하라고 하였다. 베드에는 종이로 만든 베드커버를 계속 사용하여 표면이 부풀어 올라 지저분했고 침대 14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방안에 샤워장. 화장실이 같이 있고 간이 주방에는 오직 낡은 전자레인지만 놓여있었다. 그러자 까미노 까페에 올라온 글을 읽고 숙소를 변경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후회가 되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에서 1km쯤 떨어져 있는 마트에 다녀왔다. 며칠간 마트에 가면 채소와 햄과 소시지가 썩인 볶음밥을 사와서 콜라와 같이 먹었더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왜냐면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을 하려면 요리의 내용을 메뉴만 보고 고르기가 어려웠다. 마트에서 볶음밥은 종류별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밤에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었으나 창문과 출입문 모두 닫아야 하기 때문에 환기가 안되어 냄새도 나고 잠깐 잠든 사이에 베드버그와 모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 잠든 사이에 팔에 벌레가 물어 빨간 자국이 생겼다. 나는 휴대폰 후레쉬를 켜고 베드버그와 모기를 잡기위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 파스를 꺼내 부은 부위에 바르고 나서 침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옷과 침낭을 탈탈 털고 다시 들어갔지만 잠은 더 오지 않았다.


나는 아침 5시30분에 모든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와 짐 정리를 했다. 뒤이어 프랑스 부부도 또 다른 부부도 줄지어 배낭을 들고 나와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6시가 되자 다들 출발하기 시작했다.


via Francigena 22일차 Messa


사르자나(Sarzana) 숙소를 빠져나올 때 또 대문을 열지를 못해 곤욕을 치렀다. 왜냐면 대문에 열쇠를 구멍에 넣어 돌려도 열리지 않아 애를 쓰고 있는데 뒤에 나오던 밀라노에서 왔다는 청년이 문을 쉽게 열어주어 함께 밖으로 나왔다.


청년은 이제 다리가 아파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아주 일찍 메싸(Messa)를 향해 출발했다. 열악한 숙소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숙소였다. 숙소의 시설이나 호스피탈레노 친절을 평가해서 카페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사르자나(Sarzana)에 도착해서 마트에 다녀오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나 숙소에 도착하면 더 이상 걷기가 싫었다. 그래서 아침에 순례길을 나설 때 가능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시내로 들어가서 잠깐씩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내야 했다. 그런데 가끔은 까미노 루트는 당연히 시내 중심거리를 지나가도록 설계되어 있는 듯했다. 그때마다 소홀했던 기억들을 찾아내기 위해 나는 일부러 상가 골목과 넓은 광장을 지나 본래 루트로 들어갔다.


꽃으로 장식한 골목의 상가들은 정말 사르자나가 멋진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예술적인 도시로 시내는 모두 꽃과 소품들 그리고 흥미로운 조각품들이 가게의 쇼윈도에 놓여있었다.

20251023_180506.png

생각지 못한 멋진 도시의 아침 풍경을 만났다. 시내를 빠져나와 강물이 흘러가는 다리를 건너 카니파롤라(Caniparola)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루트가 비교적 순탄해서 마음에 들었다. 두시간 정도 걸으니 콜롬비에라 몰리치아라(Colombiera Molicciara) 마을에서 멋진 익스테리어를 갖춘 바를 만나 안으로 들어갔다.


20251023_180617.png

시골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바에는 동네 노인들이 대부분 손님이었다. 카페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휴식을 취했다. 이 시간이면 매일 집에 전화를 해서 잘 걷고 있다고 보고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분명히 VF 방향 표지판을 보고 걷는데 가끔 앱을 열어 보면 주변의 다른 길을 걷고 있어서 원래 루트와 연결되는 길을 찾아 들어가길 몇 번 해야 했다. 오늘은 또 다리 공사로 길이 끊겨 있었지만 앱에는 그대로 있어서 돌아가기도 했다.


이 곳에도 한동안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이 있었는데 물살에 커다란 수초들이 흔들거리고 있을 때 물고기들이 물의 흐름에 유형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한낮의 기온이 26도까지 올라 아벤자()Avenza)를 지나갈 때 다시 바에 들어갔다. 마침 팔고 있는 또르티야빵과 시원한 콜라 한잔과 올리브 한접시를 주문하여 먹기 시작했다.


마싸(Massa)는 지중해 가까이 있는 도시다. 도보 일정을 변경할 수가 없어 나는 바다에 다녀올 수 없어 그냥 숙소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루카(Lucca)에 가면 친퀘레테에 다녀올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via Francigena 23일차 Camaiore



마사(Massa)에서 출발한 순례길은 숙소 옆 계단을 계속 오르다 주택들 사이의 작은 도로를 만났다. 경사를 따라 주택들이 들어섰고 나는 이제 빨리 지치지 않기 위해 계단이나 오르막을 올라갈 때 반보씩 짧게 걸어가는 습관을 익혔다. 보폭을 줄일수록 훨씬 덜 지친다는 것을 얼마전에 습득했던 것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두고 위 아래에 하얀색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 드러나 보이는 푸른색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바다와 가까워진 것이다. 바로 앞에는 산의 경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갈수록 순백색의 지붕들이 드러나 있었다. 이곳에서 내려다본 마사(Massa) 시내는 산을 끼고 있는 복잡한 도시(바다는 조금 떨어져 있음)였다. 주위는 상당히 경사를 이룬 지형에 구불구불한 도로와 골목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얼마후에 나는 투라노(Turano) 마을을 지나 계곡물도 흘러내려오는 까파네(Capanne)로 갔다. 그곳에는 몇 개의 상점들이 있었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모티노소(Montignoso) 라고 적힌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는 느낌의 건물이 있었다. 나는 바에 들어가 주문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뒤에 줄을 섰다. 종업원들은 모두 단정한 모자를 쓰고 커피와 빵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심심한 빵 치아바타는 ‘겉바속촉’이다. 아메리카노는 빵을 맛있게 먹기위한 최고의 조합이다.


빵 가게를 나와 근처의 아스팔트 언덕길을 오랫동안 무덤덤하게 올라가야 했다. 그러니까 올라가기 바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은 것이다. 길에는 가끔 자동차가 굉장한 소음을 내며 올라오고 내려오는 자동차는 미친듯이 속력을 내며 달려온다. 내가 느끼기에도 레이스를 펼치는 사람들 같을 정도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것이다. 드디어 도로의 정상에 올라왔다. 어제보다 훨씬 가깝게 지중해 바다가 보였다. 마사(Massa)에서 바다에 다녀왔음 했지만 시간내기가 어렵고 교통편도 수월하지 않았다.


길은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지다 스뜨레또이아(Strettoia)라는 마을을 지날 때부터 올리브나무 재배 지역이 늘어났다. 지중해 바다의 해풍이 불어와 기온이 적합할 거라고 생각도 해본다. 이곳을 지나면 순례길 루트는 계속 평지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따라 숲은 건축용 대리석을 만드는 원석을 캐느라 많이 파헤친 광경이 보였다. 시내를 지나가는 도로에는 대리석 원석 광산에서 채굴한 원석을 가져와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공하기 쉽도록 재가공하는 공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근처에 회색 빛 강물이 흘러가는 넓은 개천이 지나가고 대리석을 가공할 때 사용한 물들이 흘러 들어간 강은 이미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20251023_180736.png

나는 한동안 강을 따라 만들어진 강둑을 따라 걸어가야 했다. 그곳에는 대리석을 커팅하여 반 제품을 만드는 공장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제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는 길에 들어선다.


삐에트라싼타(Pietrasanta)라는 마을을 찾아갔다. 이 지역은 대리석을 판매하는 회사와 공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곳에는 ‘까미노 카페’에서 사전에 습득한 정보가 있었다. 한국인 조각가의 작품이 설치되 있는 곳이다. 시내로 들어가는 회전 로터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양팔을 옆으로 뻗고 있는 사람 형상의 대리석 조각상을 드디어 만났다. 삐에트라싼타(Pietrasanta) 시에서 몇 명의 조각가들에게 의뢰하여 설치를 했는데 그 중에 한국 조각가 최윤숙씨가 참여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어느 소도시에 있는 조각 작품, 그것도 이탈리아어가 아닌 한국어로 작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더 자랑스러웠다.

20251023_180851.png

석재산업도시 삐에트라싼타(Pietrasanta)로 들어가는 길에는 역사가 오래된 석재 회사들이 있었다. 20세기 초에 설립한 회사들은 회사의 설립 연도를 자랑스럽게 출입문에 붙여놓었다.


까마이오레(Camaiore)는 역사가 아주 오래된 마을인 듯 대부분 건물들이 낡아 보였다. 그러나 성당에서 운영하는 숙소는 칭찬을 할 만했다. 넓은 방과 시설들 그리고 친절했다.



via Francigena 24일차 Lucca



까마이오레(Camaiore) 숙소는 수도원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호스피탈레노는 젊은 여자분인데 친절했고 시설은 깨끗하고 정리 정돈도 훌륭했다. 심지어 샤워실에 전기 드라이어까지 구비해 놓았다.


며칠간 숙소에서만 만나는 프랑스 부부는 파스타를 항상 맛있게 먹는 편이다. 먹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식사 중에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번역기를 이용해서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남편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었다.


오늘은 토스카나 지역의 대표 도시인 루카로 들어간다. 루카는 투란도트. 라보엠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쟈코모 푸치니(G. Puccini)의 탄생지이다.


숙소를 나와서 어제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 까마이오레(Camaiore) 시내를 지나가는 찻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좁은 인도와 때로는 차도를 따라 걸어가며 표지판을 확인하고 via Francigena 앱도 들여다봐야 했다. 어제부터 이 지역의 까미노 방향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고 앱에 없는 길에 표시를 해 놓아 다시 공식 루트를 찾아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숙소를 출발해서 40분쯤 지났을 때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 일단 배낭 옆 포켓에 있는 작은 우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삐 걸어가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이미 빗물은 신발과 바지 아래쪽을 적셨다.

20251023_180950.png

소낙비는 다행히 약 10분쯤 내리더니 점차 가늘게 바뀌어 갔다. 그리고 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을 지나갈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어오면서 오히려 시원함을 더해주었다.


이제 1시간을 훌쩍 넘겨 몬테마노(Montenagno) 마을을 지나갔다. 주택들 몇 채를 제외하고 주변에는 온통 풀들이 많이 자라는 마치 고립된 지역 같았다. 조용한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고개를 지나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와 바프로마노(Valpromano)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의 ‘Casa del Pellegrino’ 순례자 숙소 앞을 지나가다 건물벽에 Via Francigena 관련 정보가 붙어있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열린 대문안에 있던 주인이 반갑게 안으로 들어와 물 한잔 마시라고 했다. 그는 여자분과 순례자 숙소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며 36개의 침대를 운영한다고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니 쿠키(미나리같은 식물 아니스로 만든)와 주스와 콜라 그리고 물을 가져와 모두 한국에서 온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놀란 것은 이 분이 얼마전에 한국의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서 감옥에 가고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했다는 얘기를 해서 어떻게 아느냐 물었더니 한국 음악과 드라마가 좋아 항상 관심이 많다고 했다.

20251023_181050.png

내가 감사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어제 숙소에서 보았던 여자 순례자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길에서 만난 순례자였다. 호스피탈레노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마을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깔린 조용한 길로 들어섰다. 가끔씩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을 계속 오르다 작은 마을을 지나치더니 그때부터 경사진 내리막길이 계속 나타났다. 나는 경사도가 심해서 걷는데 집중해야 했고 앞쪽으로 발이 밀리는 것을 줄이기위해 지그재그식으로 걸어야 했다. 급 경사진 길을 내려와 자동차들이 다니는 길에 도착하니 앞서 걷던 여자 순례자가 휴식을 취하며 서 있었다. 그 분도 경사진 길을 내려오느라 너무 힘들었다면서 분명히 via Francigena 표시를 보고 걸었는데 이제 앱을 보니 내가 내려온 길이 대체 루트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까미노 루트는 자동차길 옆을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왼쪽 발가락 하나가 아파서 신발을 벗어보니 이미 물집이 생겨 있었다. 몇 년 동안 생기지 않았던 물집이 생겨 걷는데 상당히 불편했다. 배낭 의약품 팩에서 밴드를 꺼내 환부위에 붙여보았다. 경사길을 내려올 때 두꺼운 인진지 양말이 발가락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생긴 물집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오늘 루카까지는 참고 걸어야 했다.


루카(Lucca)로 들어가는 길목인 폰테싼삐에트로(Ponte san Pietro)에 오니까 이미 1시가 되어버렸다.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지나가던 남자에게 근처의 레스토랑을 물었더니 그는 친절하게도 유명한 식당을 알려주겠다고 하며 나를 데려갔다. 종업원이 다가와서 나에게 주문을 하라고 해서 나는 생선요리를 달라고 했다. 레스토랑은 추천을 받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환하고 공간도 넓고 깨끗했다. 대구요리와 맥주 한잔에 샐러드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려 식사를 마쳤다.


