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uy en Velay 에서 Sean Jean Pied Port
'카미노' 카페에서 한 달에 한번 걷기 모임을 한다. 이때 참석하는 멤버들의 카미노(순례길 도보 여행) 이력은 화려했다. 지금은 나이가 78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었던 분,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에서 출발하여 이베리아반도를 지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또는 영국 캔터베리에서 출발하여 로마 바티칸 광장까지 걸었던 분도 가끔 걷기 모임에서 만나 뵙는다. 그분들의 체력은 웬만한 젊은 세대들과 겨눌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더 이상 체력의 한계를 느껴 한 달 이상을 걷는 카미노는 이제 더 이상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2023년 봄, 카미노 카페의 월례 걷기 모임에서 회원들로부터 GR65(Grande Randonnee 65)의 두번 째 경로인 '르퓌길' 에 대한 경험담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GR65의 전체 경로는 스위스 제네바(Geneve)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르퓌앙벌레이(Le Puy en Velay)까지 350km를 걷고 이곳에서 다음 구간인 스페인의 Roncesvalles까지 750km를 다시 걷는 길이다. 그러나 순레자들은 대체적으로 르퓌앙벌레이에서 출발하여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마을 생장피에르포르(Saint Jean Pied de Port )까지 걸어가는 루트를 '르퓌길'이라 칭한다. 나는 이미 이 길을 걸었던 회원들로부터 몇 차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길은 나에게 다섯 번째 까미노 길이다. 그동안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전염병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2023년 8월, 나는 습관처럼 다시 배낭을 메고 순례길로 들어섰다.
내가 집을 나선 날은 여름 더위가 한창인 8월 말이었다. 오전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타기 위해 배낭을 메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잘 다녀오겠다고 약속하고 아내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근처의 전철역으로 갔다. 아내는 나를 내려주면서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식구들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격려의 뒷말을 남겼다.
인천공항 2터미널에서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프랑스로 바로 가지 않고 이태리 로마의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먼저 미사를 드리고 르퓌로 이동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창쪽 좌석은 조그만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볼 수 있고 우측에 약간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출발 시간에 맞춰 비행기는 활주로 방향으로 옮겨가더니 굉음을 내며 곧 이륙했다. 조그만 창밖으로 동체가 하늘로 치솟더니 어느새 수평을 잡고 서해안의 고만고만한 섬들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옆좌석에 이태리 여행을 가는 부부가 로마에서의 여행 스케줄에 대해 한동안 즐거움에 들떠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사의 패키지를 선택해서 가니까 큰 비용을 지불한 만큼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여자분이 강조했다.
나는 늦은 점심 식사가 나올 때까지 항공사의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작은 백팩에 넣어둔 ' Via Podiensis ' 가이드북을 꺼내 들었다.
봄부터 나는 가이드북에 소개된 스테이지(Stage 1~ 29)를 보며 각 구간 거리를 감안해서 숙소인 지트(Gite : 프랑스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해 가는 과정을 거쳤다. 프랑스 르퓌길은 스페인의 순례길과 달리 대부분 가정집들이 숙소를 운영하며 저녁과 아침 식사를 포함(Demi-Pension 또는 Half Border)하여 숙박 비용을 받고 있었다.
나는 로마에서 프랑스 리옹으로 이동하여 하루를 지낸 다음 기차를 타고 출발지 '르퓌앙벌레이'로 이동했다.
르퓌로 가는 열차는 중간 역에서 내려 한번 환승을 하고 또 1시간을 달려 오후 늦게 르퓌에 도착했다.
르퓌역을 나와 구글맵을 켰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경로를 따라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지트를 찾아갔다. 조그만 도시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골목에는 예술적 감각의 벽화가 흥미를 갖게 했고 도심 거리에는 순례길의 출발점이라 그런지 여행객 복장을 하고 걷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르퓌는 '레이스 짜는 여인들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레이스 박물관이 있고 레이스 뜨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으며 세귀레와 펠르랭, 생조르주 거리에는 레이스 세공품을 파는 가게와 한땀 한땀 레이스를 짜는 여인들의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프랑스를 걷다. 이재형 글)
위키피디아에서 보면 르퓌에서는 매년 9월 셋째 주에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가 새의 왕 축제(Bird King Festival)가 마을에서 열리며 1524년 Charles V에 의해 확립된 이 관습은 화승총이나 화살로 사격하며 Papegai(앵무새를 의미)라는 누더기 새를 죽이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고 게임은 White Monday에 열렸다고 했으며 1년 동안 왕으로 선포된 승자는 도시의 열쇠와 검을 쓸 수 있는 권리, 영사 계급, 화승총 부대 사령관을 받았지만 대중에게 물을 주고 다과를 주어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숙소를 운영 중인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은 계단이 많아 쉽지 않았고 꾸준히 올라가는 언덕은 도착 시간을 지체하게 했다. 노트르담 성당 근처 수도원 지트인 'Accuiel grand seminario'에 예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철문을 밀고 정원을 지나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남자 호스피탈레노가 있었다. 인사를 먼저 하고 예약 사항을 받은 이메일 카피를 보여주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자 다행히 호스피탈레노가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났지만 식당에 일하는 분께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얘기를 했으니 식당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사무실과 연결된 식당으로 들어가 식탁에 앉아 있을때 아주머니가 배식구에서 빵과 수프 그리고 닭고기와 요구르트가 담긴 식판을 내주었다.
식사를 끝내고 호스피탈레노가 알려준 통로를 따라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렸다. 어둡던 복도에 전등이 일제히 밝게 켜지며 방 번호를 확인하며 걸어가 드디어 나에게 배정된 룸에 멈춰 섰다. 문을 밀고 들어가 출입구에 있는 스위치를 올려 방을 환하게 밝혔다. 아직까지 찾아온
다른 순례자가 없어서 아마도 혼자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홀가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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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퓌앙벌레이' 노트르담 성당에서는 매일 아침 7시에 순례자들의 안전한 도보 여행을 위한 미사를 운영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수도원을 나와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는 골목을 걸어가다 베트남에서 오신 수녀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성당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수녀님은 고향인 베트남 남부 지방 코친(Kochi)에는 프랑스 식민지 통치 시절 가톨릭 신앙이 전파되어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주민들이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다고 했다.
수녀님을 따라 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du-Puy)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성당은 경사를 따라 건축되어 골목에서 시작되는 102개의 계단을 올라야 성당의 정문을 만나고 경사진 중앙 통로를 지나면 비로소 성당 내부에 들어서며 제단을 마주하게 된다. 성당에는 카미노를 떠나는 순례자들이 벌써 자리에 앉아서 미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기 950년 야고보 성인의 묘지가 발견되고 르퓌의 고데스칼크 주교는 성모마리아를 숭배하는 이 도시에서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까지 여행을 떠났으며 산티아고까지 순례길을 걸은 프랑스의 첫 사제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곳 성당에는 중세기에 동방에서 가져왔다는 신비로운 검은 성모마리아 상이 있었으며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에 있는 검은 성모마리아 상과 함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매우 잘 알려져 있다. .
불어로 진행되는 미사의 강론을 구글번역기를 열어놓고 내용을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통상 미사의 순서는 모든 나라가 동일하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순례자들의 국적을 물어보자 프랑스, 독일, 미국, 폴란드, 이태리 순례자들이 각자 나라 이름을 외쳤다. 나는 신부님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꼬레아"라고 크게 외쳤더니 주변에 있던 순례자들이 동양인 순레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신부님은 순례자들을 모두 제단 앞으로 나오도록 하고 산티아고까지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축복을 해주셨다.
미사가 끝나고 이제 순례자들의 출발을 인도하는 중앙 통로의 철판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성당의 외부 정문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마치 모세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처럼 광경을 보며 사람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모든 순례자들은 성물방으로 들어가 순례자 여권을 구매하고 첫 세요를 받았다. 활짝 열린 중앙 통로의 계단을 내려오니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미노 출발을 축하해 주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입었다.
성당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시장 골목이 나왔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물건을 사고파는 점포들이 아침 일찍부터 북적거렸다. 카미노 출발 방향 표지판은 시장 골목을 지나 우측 언덕으로 올라가는 전봇대에 표시되어 있었다.
도로는 걸어 갈수록 경사가 꽤 가팔라 보였다. 하필이면 순례길 첫 스텝은 경사길 오르기를 통해 체력단련을 시키는 모양새였다. 언덕을 오를수록 점점 거칠어진 비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며 모자를 쓴 얼굴과 바지와 신발은 젖어들었고 스틱을 쥐고 있는 손등도 매몰차게 빗물이 떨어졌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올라오자 대문이 넓은 주택이 있었다. 주택 입구에 큰 느티나무의 가지들이 마침 비를 막아주고 있어서 땅바닥이 젖지 않은 곳에서 호흡을 조절하였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불 빛이 번쩍이더니 번개 소리가 들리고 이내 천둥소리가 들렸다. 내가 피신하고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이제 물이 흥건히 차 오르기 시작해서 나는 담 쪽으로 더 바짝 붙어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머물지는 못할 것 같아 휴대폰을 열어 우버 택시를 신청했다. 이곳에서 9킬로 떨어진 Saint Christophe sur Dolaison까지 요청했다. 그러나 우버 앱에는 기사를 찾는 메시지만 뜨고 연결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우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으며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도로는 이제 물웅덩이가 여러 곳에 생겼다. 한 시간쯤 'Bains'라는 마을을 지나갈 때 비가 점점 그치기 시작했다. 한결 걷기가 나아졌다. 오후 늦게나 비가 올걸, 하필 출발 시간에 비가 내려 나는 한바탕 소동을 벌인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처음으로 카미노에 벤치가 나타났다. 배낭을 던져놓고 사과를 꺼내 먹으며 뱃속의 허기를 달랬다. 생프리바달리에(Saint Privat dAllier)로 가는 길에는 유달리 이끼 낀 돌담들이 많았다. 차곳차곡 쌓아놓은 돌담의 길이는 매우 길었고 누군가 인내를 갖고 하나씩 빈틈을 채워가며 반듯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Montbonnet에 가까워질 때 산자락 매우 큰 바위를 깍아 지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특이한 성당을 지나갔다.
오후 한 시가 넘어갈 때 몽뽀네(Montbonnet)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르퓌 지역의 특산물인 렌틸콩을 넣어 만든 샐러드를 먹었다. 나는 스페인 북쪽길(Camino Norte)을 걸으며 하루를 지냈던 알베르게 '구에메스(Guemes)'에서 먹었던 렌틸콩 수프를 기억해 냈다. 초록색을 띤 렌틸콩으로 만든 요리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이곳이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땅의 온도가 평균 5도 이상되는 3. 4월에 파종을 하는 렌틸콩은 표피가 얇고 크기가 작으며 전분이 없어서 소화가 잘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 발목에 통증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너무 빨리 걸었던 영향일까?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발목 보호대와 무릎 보호대를 동시에 채우고 일어났다. 걸을때마다 발목과 무릎 보호대가 조이면서 약간 거추장스런 느낌을 받았다. 카미노 앱 'Via Podiensis'을 열어 오늘 목적지로 향하는 루트를 다시 점검했다. 이제 6km 정도 걸어가면 오늘 목적지 지트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발목 통증을 의식하며 속도를 최대한 늦추며 조심조심 걸었다. 걷는 시간이 자꾸 느려지며 멀게만 느껴지던 목적지 '생프리바달리' 마을의 지트에 도착했다. 조그만 시골 마을은 산책을 나가도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거 같은 분위기였고 조용했다. 돌담이 있는 마을의 예약한 지트를 찾아갔다. 그런데 주인이 밖으로 나와서 오늘은 당신밖에 숙박할 사람이 없으니 예약을 취소하고 건너편 집의 지트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며 나를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새로운 지트 주인을 만나 안으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주인은 내가 실망하지 않도록 매우 친절하고 숙박비도 더 저렴해서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해야 했다.
깔끔한 침대와 화장실 지트에 프랑스 순례자가 이어서 도착했다. 그가 방으로 들어오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밝은 언사로 어디서 왔는지 물어봤다. 그는 영어를 잘 구사해서 나는 대화를 하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여자 순례자가 지트를 찾아왔다.
프랑스 르퓌길에서 두 번째 맞는 저녁 식사에도 역시 렌틸콩 수프가 제공되고 닭고기 덮밥과 와인이 나왔다. 르퓌길 지트에서는 저녁과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해서 따로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어 스페인 순례길 처럼 따로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오늘은 와인 한잔을 곁들인 저녁 식사때문에 출발할 때 긴장으로 시작했지만 즐거움으로 끝을 맺은 첫날이었다.
어제 지낸 지트는 가이드 북이나 르퓌길 앱인 Via Podiensis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룸이 깨끗하고 주인이 제공하는 저녁과 아침 식사는 나에게 충분한 만족을 제공하였다. 아침 식사 때 어제 프랑스 파리 근처에 살고 있다는 남자 순례자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지트를 나서며 주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한국의 전통 복장을 입은 왕과 왕비가 그려진 손거울을 드렸다. 그런데 주인이 책상 서랍을 열더니 나에게 이곳 고장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동물이 그려진 마그네틱 하나를 나에게 전하며 기념품이라고 했다.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가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오늘도 비 예보가 있어서 배낭 아래에 넣어 둔 우비를 꺼내 입기 쉽게 수납 포켓에 걸치고 출발했다. 깊은 산골지역이라 안개가 자욱하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덥고 있어서 약간 몽환적인 풍경이었으며 가시거리가 짧아 긴장을 하고 걸어야 했다.
어제 생프리바달리 마을로 들어올 때 길에서 보았던 빵집에 손님들이 많이 들락거렸다. 점심 식사용으로 빵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베이글 하나와 작은 사이즈의 바게트빵을 주인에게 봉투에 담아달라고 하였다. 주인에게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배낭의 맨 위 포켓에 넣었다. 빵을 구하니까 마치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끝낸 것처럼 점심을 해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노 루트는 조금씩 경사가 높아지는 언덕길로 시작했다. 이제 주변이 더 밝아지며 그곳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는 산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한가롭게 마을을 이루고 있는 풍경과 소들이 모여 풀을 먹으며 어슬렁 거리는 목장도 보였다.
오늘 목적지 쏘그(Saugus)까지는 약 20km를 걸어야 했다. 중간 마을 'Rochegude'를 지나가며 '에펠'이라는 철교를 지나는데 에펠탑을 건설한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세운 다리라고 했다. Monistrol까지 3시간이나 걸렸다. 그곳부터 카미노 루트는 점차 오르막 길로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머리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고걸어가면서 허기를 채울 육포를 꺼내 윗옷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온통 가리고 있어서 가랑비가 언제 그칠 줄 몰라 체념하고 걸었다. 이곳은 소나무도 보이고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목들이 우거진 산에 나있는 길을 지나가야 했다.