나는 이제 포만감에 눌려 더 이상 걷고 싶지가 않았다. 거의 루카 근처에 왔으니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종업원을 불러서 루까로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 위치를 물었더니 바로 앞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루카로 가는 시내버스가 달려왔다. 나는 배낭을 들고 맨 앞좌석에 앉아 아주 편한 자세로 바깥 구경을 했다. 시내로 진입하는 길은 점차 자동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신호등에 대기줄이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루카는 대도시라서 시내로 들어오는 중에 나는 버스를 바꿔 타고 숙소 근처까지 와야 했다. 숙소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넓은 정원 벤치에 앉아있던 주인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신발을 벗고 배낭과 필요 없는 짐은 락카에 두고 필요한 물건은 바구니에 담아 룸으로 들어갈 것을 청했다.



via Francigena 25일차 Altopascio



Lucca에서는 Roma까지 약 380km 정도 남은 거리이다. Via Francigena 여정 중에 유일하게 이틀간 지내는 Lucca에서 어제는 오전 일찍 지중해의 풍경을 보기위해 친퀘테레를 다녀왔다. 그리고 루까로 돌아와서 루카 시내에 있는 대성당 Duomo San Martino와 San Michele을 다녀왔다.


“친퀘테레”는 해안을 따라 형성된 아름다운 마을과 주택들 때문에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20251023_181209.png
20251023_181225.png


참고로 “친퀘테레”는 해안선을 따라 있는 5개 마을로 이탈리아어로 친퀘는 5개. 테레는 마을이라 5Terre라고 하는데 첫 마을 리오마조레에서 페리를 타고 네 개의 마을 전경을 바다에서 바라보며 다섯번째 마을 몬테로소알마레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루카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숙소에 머무는 순례자들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 많아 한 분은 영국 스코틀랜드. 한 분은 프랑스 Sainte Maxime에서 오신분으로 루까에는 여행 겸 순례길을 걸으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다들 부지런해서 아침 시간에는 이른 시간에 출발하시는 분들이 많은 편이었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어제 준비해둔 마들렌과 오렌지주스 그리고 자두 하나로 끝내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는via Francigena 루트에서 꽤 떨어져 있어서 시내의 골목을 이곳 저곳 둘러보며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며 걸었다. 방향은 이제 넓은 도로를 벗어나서 작은 하천을 끼고 지나가는 도로에 들어섰다. 도시의 외곽으로 나오면 세르키오(Serchio) 강을 근처에 두고 순례길은 이어진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적었고 그래서인지 어수선하지 않아 걷기에는 편했다. 알토파시오(Altopasci)o까지는 18km정도여서 평소보다 짧은 거리라 시간적 여유를 부리며 걸어도 괜찮았다.


첫 마을 카파노리(Capannori)에 두 시간 걸려 도착했다. 이제 습관적으로 모닝 커피를 마시면 컨디션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항상 첫번째 마을에 도착하면 바를 찾아보게 된다. 다행히 그곳에서 바를 만나면 아메리카노와 케익 한 조각을 주문했다.


카파노리(Capannori)는 루까를 벗어난 지역인데 신도시처럼 새롭게 조성된 주택과 상가 건물 그리고 넓은 도시 공원 등이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적한 길로 들어가서도 드문드문 단층 주택들이 나왔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인도와 자전거가 따로 지나가도록 조성된 전용도로가 나란히 나타났다.


길 끝자락에서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옷을 벗고 물을 마시기위해 작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의 시야에 간단한 백팩을 메고 있는 세 명의 순례자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모두가 합창하듯 나에게 Ciao(챠오)’와 ‘Buongiorno(부온조르노)를 외치면서 지나갔다.


오늘 두 번째 마을 포르카리(Porcari)에 도착했다. 마을 골목을 지나갈 때 개 짓는 소리. 닭 소리. 그리고 이상한 울음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집에서 키우는 알지 못한 새가 있었다.


20251023_181401.png

마을에는 작은 공장 건물들이 계속 나타났다. 마을은 작지만 시내로 들어오자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자주 지나다니며 다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회전 로터리를 돌아 건물들이 나란히 줄을 세우고 있는 인도를 지나가다 은행 건물 앞에 세워진 벤치에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건물의 지붕 때문에 한낮의 햇볕이 가려져 나는 신발을 벗고 부르튼 발에 바람을 쐬었다. 이제 한 시간 반쯤 부지런히 걸어가면 오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배낭 깊숙이 넣어둔 납작 복숭아를 꺼냈다.


오후 12시 반쯤 알토파시오(Altopascio)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들어섰다.

20251023_181456.png

알토파시오 입구에서 철길을 지나고 이제 마을 중심으로 들어갔다. 제일 처음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찾아 들어갔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상당히 남아있어 점심 식사를 하고 가야 했다. 그런데 식당에는 테이블에 손님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겨우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와서 테이블위에 놓고 갔다. 구글번역기를 꺼내 메뉴를 살피다가 병아리콩과 야채가 들어간 이탈리아 전통 수프(minestrone)와 콜라를 주문했다. 이전부터 병아리 콩이 들어가는 음식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도 실패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수프는 약간 짜지만 그런대로 빵과 함께 먹으면 항상 괜찮았다. 내가 식사를 거의 끝내고 있을 때 어제 숙소에서 같이 지낸 프랑스 여자분이 들어오셨다. 그분은 고기가 들어간 파스타를 주문했다고 했다.


숙소 주소는 구글 맵에서 검색하면 비슷한 이름들이 떠서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프랑스 여자분과 숙소를 찾아와서 대문에 있는 벨을 눌러도 사람이 없는 듯해서 프랑스 여자분이 직접 전화를 했다. 누군가 전화를 받고 3시30분에 문을 열어주고 접수를 받는다고 하면서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그래서 내가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하며 기다리자고 했더니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루까에서 출발하여 걷고 있는 중인데 로마까지 걸어갈 것이며 내 나이를 물어보고 자신도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내년에는 꼭 스페인의 프랑스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체크인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왔다. 무심코 대문을 두드리니 바로 옆 건물에서 할아버지가 나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곳은 숙소의 접수처이고 할아버지는 비용을 받고 숙소로 와서 방을 안내하고 돌아갔다. 비좁은 공간에 7명이 지내야 하는 침대와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전부이다. 프랑스 여자분은 옆 침대에 자리를 잡고 넓은 타월로 칸막이를 만들고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갈 때까지 나는 카미노 카페에 밀린 일기를 쓰고 있었다. 프랑스 여자분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저녁 식사를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상가 건물들이 있는 거리로 나왔다. 내가 구글맵으로 식당을 검색하고 유명한 피자집을 찾아 지도를 보며 피자 전문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손님들이 줄을 서서 피자를 먼저 주문하고 테이블에서 기다려야 했다. 맥주를 따로 주문해서 마시면서 잘 구어 있는 머쉬룸 피자를 먹었다. 프랑스 파리 근처에 살고 있다는 그녀는 정년 퇴직한 학교 선생님으로 지금은 사회봉사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via Francigena 26일차 San Miniato



어제 공간이 비좁은 숙소에서 잠이 들기 전에는 실내가 무척 더웠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지 실내가 추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창문을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아 내가 일어나 창문을 닫고 긴 팔 티 셔츠를 꺼내 입었다.


해가 뜰 시간에 나는 주변 사람들 숙면에 방해되지 않게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신발을 보관해 놓은 옆 사무실로 이동했다. 오늘 목적지까지는 28km를 최소 7시간에 걸어야 해서 이른 시간에 출발하려고 했다. 또 날이 갈수록 오후에는 햇볕이 강해져서 걷는 게 더 힘들었다.


숙소 앞 광장에서 까미노 방향표지판을 찾았다. 그리고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 길거리로 나오다 빵 굽는 냄새가 나서 사방을 둘러보다 근처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를 발견했다. 이곳은 벌써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식사 겸 커피와 빵을 먹기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나를 보더니 “파이브 미닛” (Five Minute)하고 키친으로 들어갔다. 진열장에는 갓 구은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20251023_181610.png

나는 아메리카노 한잔과 참치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골랐다. 이탈리아 샌드위치가 아침 식사를 훌륭하게 해주고 있었다. 푸짐한 참치살과 양 상치 그리고 토마토가 커피와 함께 정신을 맑게 하는 각성제가 되어 주었다. 샌드위치는 양이 많아 남은 부분은 포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일요일 이른 아침에도 손님들이 계속 찾아왔다. 어느새 비어 있던 테이블이 꽉 차버렸다. 종업원들이 주문받기가 어려워 보일 정도였고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부부가 커피와 빵을 먹는 광경도 보였다.


이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길을 나섰다. 우선 거리에서 까미노 방향 표지판을 확인하고 첫 마을 Villa Campanile로 향해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을 걸었다. 나는 잘 조성된 인도를 한동안 걸어갔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경치는 보이질 않았으며 일요일이라 그런지 자동차들은 드문드문 지나가고 따라서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다.


출발을 하고 키가 작은 숲길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닦고 있을 때 절은 남여 순례자가 뒤에서 걸어왔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20251023_181713.png

숲길을 한동안 걸어갔다. 빌라캄파닐레(Villa Campanile)를 지나갈 때 등치가 큰 개들이 거리에서 놀고 있다 앞서 걷고 있는 젊은 순례자 앞을 계속 걸어가며 마치 길을 안내하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숲길을 한참 걸어 갈레노(Galleno)라는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개가 어디론 가 사라져버렸다. 그곳은 갈래노(Galleno) 마을 표지판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어가다 작은 바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기온이 올라가며 이마와 가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바에서 내놓은 테이블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콜라를 주문했다. 바로 옆 자리에 숲 길을 걸어온 젊은 순례자들이 자리를 해서 내가 같이 따라온 개가 마치 우리의 안내 견 같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신기해 보였다고 말했다.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영국 런던에서 왔는데 루까에서 출발하여 이틀째 걷는다고 했다.



바의 테이블에서 얼음이 들어간 콜라와 빵 한조각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려 일어섰다. 잠깐 휴식은 나에게 힘과 에너지를 보내주었다. 다시 출발할 때 나는 배낭 허리띠 수납에 넣어둔 튜브 고추장을 꺼내 한 모금 빨아먹고 시작을 했다. 입안이 고추장 덕분인지 화끈거리며 가슴이 시원해진 듯했다. 오늘은 비교적 숲이 많은 길을 걷게 되어 다행이지만 바람이 전혀 없어서 답답했다.


폰떼까피아노(Ponte a Cappiano)마을을 지나가다 조금 쉬었다 갈까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마을을 빠져나갈 때 공용 주차장이 있는 작은 공원에 벤치가 있었다. 나는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어 젖은 땀을 식히면서 또 토마토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20251023_181814.png

까미노는 철길이 있고 다리를 건너가자 우측에 표지판이 있고 이제 작은 운하를 따라 둑길을 한동안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길도 끝나고 그냥 허허벌판 들판에 나 있는 길을 걸었다. 아쉽게도 최악의 뙤약볕을 그대로 받고 걸어야 했다. 사실 고개를 들고 앞에 보이는 멋진 풍경을 보며 걷고자 했는데 땅만보고 걸어야 했다. 길에는 멋대로 자란 풀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덥고 있어서 스틱으로 계속 제치면서 걸어가야 했다.


푸체키오(Fucecchio)에 들어오자 도로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내 중심 거리로 들어갔더니 마침 결혼식이 끝났는지 성당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나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구글 앱에서 아시안 식당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La Firtuna 라는 식당이 검색되었으며 일본 음식이 메뉴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기대를 하며 그곳으로 찾아갔는데 간판을 봐서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느낌도 들었다. 상가 건물에 있는 식당은 실내가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밝은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서 선택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종업원에게 국물이 있는 미소라면과 새우가 들어간 교자 4개를 주문했다. 점심 메뉴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나는 남김없이 후루룩 남아있는 국물을 모두 들이켰다.


식당을 나와 다시 오늘 목적지 산 미니아토(San Miniato)를 향해 걸어갔다. 오후에는 더욱 기온이 올라가는지 후덥지근하고 걸음은 벌써 더디어 갔다.


멀리 산 등성이 너머에 성체의 높은 탑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이 오늘 내가 가야 할 곳이었다.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고도표에는 마지막 구간이 갑자기 위로 솟아 올라가 있었다. 이제 경사진 아스팔트 도로를 계속 걸어가야 했다. 오후 햇살을 마주하며 한 고개 또 한 고개를 천천히 올랐다. 이제 산 미니아토(San Miniato)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다시 계단을 오르고 다시 오르느라 나는 완전히 지쳐서 빨간 벽돌 건물이 솟아 있는 광장의 작은 공원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숙소 주소에 적힌 건물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구글 맵이 가리키는 주소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며 물었더니 내가 추측한 길과 다른 곳으로 알려줘서 나는 조금 전에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드디어 숙소를 찾아냈다. 숙소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듯 여자 직원이 접수를 받았다. 시설은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녀는 6시에 퇴근한다고 하며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문을 열 때 필요한 비밀번호라고 쪽지에 적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우선 샤워를 하고 햇볕이 많이 들어오는 곳에 빨래를 널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자려고 했다 숙소에 오기전에 보았던 붉은 벽돌의 탑을 보러 밖으로 나왔다. 높은 계단을 몇 차례 올라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이 중세때에는 아주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또 이곳에서는 멀리 아르노강 계곡이 보이고 이 도시는 산 미니아토(San Miniato) 성인을 기리는 도시라고 적혀 있었다

20251023_181913.png


via Francigena 27일차 Gambassi Terme


어제 지겹게 올라왔던 언덕을 다시 내려가 까미노 루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제는 일요일이라 마트가 모두

영업을 하지 않아 오늘 필요한 간식거리를 사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에 걸어가다 마트가 있으면 물건을 사야겠다 고 했지만 마트는 물론이고 아침에 문을 연 바도 보이지 않았다. 배낭에 먹을 것이 없으면 마음이 매우 불안하다. 그론세 앱을 열어 오늘 구간에 음식 표시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4개 마을 중 어느 한 곳도 보이지 않아 마음을 졸이며 걸어야 했다.


까미노는 숙소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와 바로 도로에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후에 곧 깔레자노(Calenzano)를 지나 보리가 심어진 들판을 지나가야 했다. 넓은 들판에는 풍성한 곡식이 익어가고 지나가는 흙길에는 고요함이 남아있었다. 이제 숲이 우거진 야산의 경사진 길로 접어들었다.

까미노는 숙소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와 바로 도로에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후에 곧 깔레자노(Calenzano)를 지나 보리가 심어진 들판을 지나가야 했다. 넓은 들판에는 풍성한 곡식이 익어가고 지나가는 흙길에는 고요함이 남아있었다. 이제 숲이 우거진 야산의 경사진 길로 접어들었다.

20251023_194756.png

. 숲이 우거진 야산도 지나가야 했다. 이곳을 지나면 목초를 기르는 들판이 나타나고 다시 조금 더 걸으면 올리브 나무가 첩첩하게 쌓인 지역을 지나 다시 낮은 키의 포도나무 밭이 나타나기도 했다.


갑자기 길가에 쉼터가 나오고 벤치에는 휴식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이 있었다. 높은 느티나무 가지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는 다섯명의 이탈리아노 남녀 그룹이 테이블에서 쉬고 있었고 나도 비어 있는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땀을 식혔다.


그들 중에는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리더 격인 듯했다. 사람들은 전혀 힘들어 하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그 중에 중년의 남자가 나에게 궁금한듯 어디에서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오스타(Aosta)라고 대답했더니 또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바나나를 모두 먹고 일어나 껍질을 쓰레기통에 넣고나서 먼저 가겠다고 나에게 “부엔 카미노” 하며 길을 떠나갔다.

20251023_194849.png

나는 언덕 길을 올라 산 미니아토(San Miniato)에서 12km 떨어진 마을 코이아노(Coiano)까지 걸어왔다. 그곳에 순례자 한 명이 길에서 서 있었고 주택이 몇 채 있었다. 길거리에 물이 있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물을 채울까 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샘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아 나는 포기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로마까지 312km 남았다는 반가운 표식도 있었다.

20251023_194949.png

좁은 소로를 따라 내려갔더니 이제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토스카나 지역으로 들어가니까 우리가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이 보이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구릉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는 계속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길이 나타났다.


앞이 탁 트이고 넓게 펼쳐지는 목초지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구글 맵으로 감바시 테르메(Gambassi Terme)를 검색했더니 이미 보르고포르테(Borgofirte)를 지나 8km 정도 남아있었다. 족히 두 시간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제 좁아진 길의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젊은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바로 앞에 왔을 때 인사를 하고 이곳으로 오는 중에 바를 본적이 있느냐 물었더니 없다고 하면서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느냐 하고 물어왔다. 내가 물을 사야 한다고 했더니 그가 본인의 물이 많으니 덜어주겠다고 하면서 2리터 생수병을 배낭에서 꺼냈다. 내가 물이 있다고 했는데도 생수병을 나 한테 내밀어 내가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에 가득 채워주고 떠나갔다. 그의 고운 심성에 또 천사 같은 젊은 사람을 만나 고맙고도 훈훈한 마음이 들어 나도 다른 순례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20251023_195054.png

오늘은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는 구릉들을 따라 올리브 나무를 기르는 농원을 여러 차례 지나갔다. 아마도 이 지역은 건조하고 햇볕을 많이 받는 지역이라 올리브나무들이 잘 자라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숙소가 있는 감바시테르메(Gambassi Terme) 약 3km 전에 농촌형 호텔을 지나가는데 아주 작은 노란색 차가 그곳에서 나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왜냐면 비포장길이라 흙먼지가 날리므로 자동 차주인도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먼지가 없어질 때를 기다리다 문득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할 걸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별수없어 3km 정도를 걸어서 목적지에 가야 했다. 그래서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가는데 조금후에 그 노란색 차가 천천히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하기위해 손을 들었더니 주인이 문을 열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Gambassi Terme”까지 얼마 더 걸어가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3km 남았다고 했다. 나는 다리가 아프니 택시비를 지불할 테니 그곳까지 태워달라고 하였다. 남자는 “지금 일하러 가야 한다” 며 거절을 하고 다시 출발을 했다. 나는 실망해서 먼지가 쌓인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까 남자가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차를 돌려 나에게 로 왔다. 나는 이 길에서 두 번째 천사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많은 감사를 표하고 편한 마음으로 숙소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내일 먹을 간식거리를 사러 마을의 중심에 있는 마트를 찾아갔다. 숙소에서 마트는 정작 1.3km 떨어진 지역에 있고 상당히 경사진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나타났다. 그런데 이 길은 내일 다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 예습하듯이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마을은 작아서 마트라고 하는 곳에는 과일이나 빵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토마토 한 개와 비스킷 그리고 생수를 사고 나와 상점들이 있는 건물을 돌아보다 일상용품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충전기 사용 모기 퇴치기를 구했다.


숙소의 같은 룸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체격이 좋은 중년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같이 지내는 동안 거의 윗옷을 벗고 다녔다. 그래서 폴란드 출신 젊은 여자와 밀라노 출신 젊은 남자는 그가 밖으로 나가면 나를 쳐다보며 옷을 입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댔다. 여러 사람이 지내는 공간에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이 곳에도 불편한 일이 생겨나고 있어서 씁쓸했다.


via Francigena 28일차 San Gimignano



며칠간 날씨가 매우 더워지면서 밤이면 모기들이 숙소 곳곳에 가득했다. 룸에 들어가도 또 밖에 있어도 모기에 자주 물려 발갛게 부은 부위에 물파스를 바르며 지내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제 마을에서 구한 충전기용 모기퇴치기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어제 숙소에 주문한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 또 걸어야 할 구간을 위해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오후에 마을에 가느라 한번 걸어본 도로를 따라 경사진 언덕길을 올랐다. 아침이지만 벌써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오늘은 다행히 via Francigena 구간에서 가장 짧은 14km 구간을 걷는다. 중세시대부터 지역 특성상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위해 평지보다 언덕에 성을 쌓고 성당을 세워 시민들은 그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건물들이 모두 언덕위에 형성된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맨 꼭대기 마을로 다시 들어서고 어제 다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었다. 그것도 잠깐 걷다 보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왔다. 아무튼 힘이 들지 않아 편안한 걸음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길은 이내 평지를 내려서고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량들이 쉼 없이 지나갔다.

한 시간을 훨씬 지나고 조용한 비포장길을 만났다. 그리고 오랜만에 앞에 순례자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루카부터는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20251023_195156.png

이제는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를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 시야가 탁 트인 구릉을 따라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풍경과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을 테이스팅하며 숙박을 제공하는 농촌 호텔도 많이 보였다.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이탈리아 전체의 4.5%이며 키안티(chianti)와인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 지역에 들어서며 비포장 길이 많아졌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흙먼지가 공중으로 많이 날라와서 코를 막고 잠시 제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며칠간 건조한 날씨라 계속되어 땅은 말라 있었고 그 위에는 부스러진 흙들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성모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는 성당을 지나치다 와인 삽 건물이 보였다. 또 테이스팅하는 곳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건물을 만났다. 건물 벽에는 흥미로운 벽화와 소품들을 많이 붙어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스탬프를 찍겠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건물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실내에 가득 채워 놓은 와인들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와인을 테이스팅하며 쉴 수 있는 근사한 응접세트가 있었다. 주인이 크리덴셜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일본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더니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대만이냐고 물었다. 내가 " 꼬레아노"하고 대답했더니 기대를 벗어났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매대 앞에 진열되어 있는 기념품을 사라고 권유를 했다. 와인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스탬프를 찍어주고 무려 10.9유로하는 조그만 나무 펜던트를 권유하는 상술이 얄미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와버렸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녀가 “꼬레아노” 혹은 로마까지 걷느냐 하고 질문을 했으면 주인에 대한 예의로 기념품을 구매했을 텐데 하고 오히려 불편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20251023_195302.png

이제 다시 높게 자란 나무들이 있는 숲길을 지나갔다. 거의 2시간이 지날 때 길을 따라 전원 주택을 대여하는 건물들이 자주 보였고 이곳에는 사람들이 바비큐 숯불을 피우고 테이블에는 와인과 샐러드와 다른 음식도 보였다. 이곳은 판골레(Pancole)라는 마을이었다. 도로는 계속 비포장길이었다. 주변에는 이탈리아의 최대 와이너리가 많은 지역이고 이곳을 여행삼아 찾아와 며칠씩 머무르며 와인을 테스팅하고 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근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가다 순례자 형상이 그려진 안내판과 호텔이 있었다. 이곳도 물론 와이너리를 여행하는 손님들을 위한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호텔은 크지 않지만 종업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바에서 오랜만에 카페콘레체를 주문하고 밖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제 구입해둔 마들렌 빵을 꺼내 비어 있던 속을 채웠다. 나의 건너편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호텔 투숙객들이 테이블에 앉아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0251023_195411.png

이곳을 지나면 도로와 주변의 구릉들에 보기 좋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자주 나타났다. 호텔을 떠나 약 20분쯤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주택들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에서 “부엔카미노” 하고 외치는 남자가 있었다. 내가 돌아보았더니 손을 흔들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서 "꼬레아노 했더니 자기가 한국전쟁때 미군을 도와 서울에서 일을 한적이 있다고 했다. 나도 반가워 그 이후로는 한국에 간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2008년에 부산과 서울을 다녀왔다고 하며 한국 드라마를 가끔 본다고 했다.

20251023_195509.png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가급적 천천히 걸었지만 12시쯤 어제처럼 높은 언덕에 있는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마을 초입에 있는 성문을 지나갔다. 언덕을 오르느라 이미 땀을 많이 흘려 입구에 있는 수도물로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상점에서 시원한 콜라를 한 병 사와 벤치에 앉았다. 이곳은 의외로 여행을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아 보였다. 토스카나 지역의 대부분 마을들이 관광지역이라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도 마찬가지로 역사가 오래된 중세시대 성곽이 그대로 남아있고 상당히 규모가 큰 성당이 있었으며 박물관도 있었다. 중앙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있고 성당 앞 광장에는 신기한 음악기구로 연주를 하는 사람 때문에 주변에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0251023_200250.png

나는 숙소 체크인이 3시라고 알고 있었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길에서 기다릴 수 없어 구글맵에 있는 주소를 보고 숙소를 찾아갔다. 물론 문은 잠겨 있었고 방법이 없어 다시 광장 쪽으로 갈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나왔다. 그에게 번역기로 오늘 예약한 순례자라고 했더니 어디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3시30분에 문이 열린다고 하면서 일단 건물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방 열쇠를 주며 수속은 나중에 처리를 하라고 했다. 일단 그가 지정해준 방으로 가서 열쇠를 넣어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에 침대가 2개있었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치루는 순서대로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까미노 카페에 후기를 작성하다 잠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치스테르나(Piazza Della Cisterna) 광장으로 나왔다. 젤라토 가게 앞에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사기위해 줄을 길게 서 있어서 무슨 이유인지 챗GPT에게 물어봤다. 이 가게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Gelateria Dondoli (젤라테리아 돈돌리)이며 주인인 Sergio Dondoli (세르지오 돈돌리)는 세계 젤라토 챔피언 출신으로 Gelato World Championship 2006년, 2008년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맛은 Crema di Santa Fina (산타 피나 크림, 지역 수호성인 이름) 과 Champelmo (스파클링 와인 + 자몽) 및 Zabaione, Pistachio, Ricotta e Mirtilli 등이다.

20251023_200350.png

via Francigena 29일차 Monteriggioni



산지미냐노(San Gimignano)는 역사가 오래된 중세 마을이라 성벽이 남아있었고 그 안에는 상가와 음식점. 옷과 기념품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된 성체는 훗날 후손들에게 관광객을 불러들여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사실 며칠간 지냈던 숙소들은 모두 높은 언덕위에 있었다. 관광객들이 토스카나 지역의 화창한 날씨와 넓은 구릉들과 이곳에 자리잡은 포도밭과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한가로운 풍경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곳을 지나가며 지냈던 숙소의 마을에는 예상밖으로 중국인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어와 일행들이 길거리 테이블에서 피자를 먹으며 여행의 즐거움으로 들떠 있는 광경을 여러 번 접하게 되었다.

오늘 구간은 약 31km를 걷는 곳이다. 숙소를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어제 공부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와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서성대는데 젊은 남자가 걸어왔다. 그래서 먼저 인사를 하면서 콜레디발델사(Colle di Val d' Elsa) 가는 130번 버스타는 곳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135번 버스가 나타나고 젊은이가 출입문이 열린 기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나보고 빨리 버스를 타라고 했다. 그리고 이 버스 종점이 내가 내리는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나에게 친절을 베푼 젊은이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하며 지금 대학생인데 꼭 한 번 가고 싶다고 했다.