숲을 지나갈 때는 카미노를 걷는 다른 순례자를 만날 수 없었다. 적막하고 약간 을씨년스러운 숲길은 상당히 긴장을 해야 했다. 약간 어둠침침하고 어디서 큰 동물이 나올 것만 같아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스틱을 바닥에 내리쳐서 소리를 크게 냈다. 동물들이 금속성 쇳소리를 싫어해서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차라리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걸어야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멜론앱을 열어 그동안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고 완전히 다른 기분으로 걸어갔다. 통신이 약해졌다 다시 연결되기를 반복해서 노래가 흘러나오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나의 음악 장르는 다양하게 섞어 듣기 때문에 클래식. 팝송. 샹송. 칸초네. 가요까지 망라해서 들었다. 그러나 저장해 둔 음악은 대부분 조용했으며 어떤 노래는 슬프기까지 하였다. JTBC 방송 '싱어게인' 프로그램 우승자 '김기태'가 부른 노래와 오래전부터 내가 간직하고 듣고있는 일본인 피아니스트 '유키쿠라모토'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걸었다.
이런 혼자만의 순례길 걷기는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을 극복하는 경험을 갖어다 주었다. 그렇지만 걷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좀 두렵기도 했다. 플라타너스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인 숲길을 지날 때는 이제 시간이 가을로 접어들어 계절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숲속의 오솔길은 흙과 여름에 떨어져 쌓인 낙엽이 뒤섞인 채 이어지고 때때로 시원한 바람과 공기가 흐르는 계곡을 만나기도 했다.
지인들은 나에게 순례길에 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냥 혼자 걸을때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걸을때나 힘들지만 내가 아직 건강하게 지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둘레길을 걸을때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매일 또 새로운 풍경을 맞으며 상큼한 공기를 깊게 마시고 내쉬면서 나의 건강 연습을 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
Saugues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4개의 나무가지에 촛불 모양을 조각하고 순례자를 인도하는 조개껍데기를 붙혀놓은 조각상이 있었다. 이곳벤치에서 휴식을 하고 있을 때 뒤따라 걷고 있던 순례자들이 내가 좀 지쳐 보였는지 나에게 "아유 오케이" 하고 물으며 지나갔다. 사실 발목이 아파 걷는 내내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처럼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상쾌하지 않아 걷기가 좀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마을에 들어와 숙소를 찾아왔는데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건물에 지트가 있었다. 사무실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침대를 배정받아 걷느라 피곤한 몸을 샤워로 해결하고 저녁 시간까지 푹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저녁 8시에 순레자들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식탁을 가운데 두고 20명 가까이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대부분 젊은 프랑스 사람들이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은 나와 내 앞에 앉아있는 프랑스인 치과의사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프랑스인들은 스페인 순례길을 걷기 전에 르퓌길을 먼저 경험하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콤포 스텔라 가는 루트가 이곳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오늘은 Domain de Sauvage의 지트 예약 때문에 긴장한 하루였다. 지트 이름은 'Auberge du Sauvage en Gevaudan'인데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3일째 구간 목적지에 하나밖에 없는 지트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지트를 무조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메일 예약을 받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전화로만 예약을 받아서 불어를 할 수 없는 나는 무척 애를 먹은 곳이다. 만약 예약을 못하면 5킬로나 떨어진 다른 지트로 가야 했는데 그러면 하루 걷는 거리가 30km를 넘어 너무 힘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전화로만 예악을 받는다고 해서 나는 7월 초 프랑스와 시간차를 감안해 일단 전화를 했었다. 주인이 영어를 못해 전화를 종업원에게 건네주고 예약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영어가 서툰 종업원에게 예약을 하면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Domain de Sauvage 지트 예약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어제는 지트 호스피탈레노에게 오늘 지낼 지트 예약 확인을 부탁했더니 지트에서 전화를 받지 않아 확인을 못하고 출발했었다.
아침에 식사를 하기 위해 지트의 켄틴에 갔더니 어제저녁 옆에서 식사를 하던 프랑스 커플이 왔다. 이 커플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 여러 차례 나한테 질문을 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이 커플의 남자에게 오늘 도착할 지트에 전화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는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GR65(Grande Randonnée 65)가 지나가는 르퓌길은 스페인의 카미노 루트의 표식에 비해 더 자세하게 그리고 더 많이 부착해 놓아 자주 눈에 띄었다.
쏘그에서 쏘바주로 가는 길에는 주로 침엽수인 붉으스레 한 소나무(적송)들이 많은 숲을 지나갔다. 해발 1400미터 가까이 오르며 높은 고원지대로 형성된 마치 불모지 지역을 지나야 했다.
오전 10시쯤에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고원에 나있는 길을 걸어가다 뜿밖에 패스트 푸드 음식을 파는 컨테이너 바를 만났다. 주인은 컨테이너의 조그만 창을 열어놓고 얼굴을 보이며 주문을 받고 그 안에서 음식을 준비를 한 다음 창 밖으로 내주었다. 사람들은 컨테이너 앞에 마련된 천막 아래 테이블에서 먹고 가는 구조였다. 주문할 수 있는 메뉴를 컨테이너에 붙여놓고 입구에는 보드에 적어놓았다. 나는 추위를 녹이기 위해 우선 따뜻한 커피 한잔과 간식으로 오믈렛을 주문했다.
주인은 내주는 따뜻한 커피와 오믈렛을 들고 테이블로 와서 먹기 시작했는데 지나가던 중년의 남자와 여자 순례자가 컨테이너로 걸어왔다. 그리고 커피를 주문하고 배낭에서 바나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또 지나가던 순례자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다. 잠깐사이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느라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그러는 사이에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들 꼼작 없이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에서 그룹으로 걷는 일행 중 한 여자가 떠드는 말에 다들 재밌다고 웃느라 약간 소란스러웠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의 20분정도를 쏟아지던 빗줄기가 잦아들자 모여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우비를 입고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마지막 열에 끼어들어 걷기 시작했으며 카미노 길은 숲으로 들어가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만나 걸었다. 숲을 벗어나자 보이는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밀려가며 이내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조금전부터 앞에서 걸어가는 부부가 비가 멈추며 밝아지는 주변의 풍경을 열심히 사진을 찍느라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그들 뒤에서 따라 걷는 나에게 사진을 찍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어디까지 걸어가느냐. 처음이냐? 대충 질문은 그렇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프랑스 사람들인데 현재는 세네갈에 살고 있다. 남편이 병원에서 인턴 할 때 만나 그곳에 가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남편 이름은 Marco, 부인은 Elizabeth인데 호주에 딸이 살고 있어서 내년에는 아시아 국가를 여행할 예정인데 일본에 가면 한국에도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한국 오면 연락하라고 했더니 휴대폰을 꺼내 'What's wap'으로 연락하자고 하며 나의 전화번호로 테스트겸 문자를 보내며 확인을 했다. 내가 오늘 숙소 예약 확인이 안 되어 빨리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부인이 지트에 전화를 직접 해주겠다고 자청했다.
부인이 숙소에 전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응답에 얼굴 표정이 밝았는데 통화를 끝내고 나에게 예약이 잘 되어있다고 엄지 척을 하면서 좋아했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해서 이번 카미노 여행에 준비한 한국 기념품인 조선 왕비가 그려진 손거울을 여자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그녀는 동양의 먼나라의 왕비가 그려진 손거울을 보며 무척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그들이 앞장서고 나는 뒤를 따라 걸어갔다. 카미노 루트의 우측에 홀로 있는 건물이 나타났고 앱을 켜서 지트 위치를 확인했더니 그곳이 오늘 예약한 지트라는 것을 알았다. 단단한 돌로 지어진 건물은 내부에는 거의 호텔 수준으로 개조해서 활용 중이며 깔끔한 내부 집기들과 넓은 공간은 단체 여행객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입구는 주차장을 돌아 뒤쪽에 있었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주인이 나오며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주었다. 숙박비를 지불하고 주인의 안내를 따라 옆 건물의 침실로 향했다. 나는 비에 젖어 축축해진 배낭을 말리기 위해 모든 짐을 꺼내 침대 난간에 걸어놓고 일단 샤워를 했다.
이제 좀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우거지 된장국 블록과 '카누' 커피를 들고 나와 캔틴으로 갔다. 혹시 모를 된장 냄새를 내 보내기 위해 큰 창문을 열고 냄비에 물을 끓이고 된장국 블록을 넣고 휘저어 풀어지게 하고 냄새를 맡았다. 된장국 냄새가 코 끝에서 아주 구수하게 느껴졌다.
지트의 저녁 식사 시간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8시였다, 식당의 여러 개 테이블에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모두 채워졌다. 식사시간 내내 시골 장터 같은 부산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테이블마다 순례자들은 떠들고, 크게 웃고, 특히 여자들이 모인 테이블은 목소리가 커서 약간 소란스러웠다. 나는 프랑스어를 몰라 구글 번역기를 열어놓고 사람들과 조금씩 대화를 이어갔다. 앞에 앉아있는 독일 순례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걷기 시작했는지 등을 영어로 물어왔다. 내가 이번 카미노는 다섯 번째라고 했더니 매우 놀라며 나에게 최고라고 하면서 웃었다. 메뉴는 생선 조림 같은 요리였는데 각종 채소를 섞어서 풍미를 더 하게 해 주었고 순례자들은 디켄터에 들어있는 레드 와인을 다 마시고 디저트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난 후에도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 대화는 계속되었다. 나는 먼저 인사를 하고 일어나 침실로 돌아왔다.
르퓌길에서 지트는 스페인 알베르게와 달리 저녁과 아침 식사를 제공하므로 식사 시간에는 모든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 이때 순례자들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상대방을 알게 되는 기회가 생겼다.
아침 식사를 7시에 끝내고 40분 후에 숙소를 나섰다. Aumont aubrac까지 28km, 배낭 무게가 10킬로그램이 넘으니 반나절을 걷고 나면 힘들다는 생각이 앞섰다.
지트를 나와 건물뒤에 보이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트 옆에는 어제 자세히 보지 못했던 작은 호수가 보였다.
하늘에서 금방 비가 쏟아질 듯 검은 구름이 몰려 지나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가 갑자기 장갑과 바람막이까지 껴입었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프랑스 날씨는 벌써 기온이 내려가 카미노를 걷고있는 나에게 긴장을 안겨주었다.
가이드북에 오늘 카미노 구간 13킬로 지점 'Saint Alban sur Nimagnole' 마을에 바가 있다고 했다. 출발 후 3시간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지만 그동안 비가 올까 봐 나는 다시 부지런히 걸어가야 했다.
르퓌길 걷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순례길을 걷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분을 추모하는 십자가를 길에서 만났다. 정오를 지나면서 길에는 가끔 햇살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물 웅덩이에 고인물이 반짝거렸다.
오늘따라 나는 걷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길에서 자주 쉬어야 했다. 심지어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언덕을 올라가다 길에서 그냥 서있다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오후 3시를 지나다 길에 'GR65. Aumont. 5km ' 표지판을 만나며 이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적지를 1.5킬로를 남겨놓고 마을이 보일 때까지 열심히 걸어갔다. 이곳 마을에는 오래전에 큰 동물 물체인 괴물이 살아 여러 주민들을 해친 제보당의 괴물(Beast of Gévaudan)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가이드 북에 소개되었고 마을 입구에는 지역을 소개하는 보드에 전설에 소개된 괴물의 형상을 소개하고 있었다.
지트는 마을 입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지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젊은 호스피탈레노가 완전히 지쳐있는 나를 보며 그냥 웃기만 했다. 체크인을 하고 순례자여권에 스템프를 받은 다음 주인이 알려준 이층으로 가기 위해 약간 오래되고 목재로 지은 계단을 올라가 침대가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녁식사에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이곳 지방의 전통음식 알리고(Aligot)가 나왔다. 그냥 밀가루 반죽 같은데 고기와 먹으니 담백하고 먹을만했다. 고산지대에서 소를 많이 키우는 오베르뉴 지방을 상징하는 음식인 '알리고'는 으깬 감자와 치즈, 크림, 버터, 마늘을 넣어 만들고 포크를 푹 찔러 넣은 다음 위로 쭉 잡아 늘리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받은 튜브 고추장을 가져와 먹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순례자가 호기심을 갖고 물어봐서 "핫 페퍼 페이스트"라고 말하고 "먹어 볼래요?" 했더니 "오케이" 하고 대답을 했다. 나는 순례자의 음식 접시 위에 고추장 튜브를 눌러 조금 떼어주었다. 순례자가 호기심으로 고추장을 맛보더니 얼굴이 빨개지며 "맵지만 괜찮아" 하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돼지고기 위에 고추장을 발라 먹었더니 속이 훨씬 개운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는 순례길 출발 전에 한국에서 고추장 튜브를 3개 준비해 왔으며 길을 걸을 때 배낭 허리 벨트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고추장을 꺼내 빨아먹으면 입안이 환해지고 정신이 번쩍 들어 기운을 차리는데 효과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지냈던 방에는 침대가 5개 있었는데 4명이 같이 지냈다. 내 옆 침대에 뉴질랜드에서 온 '스티브'와 대화를 나누었다. 미스터 스티브는 69세로 뉴질랜드 남섬의 조그만 마을 Te Anau에서 왔는데 건장한 체격으로 Te araroa 트레일 3000킬로미터를 걸었고 네팔의 히말라야에도 다녀온 사람으로 이번 르퓌길 후에 다시 영국 Canterbury에서 출발하여 프랑스와 스위스를 지나 이탈리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까지 약 2200킬로를 걷는 비아프랜치체나(Via Francigena)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열어 오늘 구간을 확인했다. 28킬로 지나면 Nasbinal에 도착한다. 지트에서 제공하는 바게트빵과 치즈, 오렌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호주에서 오신 부부가 앞자리에 앉았다. 서로 "봉쥬르"하고 인사를 하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 손주가 이번에 잼버리에 참석했는데 더워서 고생은 했지만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지방의 문화를 체험하느라 아주 재미있게 지냈다고 얘기를 했다. 그분들은 내가 하루에 걷는 거리가 먼 곳은 걷기가 힘들다고 했더니 '르퓌'에서 '피작'까지 배낭이나 순례자들을 태워주는 '콤포스텔라 버스'가 있으니 이용하라고 하며 가지고 있는 시간표와 금액이 적인 팸플릿을 내게 주었다. 이 버스는 매일 한차례 '르퓌'와 '피작'사이를 왕복하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탈 수 있다고 알려주며 웹사이트도 알려주었다. 콤포스텔라 버스는 프랑스 길에서 운영하는 동키서비스와 동일한 운송서비스였다.
아침에 지트를 나와 작은 마을을 벗어나자 카미노 루트는 바로 자동차 도로에 들어섰다. 근처의 도시로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꽤 속력을 내면서 질주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찬 바람이 불고 있어 추위를 피하느라 장갑을 끼고 걸었다. 카미노 루트는 도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고 또 숲을 나서면 넓은 목장 사이를 지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야생의 거친 지역에 점차 생명을 잃어가는 듯 벌써 노랗게 변해버린 잡초들이 모여있는 고원지역에 들어서고 지나가는 길에 목재 데크를 설치한 길도 지나갔다.