20251023_200534.png

버스를 타고 12km지나오는 바람에 시간 여유가 생겨 근처 광장의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인테리어가 마치 고급 호텔의 카페처럼 느껴졌다. 이때 아내에게 카톡으로 전화를 했다. 매일 아무 탈 없이 안부 전화를 해야 했다. 식구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함이다.


이탈리아 전통 빵 치아바타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일어섰다. via Francigena 표지판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의 인도를 따라 계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루하게 느껴질 동안 까미노는 좀체 도로를 벗어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때 나는 가능하면 우측에 나 있는 길을 걸어갔다. 앞에서 다가오는 괴물 같은 대형트럭들을 마주하며 반복적으로 긴장을 해야 하는 것이 싫어서 우측길로 걸었다. 30분이 훨씬 지나 마침내 우측으로 들어가는 시골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비포장도로는 흙이 말라 거의 분말이 되어 도로에 수북이 쌓여 있다가 지나갈 때마다 흙가루가 분산되며 피어올랐다. 갑자기 이런 길로 자동차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긴장하며 미리 길 밖으로 벗어나 손 바닥으로 코를 막고 서 있었다. 그때마다 자동차들은 아주 천천히 내 앞을 지나쳐갔다. 그런데 이런 길이 시간이 꽤 지났지만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또 가로수가 없어서 뙤약볕을 받으며 걸어야 해서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걸어야 했다.


이제야 아바디아 아 이솔라(Abbadia a Isola)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의 집집마다 담벼락 가까이에 붙여 심어놓은 쟈스민꽃들이 향기를 발산하고 있어서 나는 오랜만에 꽃 향기에 취해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있었다

오늘 목적지 몬테리조니(Monterriggioni)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섰다. 초입에 Bar dell'Orso라는 레스토랑에 남아있는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북적거렸고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은 출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나는 지나가는 종업원을 붙들고 혼자 앉을 자리를 겨우 허락받아야 했다. 자리에 앉고서도 종업원들은 손님들 오더를 처리하느라 얼마나 바쁜지 내 주문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나가버릴까 여러 번 고민하고 있을 때 야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나는 오더를 받을 종업원을 기다리며 앞에 앉아있는 부부가 먹고 있는 요리를 유심히 보고 있다 종업원에게 부인이 먹고 있는 음식과 같은 요리를 달라고 했더니 그것은 토끼고기라고 했다. 나는 급히 돼지고기 갈비 한 조각과 샐러드로 선택을 달리했다.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서 그런지 적당히 구어 나온 돼지 갈비는 맛있었고 콜라와 딱 안성마춤이었다.


배불리 음식을 먹고 난 후에는 걸음이 느려졌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또 다시 힘들었다. 레스토랑 앞 길 건너에 개울을 지나더니 이후부터 아주 급하게 성벽을 향해 올라가는 경사길이 나타났다.

몬테리조니(Monterriggioni) 마을도 역시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곳에는 아직 튼튼한 성벽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 성곽안에는 지나온 마을과 똑같이 바와 식당. 호텔과 기념품 가게들이 골목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20251023_200651.png


via Francigena 30일차 Siena



오늘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대도시 씨에나(Siena)로 들어가는 날이다. 이곳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고 15세기까지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십자군 원정의 통과점이 되기도 했다고 소개되고 있었다. 이웃 도시인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쇠락하여 중세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될 수 있으며 시청이 있는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을 중심으로 중세 자치 도시들의 설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이탈리아의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위키백과”는 소개하고 있다.


아침에 높은 지대를 떠나 약 6.5km 떨어진 라 빌라(La Villa) 마을을 지나 토스카나 지역의 특징인 광활한 구릉지로 들어섰다 주변은 드문드문 사이프러스나무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있는 풍경. 그리고 변함없이 목초지에 잡초를 키워 어느정도 자라면 트랙터들이 지나가면서 돌돌 말아 한 단씩 만들어 그대로 둔 풍경들이 계속 나타났다.

어제 지낸 숙소는 마을을 구경하러 많은 관광객들로 마을이 북적거렸는데 밤이 되면서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라지며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숙소 시설은 매우 열악해서 룸은 공간이 거의 없어 이동하기도 불편하고 환기가 안되어 답답했다. 나는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와 성문을 나서고 어제 다녀왔던 수퍼마켓을 지나 순례길로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했다. 첫째 마을 La Villa로 들어섰다. B&B를 하는 주택 앞에 Bar를 운영한다고 홍보를 해서 안쪽을 보니까 남자 주인이 “커피?” 하고 묻는다. 주인이 출입문을 열어주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재치 있는 소품들이 마당에 가득 차 있었다. 호기심으로 구경을 하며 우선 화장실을 찾아갔다. 화장실 시설은 고급스러울 만큼 반짝거렸고 깨끗했다. 여러 곳에 배치한 꽃나무들과 쉼을 제공하는 시설들도 상당한 열성이 베어 있어 보였다.

20251023_200804.png
20251023_200856.png
20251023_200913.png

내가 카페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했더니 이곳에서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은 말하지 말고 먹으라고 하며 비용은 기부제라고 했다. 그곳에는 커피뿐만 아니라 케익. 생수. 요구르트. 계란. 사과. 비스킷 등 종류도 많았다. 그가 순례자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책꽂이에서 무슨 책을 들고 와서 나한 테 보여주었다. 한국인 커플이 이곳에 들러가며 선물로 준 책이라고 했다. 그 책은 내가 via Francigena순례길 오기전에 읽었던 김혜지 작가의 "이태리에 살고 있습니다 " 와 같은 책이었다.

아주 뜻깊은 경험을 한 바를 나와 다시 후꾼 달아오른 태양 아래 가로수가 전혀 없는 농촌의 흙 길을 걸어가야 했다.

20251023_201106.png

지난하게 지나가는 길은 무려 4시간 가까이 14km를 걸어서 드디어 시에나 근처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가 자동차들로 정체 되어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는 도시로 들어가는 풍경이 자주 나타났다. 이때 작은 개울이 지나가는 다리위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남자 둘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 친구 사이인데 목적지가 “시에나”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고 했다.

그들은 걸음이 빨라 시내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빠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후에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늘 숙소는 두오모성당 (Duomo di Siena) 근처에 있었다. 대성당 박물관으로 들어가 접수처에서 숙박에 관한 예약 이메일을 보여 주었는데 직원이 예약 내용이 없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직원이 침대가 비어 있으니 사용하라고 출입문의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숙소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복도를 따라 룸들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샤워를 하려면 0.5유로짜리 코인을 넣으면 10분간 물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샤워를 위해 몸에 비누칠하고 잠깐 머리 감는 순간 물 공급이 끊겨 준비하고 있던 코인이 다시 넣고 샤워를 끝내야 했다. 사실 물 절약인지 수도요금이 아주 비싼 도시라서 함부로 물 사용을 금지하는지 안타까웠다.

20251023_201201.png
20251023_201242.png


via Francigena 31일차 Ponte D'Arbia



이제는 낮 최고 기온이 연일 35도까지 올라갔다. 오전10시가 넘어가면 이내 후끈한 날씨가 시작되고 바람도 전혀 불지 않아 걷기에 매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가로수조차 없는 길은 말라버린 흙이 분진처럼 깔려 있었다.

어제 까미노 카페 지인인 윤안셀모님과 오랜만에 보이스톡을 했다. 나보다 3일 앞서 걷고 있는 그는 어제 무더위에 산퀴리코도르차(San Quirico d'Orcia)에서 라디코파니(Radicofani)까지 32.6km를 걷고 나서 열사병에 걸렸는지 온종일 머리가 아파 약을 먹었는데도 낫질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낮 시간에 종일 햇볕을 받고 걷는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깊은 생각에 빠져버렸다.

아침에 빵과 오렌지주스와 요구르트를 가지고 작은 로비가 있는 곳의 테이블로 가서 아침식사를 할 때 어제 룸의 창문을 열어두지 말라고 하고 소리치던 노년의 부부가 먹을 것을 들고 나와서 내가 챠오(Ciao)하고 인사를 했더니 마지못해 응답을 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폰테 트레사 (Ponte a Tressa)로 먼저 이동하기 위해 시에나 역으로 갔다. 그런데 시에나 역사는 상당히 독특한 구조로 건물이 되어있었다. 도로에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8층이나 이동하는 동안 다양한 상점들과 식당들이 있으며 맨 마지막 층에 내리면 그곳에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이 있었다. 만일 탑승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들은 맨 아래층까지 내려가는데 조바심을 내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탑승 시간이 남아 기차역 카페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커피와 빵을 주문해서 들고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무심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걷지 않고 잠시라도 기차를 타고 가는 순간은 “왜 이리 즐거울까” 라고


남은 커피를 모두 비우고 나는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갔다. 플랫폼에는 단순해 보이는 단지 3량인 열차가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었다. 출발 시간에 정확히 플랫폼을 떠난 열차는 도시와 농촌을 지나 어느새 내가 내려야 할 작은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곧 via Francigena 루트로 들어가서 걷기를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강렬한 햇볕이 길에 내리고 꿉꿉한 습도가 잠시 걸음을 옮긴 후에도 땀으로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환경에 누적되어온 나의 컨디션은 더위 때문에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피로가 가중되기 시작했다. 쿠나(Cuna)라는 주택이 몇 채 없는 작은 마을을 지나고 곧장 넓은 목초지 사이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을 걸어갔다. 물론 가로수는 없었고 바람도 불지 않은 마치 프랑스길의 메세타를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내 앞에 보이는 것은 계속 오르내리는 구릉들에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일렬로 서있는 풍경만 보였다.

20251023_201352.png

20251023_201433.png

몬테로니다르비아(Monteroni d'Arbia)를 지날 때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자동차 조차도 만나기 힘든 외진 길에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20251023_201535.png

그곳을 지나가자 홀연히 나타난 철길 순례길을 따라 걷는 일은 무척 힘든 구간이었다. 뙤약볕 때문에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풀 사이로 만들어진 좁은 길을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걷다 보니 맥이 풀렸다.

20251023_201632.png

이렇듯 허겁지겁 앞만보고 걸어왔던 좁고 거친 길이 폰테 다르비아(Ponte d'Arbia)에 들어가면서 끝이 났다.


숙소 앞에 그럴듯한 레스토랑이 있어서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들어갔다. 평소 잘 안 마시던 맥주를 마시면서 말라 있던 목을 축였다. 그러나 메뉴에서 발견한 병아리 콩 수프는 기대를 깨고 짠맛 때문에 거의 반을 먹지 못하고 나왔다.

레스토랑 건너에 숙소가 있어서 길을 건너갈 때도 대형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다녀서 행렬이 끊길 때까지 길에서 기다려야 했다. 숙소에는 정원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곳은 반나절을 이용한다는 ‘핼프보더’ 서비스가 있었다. 숙소에서 저녁과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라 순례자들이 대부분 신청하는 서비스였다.


이층에 있는 룸으로 들어가자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내는 소음이 전달되어 몹시 신경이 거슬렸다.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면서 내는 소음은 밤에 모기 때문에 창문을 닫아야 했지만 실내가 더워서 밤새 땀을 흘려서 수면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이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라 바를 겸한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고 특이하게 약국이 있었는데 어제 걷다가 미끄러져서 상처가 난 팔목 부위에 필요한 밴드를 사러 갔더니 값이 우리나라의 세 배정도는 비싸게 받아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식사를 숙소 주인이 간단하게 준비를 했다. 이곳은 기부제이기 때문에 순례자 8명이 모두 참석했다. 간단하게 이태리 전통 음식 리소또와 샐러드. 와인과 아이스크림을 내왔다.



via Francigena 34일차 San Quirco d'Orcia



오늘 찾아가는 마을 이름을 읽기 어려워 몇 번을 외워봐도 정확히 발음하기가 어려웠던 곳이다. San Quirico d’Orcia(산 쿠이리코 도르차). 이곳은 발 도르차(Val d’Orcia) 계곡 안에 있는 아름다운 중세 마을로 대표적인 풍경인 사이프러스 언덕길(Cipressi di San Quirico)이 사진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토스카나의 상징”이라 부르는 장소로 와인과 올리브오일 재배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봄철에는 Orcia Wine Festival이 열리는 곳이다.

San Quirico d’Orcia(산 쿠이리코 도르차)까지 26.5km를 걸어가야 한다. 같은 룸에 있는 순례자들이 더위지기전에 걷기위해 새벽부터 숙소를 나서기 시작했다. 나는 5시30분에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왔지만 그래도 일출이 빨라 막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까미노 루트는 바로 인근 야산의 고갯길로 올라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여지없이 윗옷이 젖기 시작했다.

20251023_201809.png

지금 시간이 막 6시가 지났는데 토스카나의 상징인 구릉들 위로 붉은 여명이 치솟기 시작했다.

20251023_202232.png

멀리 바라보이는 마을의 들에는 낮은 안개가 자욱하고 구릉에는 아직 이른 시간 때문에 옅은 안개가 깔려 있고 습도도 높아 옷 이랑 배낭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오늘처럼 불어오는 바람도 전혀 없는 날은 얼마나 더 더울지 걱정이 앞섰다.

구릉과 구릉 사이의 야산의 고갯길을 올라가다 앞에서 쓰레기 수거 트럭이 굉장한 속력을 내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트럭 뒤로 흰 분말의 흙먼지가 공중으로 분산될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나는 옆 길로 벗어나 이슬이 맺혀 있는 풀섶에 서 있었다. 운전사가 나에게 손을 들고 미안한 표정을 하며 지나갔다.

오늘도 오르내리막을 반복하지만 그래도 내려가는 길이 나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부온콘벤토(Buonconvento)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모닝 커피를 한잔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의 고장 답게 도로를 따라 주변에는 와인과 관련한 광고가 많아 보였다. Centro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았는데 근처 바에서 이탈리아노 순례자 “세르지오”를 만났다. “세르지오”는 태생은 이탈리아이지만 현재는 프랑스 리옹에 산다고 했다. 그는 성격이 쾌활하고 인정이 많았다. 나보다 10살이 적은 나이라서 그런지 체력이 좋아 걸음이 굉장히 빨랐다.

나는 이곳에서 공공버스를 타고 다음 마을 토레니에리(Torrenieri)까지 간 다음에 다시 걸어서 오늘 목적지 San Quirico d’Orcia(산 쿠이리코 도르차)로 가기로 했다. 구글 맵을 이용해서 공용 정류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고 기다리다 10분 늦게 들어선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오늘이 토요일이고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나 밖에 없어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는 약 7분뒤에 목적지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정류장 근처에 마을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이 있어서 무심코 벤치에 앉아 우선 집에 전화를 했다. 아내의 음성이 들려오자 나는 이제 로마까지 열흘이 남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51023_202328.png

그런데 도로 표지판에 Roma 라는 글이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경부고속도로 천안쯤 오면 서울 방향 표시가 나타나듯이 슬슬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딱 열흘 뒤에 로마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로마에 도착하는 24일 오후에는 다음 날 계획된 교황님 알현 미사 참석 티켓을 받고 다음 날 10시에 미사에 참석하면 이번 순례길 일정은 끝난다.

세상에 쉬운 거 없는데 지금 남은 7.5km가 이렇게 길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잠깐 쉬었으면 하고 계속 적당한 장소를 찾았으나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어 땅바닥에 팜플렛을 깔고 앉아서 땀을 닦고 텀블러에 담아 둔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먼 발치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차량이 보여 내가 손을 들어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렸다. 자동차는 속도를 빨리 낮추고 천천히 내 앞을 지나갔다.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나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웃음으로 나에게 미안함을 대신했다.

길을 따라 계속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무덤덤한 길을 지나갔다. 이때 반대편에서 부부가 배낭을 메고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궁금해서 "어디에서 출발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로마에서 출발했는데 그냥 북쪽 방향으로 매일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부는 뉴질랜드 사람들이고 하루에 10km 걷고 있다고 했다.

드디어 오늘 목적지 산 쿠이리코 도르차 (San Quirco d'Orcia)에 들어왔다. 오늘도 목적지가 멀게만 느껴진 하루 같았다. 마을은 중세시대의 번성했던 토스카나 지역 도시였다. 마을 중심에는 성당이 있고 주변은 아주 오래된 회색 빛 건물들이 차지하고 주로 기념품이나 일상용품을 파는 상점과 식당들 또 바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골목을 지나다녔다.

거리에는 벌써 저녁부터 시작하는 축제를 준비하느라 주민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좁은 도로를 따라 축제를 위한 장식들이 이미 준비가 되어있고 주민들은 화려하게 옷을 입고 거리를 오가며 포장 마차들이 열을 지어 낮부터 먹을 음식을 파느라 분주했다.


via Francigena 35일차 Radicofani



오늘 via Francigena 루트에서 순례자들에 가장 악명높은 난이도 별 4개. 거리 32.6km 구간을 걸어야 했다. 며칠전에 이곳을 먼저 걸어간 지인 윤안셀모 선생이 이 길을 걷고 숙소에 도착해 머리가 너무 아파 약을 먹은 구간이다. 바람도 없고 뙤약볕을 받으며 갈리나(Gallina)를 지나면 이후 14km 구간은 처음부터 오르막 길이다. 멀리서도 라디꼬파니(Radicofani) 탑이 보일정도로 높은 지역으로 계속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다. 나는 오늘 일정을 산 쿠이리코 도르차 (San Quirico d’Orcia)에서 택시를 이용해 갈리나(Gallina)까지 간 다음 시작하자고 계획을 세워두었다.


어제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 오늘 7시 40에 출발하는 택시를 예약했었다. 아침 일찍 나를 태워줄 택시를 마을의 약국 앞에서 기다렸다. 정확하게 자동차가 나타나서 경적을 울렸다. 기사가 배낭을 받아 트렁크를 열고 집어넣은 다음 뒷좌석에 앉으라고 했다. 잠깐 사이에 아스팔트 길을 지나온 택시는 나를 Via Francigena 표지판이 도로에서 살짝 벗어난 길 초입에 세워졌다.

나는 억새처럼 빛 바랜 잡초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스틱으로 의지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변은 오랜 가뭄 때문인지 모두가 온통 말라 있었다. 그래도 그 곳에서도 꽃을 피우며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꽃나무들이 있었다.

20251023_202434.png

이곳을 지나갈 때 강인지 개천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물이 흐르지 않아 말라 있는 웅덩이는 색깔이 흙색으로 변해 있었다.

20251023_202536.png

오전 9시가 넘어가자 이제 날씨가 후꾼 달아올랐다. 라디꼬파니(Radicofani) 가는 길은 마을도 없었다. 그저 가끔 창고 같은 농사용 건물만 눈에 띄었으며 지루함이 시작되었다. 물 파우치에 채워둔 생수를 어제 지냈던 숙소의 냉장고에 두었더니 다행히 시원한 물을 계속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이제 작은 자갈 돌을 깔아 놓은 고갯길이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특이하게 농촌을 지나가는 길은 여지없이 비포장길이었다. 그래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먼지가 날려 사라질 때까지 제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라디코파니(Radicofani)로 가는 길은 스틱에 의지하며 올라가도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야 했다. 이윽고 오후로 들어서자 기온이 35도를 넘어가며 몸이 지쳐갔다. 가끔 보이는 나무 그늘아래에서 배낭을 눕혀놓고 등을 대고 눈을 감고 쉬어야 했다. 그때마다 수면 시간이 짧았던 탓에 그만 잠이 오려고 해서 물 파우치 꼭지를 빨아 물을 마시면서 정신을 차려갔다. 스틱을 접어 배낭 옆 사이드 포켓에 넣고 햇볕을 피하기 위해 아예 작은 우산을 꺼냈다. 우산을 들고 모자를 아예 벗어 머리에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입안이 마르며 속이 답답해서 배낭 벨트 수납에 넣어둔 소고기 고추장 튜브를 내서 연속해서 두 번을 빨아먹었다. 입안에 매운 기가 돌면서 속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야 기운을 낼 수 있었으며 사탕도 꺼내 먹으며 당 보충을 했다. 마치 필사의 탈출을 위해 온갖 것을 하는 사람 같았다. 비포장길을 빠져나오자 자동차들이 마구 속력을 내면서 달려가는 아스팔트길이 나왔다. 이제야 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탑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에는 라디코파니(Radicofani) 안내판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붙여 놓은 스티커들이 바탕 전면에 도배질이 되어 있었다.

20251023_202637.png

이렇게 높은 곳에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야 했던 중세시대 사람들은 먹는 물을 아래쪽에서 높은 곳까지 끌어올려야 했을 텐데 그들의 해결 방법이 궁금했었다.


마침내 숙소에 접근하는데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숙소 출입문에 고객 안내문이 붙어있었는데 근처의 관광안내센터에 와서 체크인을 한다고 되어있었다.


마을을 나와 도로 가에 있는 관광안내센터를 찾아갔다. 체크인 방법은 침대 사용료를 지불하고 대문 열림 코드를 받아 정해진 방으로 가는 것이다. 실내는 시설이 매우 열악했고 창문이 너무 작아 통풍이 안되어 실내는 후꾼 달아오르는 열기가 가득했다. 이때 자전거로 순례길 다니는 라이더 둘이 짐을 가지고 들어와 옆 침대를 차지했다. 그러더니 그들의 땀 냄새가 룸 안에 퍼지면서 그대로 지내기가 어려워 나는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따라 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때마침 그곳에 지난번 같이 지낸 리옹의 세르지오가 다른 순례자와 성당 앞 계단에 앉아있다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했다. 우리는 바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같이 먹고 일어섰다.



via Francigena 36일차 Aquapendente



어제 힘들게 올라왔으니 오늘은 내려간다는 보상으로 난이도가 별 하나 있는 날이다. 그러나 출발부터 내리막 경사가 심해서 편하게 걷지는 못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높게 솟아 있는 타워를 쳐다보며 별 생각을 다했다. 성주 누군가는 국민들을 동원하여 이렇게 높은 곳에 성을 만들고 권력을 누리던 그 당시 국민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20251023_202802.png

고불고불 휘어지는 길을 내려갔다. 그 길은 걷기도 힘든 자갈 돌을 깔아 놓아 걸음이 매우 불편 해졌다. 그러는 사이 가끔 지나치는 자동차들은 속도를 내기위해 굉음을 내며 올라갔다. 흙먼지가 또 피워 올랐다. 오늘은 내려가는 길에서도 온전한 걸음을 위해 힘을 써야 할 정도로 긴장하며 내려갔다.

곧게 뻗은 평지로 내딛은 시점까지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려야 했다. 그렇게 계속되던 길은 넓은 잔디 마당이 있는 큰 주택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근처에 잠깐이라도 쉴만한 곳을 찾아 두리 번 거리다 건물의 귀퉁이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물을 마시며 땀을 닦아내고 긴 호흡을 연신 해댔다.

배낭을 들쳐 메고 일어서 평탄한 길에 들어섰다. 폰테아리고(Ponte a Rigo)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이곳을 나서면 지금부터 순례길은 자동차들이 달리는 길과 연결된다. 도로에 들어서기 전 벤치가 있는 쉼터에 순례자들 네 명이 모여 있었다. 숙소에 같이 지낸 뉴질랜드 부부와 동양 사람 모습이 보여 걸어갔더니 여자가 "천선생님?"하고 여자가 물었다. 한국인 젊은 부부가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로마를 출발해서 역방향으로 via Francigena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며칠 전 숙소에서 만난 윤안셀모 선생님이 길에서 나를 만날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윤안셀모님 근황도 그리고 부부의 트레킹 경험과 고생담도 듣고 헤어졌다. 나는 그들에게 육포와 커피를 건네고 헤어졌다.

이제 그동안 걸어왔던 아름다운 땅 토스카나 지역을 벗어났다. 난다. 그리고 이제 섽테노(Centeno)로 가야 했다.

20251023_202903.png
20251023_202949.png

그런데 이 길은 갓길도 따로 없는 그냥 길게 뻗은 자동차 도로였다. 누군가 도로가 에서 노란 우산을 쓰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숙소에서 같이 지낸 네덜란드 노년의 남자이다. 부인은 안보이고 남편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었다. 내가 “아유 오케이”하고 물었더니 나는 힘들어서 오늘 걷는 것은 끝났다. 그래서 차를 얻어 타고 가야 한다. 부인은 그냥 걷겠다고 가버렸다며 그는 다가오는 차량을 세우려고 계속 손을 들어도 자동차들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곳을 떠났고 그 노인은 분명히 히치하이킹에 성공했을 것이다.

20251023_203103.png

오늘 구간 중 대략 절반을 걸었지만 거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콘테노(Centeno) 마을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작은 마을은 너무나 조용했다. 그론세(Gronze) 앱에서 보인 바는 찾을 수가 없었으며 마을 초입에서 젊은 사람이 보여 이곳에 바 혹은 카페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마을에 작은 공원이 나왔다. 며칠전에 만나 맥주도 한잔 나누었던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세르지오와 이탈리아인 이룽기(Irugi)가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다른 곳에는 젊은 순례자가 앉아 있었다. 세르지오와 오늘 걸어온 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곳에서 신발을 벗고 열기를 식히다 그늘이 있는 자리로 옮겨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오래 앉아있을 수 없어 갈 길을 재촉해야 했다. 왜냐면 빨리 도착해야 아래층 침대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콰펜덴테(Acquapendente)로 들어가는 입구 포장 마차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는 세르지오와 이룽기를 다시 만났다. 이룽기는 몸이 마른 편이며 말라서 성격이 좀 까다로운 편이었다. 나는 오직 하나뿐인 메뉴인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우리는 포장마차를 나서다 세르지오의 제안으로 모드를 기억하기위해 사진 촬영을 했다.