'오몽오브락 고원에서는 지평선이 보이는 지역으로 들어가며 현무암으로 덮여있는 화강암질 토양에 경작지는 없고 풀과 바위만 보이는 끝이 없는 곳이었다. 또한 이곳을 지나면 소나무와 밤나무 숲. 용담과 쿨키쿨이 자라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프랑스를 걷다. 이제형 글)
출발지 오몽 오브락에서 13킬로 떨어진 Pratviala 마을의 바에 들러 간단한 점심으로 깜빠뉴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스낵으로 크로와상에 커피 한잔을 마시는 순례자들이 눈에 띄었다. Aubrac의 고원지대 초원을 지나가는 길에는 초가을의 바람이 여전히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봄에는 오브락 고원을 지나는 길 양쪽에 수선화가 핀다고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꽃을 증류하여 에르메스를 비릇한 향수회사에 판다고 했다. 풀들의 생명이 다해 말라버린 초원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Les Gentianes Del Aubrac'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주택 입구에 프랑스어로 음식을 팔고 있다는 안내문을 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정집 마당을 지나 뒤로 돌아가니 출입문이 있고 문이 조금 열려있는 입구에서 실내를 들여다보고 주인을 불렀다. 젊은 여자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주방에서 일하다 밖으로 나와 나를 식사 테이블이 있는 룸으로 안내를 했다. 나는 메뉴에 스파게티와 와플이 있어서 콜라와 함께 주문을 했다.
식탁과 작은 서재에는 순례길에 관한 팸플릿과 가이드북이 꽂혀있었다. 르퓌길의 가이드북인 '미암미암도도(Miam Miam Do Do)' 가 있어서 오늘 구간을 찾아보았다. 이 책은 소문대로 카미노 루트 각 구간에 대한 정보가 굉장히 상세하게 표현되었고 이해하기도 쉽게 편집되어 있었다. 독자들이 보기 쉽게 만들어져 순례자들에게는 제일 많이 알려진 가이드 북이다. 아마존에서 검색했을 때 모두 두 권(1권과 2권)으로 나누어 판매를 하고 있어 나는 배낭 무게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시골의 조용하고도 한적한 마을, 주인은 먼저 바게트를 바구니에 담아 가져왔다.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바게트는 잼, 버터 치즈를 발라먹거나 바게트를 반으로 자른 다음 그 안에 고기나 채소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바게트는 겉이 황금색을 띠고 바삭바삭해야 한다.
주인이 정성껏 만들어 내온 홍합이 들어간 스파게티와 꿀을 담은 접시와 함께 가져온 와플을 시원한 콜라와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포만감이 생기고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그 후로 나는 왠지 알 수 없는 힘이 생겨서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며칠 전부터 길에서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같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 내가 지나가며 "봉쥬르"하고 인사를 했지만 미소만 띨 뿐 대답을 하지 않아 나는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대화가 거의 없고 단지 사진 찍을 때만 장소를 지정하는 등 서로 반응이 나왔다. 아버지는 살이 많이 쪄서 걸음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아들이 앞서서 걷고 있었고 때때로 상당히 떨어져서 걷기를 반복했다. 서로가 입장이 달라 걸음의 보조를 맞추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부자지간에 순례길을 걷는 광경은 왠지 보기 좋았다. 그런데 그들은 평소에 무슨 대화를 나눌까 궁금했다. 나는 아들이 없어서 경험이 없지만 대부분 아들은 무뚜뚝해서 아버지와 대화는 적다고 들었다. 그런데 누가 먼저 순례길을 걷자고 제안을 했을까? 그동안 궁금증이 있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길에서 나보다 앞서가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진 찍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내가 먼저 이번에는 부자를 위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니까 흔쾌히 동의를 했다.
사진을 찍고나니 아버지가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아들이 핸드폰을 들었다. 내가 구글 번역기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걷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번역해서 보여주니까 기분이 좋은지 아버지 얼굴이 거의 함박웃음으로 가득해졌다. 아버지는 자기 자동차가 한국에서 수입한 '기아' 브랜드라고 해서 내가 곧바로 엄지 척을 하면서 최고라고 보여주었다.
아들은 그 이후로 대화의 상대를 나로 정해놓고 걸어가면서 계속 질문을 해댔다. 나에게 어디까지 가느냐? 어디서 출발했느냐?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나는 학생인데 전공은 디지털 마케팅이다. 9월에 학기가 시작되니까 중간에 돌아가야 한다. 그는 그 이후로 말 보자기가 터져서 계속 질문하고 나는 답하고. 나도 묻고. 한참을 같이 걷다가 아버지가 뒤쳐져 먼저 가라고 했다.
카미노 루트는 24킬로를 지나는 지점 Pont de Marchastel에서 Montgros 길로 들어섰다.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올라가는 Cascade du Deroc 길에 비해 1km 정도 가깝기 때문이다.
카미노 르퓌길은 전 구간이 프랑스 지역이라 대부분 프랑스 순례자들이 제일 많았다. 그러나 미국. 호주. 뉴질랜드 사람들도 자주 보이고 어제는 같은 방에 머리를 길게 기른 젊은 호주 청년과 지냈는데 성격이 밝아 순례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 청년은 작년에 스페인 은의 길을 9월에 걸었다고 했다.
Nasbinal에 들어왔다. 마을 규모는 작지만 레스토랑이 많이 보였고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시내 작은 공원을 지나 지역 행사를 했는지 대형 천막들이 있는 넓은 광장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지트는 마을의 끝 지점에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4월에서 10월까지 운영하는 숙소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지트 입구에 도착해서 대문에 붙어있는 주인의 안내 글을 읽어보았다. '지트에 도착하는 손님은 입구에 있는 종을 쳐 주세요' '그러면 주인이 옵니다'라고 씌어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의 집은 지트 뒤편에 있는 주택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주인 남자가 잔디 정원을 지나 걸어왔다. 나는 주인이 지시하는 대로 신발은 벗어서 신발장에 넣어 놓고 배낭은 룸에서 사용할 필요 물품을 바스켓에 넣고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6시 10분에 부인과 같이 와서 체크인을 하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지트에는 침대가 4개 있었는데 뉴질랜드 젊은 남자와 미국 젊은 여자 순례자가 나중에 숙소를 찾아왔다.
정확하게 6시 10분에 주인 부부가 마들렌빵과 쿠키를 하우스 와인과 함께 들고 왔다. 그런데 마들렌 빵과 문구가 적힌 쪽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이제 테이블에 세 명의 순례자와 두 명의 부부가 앉아 미국 여자 순례자가 말하는 내용을 듣고 있었으며 여자는 주로 미국을 자랑하는 얘기로 대화를 이어가다 뉴질랜드 젊은 남자에게도 관심을 갖고 얘기를 했다. 주인 부부는 직접 만들어 온 쿠키와 티를 마시며 크리덴셜에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숙소 비용으로 13유로를 받았다. 저녁과 아침식사는 제공하지 않으며 마을 중심에 가면 레스토랑이 많으니까 그곳에서 해결하라고 설명하고 돌아갔다.
침대에 앉아 그동안 작성하지 못한 '카미노' 카페에 일기를 올리기로 했다. 며칠간 카미노 흔적을 더듬으며 기억을 되살려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곱 시가 넘어 지트를 나와 나스비날(Nasbinal) 시내를 산책하며 레스토랑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찾아갔다. 우선 손님이 많아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딱 하나 비어있는 테이블을 발견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변의 손님들이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종업원이 지나가면서도 주문을 받지 않아 내가 서둘러 메뉴를 달라고 했다. 그는 영어로 제작된 메뉴판을 가져와 두고 갔는데 나는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나는 평소에 식사량이 적어 혼자 먹기에 수월한 바게트빵과 수프와 참치샐러드 그리고 콜라를 주문했다. 나는 식도의 괄약근이 약해서 음식을 빨리 삼키지 못하는 결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가벼운 음식 재료의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소고기를 먹는 일은 삼가고 있었다.
어제 지트에서 체크인할 때 주인한테 내일 32킬로는 걷기 힘든데 시외버스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을 지나가는 'La malle Shuttle' : 스페인 순례길 동키서비스와 같음. 순례자도 필요하면 구간별 비용을 지불하고 태워줌)를 이용해서 다음 마을에서 내려 다시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고 하며 직접 예약을 해 주었다.
La malle 버스는 아침 10시에 광장의 정류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에 식빵 세 조각과 한국산 카누 커피 두 봉지를 끓여 먹고 거실 테이블에서 기다렸다. 테이블에 앉아 카미노 가이드북을 펼치고 오늘 걸어야 할 루트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주인 부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부터 청소를 해야 하니 지하실에 있는 기도실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건물 밖에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십자가가 있었고 컴포넌트 기기에 CD(성당의 종소리가 들리고 기도와 관련된 주문이 나옴)를 넣어 음악을 들려주고 나갔다.
나는 10분쯤 기도실에서 묵상을 하고 밖으로 나와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구글맵에서 확인한 슈퍼마켓을 찾아갔다. 오늘 점심을 대용할 머핀과 오렌지 주스. 오레오. 납작 복숭아를 사고 에비안 생수도 한병 구해 배낭에 넣고 나와 'La Malle' 셔틀버스 타는 광장으로 갔다. 여행자용 캐리어를 잔뜩 실은 버스는 출발 준비를 하며 예약한 순례자들에게 요금을 받고 나자 잠시 후에 마을을 떠났다. 'Nasbinal'을 떠난 셔틀버스는 주로 넓은 옥수수 밭을 지나쳐 다음 마을 Aubrac에 나를 내려주고 떠나갔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다 스틱을 지트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순례길을 걸을 때 여러 가지 용도가 있는 스틱을 지트를 나설 때 챙기지 못하고 왔으니 너무 당황스러워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나는 지트에 전화를 해서 스틱을 받을 방법을 의논하려고 가이드북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되고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 음성 메시지만 들려왔다.
스틱 찾기를 포기하고 걸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전에 지나온 길에서 다른 'La Malle' 버스가 나타났다. 나는 자동차를 세우고 조금 전에 같은 회사 버스를 타고 왔는데 스틱을 지트에 두고 왔으니 전화를 해달라고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Fernado'의 전화번호를 가리키며 이곳으로 가져다줄 수 있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버스 기사가 지트에 전화를 한 후에 나에게 이곳에서 기다리면 곧 가져다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보라고 하고 떠나버렸다.
마을 성당 앞 광장에 카페쪽으로 가서 원탁 테이블에 커피를 주문하고 지트 주인의 자동차를 기다렸다.
진한 커피 색의 에스프레소 같은 커피를 다 마시고 기다려도 'La Malle'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포기하고 출발하려고 일어났더니 버스가 나타났다. 내가 버스쪽으로 다가갔더니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지트에 스틱이 남아있는지 확인했는데 없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분명히 지트 출입문 옆에 두었는데 없다는 것에 의문이 들어 지트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가이드북에 적힌 어제 지냈던 지트 이름과 전화번호를 가리켰더니 'Fernando'가 아니라 그 위에 적힌 지트'NADA'에 갔었다고 말했다. 나는 버스 기사가 다른 지트에 전화를 해서 확인한 것 같은데 내가 지냈던 Fernando에 전화를 좀 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기사가 사정이 딱한지 자기 휴대폰으로 지트에 전화를 했으나 불행하게도 연결이 안 되어 나중에 전화를 하는 게 좋겠다 하며 떠나버렸다. 나는 커피를 마셨던 Bar의 종업원에게 가서 지트 'Fernando'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전화를 부탁했으나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설명을 했다. 지트에 연락을 하기 위해 지체된 시간 때문에 오늘 목적지에 늦게 도착할까 걱정이 되어 나는 전화가 연결되기를 포기를 하고 그냥 출발을 했다.
카미노 루트는 바로 경사진 산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내 정오를 넘기면서 한낮의 열기가 심해 걷는 내내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늘이 있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닦아내다 지트 주인에게 이번에는 이메일을 보냈다. '스틱을 두고 왔는데 가능하면 배달받기를 원한다고' 알려주며 오늘 숙소 주소를 적어 보냈다.
오후 2시쯤 사람들이 가끔 지나다니는 Saint Chel y D' Aubrac 마을로 들어서고 입구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열이 나는 발을 식혀주기 위해 양말을 벗었다. 아침에 준비한 빵과 오렌지주스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카미노 앱 'Gronze' 에 들어가 어제 지냈던 지트 전화번호를 찾아보니까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번호에 숫자가 하나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이드 북에 잘못 인쇄된 전화번호를 모르고 계속 연결을 시도했으니 나로서는 너무 황당했었다. 나는 혹시 주인의 회신 메일이 왔을까 하고 휴대폰에서 메일의 받은 편지함을 열었더니 답장이 들어와 있었다. '오늘은 늦어서 어려우니 내일 아침 일찍 카미노 출발 전에 숙소로 가져다주겠다'고 답신 메일이 와 있었다. 나는 고마워서 지트 주인에게 다시 감사 메일을 보냈다.
마을 밖으로 나와 조그만 다리를 건너고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GR 65 루트 싸인이 표시된 전신주를 보며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길에서 오래전에 만났을법한 과거의 순례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숲으로 들어서며 카미노는 다시 긴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밤나무 숲이 계속 이어지며 숲길에는 벌써 떨어진 밤톨들이 가득했고 대부분 입을 벌리며 속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이 지역은 규토질의 산성토양이라 밤나무가 잘 자란다고 했다. 좁은 숲길을 한동안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이제 힘이 들어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곳 숲길에는 의외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앞에서 자주 나타나며 "봉쥬르"하고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쉴 장소를 찾지 못하고 걷고 있을 때 앞쪽에서 굉장히 큰 개를 데리고 걸어오는 노인 부부를 만났다. 내가 이 길이 '쌩곰돌트(Saint com D'olt) '가는 길이 맞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했다. 그는 가이드북을 나에게 보여주며 다시 돌아가다 GR65 표지판을 보면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노인 부부는 나에게 길 안내를 해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나는 분명히 GR65 표식을 보고 숲길로 들어섰고 계속해서 숲길에서 나무에 그려진 프랑스 국기 색깔인 하얀색과 빨간색 표식을 보고 걸어왔는데 무슨 영문인지 당황했지만 지금은 노인 부부를 따라서 다시 Saint Chel y D Aubrac 근처까지 되돌아가야 했다.
노인 부부가 가던 길을 멈춰섰을때 GR65, Saint Come D'olt 방향의 화살표를 만났다. 나는 그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늦은 만큼 서둘러야 했다. 나는 거의 길바닥을 보면서 정신없이 걸을 정도로 바삐 걸었다. 손목시계의 시침이 이제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때 나는 좀 지쳐서 산간 마을의 Lestrade로 들어가는 길의 돌계단을 내려섰다. 마을 입구에서 텀블러에 커피와 홍차. 그리고 마들랜 빵과 바나나, 크기가 작은 사과 등이 바구니에 담겨있고 돈을 넣을 수 있는 박스가 있는 무인 카페를 만났다. 건너편에 있는 주택에 살고 있는 주인이 창고를 이용해 테이블과 의자를 몇 개 두어 순례자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커피와 빵을 먹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골목에서 우편배달차가 다가왔다. 나는 차에서 우편물을 가지고 내리는 젊은 배달부에게 미안하지만 지트에 갈수있도록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통화를 끝낸 우편배달부는 "이곳까지 택시가 올 수 없다고 한다" 라며 우편물을 가지고 앞에 있는 집으로 갔다. 이때 앞 집 대문이 열리며 여자가 밖으로 나와 우편물을 받을 때 우편배달부가 여자에게 내가 택시를 불러달라고 한다며 얘기를 하자 자기가 불러줄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여자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하더니 통화를 끝낸 여자가 택시를 보내달라고 했지만 이곳으로 올 수 있는 택시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의 구글 번역기에 당신이 나를 지트까지 데려다주면 택시비를 드리겠다고 작성해서 보여주었더니 여주인은 웃으면서 "오케이" 하며 좋아했다. 여자는 주차장으로 가더니 아주 오래되고 낡은 밴을 가지고 나와 나를 앞자리 조수석에 타라고 했다. 그런데 삐걱거리는 자동차를 여자는 커브가 심한 고갯길을 거침없이 빠른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자동차가 심하게 흔들려 조바심이 나 오른쪽 손잡이를 꽉 붙들고 있었다.
내가 예약해 둔 지트는 수도원으로 사용하던 오래된 석조건물이었는데 지트 접수 장소인 사무실로 여자가 같이 들어와 직원에게 나를 인계해 주며 20유로를 받고 돌아갔다.
오늘 매우 당황하고 지치고 힘들게 보낸 나를 지트 'Malet' 직원은 친절하게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이곳은 오래된 수도원 건물로 배정된 침실로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자원봉사자 여자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그녀는 매우 엄격하게 신발은 신발장에 그리고 배낭은 로비의 한쪽 공간에 놓고 이 층으로 올라가도록 했다. 아래층에는 순례자들이 따로 지낼 수 있는 응접실 공간과 물과 커피까지 구비해 놓은 서랍장도 있었다. 나는 직원이 넘겨준 룸키를 들고 방을 찾아갔다. 무척 깨끗한 베드에 화장실과 샤워실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부터 좀 베드에서 쉬고 싶었다. 오래된 건물의 외부 모습과 달리 침실은 두 개의 침대를 갖추어서 하루종일 걷느라 피곤에 지친 순레자들에게는 최상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지트였다.
저녁 7시가 지트의 식사 시간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성당에서 이곳에 피정을 온 듯 수녀님들과 신도들이 줄을 지어 식판을 가지고 음식을 담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신도들은 기도를 드리고 준비된 잡곡밥. 렌틸콩 수프, 브로콜리 볶음. 소의 간 볶음. 구운 돼지갈비. 과일 모둠. 와인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음식을 담아와서 출입구에 가까운 식탁에 앉았다. 조금 후에 연로하신 수녀님이 식판을 들고 식탁 앞 좌석에 앉으셨다. 내가 "봉쥬르"하고 인사를 하자 수녀님이 산티아고에 가느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순례길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시고 차분한 어조로 '욕심내지 말고 건강하게 걷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027년 세계가톨릭청년대회 서울 개최. 교황님이 몽골을 방문하신다. 순례길 걷기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느냐를 물어보셨다. 수녀님은 다른 지방에서 근무하신다고 하셨으며 신자들과 성지 순례 중이라고 하셨다.
깨끗한 베드와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평소에 비해 잠을 잘 잤다. 로트 계곡에 자리한 Mallet 지트는 아침식사 메뉴도 많았다. 시리얼. 우유. 커피. 차. 바게트빵과 카스텔라. 사과. 오렌지주스. 과일모둠 등. 이곳 수도원 지트는 호텔 구분의 별 2개 인증 표시가 입구에 붙어있었다.
수도원 사무실 호스피탈레노가 나에게 아침 9시 30분에 스틱을 가져오니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1층 휴게실에 가서 수도원 관련 사진들을 보면서 커피를 한잔 들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자동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 혹시나 하고 밖으로 나가니까 지트 여자 주인이 나의 스틱을 들고 나타났다.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차에서 내려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악수를 하고 서로 허깅을 하면서 남편은 나에게 프랑스식 볼 인사까지 하였다.
스틱을 택배로 보내지 않은 것은 택배 차량이 이곳에 도착하면 10시 30분으로 그러면 내가 너무 늦게 출발하게 되어 부부는 편도 30킬로가 넘는 이곳까지 자동차를 운전해서 스틱을 가져다준 것이다. 부부가 돌아가고 난 후에 나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다시 편지 메일을 보냈다.
오늘은 중간에 Espalion을 지나 Estaing까지 21킬로를 걸어가야 한다. 수도원 지트의 호스피탈레노가 점심이나 간식거리를 중간에 지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는 Espalion에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은 아름다운 강을 품은 넓은 공원이 있으며 물론 예술가들의 여러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도시로 들어갈수록 상점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고 설명했었다. Espalion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에 등록이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도시로 소개되었다.
지트를 나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걸어내려 가다 마을로 들어가는 경사가 있는 계단을 내려갔다. 작은 공원을 거쳐 내려가는 길에 1980년 지역을 관할하는 시장이 마을을 재건하기위해 낡은 건물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건물들을 건축하면서 찍은 역사적 사실의 사진들을 담벼락에 전시한 공간도 지나갔다.
카미노 루트는 Saint Come D'olt를 나와 로트(Lot) 강의 좁은 다리를 지나갔다. 뒤를 이어 숲 속을 지나갈 때 로트강으로 흘러가는 맑은 물결을 바라보다 다시 걷기를 재촉했다. 그렇게 조용하던 길이 수도원 호스피탈레노가 설명한 것처럼 강폭이 점점 넓어지는 곳에 이르자 넓은 잔디공원이 나타나고 축구장에서는 아이들의 열띤 공놀이 소리가 들려오며 Espalion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시는 화려했다. 조금은 모든 게 풍부하게 갖춰져 있는 느낌이었다. 넓은 공원과 체육 시설, 그리고 강을 따라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미술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도심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득한 거리를 지나갈 수 있었다.
도시의 시내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를 지날 때는 앞에 보이는 건물과 작은 정원에는 화가들의 그림들이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도시는 구경거리가 많았다. 나는 손님들로 붐비는 작은 골목을 서성대며 사람들의 냄새를 맡기에 바빴다. 골목을 나와 자동차들이 다니는 큰 거리로 나오자 건너편에 까르푸 마트가 보였다. 사실 어느 도시를 갈 때 식품을 팔고 있는 대형마트를 만나면 우선 먹을거리를 살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
도시의 느낌을 받은 곳은 레스토랑과 은행 같은 공공장소가 많이 보이는 광장과 도로에 있었다. 오늘이 장날인지 도로에 천막을 치고 옷, 신발, 과일, 식료품, 하몽, 꿀, 간단한 샌드위치까지 재래시장이 열리고 붐볐다.
매주 금요일에 장이 열린다고 가이드북에 나와있었다.
Espalion 거리 인도에는 걸어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성당 앞을 지나가다 궁금해서 열려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성당이든 내부의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을 맞이할때 순간적으로 잊혀져있던 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당을 나와 카미노 루트를 찾아 강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 은행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만들어 충전해 둔 트레블월렛을 은행 입구에 있는 ATM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은행안으로 들어갔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은행 이름으로 지역 은행인 듯 싶었다. 실내는 업무 구역이 넓지 않았고 마침 로비를 지나가던 여자 은행원이 나한테 무슨 일로 왔는지 영어로 물어왔다. 나는 돈을 인출해야 하는데 ATM 기기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인출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카드를 받아 앞에 있는 ATM 인출기로 다가가서 직접 인출하는 일을 대신해 주었다. 처음에 500유로를 입력하니까 한도 초과라고 메시지가 떠서 다시 300유로를 입력하니까 수수료 6유로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메세지가 떳다. 동의를 하고 돈을 인출했다. 내가 트레블월렛 카드는 환전수수료가 없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왜 그런지 물었더니 수수료가 없는 은행을 알아보고 사용하라고 알려주었다. 인출 한도가 1회에 300유로, 나는 다시 200유로를 인출하는 과정을 진행했더니 마찬가지로 수수료 6유로를 공제한 잔고가 나타났다.
분주했던 도시 Espalion 거리를 지나 롯트강의 강변에 조성된 공원에 나있는 오솔길을 지나갔다. 여러가지 편의 시설이 잘 준비된 공원은 모든것이 좋아보이고 부러웠다. 특히 산책을 하는 시민들이 휴식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솔길을 걸어가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있는 벤치가 있어서 나는 그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강을 내려다 보며 바나나와 납작 복숭아를 꺼내 먹었다.
도심 공원에는 오랜 시간 잘 자란 둘레가 굵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었고 초록 잔디로 채워진 넓은 공간에는 아이들이 식구와 같이 돗자리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잘 조성된 조그만 운동장에서는 축구 놀이가 한창이고 여러 곳에 설치된 바비큐 시설들이 보였다.
공원을 빠져 날갈때 내 앞에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가며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칠 전에 부자 지간에 말없이 걷기만 했던 광경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절친한 부자지간을 보니까 내가 보기에도 너무 좋아 보였다. 내가 아버지한테 부자지간이냐고 묻고 노래를 하면서 걷는 모습이 무척 보기에 좋다고 했더니 그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사이에 아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나는 학생이며 19살인데 스포츠를 무척 좋아한다. 우리는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 살고 있으며 등산을 좋아하며 처음으로 한국사람을 만났다며 쉼 없이 질문을 했다. 이때 아버지는 걷기가 힘든지 좀 떨어져서 걸어왔다. 이때 갑자기 경사가 있는 숲길이 나타나며 아들은 천천히 아버지를 따라 걸어갔다. 숲에서 빠져나와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자 길가에 작은 바가 나타났다. 내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아들한테 음료수 한잔하고 가자며 내가 초대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를 해 우리는 그곳에서 잠깐 멈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콜라를 주문하고 부자는 커피를 주문했다. 아들에게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국에 여행하러 오라고 했더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며 언제일지 몰라도 꼭 가겠다고 했다.
카미노 루트는 추수를 끝낸 넓은 들판을 옆에 두고 걸어갔다. 우리나라 농토에 비해 국토의 면적이 넓고 농사를 짓기에도 좋은 이런 평편한 땅이 많으니 농부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에스텡(Estaing)을 6킬로 남겨두고 아버지가 힘들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쉬었다 가겠다고 먼저 가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의 대화는 그곳에서 끝났다.
Estaing은 인구 4천 명의 도시이다. 예전에 로마 가도가 지나가며 가구와 매트리스, 장갑등을 생산하며 번영을 누렸던 도시인데 1926년 도청 소재지가 옮겨가며 쇠락을 걸었다고 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로트강을 건너가는 다리 중간쯤에 프란치스코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가면 아주 오래된 3층 석조건물들이 강둑을 따라 나란히 붙어 세워져 있었다. 건물들은 마치 서로 키를 맞춘 듯 나란히 있었고 어쩌면 지역의 군주가 더 높게 지을 수 없도록 칙령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이곳에는 이미 15세기에 지어진 성(Castle)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트는 강을 따라 걸어가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Gite Ulteria Estaing'. 닫힌 문을 밀고 들어가 호스피탈레노를 찾았더니 이층에서 체구가 좋은 여자 주인이 내려왔다. 일단 배낭과 신발은 일층에 두고 필요한 물건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이층에 와서 체크인을 하라고 하였다. 스페인에서 알베르게는 배낭이나 신발을 입구에 두지 않고 침실까지 가지만 프랑스 지트는 대체적으로 가정집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전처럼 능숙하게 필요한 물건을 담아 이층으로 올라가는 삐걱거리는 목재 마루를 지나 주인이 기다리는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크리덴셜에 스탬프를 받고 주인이 정해준 룸으로 들어갔다.
오늘 지트에 모인 순례자들은 모두 9명이었으며 모두가 프랑스인들이었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침대 위에 앉아 '카미노' 카페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건너편 침대에 자리한 뚱뚱한 체구의 남자가 내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그리고 남자는 내게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 나는 그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 지금은 적을 수가 없었다.
저녁 7시가 되자 주인이 순례자들 모두에게 식당으로 모이라고 소리를 외쳤다. 프랑스인들만 모여있는 식사자리는 다들 말들을 쏟아내느라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으며 여주인도 식사를 같이하면서 순례자들과 담소를 하느라 신이 나 있었다. 식사 중에 옆자리의 그 뚱보가 앞에 앉은 프랑스 여자들을 상대로 말을 열심히 쏟아냈으며 여자 순례자들도 뒤질세라 그에 못지않게 반응하느라 주위는 너무 시끄러웠다.
주인이 가져온 식탁의 와인이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그런데 난데없이 뚱보가 나에게 한국 노래를 청해서 나는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더니 자기가 '강남스타일' 흉을 내면서 몸을 흔들어 댔다. 그가 프랑스 노래는 아느냐고 물어와서 나는 휴대폰의 멜론앱을 열어 프랑스 노래인 'Edith pia'의 L' hymne A L'Amour를 검색해서 크게 들려주었더니 몇 사람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메뉴로 나온 음식은 렌틸콩으로 만든 죽과 토마토. 양상추가 들어간 샐러드. 약간의 쌀밥과 병아리콩 볶음. 와인과 디저트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새벽부터 창문에 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일기예보 앱을 열어 확인하니 아침 8시까지 비가 내리는 표시가 보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침 식사때까지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배낭을 꾸렸다. 그러나 일곱 시에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갈때까지 창밖에는 비바람이 불어오며 길가의 가로수 나무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와 미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비가 거의 그친 밖을 내다보다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왔다. 순례길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순례자는 유일하게 나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가랑비가 내리거나 햇볕이 강해 선크림을 발라도 소용없을 때 우산을 사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비가 내려 촉촉이 젖은 보도블록을 걸어서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갔다. 에비안 생수 1.5리터와 바나나 두 개를 사고 밖으로 나와 물 파우치에 생수를 집어넣은 다음 오늘 걸어야 할 루트를 카미노 앱에서 확인하고 출발을 했다.
이제 카미노를 시작했다. 오늘 카미노 구간은 에스텡(Estaing)에서 꽁크(Conques)까지 35km를 걸어야 해서 중간쯤 마을인 골리냑(Golinhac)에서 숙박을 하고 계속 걷는 것으로 일정을 세웠다.
비가 그친 길은 빗물이 여러 곳에 고여있었다. 그런데 길을 내려오다 버스정류장에 어제 잠깐 같이 걸었던 부자 일행 중 아들이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라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먼저 출발했고 자기는 학교 때문에 버스를 타고 르퓌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올 때 이메일로 연락을 하라고 했더니 한국은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어제 건너왔던 다리를 지나면서 강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로(Lot) 강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밤에 내린 비 때문에 강물이 불어나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풍경 같았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잎이 무성한 가로수가 보이고 이제 하늘도 점점 열리면서 주변도 밝아지기 시작했다.로(Lot) 강을 보면서 걸어가는 기분은 숲 속이나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길을 걸을 때보다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그냥 평탄한 길 주위에는 가을에 들어서서 이미 수확을 끝낸 들판도 지나갔다. 그래서 오늘은 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걸어도 오히려 걸음이 빨라진 거 같았다.