20251023_203201.png

이곳은 야채와 와인의 농업 생산 중심지이며 도자기 공예의 전통을 가지고 지역이었다. 숙소는 오래된 건물로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하나밖에 없었다. 세르지오가 체크인 시간전에 도착해서 자원봉사자에게 전화를 하고 출입문 번호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호스피탈레노에게 전달받은 4번 룸에는 침대가 딱 3개 있었다. 작은 창문을 열었더니 골목길에 자동차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소음이 대단했다. 이룽기는 계속 불평을 하며 창문을 닫아달라고 했다. 사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줄어들지만 실내가 너무 더워서 침대에서 지낼 수가 없었다. 이룽기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세르지오와 나는 밖으로 나와 골목에 있는 바로 가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우리가 돌아온 이후에 이룽기는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20251023_203310.png


via Francigena 37일차 Bolsena



사실 숙소가 길가에 있다 보니 울퉁불퉁한 돌이 깔려 있는 길을 자동차들이 밤새 지나다니며 내는 소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순례자들은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부지런한 세르지오는 나보다 먼저 배낭을 들고 나가고 이룽기는 오늘 볼세나(Bolsena)에 가는 중간 마을에서 하루를 지내고 간다고 하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아름답고 넓은 호수가 있는 볼세나(Bolsena)에 가는 날이다. 이곳은 중세 가톨릭 순례의 중심지로 유럽 최대의 화산호 중 하나인 볼세나 호수 (Lago di Bolsena)가 있는 곳이다. 호수 둘레는 약 43km, 수심 최대 약 150m이며 물이 맑고 깨끗해 수영, 요트, 낚시로 인기가 많으며 호수 안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Isola Bisentina (비센티나 섬)와 Isola Martana (마르타나 섬)이다.

숙소를 나와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따라 가며 via Francigena 표식을 발견하며 걸어갔다. 건물을 따라 경사진 내리막길을 지나고 이제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넓은 도로에 나왔다.

20251023_203441.png

까미노는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보리와 감자를 재배하는 농촌 들녘을 만난다. 또 버려진 땅에는 어김없이 건초를 기르는 지대가 있었다. 때로는 그 땅 사이로 비포장 길이 직선으로 나 있고 좁은 농로에 가끔 트랙터와 일터로 가는 작은 화물차들도 지나갔다.


이곳에는 넓은 밭에 감자가 많이 심어져 있고 이제 막 50cm 정도 자란 잎에 물을 뿌려주는 기계들이 열심히 소리를 내며 일을 하고 있었다. 밭 사이로 나 있는 농로를 지나 약간 언덕진 구릉길로 올라갈 때 멀리 성질이 고약했던 노년의 이탈리아 순례자 부부가 걸어 올라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며칠전에 숙소에서 에어컨 켜 놓았으니 창문 닫으라고 나에게 소리치며 스스로 문 닫고 간 부인이 남자 두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산로렌초누오보 (San Lorenzo Nuovo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입구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밝고 활기찬 분위기라서 무슨 볼거리가 없나 하고 주변을 살피다 마을 중심 광장의 카페로 들어갔다. 많은 손님들이 이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브런치를 하는 사람들은 커피와 빵을 앞에 두고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베이커리 카페는 넓고 우아하고도 온화한 내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카페콘레체 한잔을 주문하고 바깥에 놓인 테이블로 나왔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속을 따뜻하고 매끄럽게 해주었다. 거리에는 분주하게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자동차들의 행렬도 길었다. 이곳이 바로 호수에 접근하는 들머리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주변에 호텔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편 성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나와 다시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까미노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후에 나타난 앞이 탁 트인 “볼세나(Bolsena)” 호수가 시야에 나타났다.

20251023_203554.png

이곳부터 호수가 열렸다. 청명한 6월의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내가 걷고 있는 길 오른편에는 작은 공원과 넓은 호수가 함께 있었다. 호수의 표면에는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고 그 위로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와 함께 호수는 반짝거리는 윤슬을 뿌리고 있었다.

까미노는 왼쪽 주택가 언덕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고갯길을 오르는 동안에는 아직 호수 풍경이 그대로 들어오고 경관이 들여다보이는 위치마다 고급 주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주택가를 벗어나면 일부러 조성된 듯한 오솔길이 있었다.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이 앞에서 불쑥불쑥 나타나고 지나갔다. 이 길을 벗어나기까지 한 시간 이상을 걸었다. 그곳은 깊은 계곡은 아니지만 물이 힘차게 흘러내려가는 개울을 만나기도 했다.

20251023_203656.png

볼세나로 들어가는 길은 우측에 호수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호수를 따라 수변에는 별장 같은 넓은 주택들이 있고 호수에는 요트들이 항해를 기다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볼세나(Bolsena)에 들어왔다. 이곳도 산 정상 주변으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서있었다. 숙소는 다행히 호수에서 가까운 아랫마을에 있었다.

20251023_203805.png

어제 함께 있던 세르지오에게 오늘 호숫가 수도원 숙소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예약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닫혀 있는 대문의 벨을 누르니 문이 열리면서 높은 돗수 안경을 착용한 수녀님이 반가운 표정의 웃음 띤 얼굴을 내보였다. 사무실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세르지오에게 현재 위치를 묻기 위해 왓츠앱으로 전화를 했다. 그는 이미 도착해서 지금은 호수에서 수영장이라고 했다. 침실이나 샤워실 그리고 화장실까지 시설이 열악했다. 그래도 작은 정원이 있어서 건조데에 올려놓은 빨래는 햇볕을 잘 받아 금방 뽀송뽀송 해졌다.


세르지오가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숙소 앞 가게에 들어가 점심으로 작은 피자를 먹고 나왔다. 이때 가게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하늘에는 소나기가 내릴 거 같은 검은 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내일 간식거리를 구하기 위해 근처의 수퍼마켓에 빨리 다녀와야 했다. 마트는 숙소에서 거의 1km나 떨어져 있어서 도로 밖에 있는 안도를 바삐 걸어갔다. 넓지 않은 까르푸 익스프레스에는 냉기로 가득 차 있어서 아주 시원했다. 우선 생수와 볶은 밥, 그리고 사과와 오렌지주스, 오레오 하나를 계산하고 비닐봉투에 넣었다. 한층 무거워진 봉투를 들고 도로의 인도를 따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세르지오가 수영을 마치고 돌아와 반갑게 다시 해우를 했다. 그는 나에게 “젤라토”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숙소 앞 젤라토 가게로 들어갔다. 메뉴에 있는 젤라토 종류가 많아 고르기를 머뭇거릴 때 세르지오가 시칠리아 아이스크림이라며 나에게 그라니타(Granita)'라는 아이스크림을 권했다. 그라니타는 아이스크림 베이스가 아닌 물과 설탕, 천연 과일즙이나 견과류, 커피 등을 얼려 만들어진 반 얼음 형태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 식감과 상큼한 맛이 특징이었다. 세르지오는 이전에도 시칠리아에서 유명한 빵도 소개를 하면서 먹기를 권했다.



via Francigena 38일차 Montefiascone



볼세나(Bolsena) 숙소에 뉴질랜드 부부가 같은 룸에 있었는데 이분들은 로마에서 출발하여 반대방향으로 걸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무려 3달정도 일정으로 걷고 있는데 부지런해서 새벽 5시쯤 일어나 정리를 하자 조심스레 문을 밀고 나갔다.

오늘은 세르지오와 함께 숙소를 나서 같이 걷기 시작했다. 볼세나에는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는 아닌 거 같았다. 오늘 목적지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는 얼마전 지나왔던 라디코파니(Radicofani)처럼 마을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세르지오가 설명을 했다.

20251023_203917.png

오늘은 운 좋게 호수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었다. 아직은 편안하고 낭만적인 풍경을 보며 걸어가는 길이 즐거웠다. 그러나 세르지오는 평소처럼 빠른 걸음으로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실 나는 혼자 걸어가는 방법이 편했다. 오랫동안 순례길을 걸으며 그렇게 길들여 진 거 같았다. 왜냐면 같이 걷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고 걸음도 보조를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서로가 신경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늘 구간은 18km밖에 되지 않아 마음의 여유가 많았다. 특히 오늘 거쳐갈 숙소는 얼마전 폰테아리고(Ponte a Rigo) 휴식처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세르지오도 함께 지낼 그곳에는 필리핀 수녀님이 운영하는 곳으로 저녁과 아침 음식이 제공되며 깨끗한 환경에 조용해서 숙면을 취했다는 곳이었다.

어느새 로마까지는 100km가 남았다는 표지석이 길가에 나타났다.

20251023_204016.png

몬테피아스코(Montefiascone)로 들어오자 역시 지명에 담겨있는 “Monte” 와 같이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태리어로 ‘monte’는 언덕 또는 낮은 산이니까 피아스코네 언덕이 지명이다. 그런데 이곳은 예상외로 볼세나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자동차와 관광객들이 거리에 많이 보였다. 세르지오가 왓츠앱으로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언덕 길을 오르는 길에 대성당과 가까운 거리에 숙소가 나왔다. 거리의 건물들은 아주 오랜 역사가 있는 석조 건물들이 즐비했다. 경사진 길을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다 메모해둔 주소 앞에 멈추었다.

20251023_204106.png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대문 초인종을 눌렀더니 큰 나무 대문이 찰칵하고 열렸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예약하느라 전화를 드렸던 필리핀 세부 출신 수녀님이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르지오가 소파에 앉아 있다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수녀님이 체크인을 하고 우선 방을 한 사람씩 배정해주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싱글 룸을 사용하게 되었고 저녁과 아침식사를 신청했다. 세르지오는 수녀님께 점심으로 셀러드를 제공할 수 있는지 요청했고 두 사람의 크리덴샬에 스탬프를 찍어달라고 하면서 세르지오가 35유로를 전해드려 나도 함께 같은 금액을 드렸지만 제공받는 서비스에 비해 적은 금액인 거 같아 많이 미안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룸에서 쉬고 있을 때 복도에서 수녀님이 건물 밖 테라스로 나오라고 했다. 테라스에는 멀리 호수가 바라보이는 풍경이 있었고 누구든지 쉴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그곳에는 야채 셀러드가 담겨있는 커다란 접시와 치즈와 식빵, 그리고 올리브 오일이 놓여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Julie 수녀 님이라고 했다. 수녀님은 우리에게 테이블에 앉아 호수의 풍경을 바라보며 맛있게 먹으라고 이곳으로 안내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셀러드에 들어간 채소는 모두 이곳 가든에서 길러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 세르지오는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고 좋아했다. 우리의 식사가 끝나가고 있을 때 수녀님이 금년 봄에 이곳 나무에서 자란 살구라고 하며 몇 개를 바구니에 담아왔다.

20251023_204204.png

세르지오와 나는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먼저 바로 근처의 대성당으로 갔다. 우리는 긴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기도를 했다. 이곳까지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끝까지 함께 해주시기를 간구했다.


성당을 나와 이어지는 돌담을 따라 걸었다. 건물들은 무겁고 진지한 느낌의 회색 돌벽으로 채워 진지 많은 시간이 흐른 느낌을 주었다. 이때 작은 게이트를 나서자 공원에서 호수가 가깝게 바라보이고 해질녘 햇살은 수면위로 내려앉았다. 세상은 이렇게 평온하고 아름다운데 우리는 항상 조바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라며 독백을 해보았다.

저녁에는 식사를 하러 수녀님이 안내하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다른 일행 가족들과 자원봉사를 하는 젊은 청년 그리고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오신 수녀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식탁에 모두 앉아 성호를 긋고 식사를 시작했다.

20251023_204318.png

식탁에는 수녀님과 자원봉사자가 만든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와 버섯 피자 그리고 와인과 셀러드. 닭가슴살 요리까지 준비를 했다. 이탈리아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젊은 청년이 나에게 순례길에 대한 질문을 거듭했다. 그리고 2027년 서울 세계 청년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지자 나는 일행 가족의 어린 딸에게 혹시 BTS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BTS멤버들이 군대를 모두 다녀와서 이제 다시 모여 노래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딸아이의 아빠가 기분이 좋아져서 그만 식사 중에 이탈리아 성악가 파바로티가 부른 노래를 하고 식사 후에도 분위기가 고조되어 칸초네를 부르다 또 본인이 좋아하는 다른 노래를 불러 모두가 따라 부르는 분위기로 넘어갔다.



via Francigena 39일차 Viterbo



아침 6시에 수녀님이 식사 준비가 되었으니 먹고가라고 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커피. 티. 살구. 케익. 피자 두 조각을 준비해주었다.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수녀님에게 인사를 하고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청년대회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했다

세르지오와 함께 성당으로 올라가는 아치를 지나 광장을 한번 둘러보고 건물 사이의 돌 계단을 내려와 공식 via Francigena 루트로 들어갔다. 오늘은 비테르보(Viterbo)에 가는 날이다.


우리는 천천히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에 잠깐 들어섰다 다시 주택가 골목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부터 까미노는 서서히 언덕을 따라 주택들이 있는 길을 걸어야 했다. 고갯길을 돌아갈 때마다 보이던 세르지오가 어느 사이에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때부터 호흡이 거칠어지며 걸음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이마와 가슴에 흐르는 땀을 자주 닦아야 했다. 그렇게 오르던 오름이 마지막 고갯길로 들어서며 끝이 났다. 고갯길 정상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상에서 내려오자 곧바로 농촌의 들녘이 나왔다. 그러나 그늘이 없어서 더위는 피할 수가 없었다. 막힘 없이 확 트인 풍경을 눈에 담아볼 새도 없이 오직 햇볕을 피하기 위해 땅만보고 걸어야 했다.