카미노 루트를 두 시간 정도 걸어가자 이제 평탄한 길은 끝나고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꼬부랑 언덕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스텡'에서 골리냑까지 중간에는 높은 고개가 버티고 있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한 고개를 올라갈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서 멀리 보이는 마을들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걸어 올라왔더니 얼굴과 몸에 땀이 범벅이 되어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고 납작한 돌 위에 앉았다. 프랑스 농촌의 드넓은 목장과 예쁜 집들이 있는 마을 풍경을 보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곳이 습도가 높은지 얼굴이 끈적끈적하고 잘 닦이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서 지트까지 남은 거리를 확인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오르막은 그렇게 끝이 나고 넓은 목장이 있는 지역을 지나갔다. 소들이 울타리 가까이에서 여물통에 사료를 먹는 듯했다. 이렇게 자유롭게 넓은 들판을 걸어 다니며 풀이나 야생화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행복한 프랑스 소들을 한국의 축사에서 길러지는 소들과 비교가 되었다.
이곳을 지나 내리막이 나타나면 마을이 보일까 기대하고 걸었는데 막상 다시 오르막길이 앞에 버티고 있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런 일은 매일같이 반복되는데 왜 포기를 하지 않을까?
오늘 지트는 Golinhac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작은 숲 속의 오토캠핑장이었다.
지트에는 뒷마당에 빨갛게 잘익은 사과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정원에는 식사 테이블과 빨래를 널 수 있는 긴 줄이 있었다. 순례자들이 오후 늦은 시간까지 지트에 찾아왔다.
이곳은 저녁 식사를 정원의 식탁에 준비하고 순례자들이 모여 앉았다. 저녁 메뉴는 얇게 썰은 닭고기 필레와 오랜만에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쳤다.
어제 지트에 도착해 동네 마트에 간식거리를 사러 갔었는데 마트의 영업시간을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고 입구에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인구가 적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마트는 대부분 단축 운영을 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유럽에 오면 매일 물건을 사야 하는 여행객들에게는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마트에서 계란 한 박스(커피포트에 삶아 걸을 때 간식으로 먹음)와 토마토, 우유. 말린 무화과 한봉지를 생수와 함께 구매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아직 자고 있는 순례자들을 피해 지트의 1층 주방으로 가서 계란을 커피포트에 넣고 삶았다. 포트안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며 계란들이 서로 소용돌이 치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포트의 물을 버리고 찬물로 채운 다음 10분 정도 기다렸다 다시 한번 찬물로 계란의 열이 식도록 기다렸다.
이제 오늘 간식인 삶은 계란과 생수를 옮겨 담은 파우치를 배낭에 넣으며 나는 매우 흡족해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가지고 다니는 마들렌 빵 봉지를 열어 남은 세 개를 꺼내 냉장고에 어제 넣어둔 우유와 삶은 계란 한 개를 먹고 출발했다. 오늘은 평소에 비해 상당히 푸짐한 아침 식사를 한 편이다. 근처의 캠핑장 입구로 나오자 카미노 루트는 주택가 앞 도로를 지나며 바로 경사진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고통을 안기는 언덕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땀을 많이 내게 했다.
Espeyrac 마을을 지나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고갯길을 올라오니 주위가 확 트인 전망대가 나와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근처의 풀이 많이 나있는 길 바닥에 앉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간마을에 드문드문 하얀 집들이 보였다. 풍경이 아름답고 또 상당히 평화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엷게 머무르던 안개는 완전히 사라지고 주변이 밝아지면서 비에 젖어있어 촉촉해진 나무들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Senergues 마을은 아주 오래되어 색깔마저 짙은 회색으로 변한 건물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주민들이 성당입구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마을 사람들이 주일 미사에 참석하러 성당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 뒤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작은 성당 내부에는 신자들로 꽉 채워져 빈 자리가 많지 않았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가톨릭 신자들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보면 우리나라 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일요일이면 관습처럼 미사에 참석하여 기도를 하는 일이 일상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여성들이 미사포를 쓰거나 남자들이 미사동안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신자들도 많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Conques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숲길이 시작되었다. 숲은 깊고 어둡기도 했다. 햇살이 닿지 않고 이런 길을 걸을 때는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가 순례자를 사로잡았다. 지나가는 숲 속에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을 때는 흐르는 물소리 때문에 시원한 느낌이 자주 들었고 산림이 우거진 지역에는 피톤치드가 있는 청량한 공기 속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숲속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지나갈때 철판으로 만든 재미있는 나팔 형상의 기구가 다리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홍수로 물이 다리를 넘치면 끝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면 소리가 들린다는? 그렇게 추측해 보았다.
고갯길을 넘고 또 넘기를 반복하며 걸었을 때 깊은 산속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오래된 수도원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 지트가 있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꽁크' 마을은 메로빙거 왕조(481~751) 때 소성당이 세워졌고 1041년에는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고갯길을 따라 좁은 길에 몇 채의 상점들과 식당. 작은 호텔과 주택들이 도로를 따라 있었고 수도원 옆에 생트푸아(Saint-Foy) 성당이 있으며 성당의 팀파눔(성당 정문 상부의 삼각형이나 반원형 공간에 성경의 장면이 조각된 곳으로 로마네스크 걸작으로 알려져 있었다)을 보기 위해 성지를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풍광이 좋은 이곳에서 하루를 쉬어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지트로 이용되고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페이팔을 이용해 결제를 하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체크인 차례가 오자 수사님이 바로 침대 번호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지트 이용 밥법과 식사 시간을 알려주었는데 이곳은 예약을 할 때 보증금 8유로를 페이팔(PayPal)로 받았는데 수도원 숙소 외에 마땅한 숙박 시설이 없어서 관광객들은 예약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님이 나에게 알려준 내용은 신발과 스틱은 보관대에 두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스틱을 두는 장소가 건물의 벽안에 있었고 신발은 신발장을 이용했다.
나는 스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양쪽 손잡이들을 끈으로 묶어서 잘 보이도록 제일 끝쪽에 두고 건물 이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돌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넓은 공간에 침대가 두줄로 20개씩 있었고 답답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방문객이 꽉 들어차 소란스럽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더니 이미 순례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문 앞에는 수사님과 봉사자들이 열쇠를 들고 있다 정확히 7시가 되자 그때서야 문을 열고 입장을 시켰다. 모두가 테이블에 착석하자 먼저 수사님이 식전 인사말을 하시고(프랑스 말이라 이해 못 함) 다시 자원봉사자가 숙소 규칙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거의 20분이 지나가고 순례자 미사는 저녁 8시 30분에 성당에서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을 기다리느라 지쳐있을 때 먼저 애피타이저가 나오고 메인으로 구운 쏘세이지와 감자조림.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제공되었으며 와인도 테이블당 2병이 제공되었다. 식당에 모인 순례자들은 접시에 담겨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담백한 메뉴로 순례자들은 상당히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마쳤다.
새벽 6시가 되어도 순례자들은 꼼짝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6시 40분쯤 되면 침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남자들은 상의를 입지 않은 채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맨발로 다녔다. 여자 순례자들도 완전히 가리지 않고 화장실을 다니는데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았다.
이곳 콩크(Conques) 마을은 프랑스의 종교적 특별한 성격의 마을인지 관광객들이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일반 차량들은 중심지역 진입을 막아놓고 있었다.
가이드북에서 구간 정보를 보면 오늘 카미노의 난이도(Difficulty)는 'Strenuous'라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파파고의 사전을 열어 확인해 보니 "힘겨운"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서 아침부터 긴장을 해야 했다.
출발점 Conques에서 고도를 300m에서 600m까지 올리고 Noailhac에서 다시 또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18킬로 지점의 Decazeville까지 내려갔다 다시 Chapelle Saint Roch까지 올려야 했다. 그리고 Livinhac le Haut까지 24.3km를 걷는 길이다.
Noaihac을 지나 산길을 걸어가다 홀로 있는 성당을 만났다. 왜 이곳에 성당이 있는지 궁금했으나 어쩌면 과거에 이곳에 마을이 있었을 거라 생각을 했다. 내가 가까이 갔을 때 남자 순례자가 성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도 성당으로 향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살지않은 이곳에 성당이 세워진 까닭을 알 수 없어 궁금했다.
나는 La Gabie라는 지대가 높은 지역을 지나가다 휴대폰을 보면서 방향을 찾는 남자 순례자를 만났다. 얼마전에 외진곳 성당에서 나와 앞장서 걸어가던 남자였다. 그는 삼거리 길에 세워있는 방향 표시판을 보며 GR65길 표시가 헛갈려 휴대폰으로 카미노 앱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같이 걸어가면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나에게 혹시 일본 사람이냐고 물어왔고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캐나다 퀘벡에서 왔는데 1995년 평양에 옥(玉)을 수입하러 두 차례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은퇴를 한 후에는 인도 기업과 자동차 부품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뭄바이와 방갈로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고 하며 자동차 브랜드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길에 GR65 표식이 보이지 않아 내가 그론세(Gronze)앱을 열어 루트의 위치를 확인했더니 우리는 현재 위치가 카미노 루트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으며 제 위치로 갈려면 그동안 지나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다 정상적인 루트에 들어서야 했다. 우리 앞에 있는 야산을 가로질러서 멀리 보이는 자동차 도로에 접근하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야산의 꼭대기에 세워진 통신 안테나 타워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멀리 자동차 도로까지 접근하는 길이 없어서 무작정 거친 풀밭을 지나가야 했다. 야산은 대체적으로 가시덤불로 덮여있어서 내려가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아 스틱을 이용해 거친 풀들을 제치면서 조금씩 아래 방향으로 내려갔다. 내가 먼저 길을 만들고 반바지 차림의 케나다인이 따라왔다.
우리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겨우 산아래 도로 가까이로 빠져나왔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났을 때 나는 캐나다 순례자에게 "고생했다"라고 격려를 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Decazeville로 가는 길에는 대형 트럭들이 많이 지나가고 있어서 우리는 도로의 비정상적인 갓길을 따라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갈수록 지면의 온도가 올라가는지 더위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물론 산을 내려오느라 너무 지쳐있었고 힘이 빠져버렸지만 나는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도로 밖 쉼터의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버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캐나다인에게 나는 더 이상 못 가겠으니 먼저 가라고 말하고 배낭을 등에 대고 누워버렸다. 캐나다 순례자를 먼저 보내고 나는 그늘이 있는 나무 아래에 그대로 누워있다 컨디션이 조금 낳아져서 일어나 배낭에 하나 남은 토마토를 물과 같이 먹고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을 메고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비상식량인 소고기 육포 한 조각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자동차 도로의 좁은 갓길은 쉼 없이 달려오는 화물차들을 경계하느라 매우 긴장하며 걸어야 했다. 산업자재를 파는 건물들과 공장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지나가며 날씨가 더워 빨리 도착해서 쉬겠다는 일념으로 바삐 걸었다. 물론 만약에 Bar나 레스토랑이 나타나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생각이었다. 도로를 따라 보이는 건물들은 농사에 필요한 자재를 파는 대형 마트들이 있었고 가끔 물건을 사려고 찾아오는 자동차들만 보였다.
그런데 내 앞에 커다란 노란색 로고인 맥도널드 폴싸인이 나타났다. 드디어 이곳에서 쉬었다 갈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우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주 적당한 장소를 만났는데 이제 시원한 콜라와 햄버거를 먹기위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캐나다 순례자가 햄버거를 먹고 있다 나를 보고 반갑게 웃어보였다. 나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키오스크 앞으로 가서 치킨이 들어간 햄버거 세트와 롱사이즈 대용량 콜라를 주문했다. 햄버거보다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콜라가 더 맘에 들었다. 햄버거를 입에 넣고 또 콜라를 마시고 가끔 트림도 했다. 점차 배가 불러오는지 목에 넘기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햄버거와 콜라의 위력으로 컨디션을 되찾은 나는 맥도널드를 나와 여전히 뙤약볕이 내리는 자동차 도로를 다시 걸어야 했다. 그때 원래 카미노 길인 GR65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제 온전한 길로 들어서자 안심이 되었다. 앞에서 걷고 있는 두명의 여자 순례자들이 힘겨운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다시 맥이 빠졌다. 그로부터 지트까지 5킬로미터를 하염없이 오르막과 내리막 길을 걷다 멈춤을 반복하고 점차 마을로 들어가는 거리를 걸을 때는 기운이 다 소진된 상태로 지트에 도착했다.
지트 대문을 말고 들어가자 캐나다인 순례자가 먼저 도착해서 벌써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여주인이 안내한 침실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곰팡이 냄새가 나서 모든 문을 열어놓고 환기를 시켰다.
저녁 식사 시간에 모인 순례자는 나와 캐나다인 그리고 프랑스인 부부 4명이 참석하고 벨기에 젊은 청년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데 애피타이저 없이 음식이 나오고 와인이 나오지 않자 캐나다인 남자가 주인에게 와인을 달라고 하니까 와인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마시자고 동의하여 개인당 3유로를 지불하고 한잔씩 마실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며 캐나다인 순례자가 나에게 주인이 와인값을 비싸게 받는데 나쁜 사람 아니냐 하고 물어왔다. 사실 너무 부실한 저녁 식사를 내주는 인심이 나쁜 여주인을 만났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새벽에 일어나 밖을 쳐다보니 오늘이 보름인지 캄캄한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갑자기 집 생각이 나서 한국으로 전화를 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제는 태어나서 물을 제일 많이 마신 날이다. 지트에 도착했더니 주인이 레몬즙을 넣은 시원한 웰컴 드링크를 주는데 갈증이 나서 연속 2잔을 마시고 그냥 시원한 물을 두 잔이나 마셨다. 그래도 또 마시고 싶어 레모네이드 한잔을 더 받아 침대로 왔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지트에서 만난 벨기에 젊은 청년을 다시 만났다. 요즘 젊은이와 달리 그는 룸에 있을 때 조용하게 지냈고 식사할 때도 별 말이 없었다.
오늘은 도시 Figeac으로 가는 길이다. 지트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하고 나와 근처의 마트에 들러 붉은 은 사과와 오렌지를 사고 밖으로 나와 카미노 루트로 들어섰다. 앞에 나보다 먼저 도로를 따라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GR65 표시는 주택가 골목을 지나고 언덕을 올라섰을때 마을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지역에 여러 주택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지나갔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며 길의 가로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바람을 쏟아내지만 훈기는 계속 길 주변을 맴돌았다. 요즘이 가을이라 주택들이 있는 길에는 무화과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나무들은 담 안쪽에 있지만 열매가 열린 가지들이 집 바깥으로 넘어와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따먹을 수 있는 집도 있었다. 무화과는 9월이 되면 과일가게에 등장한다. 무화과는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만큼 길옆에 줄지어 서있는 나무에 이미 익어서 약간 물렁한 무화과를 따 먹으며 걸을 수 있었다. 무화과의 역사를 보면 일 만년 전 지중해 연안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무화과는 껍질이 얇아서 그냥 통째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휴대폰에서 고도를 가리키는 숫자가 400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넓은 구릉을 따라 소를 키우는 목장이 나타나고 울타리 근처에 축사가 있었다. 나는 이제 길가에 버려진 소똥 냄새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아마 풀이나 야생화를 먹고 자란 소에서 나온 분뇨의 냄세는 진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쩌면 풀냄세가 그런지도 몰랐다. 축사를 지나고 농가 주택을 지나가다 길옆에 오래전에 사용했을법한 농기구를 발견했다. 아마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드는 기구였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엡 Via Podiensis에서 확인한 마을 Le Terly에도 지나가는 길에 지트가 있었다. 이곳에서 3.8km를 걸어가 중간 마을 Saint Felix에서 점심 식사를 할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프랑스 시골의 들녁에도 가을을 보내는 시골 마을에도 풍경은 점차 더 칼라플한 색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옥수수가 수확철을 맞아 누렇게 변한 들녁의 길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나 스페인 순례길에서는 가끔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Saint Felix에 들어와 구글맵을 보면서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메뉴는 믹스드 샐러드면 좋겠고 시원한 코카콜라 한잔을 마시면서 갈증을 풀 생각이었다. 그러나 Saint Felix 레스토랑은 영업을 중단했는지 문이 닫혀있고 12시가 넘었음에도 아무언 미동이 없어서 오랜만에 믹스드 샐러드를 먹을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레스토랑 앞 좀 깨끗해보이는 시멘트 포장길에 앉아 배낭을 열어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사과와 바게트빵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내가 그러는 동안 지나가던 두 명의 남자 순례자들도 레스토랑을 찾아왔다. 문이 닫힌것을 확인하고 그들은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낮으로 갈수록 더위 때문에 땀을 흘리며 걷는 속도가 자꾸 느려지고 힘이 들어서 물 마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물과 육포를 번갈아 먹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튜브고추장을 을꺼내 한모금 빨아먹었더니 입안이 환해지고 정신이 들었다.
마을 입구 벤치에 잠깐 앉아 쉬기로 했다. 그런데 앞서 걷는 누군가가 벤치에 모자를 두고 떠나버렸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와 모자를 집어서 잘 보이도록 벤치 위에 올려놓고 출발을 했다.
오후 3시가 넘어 Figeac으로 들어가는 숲길을 가파르게 내려가 자동차 도로에 들어섰다. 피지악(Figeac)은 인구 약 천 명의 작은 도시이다. 구글 맵을 열어 오늘 지낼 지트 주소를 입력하여 거리를 확인했다. 피작으로 들어가는 표지판을 지나 건물들이 많아 보이는 시내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느 도시처럼 광장을 중심으로 식당이나 옷가게 또는 일상용품 상점들이 모여있었다. 도심에서 한 블록 뒤 차선을 따라 길에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는 길을 걸어갔다. 구글맵에서 가리키는 화살표는 주택가로 들어섰다. 번지를 보면서 주의 깊게 지트를 발견할 때까지 긴장을 하고 걸었다. 그런데 지트에 도착해서 대문 앞에 섰을 때 그곳에 프랑스어로 안내문이 붙어있고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전화번호와 메모를 봐도 프랑스어라 알 수 없어서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한참 울려도 받지를 않아 마침 걸어오는 중년 부부에게 벽에 붙은 메모를 가리키며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남자가 안내문을 읽어보고 "지금 건물 공사 때문에 32번 콜롬보가로 이전했으니 찾아오라는 내용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나는 다시 구글맵을 열어 주소를 입력하고 지도의 커서가 가리키는 대로 지트를 찾아 나섰다. 내가 겨우 찾아간 지트는 입구에 조그만 안내문에 발견할 수 있는 'Gite Chez Celia'를 발견하였다. 르퓌길을 출발하고 머물렀던 숙소들하고 개념이 완전히 달랐다. 일단 조금 열려있는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지나다니는 통로에 우측에 지트로 사용하는 건물이 있었고 지트 이름이 적힌 조그만 간판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리니 왼쪽 창고 같은 건물에서 남성이 나와 이름을 물어왔다. 그리고 창고에 들어가 룸에서 사용할 물건을 바구니에 담고 배낭과 신발은 벗어서 그곳에 두고 나오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창고에 들어가니 문을 닫으면 어두어서 전등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바구니를 찾아 배낭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담고 있는데 갑자기 모기들이 날아와서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내가 서둘러서 물건을 챙기고 밖으로 나오자 주인이 반대편 건물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1층 주방의 식탁에 앉아 비용을 지불하고 크레덴셜에 세요를 받은 다음 주인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비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첫 번째 방 침대를 사용하라고 하며 저녁 식사 시간은 일곱 시, 아침 식사 시간도 일곱 시라고 했다. 나는 피작(Figeac)에서 Rocamadour 성지를 다녀오기 위해 사전에 2일을 예약했는데 취소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아래층으로 오르내리는 복도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방에는 주인이 사용하는 책장에 오래된 책들과 부팅이 되지 않은 컴퓨터가 조그만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일층으로 내려가자 주인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크림수프를 내오고 접시에 브로콜리와 당근 그리고 감자를 갈아 만든 요리를 내왔다. 식당에는 4명의 순례자와 지트 주인이 함께 식사를 했다.
허름한 건물에 햇볕이 들어오지 않은 지트는 밤에 모기들이 날아다녀 신경이 거슬렸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좁아서 씻는데도 불편이 따랐다.
오늘은 Figeac 기차역에서 Rocamadour 성지를 가는 날이다. 지트에서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1층에 있는 식탁으로 내려와 빵 바구니에 있는 바케트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리고 순례자 수만큼 놓여있는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다.
지트의 출입문을 나와 좁게 나있는 골목을 따라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도시는 아침 시간이라 매우 조용했고 구글 맵에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거리로 나왔다. 그래도 도시라서 거리에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풍경이 밝은 분위기였다.
기차 출발 시간은 9시 55분이라 역으로 가야 할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도로를 따라 상점들이 있는 비좁은 폭 때문인지 자동차들이 느릿느릿 지나가고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 다녔다. 나는 우선 기차역으로 가는 길을 사전에 확인한 다음에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며 도시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구글 맵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걸어 '피작 기차역'을 찾아갔다. 피작 시내를 흐르는 세례(Cele)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자 약간 가파르게 오르막 경사가 있는 도로를 지나 왼쪽으로 꺾이는 길로 올라갔다. 오른편에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조금 더 걸어가자 Figeac Gare(피작 역)이 있었다. 대합실에 들어가자 기다리는 여행객은 한 명도 없었고 전광판에 나타난 Rocamadour행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대합실을 빠져나와 걸어올라 왔던 길을 다시 내려왔다.
다리를 건너자 강을 따라 나있는 산책길을 좀 걷기로 했다. 우측에 시청(Mairie) 건물이 보여 횡단보도 앞에서 녹색 신호등을 기다렸다. 건널목을 지나 골목에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며 지나가다 제과점에서 풍기는 빵 굽는 냄새에 흔들려 안으로 들어갔다. 여주인은 갑작스러운 동양인 손님의 방문에 약간 의외인 듯 쳐다보았다. 주인이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껍질이 부드럽게 보이는 빵을 가리켰더니 '브리오슈(Brioche)' 하고 물었다. 브리오슈는 곡물을 넣어 발효를 충분히 해서 만든 빵이라고 했다. 나는 점심 식사용으로 두 개를 고르고 쿠르아상도 추가했다. 빵집을 나와 건너 슈퍼 마켓에 들어가 생수와 토마토를 사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골목을 걸어가다 피작 노트르담 성당 앞을 지나 어느 상점 윈도어에 머물렀다. 오래된 앤티크 자동차를 전시하며 제품과 관련한 예전 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스크랩해서 유리창문에 붙여놓은 사진과 글을 바라보았다. 1930년대 이곳에 자동차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산업 혁명이 빨랐던 유럽 나라들에서 받은 혜택 같았다.
이제 역으로 다시 올라와 한적한 피작의 기차역 대합실로 돌아왔다. 여행객 몇 명이 기차를 기다리며 서성대고 있었으며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자 하나둘씩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근처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차가 나타나고 속도를 줄이며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열차 칸이 단지 3개인 기차는 단거리를 운행하는 즉 관광지 'Rocamadour'를 위한 열차인 듯 생각되었다. 목적지까지는 약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열차가 도착한 곳은 예상과 달리 조용한 시골 역사로 보였다. 나는 역사를 빠져나와 택시가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카미노 카페에서 이곳을 다녀왔던 회원의 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곳에는 작은 규모의 호텔과 식당이 전부였다. 야외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호텔 주인에게 택시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전화를 해서 불러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성지까지 거리가 4km 정도 되기 때문에 걷는 편이 빠르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성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기차역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 Rocamador 성지까지 4km라고 적힌 표식이 있었다. 역사에서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이 성지로 가는 길이며 작은 나무들이 조성되어 있어 햇볕을 온전히 받고 걸어야 할 길이 있었다. 나는 걸어가면서도 이곳이 유명한 가톨릭 성지인데 기차를 타고 찾아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내가 잘 못찾아 왔느지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내가 내려야 할 기차역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매우 궁금해 했었다. 그동안 이곳 성지를 소개하는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서는 관광객 수가 많다고 했는데 너무 조용해서 긴장감도 들었다. 성지로 가는 오솔길에는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그렇게 3킬로미터를 걸어가자 이제야 자동차들이 가끔 지나갔다. 그러나 목적지가 가까워오자 주택들이 나타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성지로 들어가는 공용주차장에는 많은 자동차들과 관광버스들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으며 성지로 걸어가는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Rocamadour 성지는 Alzou 협곡 절벽에 세워진 성지로 Roc(rock. 바위)과 Amadour 성인의 이름이 합쳐져 Rocamadour로 불리고 교황청에서 지정한 4대 성지(이스라엘. 로마. 산티아고.로카마도루)이며 병고침의 기적과 검은 얼굴의 성모상이 있다.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을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성당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큰 성당 건물들은 다양한 성화와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뵙고 성당을 나와 경사진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며 예수님의 14처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성지를 찾아온 여행객들은 경관이 좋은 길을 걸으며 산책하다 주변 레스토랑에서 맥주나 음식을 먹으며 성지 건너편 깊은 협곡의 경치를 구경하며 한적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성지를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차장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고 했다. 내가 평소에 즐겨 먹는 치킨 샐러드와 콜라를 마시고 찾아왔던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Cajarc까지 거리가 31km로 가이드북에 표시되어 있었다. 르퓌 순례길에서 다음 구간의 거리가 25km를 넘으면 가능한 운송 수단을 이용해 추가되는 거리만큼 이동하기로 했다. 유럽의 교통편 예약 앱 Rome2 Rio을 열어 근처 마을까지 이동할 수 있는 버스를 확인했다. Cajarc 방향으로 가는 길에 Faycelles에서 정차하는 버스가 마침 오전 7시 45분에 있었다. 지트를 나와 어제처럼 주택이 나란히 있는 좁은 통로를 걸어 나와 시내 도로에 들어섰다.
즉 7km 떨어진 마을에 내려 다시 걷기 시작할 계획이었다. 시외버스 정류장은 어제 기차역 가는 길 왼쪽 로터리를 돌아 반대편에 있었다.
어제 Rocamadour를 가기 위해 걸어 올라갔던 언덕을 지나 버스 주차장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출발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고 벤치에서 기다렸다. 언덕에서 빨간색 버스가 나타나 정류장 앞에 주차를 하고 문이 열리면서 운전기사가 내리면서 나에게 화장실에 간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버스는 7시 45분, 정확한 시간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방금 올라왔던 언덕길을 버스는 시내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여 여러 정류장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잠시 후에 시내를 빠져나가 완전히 시골길로 들어섰다. 나의 목적지 Faycelles 마을에 들어서자 잠시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나에게 운전기사가 내리라고 손짓했다.
카미노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지역을 지나면서 확실히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보였다. 대체적으로 순례자들은 출발 지점에 많이 모이고 걷다 보면 중간에 보이지 않다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 다시 많아지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한국인들처럼 먼 곳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은 중간에 돌아갈 수 없어 일단 출발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지만 유럽인들은 카미노 출발 길에 접근하기 편리한 여건 때문에 전 구간을 몇 번에 나누어 걷는 순례자들도 많은 것 같았다.
Cajarc까지 걷는 동안 나는 CBS 레인보우 앱을 열어 방송을 들으며 걸어갔다. 아침 시간에 한국과의 시간 차이 때문에 아침에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한국 시간 오후 4시에 시작하는 "박승화의 가요 속으로 "를 즐겨 들으며 걸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방송을 듣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기술 문명으로 모두에게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구간은 오랫동안 무덤덤하고 지루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가끔 재미있는 그림을 조약돌이나 바위에 그려 놓은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Faycelles 마을을 출발하여 걷는 동안 음악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제 정오를 넘어가며 '자연생태공원(Natural park)'이라고 표시된 지역을 지나는 숲속을 지나갔다. 숲길이 길어지면 나는 예전에 '은의 길'을 걸을 때 경험했던 사냥꾼들의 돌출 행동이 생각나서 지루하고 가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싫었다. 더군다나 혼자 걸어가는 동안 낮 시간에도 어둠침침한 숲길은 나에게 가끔 두려움을 주기도 했었다.
카자르크(Cajarc)의 낮은 건물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을 지낸 빛 바랜 색갈들이었다. 대체로 시내 거리는 한적한 분위기였다. 지트를 찾아가기위해 구글 맵을 열어 주소를 입력하여 위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여유있게 시내를 걸어가다 회전로터리를 지나갔다.
카자르크는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 을 집필한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Francoise Sagan 의 고향이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료로 알려진 사프란이 재배되며 매년 10월 셋째 주말에 축제가 열린다.
한낮의 햇볕이 상당히 강해서 도로를 걷는 일이 힘겹게 느껴졌다. 이곳은 로(Lot) 강의 댐과 계곡, 그리거 주변은 석회암 평원(le causse)이 있는 아름다운 환경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했다.
카미노 앱 Via Podiensis 화면에 나타나는 GPS 화살표를 따라 시내의 중심부를 지나갔지만 오늘 지낼 지트는 시내에서 2km 이상 카미노 루트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는 길의 약간 경사진 고갯길 주택가에 있었다. 나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를 걷다 베이커리를 만나 우선 푸짐하게 부피가 크고 불루베리가 토핑된 깜빠뉴를 골랐다. 순례길에서 매일 먹게되는 빵을 구해 배낭에 넣어두는 일은 비상 식량을 채운다는 느낌이었다.
오후 3시가 넘어 지트에 도착했다. 오늘 지낼 지트는 시설이 깨끗하고 가정집처럼 응접실이 있고 음식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도 있었다. 지트의 여주인은 내가 열려있는 문을 지나 들어가자 예약했던 내 이름을 부르며 확인을 하고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레모네이드를 넣은 시원한 물을 건네주면서 인사를 했다. 지트에서는 찾아온 순례자들에게 웰컴드링크로 과일 액이 들어간 시럽을 얼음을 담아 가져왔다.