세르지오는 처음 나오는 바가 있으면 그곳에서 기다린다고 하며 앞서갔는데 마을은 좀체 나오지 않았다. 비테르보(iterbo)는 예상보다 큰 도시였다. 도시로 진입하는 길에는 규모가 큰 공장들이 계속 나타나고 그곳을 들락거리는 화물차들이 연신 도로를 지나갔다.

한층 넓어진 도로가 도시의 규모를 보여주듯 시내 버스들이 지나가고 드문드문 공원을 지나갔다. 넓은 사거리가 있는 길에 프랑스 자동차 시트로엥이 길을 막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강아지 랩 핑 광고가 마치 진짜 강아지처럼 보일 수 있어서 웃고 말았다.

20251023_204419.png

시내로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견뎌온 건물들의 분위기가 중세시대로 다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에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도시의 색깔은 거무칙칙하고 낡아 보였다. 시내의 좁은 도로는 차량들 때문에 더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숙소를 일단 찾아가기 위해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구글맵에 번지를 입력하고 화살표를 따라 비좁은 찻길을 따라 걷다 다시 중세시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이 밀집 되어있는 골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숙소를 찾아갔다. 겨우 찾아낸 건물 철문에는 체크인 시간을 3시부터 시작한다고 적혀 있었다. 혹시 몰라 호스피탈레노에게 전화를 하니까 전화가 자동으로 끊겨버렸다. 건물 옆 계단에 배낭을 내려놓고 우선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세르지오에게 왓츠앱으로 전화를 했다. 그는 배낭을 여행안내소에 맡겨두고 시내 구경 중인데 점심식사를 같이하자고 하며 곧 숙소로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숙소 근처 바에서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이탈리아 수제 맥주 바리니(Varini)맥주를 곁들이며 식사를 했다.

숙소 체크인 시간인 3시에 건물로. 갔더니 자원봉사자 남자와 여자분이 체크인을 하고 남자는 침대 배정과 시설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여권을 보여주고 크리덴샬에 스탬프를 받았다. 이후로 숙소에 찾아온 순례자는 이전 순례길 숙소에서 만난 이탈리아 청년 다니엘(체코 여자 순례자와 친했음). 프랑스 몽펠리에 청년과 또 다른 이탈리아 청년.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온 부부가 나타났다.

세르지오와 나는 저녁 식사 시간전까지 비테르보(Viterbo)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먼저 대성당을 찾아갔다.

20251023_204526.png

그리고 우리는 상점들이 많은 거리로 들어가서 젤라토를 함께 먹었다.

숙소에서는 아침과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비용을 받았다. 우리는 꼭 해결해야 할 먹는 문제에 고민하지 않기 위해 즉각 신청을 했다.


일곱 시가 가까워 순례자들이 식당으로 모여 들었다. 식탁위에 요리가 하나씩 놓이기 시작했다. 호스피탈레노와 자원봉사가 여자가 소고기 볶음과 채소 볶음. 와인까지 거의 만찬에 가까운 식사를 내왔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왠지 모르게 맛있었다. 하루 종일 걷고나서 깨끗하게 씻은 후에 먹는 음식은 아마 더 맛을 돋굴 수도 있었다.


via Francigena 40일차 Vetralla



오늘은 가볍게 17km 정도를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드디어 5일후에는 내가 갈망하던 목적지 로마에 들어간다.


아침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갔더니 테이블위에 바게트와 커피. 바나나, 요거트와 어제 저녁에 제공했던 피자가 남았는지 가져가라고 내 놓았다.

세르지오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홍콩에서 온 순례자 부부가 들어왔다. 그 분들은 어제 체크인할 때 내일 아침 5시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조식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먹으러 나타났다. 이 분들은 작년에 via Francigena의 북쪽을 걸었고 금년에는 비테르보(Viterbo)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남부 루트 산타마리아(Santa Maria)까지 걸을 계획이라고 했다.

20251023_204642.png

최근 며칠간 세르지오의 순례길 앱 Kormot(유로이며 GPS를 이용)을 이용해 이제는 매일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그는 야무진 체격에 걸음이 빨라 나보다 항상 멀리 떨어져 걸어가곤 했다. 그는 약간 낙천적이고 행동에 여유가 있으며 여행을 아주 좋아하고 인심이 후해서 카페나 바에 가면 비용도 먼저 내겠다고 해서 내가 미리 가서 계산을 해야만 했다. 그의 가족은 프랑스 리옹에서 살며 스페인 안다루시아 지역이 고향인 부인과 큰 아들의 아내는 폴란드, 부모는 이탈리아 시칠리 섬이 고향으로 프랑스에 이민 와서 살고 계셔서 다국적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어제 지나왔던 폭이 좁은 골목을 걸어 나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큰 길에 들어섰다. 이곳도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서 길바닥은 네모난 돌이 깔려 있었고 울퉁불퉁한 바닥은 걸음을 더디게 했다. 도로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줄을 만들고 길 바닥에서 나는 마찰음으로 소음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혹시 지나가는 자동차와 부딪히지 않도록 상당히 긴장을 해야 했다.


순례길 루트는 이제 도시의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건너편 오르막이 보이는 산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산 중간에 도로를 만들어 자동차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에 사람들이 지나가야 했다. 머리위의 야산에서 나무가지들이 길로 뻗어 나가 마치 터널처럼 보였다. 물론 햇볕이 차단된 공간 때문에 습도 높아 도로의 벽에는 초록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아주 칙칙해 보였다. 그곳을 지나는 동안 무슨 용도인지 모르지만 바위벽에는 여러 개의 터널도 만들어져 있었다. 오래전에 군사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대피 구역 아닐까 생각했다.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국가이며 찬란한 문화와 예술이 존재했던 이탈리아는 건축 기술도 발전해서 규모가 어마어마한 성당을 건립했듯이 건물과 도로 또한 몇 백 년을 사용해도 수리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튼튼하게 건설되어 있었다.

20251023_204755.png

트레크로치(Tre Croci)까지 도착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 세르지오는 정말 수다스럽지만 긍정적이라서 밉지가 않았다. 그런데 세르지오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오직 휴머니즘 주의자라고 하면서도 마을의 성당이 보이면 꼭 들렸다 갔다.

이곳에 도착하자 더위에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해서 세르지오가 젤라테리아 가게에서 시칠리아 사람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했다. 이것은 햄버거용 빵 중간에 자기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먹는 것인데 나는 절반을 먹고나서 더 이상 먹을 수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햄버거 아이스크림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다시 3km정도를 더 걸어가서 숙소에 도착했다. 건물에 주소가 없어서 세르지오가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옆집에서 주인이 나타났다. 창고 같은 건물이 숙소가 아니길 바랐지만 기대는 바뀌지 않았다. 메트리스가 있는 침대가 딱 두 개 있어서 우리는 하나씩 차지했다.

세르지오가 주인과 이태리어로 대화를 계속하는데 한참 설명을 하고 또 묻고 끝날 줄을 몰랐다. 세르지오 얘기는 내일 걸어가는 길에 비아프라체치나 루트를 벗어나 호수가 보이는 길을 가겠다고 하니까 주인이 말리는 거 같았다. 결국 주인은 세르지오에게 원래의 루트를 걷고 대신 자기 자동차로 호수 구경을 잠깐 시켜주겠다고 했다.

숙소 주인이 자동차를 가져와서 나는 뒷자리에 앉고 세르지오는 앞 좌석을 차지했다. 자동차는 지그재그식으로 나 있는 길을 능숙하게 내 달렸다. 넓은 호수에는 해변처럼 모래가 있었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부가 강아지를 데려와 물속에서 수영도 시켰다.

20251023_204854.png


via Francigena 41일차 Sutri



베트랄라(etralla)서 아침 식사는 숙소 바로 앞 길가에 있는 바에서 가능했다. 숙소 주인이 세르지오에게 5시30분에 영업을 시작한다고 알려주어서 우리는 일찍 그곳으로 찾아갔다. 바에는 젊은 남녀 손님들이 들어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테이블 양옆에서 막대에 달린 인형을 조작하여 축구 경기를 하는 놀이를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진열장에 있는 쿠루아상과 커피를 주문하고 오렌지 과즙 주스를 별도로 주문했다. 세르지오는 평소처럼 에스프레소를 나는 뜨거운 물(Agua Calda)를 부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셨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 세르지오는 오늘도 식사를 하면서 여주인과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는데 대략 자기 고향인 시칠리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젊은 사람들이 일찍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어나 각자 비용을 계산을 하고 출발을 했다. 마을은 집집마다 작은 마당에도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나무를 심어 놓아 지나가던 우리를 붙들고 있었다. 세르지오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나에게 꽃이름을 알려주며 천천히 지나갔다. 작은 정원이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가꾼 꽃나무들이 화사하게 모습을 들어 내보이고 있었다.

순례길은 주택들이 들어선 경사길을 오르다 산으로 방향을 틀어 숲길로 들어섰다. 잠깐 그늘진 숲을 지나자 넓은 올리브나무 농장이 나타나고 직선으로 가파른 언덕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올리브나무 농장은 규모가 상당히 넓은 듯했다. 내가 그곳을 벗어나는데도 약 40분정도는 족히 걸리는 듯했는데 농장 이곳 저곳에는 일하는 농부들이 농기계들을 타고 다니면서 물을 뿌리거나 배수로를 정리하고 있었다.


농장을 빠져나오자 순례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특별히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무료한 길이 이어졌다.

20251023_205014.png

카프라니카(Capranica)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이제 키가 큰 잣나무들이 길옆에 자리하고 있어서 잣 열매들이 길에 뒹굴고 있었다. 그곳에는 대저택들이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세르지오에게 부자들이 왜 이런 외진곳에 살고 있을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대답 없이 땅에 떨어진 잣 열매를 주어 나에게 속을 보여주며 가을에는 먹는다고 말했다.

20251023_205121.png

수트리(Sutri)는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으로 가는 길에 카프라니카(Capranica)를 떠나면 공원안으로 들어가고 깊은 숲길이 시작되며 이미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공원을 걷는 산책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좁은 오솔길에는 거친 가시덤플이 길로 빠져나와 모자를 쓴 머리를 스치기도 하여 나는 스틱으로 풀을 밀치며 지나가야 했다.


시원한 물소리가 계곡에서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에게 덥지만 청량감을 주었다. 이때 계곡 사이를 건너는 다리에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설치한지 오래되어 부서진 다리를 새 목재로 보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0251023_205214.png

그들은 숲을 지키는 자원 봉사자들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걷고 있던 숲길은 마침내 하늘을 드러내 보였다. 계곡물이 내려오다 멈추는 넓은 물웅덩이 옆 바위에 앉아 빵을 먹고 있을 때 지나가던 노인들이 근처로 다가왔다. 다들 걸음이 매우 느린 그 분들에게 자리를 비워드리고 일어섰다.


수트리(Sutri) 들어가는 입구 공원 벤치에 앉았다. 가족들과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으며 양말까지 벗어제쳤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켜며 먼저 걸어간 세르지오를 생각했다. 그가 예약한 오늘 숙소는 시내 중심에서 좀 떨어져있는 동네라고 했다. 그래서 그를 숙소로 가는 첫 바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또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빨리 숙소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어섰다. 숙소는 수트리(Sutri) 중심에서 3.3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성당이 있는 곳이 항상 마을의 중심이라 생각 없이 언덕길을 느리게 걸어갔다. 로마에서 고작 50km떨어진 이곳은 도시가 넓게 퍼져 있어 성당이 있는 거리에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닐 만한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넓은 수트리(Sutri) 광장 한 켠의 바에 세르지오가 원형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세르지오가"하고 불렀더니 굉장히 반가운 얼굴로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는 일단 테이블에 앉아 세르지오와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그때 광장에서 며칠 전 숙소에서 만났던 홍콩인 부부가 나타났다. 그런데 남자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와 왜 그러냐 고 물었더니 어제 길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캄파냐노디로마(Campagnano di Roma)로 간다고 했다.

세르지오가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수트리(Sutri)에 도착했는데 자동차로 숙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을 했다. 왜냐면 세르지오가 어제 저녁에 나에게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고 재료를 구입했는데 베트랄라(Vetralla) 숙소에는 주방이 없어서 무게가 나가는 참치 캔과 토마토소스 켄, 와인 한 병도 배낭에 넣고 오늘 걸어오느라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주인은 2시까지 슈퍼마켓 코나드(Conad) 앞으로 오고 대신 차비로 각자 2유로를 지불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는 여주인이 제시하는 탑승 조건을 수용해야만 했다.

대신에 나는 수퍼마켓에서 자주 사먹던 볶음밥과 올리브와 계란을 사와서 세르지오와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우리는 숙소에서 꼼짝하지 않고 오후 시간을 보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숙소 주변은 한적한 주택 지역이라 산책할 마음이 없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부지런한 세르지오가 당근을 썰고 오이와 상추를 깨끗이 씻어내고 그 위에 올리브유를 뿌려 셀러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물을 끓이고 파스타 면을 삶은 다음 토마토 소스를 뿌리고 참치 캔을 열어 정성스럽게 파스타를 만들었다. 비가 뿌려대는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순례길에서 얻은 추억들과 세르지오가 쏟아낸 다음 여행지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종종 집에서 요리를 만들어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고 하면서 내게도 요리를 하는지 물어봤다. 사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모른다.


via Francigena 42일차 Campagnano di Roma



숙소에서 다시 어제 지나왔던 길을 3.3km 걸어 나와 수트리(Sutri) 시내로 들어간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시처럼 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도로위로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우리는 바쁜 걸음으로 순례길로 나섰다.