조금 후에 또 다른 순례자가 도착했다. 프랑스인의 건장한 체구의 남자였으며 저녁 식사 때 우리는 식탁에서 마주 앉았다. 주인이 준비해 준 당근을 채 썰어 만든 샐러드와 닭고기 슈트 그리고 와인 한 병이 제공되었다.
남자는 이름이 패트릭(Patric)이며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또 어디에서 출발했느냐, 그리고 어디까지 걷는지 물어왔다.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길래 "chun"이라고 핸드폰에 작성해서 보여주었다. 그는 프랑스의 남부 도시 '몽펠리에'에 살고 있으며 '카미노 산티아고'를 처음 걷고 있다고 했다. 생장피데르포르에 도착하면 내년에는 생장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뭐냐고 물었다. 또 일요일에는 카미노 르퓌길 구간의 'Cahors'에서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딸은 20살인데 농구를 좋아해서 농구 선수 유니폼을 자주 입고 다니며 한국 아이돌 그룹 BTS를 좋아해서 자기도 유튜브 영상을 담아 가지고 다닌다며 나에게 BTS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주인이 가져온 하우스와인을 다 마시며 대화를 늦게까지 이어갔다.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조선 왕비 손거울을 꺼내서 그에게 기념으로 주며 딸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디켄터에 담겨있던 와인이 바닥날 무렵 내가 순례길 끝나고 친구와 보르도에서 만나 프랑스 몇 도시를 여행하는데 몽펠리에 10월 3일쯤 갈 거라고 하니까 꼭 전화하라고 하며 내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는 몽펠리에서 가까운 곳인 지중해 바다를 갈 수 있다며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패트릭과의 대화는 밤 10시쯤에 마무리되었다. 와인과 프랑스 가정식 음식을 더해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오늘 카미노 걷기 계획은 Cajarc에서 Varaire 구간 27킬로, 그런데 다음날 Varaire에서 Cahors까지 32km. Varaire에서 Cahors까지 걷는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약 25킬로 정도 걸어서 Cahors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런데 Varaire에서 택시나 버스가 없어서 Rome2 Rio앱을 열어 뒤적거렸더니 Varaire 마을 전에 Limogne en Querecy에서 Cahors 가는 버스가 나타났다.
오늘은 Limogne en Quercy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Cahors 가는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주인이 식탁에 차려놓은 빵과 버터, 커피, 그리고 사과, 자두를 먹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카미노 르퓌길로 들어서려면 1.3킬로 정도 걸어가야 합류할 수 있었다. 거리가 아직 어두워서 헤드랜턴을 켜고 Cajarc 시내를 지나가는 카미노 루트를 찾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자동차들이 가끔 해드램프를 켜고 지나갔지만 아직 고요한 작은 도심거리에는 적막감이 들었다.
상점들이 모여있는 거리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카미노 루트가 나타났고 그리고 로(Lot) 강을 따라 걷는 길로 카미노 루트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멀리 산능선으로 여명의 붉은빛이 밝아지고 있었다. 강변 도로에는 아침 일찍 사람들이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런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참 바쁘게 걷고있을때 내 앞에 등치가 큰 개가 나타나서 짖어대며 쫒아왔다. 게에 목줄을 하지 않은 채로 산책을 했으며 그때 여자가 개한테 뭐라고 외쳤지만 개는 나에게 다가오며 더 심하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며 개를 경계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며 주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개를 그냥 다그치며 지나가버렸다. 그때서야 나는 호신용으로 갖고 있어야 할 스틱을 지트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며 다시 지트로 돌아갈 수 없어서 스틱 없이 걷다가 Cahors에 가서 다시 구입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지트에서 같이 지낸 패트릭이 출발을 7시 30분쯤 출발한다는 패트릭이 생각나서 스틱을 두고온 사실을 전하고 중간 마을인 Limogne en Querecy에서 기다리다 받으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패트릭이 전화를 받지 않아 어제 서로 확인한 왓삽(QhatsApp)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스틱이 없어서 조금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카미노는 강을 따라 걸어가다 얼마 못 가 이제 가파른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지나가야 했다. 산을 넘어가는 자동차 도로 옆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마른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날려가는 광경도 보았다. 순례길은 점차 아래로 따라 내려갔고 주변은 밝아지며 시원한 가을 바람도 불어와 이제 걷기에 무척 좋은 날씨가 되었다.
바로 근처 50미터에 지트가 있다는 내용을 바위에 페인트로 적어 홍보를 하는 주인도 있었다.
멀리 떠나왔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 Cajarc의 석축 건물들이 빠끔하게 보이다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휴대폰의 '왓삽(whatsApp)을 열어보니 패트릭의 답장이 올라와 있었다. 지금 스틱을 가지고 출발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중간 마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하룻밤 같이 지냈던 패트릭의 의리가 정말 감사했다.
Saint-Jean-de-Laur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심상치 않은 특별한 휴게소가 나타났다.
순례길에서 자동차 도로에 접근하는 길에 창고 같은 건물 벽과 마당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련된 여러 장식물과 사진들. 이정표가 걸려있고 그리고 커피는 1유로. 케이크 2 유료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건물로 다가갔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창고에서 나왔다. 그는 나한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묻더니 ' 코리아"라고 하니까 건물 앞 탁자에 있는 컴포넌트 음향기기를 작동시켜 우리나라 애국가를 들러주었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남자의 행동에 그만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이런 곳에서 우리나라의 국가를 들을 수 있게 해 준 남자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 앞 의자를 꺼내 앉았다. 남자는 나에게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했다. 건물 벽에는 순례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붙어있었는데 나로서는 어쩌면 먼나라에 내 얼굴 모습이 남아있는 행운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주인의 아이디어가 새삼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한 영감을 주는 휴게소를 떠나 다시 한적한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걸어 드디어 Limogne en Querecy에 도착해서 우선 버스를 타는 장소를 확인하고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로 걸어왔다. 이십 분쯤 지났을 때 내가 걸어온 길에서 기다리던 패트릭이 나타났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허깅을 하고 기뻐했다. 그런데 패트릭이 나한테 약국에 다녀올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건너편의 약국으로 들어갔다.
약국을 다녀온 패트릭은 급히 걸어오느라 왼쪽 엄지발가락이 열이 나고 많이 아파서 약국에서 밴드를 사가지고 레스토랑에서 얼음을 달라고 한 후에 왼쪽 발에 얼음찜질을 하고 나중에 밴드로 압박을 했다. 나에게 스틱을 전해주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발가락에 통증까지 생겼으니 나는 그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어 몇 번을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내가 점심에 초대하겠다고 했으나 패트릭과 나는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맥주.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10월 초에 다시 몽페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트릭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Cahors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카미노 길을 지나가는 모퉁이 정류장에서 패트릭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르퓌길이 끝나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오늘 목적지 캬오흐(Cahors)행 버스는 정확히 한 시가 되었을 때 작은 미니 버스가 나타나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시골 사람들은 Cahors까지 갈 때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것 같았다.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 중소 도시 Cahors 기차역 앞에 나를 내려주고 어디론가 다시 떠났다.
지트의 체크인 시간이 아직 남아있어서 나는 거리를 어슬렁 거리는 나그네 마냥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따라 무작정 시내를 걸어갔다. 인구가 약 2만 명 정도의 도심에 사람들이 약간 북적거리고 상점들도 많아서 오랫만에 도시의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했다. 은행 간판이 보여 안으로 들어가 인출기에서 유로를 인출했다. 주머니에 현금을 챙겨넣으면 왠지 든든한 생각도 들었다.
Cahors 강을 건너 다른 지역으로 가는 다리 근처에서 'CaminoLoc.com'이라는 아웃도어 제품을 파는 상점을 발견했다. 상점의 문은 점심시간이라 닫혀있었고 나는 건너편 공원 벤치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빵을 먹었다. 두 시가 넘어 상점의 문안의 커튼이 걷히고 실내에 불빛이 보였다. 나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 진열해 있는 상품들을 구경하다 우비를 걸어놓은 장소에서 멈춰 제품을 하나씩 확인을 했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싼 편인데 중국산은 저렴했다. 나는 노란색 중국산 우비를 30유로를 주고 구입했다. 진열대에 몇 가지 사고 싶은 아이템이 있었지만 배낭의 부피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상점을 나와 강 근처의 보도를 따라 걸어가다 오늘 예약해 둔 지트 'Gite Le Relais des Jacobins'를 찾아갔다.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자 바로 오른편에 지트의 이름이 적힌 간판이 조그맣게 붙어있었다.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자 수염을 기른 남자 주인이 나를 반기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물론 이곳도 룸에서 사용할 물건을 배낭에서 꺼내 바구니에 집어넣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늘 지트는 최고 평점을 받은 곳이라고 구글 지도에 나와 있었다. 지트의 평가는 주인의 음식 솜씨가 최우선적으로 평점을 좌우하는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생각보다 많은 여러명의 순례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이곳에서 나는 주인이 준비한 처음 만나는 요리인 '콜리플라워'라는 브로콜리의 일종인 채소에 강황을 넣어 만든 음식을 맛보는 경험을 했다. 이런 귀한 경험이 프랑스 르퓌길을 걸으며 얻을 수 있는 호사로운 기회 아닐까. '콜리플라워'를 그글링을 해서 알아보았다. 원산지 : 지중해 북동부. 품종 : 콜리플라워(botrytis). 콜리플라워(cauliflower), 녹색 꽃양배추는 여러 채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콜리플라워의 머리는 하얀 꽃차례 분열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이 흰 머리 부분만 먹는다.
르퓌길에서 최고의 매력은 역시 프랑스 가정집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매일 다른 프랑스 저녁 음식을 체험할 기회는 이곳에서 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이었다.
캬호으(Cahors)를 휘감고 지나가는 로(Lot) 강은 강폭이 넓은 편이었다. 도시는 강을 끼고 형성되어 있었고 인구가 2만 명이 조금 넘는 중세부터 이어온 오래된 도시다.
오늘은 Cahors에서 Lascabanes까지 3번의 지루한 길이 나타난다. 1단계로 Cahors 시내를 벗어나는 악마의 다리(Pont Valentré)를 지나 길 건너 급경사의 밋밋한 산길을 오르고 2단계로 12킬로쯤 지나는 마을 labastide marnhac을 지나면 경사진 자갈길을 계속 올라가며 체력이 고갈되었다. 그리고 3단계로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Lsacabanes까지 이어지는 옛길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 버렸다.
지트에서 나와 카베수(Pont de Cabessut) 다리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갔다. 강변의 공원과 나란히 걸어가는 길을 걸어가다 오래되고 멋진 다리인 Pont Valente(악마의 다리)를 지나 카미노 루트는 갑자기 바로 앞에 절벽처럼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며 산으로 올라갔다.
카미노가 막 시작되며 기운이 쏙 빠지는 이런 길은 정말 밉상이었다. 구불구불한 경사진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약간 평평한 지역을 만나 일단 호흡을 가다듬고 머물렀던 Cahors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그 자리에서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반대편 길에서 대형 개를 산책시키며 걸어오는 남자를 만났다. 나는 길 밖으로 벗어나 그들이 먼저 지나가도록 했다. 혹시 모를 맹견의 공격에 대비해서 경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불편해야 했다. 또 좁은 오솔길에는 가끔 산악마라톤을 하는 남자와 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빨간색과 하얀색 카미노 표식을 보면서 빨리 걸어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나의 호흡은 거칠어진지 이미 한참이었다. 그냥 코로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뱉기를 반복하면 경사진 길을 오를 때는 훨씬 편했다.
오솔길을 벗어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 마을 행사가 있는지 남자 몇명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나는 갈길을 재촉해서 마을을 빨리 벗어났다. 카미노 루트는 오늘따라 파란 가을 하늘과 한낮의 열기가 땅에 내리고 있어서 걷기에는 좋았다.
드디어 Labastide marnhac 마을에 들어섰다. 때마침 마을회관에서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하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또 그들을 태우고 떠날 승용차가 꽃 장식을 하고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마을 회관 건너편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이 있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심 시간과 결혼식이 있어서 그런지 테이블에는 마을 손님들로 꽉 차있었다. 나는 한쪽 귀퉁이에 비어있는 테이블로 가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손수건을 꺼내 그동안 흘린 땀을 딱아내고 지나가는 식당 주인에게 가능한 점심 메뉴를 물었다. 여주인이 오늘은 스테이크만 가능하다고 해서 나는 콜라와 얼음을 추가로 주문했다. 주인이 우선 캔 콜라와 얼음을 가득 채운 유리컵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고 돌아갔다. 나는 얼음을 물 파우치에 넣어 시원하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가이드북을 꺼내 지금 걷고있는 루트를 들여다 보고 거리를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내가 주문한 스테이크가 거의 3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아 주인에게 다가가 주문을 취소하고 가겠다고 했더니 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정말 5분 뒤에 먹음직한 T본 스테이크를 가져왔다. 나는 오랜만에 잘 익힌 고기를 거의 다 먹고 일어서며 계산을 하러 프런트로 가서 "맛있다"라고 했더니 주인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이면서 모두 14유로만 받는다고 했다. 스테이크를 14유로에 콜라 한 병까지 먹을 수 있다는 레스토랑을 만나 늦게 나왔지만 나는 인심이 좋은 주인에 감사 인사를 했다. 레스토랑을 나와 결혼식으로 분주했던 마을 회관을 지나 다시 길에 들어섰다.
아침부터 일곱 시간을 걸어 지루하게 느끼던 시간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 나는 이곳이 오늘 멈추어야 할 장소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작은 마을의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으며 넓은 공원이 나타나고 성당이 있었으며 바로 옆에 지트 건물이 있었다.