오늘 구간은 28km를 걸어야 했다. 대체적으로 세르지오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주택가 골목에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청년 다니엘이 나타났다. 그는 항상 밝은 얼굴 그리고 요리사로 일본에서 직장을 갖을 예정이고 한국 흑백요리사 드라마도 탐색하여 해외 취업의 꿈을 갖고 있는 26살 청년이다. 우리는 나란히 걸어가며 수트리(Sutri) 시내를 빠져나왔다. 세르지오와 다니엘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르지만 쉼 없이 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20251023_205345.png

나는 그들의 대화속으로 끼어들 수 없어 걸음 속도를 빨리해서 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걸었다. 나는 via Francigena표식을 보며 그리고 그론세 앱에 나타난 방향을 보며 걸었다. 그런데 얼마후에 뒤를 돌아보고 그들이 걸어오기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나무 그늘 아래 종이를 깔고 앉아 땀을 닦고 물을 마셨다. 마침 바람이 계속 불어와 흐르는 땀을 식혀주고 오렌지주스로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내가 걸어온 길에 나타났다. 세르지오가 다가오더니 자기 가이드앱에 설정한 짧은 우회길을 갈려고 했는데 나 때문에 2km를 더 걸어야 한다고 투덜댔다. 나는 via Francigena 공식 루트로 가야지 다른 길로 가면 혼란스럽다고 야단을 쳤다.

우리는 3시간이나 넘게 걸어 중간 마을 몬테로시(Monterosi)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자동차들이 좁은 도로를 거의 차지하며 지나다닐 정도로 복잡했다. 우리는 바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기위해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세르지오가 주문을 하러 바로 가고 나는 식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이제 이틀 뒤에 그동안 애타게 그리던 로마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 후에는 나도 저런 모습으로 길을 걷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세르지오가 쟁반에 커피와 생오렌지쥬스. 크라상을 듬뿍 얹어왔다. 이제 먹는 시간만큼 행복한 순간을 느끼는 것도 멀지 않았다.

우리는 세르지오의 아들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다니엘의 미슐렝 쉐프 자격 취득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잠깐 누렸던 휴식을 끝내고 곧바로 시내를 빠져나와 다시 오랫동안 비 포장된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올리브와 헤이즐넛 나무 농장사이의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야 했다.

농장이 사라지고 우리는 이제 숲속의 산책길로 들어가 어제처럼 물살이 빨리 흐르는 계곡을 지나갔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자란 참나무가지들이 옆으로 우거진 숲과 산책길에 세워둔 이끼 낀 나무 울타리가 정적한 숲에 남아있었다. 숲길은 드디어 빠져나와 강가의 공원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주말을 보내러 왔는지 놀이터가 많이 보였다. 우리는 그곳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공원 입구에서 직원이 순례자냐고 묻더니 입장료가 무료라고 했다. 우리는 식당 건물의 벤치에 앉아 주문을 받기위해 다가온 종업원에게 세르지오가 메뉴를 묻고 값을 물어보더니 이곳은 음식값이 너무 비싸니 그냥 공원 벤치에서 각자 갖고 있는 간식으로 대신하자고 제안을 했다.

공원을 빠져나와 숙소로 가는 길은 계단을 올라 높은 언덕에 있는 마을의 끝에 있었다. 오늘은 다니엘이 저녁에 파스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마을에 있는 수퍼마켓을 찾아가 파스타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사고 바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놓고 수다를 떨었다.

드디어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다니엘이 열심히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옆집에서 샤브리와 이탈리아인 순례자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어제 길을 걷다 중간 마을에서 만난 순례자들이다.

다니엘이 주방에서 큰 접시에 파스타를 담아 바깥 테이블로 가져왔다. 모두 다섯 명이 둘러앉아 와인으로 축배를 들고 각자 파스타를 가져갔다. 그런데 파스타는 내게 너무 짜서 먹기가 힘들어 물을 계속 마셔야 했다. 젊은 다니엘에게 일본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어 성공하려면 무엇을 조언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그의 자존심을 상할까 생각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via Francigena 43일차 Isora Farnese



세르지오와 다니엘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어제 식품을 사고 맥주를 마셨던 큰 길에 나와 언덕을 오르면서 마을에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길을 막고 바닥에 꽃잎으로 여러가지 형상을 장식해 놓았는데 주민들의 정성이 대단했다.

20251023_205457.png

오늘 다니엘은 세르지오와 내가 머무를 이솔라 파르네세(Isola Farnese)를 지나고 라 주스티니아나(La Giustiniana)에서 지낸 다음 아침 일찍 바티칸에 도착해 미사를 드리고 집이 있는 밀라노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포멜로(Formello)까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자갈이 깔려 있는 길을 걸어갔다. 이곳을 지나자 순례길은 약간 그늘이 있는 숲으로 들어갔지만 바람이 도통 없어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작은 계곡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조용해서 좋았다.


숲을 빠져나오자 규모가 자동차 도로를 따라 담이 높은 주택들이 나왔다. 아이들이 풀장에서 놀고 있는 작은 놀이터를 지나고 무화과와 자두나무가 담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온 집들도 지나갔다.


구비구비 돌아가야 하는 고개를 걸어가다 그론세앱에 이솔라 파르네세(Isola Farnese)의 숙소를 검색했더니 나는 이미 숙소를 지나쳐 와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 주소 앞에서 건물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니 세르지오가 밖으로 나와 반기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숙소에는 프랑스인 순례자 남자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전에 다리를 다쳐 오늘은 걷지 못하고 쉬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 부인은 오늘 로마에 걸어갔다 온다고 하면서 아침 일찍 나섰다고 말했다. 부인은 오후 4시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로마까지 걸어가는 동안 차도를 걸어가야 하는 구간이 많아 매우 위험했고 베드로 광장에 들어갈 때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입장이 힘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에 모두 피자를 주문해서 먹었다. 근처에는 식당이 없으며 수퍼마켓은 2km이상 떨어져 있어서 다녀오기에 힘들다고 프랑스인 부부가 제안을 해서 나는 버섯이 들어간 피자와 콜라를 주문했다. 여기도 음식 배달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순례길의 마지막 밤이다. 숙소 주인이 피자를 먹고 있을 때 직접 만든 과일 술이라며 들고 나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독한 술을 자꾸 권해서 사양하느라 애를 썼다. 그리고 나는 내일 베드로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via Francigena 44일차 Roma



순례길을 시작한지 44일째 목적지 Roma에 들어가는 날이다. 나의 길은 이제 끝맺음을 하는 날이다. 새벽에 잠이 깨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세수도하고 머리도 만졌다.

다섯 시에 세르지오가 일어나자 간단히 준비를 한 후에 배낭을 들고 식당으로 나왔다. 세르지오와 간단히 빵을 먹고 대문을 열고 벌써 빛이 환한 길로 나왔다. 이제 로마까지 23km를 걸어가면 순례길은 끝이 난다.


어제 잘못 걸어간 길을 다시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길을 가던 세르지오가 길가 주택 담 자락 밖으로 나온 자두나무 가지에서 열매를 따서 하나를 나에게 건넸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남의 집 나무에서 열린 과일을 함부로 먹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솔라 파르네세(Isola Farnese)의 마을 끝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이제부터 확 달라진 도시 느낌의 아파트식 레지던스와 가끔은 정원이 넓은 주택들이 있었다. 라스토르타(La Storta)에 들어서자 차량들이 확연히 늘어나 편도 2차선 도로에는 차량들이 줄지어 로마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20251023_205616.png

우리는 우선 길가의 바에 들어가 커피와 빵. 그리고 세르지오가 애식하는 오렌지 주스로 아침 식사를 했다. 배가 부르고 날씨는 벌써 더워지니 의자에서 빨리 일어나지 못했다. 라스토르타(La Storta)가 끝나고 라 주스티니아나(La Giustiniana)를 지나갈 때부터는 자동차길을 계속 걸어가야 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보도가 없어지고 찻길을 걸어야 해서 옆에 지나가는 자동차를 의식하면서 걸어야 했다. 이때부터 자동차 소음과 배기가스 냄새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산길로 올라가는 몬테마리오(Monte Mario) 지역을 지나고 로마로 내려가는 길을 만났다. 다시 이어지는 자동차길의 바깥 작은 보도를 걸어가다 순례길 표식은 우측에 나 있다 다시 좌측으로 가야하고 보도가 없어지기도 하고 한동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로마로 들어가는 자동차들이 한없이 줄을 이어가고 있을 때 우리는 땅만보고 걷다가 한동안 까미노 표식이 보이지 않아 그론세 앱을 켜고 나서 깜짝 놀랐다. 정상루트에서 우리는 한참 벗어난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야 했는데 계속 직진으로 걸어 이미 정상 루트를 이탈해 있었다. 내가 앱 지도를 확대해서 공식 루트길과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샛길을 찾아 무조건 걸어가자고 했다. 우리는 작은 공원의 아주 작은 철문을 지나 길을 따라 내려가다 주택들 틈새에 나 있는 작은 산책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숲에 둘러 쌓여 길을 확인할 수가 없어 망설일때 마침 주차장으로 걸어오는 동네 사람이 있어 숲 속을 지나via Francigena길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손으로 야산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이 있으니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주택단지 옆 산으로 가서 아주 비탈진 경사를 따라 무작정 내려갔다. 그곳 비탈진 곳에는 희미하게 길이 나 있고 이곳을 벗어나자 우리 앞에 분지처럼 넓은 야생화 풀밭이 나오고 그 가운데 사람들이 다녔던 폭이 좁은 길이 나왔다.

이곳을 벗어나 우리는 via Francigena 공식 루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야외 공원 지역을 지나고 전망대 건물을 만났다. 이때부터 로마 시내의 일부가 보였으며 바티칸의 돔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초원의 길게 자란 풀들과 야생화가 우리를 향해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자 점차 대도시 같은 느낌을 받는 건물과 주택들이 많아졌다. 아마 이곳이 몬테마리오(Monte Mario)라고 생각이 들었다. 로마 외곽 도시라서 주택들 사이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르지오가 앞서가고 나는 뒤따라 걷는데 앞에서 누가 우리를 불렀다. 이라크 출신 독일 이민자 사브리(Sabri)였다. 그는 집 떠난 지가 3달 가까이 되어 가는데 다리에 통증이 있어 약간 불편한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 건너편 골목길로 걷자고 세르지오에게 제안을 해서 우리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로마가 가까워지며 자동차들이 늘어나 횡단보도를 지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나도 마지막 날에는 더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회전 로터리를 지나고 다시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르지오가 앞서가는 대로 따라 걸어갔다. 앞서가던 세르지오가 수도물이 있다고 우리에게 외쳤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자를 벗고 시원한 물로 땀에 젖은 머리를 적셨다.

그리고 다시 앞에 있는 공원 지역으로 올라갔다. 오솔길을 걸어가다 건너편에 사람들이 모여 탄성을 지르는 전망대가 보였다. 이곳이 멀리 바티칸 베드로 성당 돔이 보이는 곳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셔츠 앞에 걸어 두었던 안경을 쓰려다 어디선가 길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급하게 세르지오에게 배낭을 맡기고 조금 전 수도물에 세수한 곳으로 안경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안경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여기까지 잘 걸어왔는데 중요한 안경을 떨어트린 지 모르고 얼마를 걸어온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20251023_205719.png

그래도 세르지오와 이 순간을 기념하기 이해 베르도 광장의 돔이 보이는 전망을 향해 사진을 찍기로 했다.

20251023_205855.png

나는 비상용으로 가져온 안경을 쓰고 세르지오와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걷기 시작했다. 순례길 앱의 지도에서 보았던 고갯길을 정말 한참 내려와 이제 바티칸을 향해 까미노 표식을 확인하며 걸어갔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거리를 3km정도 걸어야 하는데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중간에 앞서 걸어가는 사브리(Sabri)를 만났다. 이제 큰 배낭을 메고 걸어 들어가는 세 명의 순례자들은 마치 전투에서 승리하고 귀환하는 투사들 같았다.

20251023_210008.png

바티칸 베드로 광장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에는 차단 바리케이드가 있고 경찰이 방문객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열 사이로 우리는 순례자이기 때문에 통제 받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줄을 서서 기다리던 남자와 여자가 길을 막고 안된다고 외쳤다. 사브리(Sabri)가 우리는 순례자인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따져도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제자리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앞에서 그린 자켓을 입은 젊은 자원봉사자가 다가와서 얼른 "We are Pilgrim" 하고 외쳤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당당하게 통로를 지나 순례길 완주 증명서인 Testimonium을 받으러 성당 오른쪽 통로를 통해 건물로 들어갔다. 완주증은 자원봉사자 두 분이 크리덴샬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작성한 다음 우리에게 건내 졌다.

20251023_210116.png

우리는 이제 자축을 하기위해 성 베드로 성전이 마주 보이는 광장으로 왔다. 그리고 서로 포옹을 하며 그동안 억눌렸던 무게를 내려놓으며 기념을 했다. 이제 나의 via Francigena 길Aosta - Roma 구간 순례길 도보 여행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20251023_210248.png


20251023_210332.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4. 프랑스 르퓌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