성당 출입문은 닫혀있었고 지트의 문은 열려있었다. 나는 열려있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봉쥬르"하고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내부 시설은 마치 세심한 안주인이 꾸민 인테리어가 깨끗했으며 지트의 여자 호스피탈레노는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면서 침실을 안내했다. 이곳은 인터넷 연결이 어려워 카미노 카페의 'Life from Camino'에 일기를 쓰지 못했다.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라 마트나 식당이 없어서 지트에 몇 가지 일상용품과 음료수. 과일. 과자등을 로비에서 구매할 수도 있었다.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속옷을 빨아 뒷 뜰의 빨랫줄에 걸어놓았다. 오늘은 햇볕과 적당한 바람이 불어 순례자들이 널어놓은 빨래들은 바삭바삭 잘 마를 것 같았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저녁식사 전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트에서 팔고있는 병맥주를 한병 사들고 바깥의 벤치로 나왔다. 근처에 있던 검은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다리에 몸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뭐라도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줄 것이 없어서 미안했다.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나서 키가 쭉쭉뻗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바라보다 연로하신 수녀님이 성당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테이블에서 앉아있으며 지트에 있던 순례자 몇명이 밖으로 나와 성당으로 들어가고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신자들도 성당에 하나 둘씩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잠깐 문을 닫으러 나오는 수녀님께 지금 미사가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지금 순례자 미사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지트로 돌아가서 신발장에 벗어놓은 등산화를 신고 성당으로 들어가 신자석에 앉았다. 신부님은 신자들을 쭉 둘러보고 강론을 시작했다. 역시 프랑스어로 하시는 말씀에 대해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냥 편안하게 앉아 있었으며 영성체를 하며 받은 밀빵을 입에 넣을때는 정말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다. 미사 집전이 끝나자 나이가 많으신 복사가 대야에 물을 들고 신부님 앞에 내려놓고 순례자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제 순례자들의 안전한 순례길을 위해 세족식을 시작하였다. 세족식(洗足式, maundy)은 예수님이 유월절 예식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에서 유래된 의식인데 순례자들에게 산티아고까지 탈없이 잘 걸으라고 준비를 하신 것 같았다. 복사가 타올을 가지고 있고 신부님이 대야의 물에 성수를 붓고 순례자들이 발을 물에 담그고 나면 신부님께서 직접 순례자들의 발을 닦아주셨다. 나는 이런 세족식을 가톨릭 신앙을 선택하고 생전 처음으로 경험을 했다.
이번 순례길 걷기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로마의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다음에 아시시(Assisi. 성인 프란치스코 탄생지)로 가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살아 생전 활동과 모습들을 되새기고 르퓌길의 출발지로 왔다. 글고 이번 번순례길에서는 지나가는 경로에 보이는 성당에는 꼭 들어가서 잠시라도 기도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나에게 이름을 묻고 어느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셨다.
오늘 지트에서 식사는 마치 파티처럼 진행되었다. 시작은 토마토수프. 그리고 메인은 와인과 빵 안에 계란과 채소가 들어가고 연어와 상추샐러드와 디저트로 잘게 썰은 사과와 아이스크림이 제공되었다. 와인을 한잔씩 마신 순례자들은 기타를 들고 나타난 남자 순례자 때문에 갑자기 들떠있었다. 남자가 올드팝송을 몇 곡 기타를 치면서 연주하여 순례자들이 함께 따라 부르면서 분위기는 최고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트에 모인 순례자들은 장거리를 걷느라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고 모두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순례길에서 수면은 대체적으로 순탄했지만 와인을 많이 마신 날은 화장실에 두 번씩 가느라 5시가 넘으면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5시 30분쯤 일어나 해드랜턴을 켜고 미리 배낭을 챙겨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주인이 식탁 위에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해 두어 따뜻한 호박 수프와 스콘과 머핀, 그리고 비스킷, 사과, 바나나, 토마토, 커피와 오렌지 주스가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다.
나는 일찍 내려와 다른 순례자들이 없어서 조용한 식탁에서 이것 저것 맛을 보면서 여유있게 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포트에 들어있는 커피를 한 컵 따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밤새 불어대던 바람은 아침에는 잦아들었고 숲속을 벗어나니 주변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길은 이른 아침의 태양이 지평선을 박차고 올라오는 광경이 내 가슴을 환히 뚫어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평소에 마주할 수 없는 태양을 바라보면 그만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오늘 카미노 루트는 대체적으로 오르 내림이 없는 평탄한 길이 시작되며 상쾌한 바람도 불어주어서 걷기에는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었다. 오전 10시가 넘어갈 즈음 내리쬐는 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더워지면서 물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자그마한 자갈이 깔린 길을 지나갈때는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느끼느라 호흡이 가팔라지고 있었다. 넓은 평원을 지나자 그곳에는 산으로 가는 길이 나타났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제멋대로 자란 키 큰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나는 오르막 오르기에 지쳐서 길옆 나무 아래 응달이 있는 곳에 배낭을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풀 위에 펄쩍 앉았다. 그런데 내가 지나온 길에 두 명의 남자 순례자들이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놓으며 인사를 했다. 두 남자는 모두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내가 "봉쥬르"하고 인사를 하니까 나에게 영어로 인사를 해서 나는 영어로 어디에서 부터 걸었느냐고 물었다. '카오흐(Cahor)에서 부터 걸어왔는데 부인과 같이 걷고 있으며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고 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배낭이 좀 작은 것을 메고 있었으며 옆 남자에게 쉴 새 없이 말을 퍼부었다. 나에게 카미노 계획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고 나의 신상 정보도 물어왔다. 자기는 영국 런던에서 왔으며 이름은 '베일리'. 또 한 사람은 '스티븐스'라고 한다. 직업이 무어냐고 물으면서 자기는 선생님이었고 친구는 지리학자라고 했다.
나는 이제 쉴만큼 쉬었다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그들도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숲길을 앞뒤로 나란히 줄을 지어 걸어갔고 내가 '스티븐스' 한테 베일리와 친구냐고 물었더니 원래 친구는 아니고 며칠 전에 길에서 만나 같이 걷고 있는데 대화 친구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앞 뒤로 열을 지어 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을 걸어갔다.
오른쪽 산비탈을 내려가다 마실 수 있는 샘물이 나왔을때 앞서 걷던 베일리가 쉬었다 가자고 제안을 했다. 샘 근처에 나무로 만든 벤치가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나란히 앉아 가지고 있는 간식거리를 각자 먹기 시작했다. 나는 배낭에 있는 물 주머니를 꺼내 샘물로 더 채우고 먼저 걷기 위해 일어섰다. 그때 언덕 아래에서 베일리의 부인이 다른 여성과 함께 나타났다. 베일리의 부인은 우물에 걸터앉아 일행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걷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과 계속 같이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먼저 가겠다고 말하고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산길을 내려와 17km 지점의 Montlazun 마을로 들어서니 성당 근처에 장터가 있었고 오늘이 장날인지 마을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시골 장터의 순수한 풍경에 이끌려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좌판에서 팔고있는 6개들이 계란 한 박스와 빨간 토마토 두 개를 샀다. 더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배낭 무게를 생각해서 멈춰야 했다.
재래 시장을 나와 약간 경사진 길을 걸어 내려와 곧장 도로에 들어섰다. 자동차는 거의 다니지 않는 좁은 소로를 따라 걸어가며 아무 생각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 남자와 여자들이 타고있는 멋진 검은색 오픈카가 나타났다. 커플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출현에 내가 놀라 길옆으로 물러서자 손을 들어 인사를 하더니 주변을 확인하고 바로 차를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카미노 루트는 다시 적막한 숲이 오솔길을 지나갔다. 그런데 그 길에 누군가 어설프게 만들어 설치한 전화 부스가 나타났다. 선이 없는 가정용 전화를 선반에 올려놓아 마치 공중전화 부스 흉내를 내고있어서 이곳 저곳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잠깐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주인의 배려 아닐까 생각했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이제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옥수수 밭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넓은 밭에는 여름동안 햇볕에 달구어져 잘 익은 옥수수 알들이 잘 채워져 있을거 같았다.
오늘 묵어갈 지트는 언덕을 꾸준히 오르다 Lauzerte 중심 광장을 지나 다시 내려가는 곳에 나타났다.
오늘은 무아싹(Moissac)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무아싹은 따른(Tarn) 강과 가론 운하(Canal de Garonne)의 탄(Tarn)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인구 15,000명의 중소도시로 프랑스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가는 주요 루트로 알려져 있다.
어제 Lauzerte 지트에서 체크인할 때 무아싹까지 거리를 물었더니 약 30km라고 말했다. 혹시 Moissac 가는 버스가 있는지 물었더니 아침 6시 45분에 통학 버스가 출발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버스를 타고 처음 만나는 마을에 내려 moissac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중간 마을 Montlazun 재래시장에서 샀던 계란을 꺼내 두 개를 날것으로 먹고 4개는 지트 주방에 있는 커피 포트를 이용해 삶았다.
배낭을 메고 골목을 걸어 버스가 들어온다는 정류장으로 갔다. 마을에서 멀리 바라 보이는 하늘은 이제 막 여명이 차 올라 불그스레한 빛을 띠고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오며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부모가 자동차에 태워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떠나는 모습도 보이고 마을 사람들도 도시에 가기 위해 모여들었다.
마침 대형 버스가 출발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들어왔다. 버스에 올라가며 운전사에게 버스 요금을 물었더니 무료라면서 요금을 받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물어볼까 하다 짐작으로 지자체에서 학생들과 주민들을 태워주는 복지 서비스 차량이 아닐까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하여 마을을 빠져나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들어서자 아침에 도시로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면서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카미노 앱을 열어 루트에 가까운 장소를 지나가면 버스에서 내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지나가는 방향은 루트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자동차 도로를 걷는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중간에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버스는 이미 무아싹(Moissac)으로 들어가는 지역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나는 학생들과 같이 버스에서 내려 구글맵에서 검색된 무아싹의 수도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나지막한 경사길로 들어섰을 때 누군가 세워둔 'Moissac'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과 또 순례자들을 위한 GR65길 표식도 발견했다. 반가웠지만 걷지 못하고 이곳을 지나가게 되어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일찍 Lauzerte 마을을 떠나 40분 만에 목적지 도시에 들어왔다. 시내 외각 거리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느라 여러 무리들이 인도를 따라 줄을 지어 걸어갔다.
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에서 특별한 경험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정하고 카미노 루트를 따라 시내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조용한 골목에 들어선 주택가 집들은 저마다 예쁜 꽃화분을 집 밖에 내놓고 벽이나 대문 그리고 담벼락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익스테리어를 꾸며서 지나가는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아싹(moissac)의 수도원(Abbey)과 대성당을 향해 도시 외곽의 주택가를 지나 철길을 지나갔다. 프랑스의 도시 보르도나 툴루즈로 가는 Bordeaux-Toulouse line의 철로가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있었다. 그곳을 지나 이제 산업도시의 모습을 보이는 공장 지역을 지나갔다. 도로에는 오전 시간임에도 컨테이너 차량들이 분주하게 공장 사이의 도로를 지나 물류 창고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있었다. 한동안 공장 지역을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이 부산히 움직이는 오래된 건물들이 있는 도로에 들어섰다.
서기 506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한 수도원은 베네딕토 수도회로 소속이었다. 수도원으로 내려가는 조그만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어디론가 떠나는 대형 버스에 줄을 지어 오르고 있었고 바로 근처에 '여행자 안내센터'가 있었으며 업무 시작은 10시부터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나는 안내센터가 문을 열 때까지 광장의 벤치에 앉아 어제 준비한 점심 식사용 팩우유와 삶은 계란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행자 안내센터 (Tourism office)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 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여직원으로부터 무아싹 시내 지도를 받아 가볼 만한 여행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와 수도원으로 내려가는 게단을 내려갔다. 수도원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관광객 모습의 부부가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도원(Saint Pierre Abbey) 관람은 오후 1시 30분에 오픈한다고 적혀있었다. 입구에 비치된 안내 팸플릿을 들고 닫혀있는 철문안으로 내부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소개된 수도원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옆에 있는 무아싹의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여유를 갖고 성당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기도를 할 생각으로 들어갔더니 신자석에 여러 명의 수녀님들이 묵상과 순서에 따라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모자와 배낭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는 항상 경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서 움직이는 날까지 앞 길을 인도하시는 그분을 향해 저와 함께 하시고 끝까지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바라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한동안 묵상을 하고 나서 양초를 봉헌하고 밖으로 나왔다. 말할 수 없지만 진지한 기도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감정에도 여유를 갖게 되어 묵상과 기도가 나에게는 항상 절실하게 느꼈다.
성당 앞 도로를 따라 관광객들을 위한 레스토랑들이 많았고 규모가 작은 Intermarche Express 마트도 있었다. 나는 이곳에 먼저 들러 내일 걸으면서 먹을 빵과 과일을 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통로를 따라 걷다 우선 간식을 담을 수 있는 도시락 박스를 그리고 요구르트와 스콘과 말린 무화과 한봉지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내 중심을 지나가는 도로는 의외로 좁았다. 오래전에 형성된 유럽의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어도 돌로 지은 건물들이 많아 도로를 확장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도시는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듯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며 조용한 분위기였다. 오랫동안 역사를 만들어온 이곳 주민들은 바쁘지도 않고 또한 느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제 많은 시간을 숲길을 걷다보니 이런 도시의 길이 궁금하고 더 편안함도 느끼게 되었다. 도심의 강변에는 운하(Canel lateral a la Garonne)가 있었다. 운하의 물은 조금 탁해 보였고 거의 느리게 흘렀으며 운하를 따라 유람선도 드문드문 정박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이제 운하를 횡단하는 다리를 지나 강변으로 들어갔다.
전면이 확 트인 강변의 넓은 공원에는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그리고 벤치들과 식탁용 테이블, 바비큐 장소들도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여름날처럼 햇볕이 뜨겁게 느껴졌다. 강변에는 플라타너스 나무 가지들이 강바람에 실려 흔들리고 있었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느낌은 벤치에 앉아 사색을 하는 동안 이어졌다.
벤치에 앉아 문득 시계를 들여다 보았더니 한국은 이제 밤늦은 시간이었다. 문득 식구들이 보고 싶은 생각에 카톡의 보이스톡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저 예요" 하고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별이 없어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오늘 걸으면서 일어난 일들과 이곳 성당에 들러 잠깐이지만 미사를 드린 것 외에 할 얘기가 없었다. 문득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만 포기해야 했었다.
멀리 타른강을 횡단하는 다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배낭을 열어 마트에서 구입한 요구르트를 꺼내 먹고 그만 일어나 지트를 찾아갔다. 도시의 중심을 벗어나 의외로 조금 떨어진 아주 한적한 도로를 가야해서 혹시 잘못 찾아온 거 아닌가 할 정도로 주변이 한산했다. 그리고 소박한 주택들이 나란히 있는 도로를 따라 걷다 지트 주소가 적힌 건물 앞에 섰다. 지트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확인하고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여주인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주인에게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는지 물었더니 자기 딸이 한국을 좋아해서 같이 조금씩 배웠다고 했다. 물론 나도 반가웠고 한국을 좋아하는 식구들이 반가웠다. 여주인은 웰컴드링크로 나에게 레몬이 들어간 주스를 내왔다.
나에게 배정된 지트의 침실은 조용하게 단지 4명만 지낼 수 있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실의 모든 시설이 깨끗하고 도구가 매우 섬세하게 갖춰진 최고 수준의 지트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여자 순례자 두 명이 들어왔다. 순례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숙소라서 어쩔 수 없지만 상대가 여자들이라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지내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지트의 정원에 있는 식탁에 모여 다 함께 식사를 했다. 주인 부부가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서 차례로 큰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가져왔고 더불어 와인도 가져왔다. 순례자 몇 명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음식을 배달하는 것을 도와 식사를 빨리 할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이라 프랑스어로 대화를 했는데 나는 휴대폰에 구글 번역기의 대화 기능을 열어 그들의 대화 내용을 엿들으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를 해야 했다. 그들의 대화는 주로 순례길을 걸으며 일어난 경험에 대해 얘기를 했고 특별히 관심을 둘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라 몇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르퓌길은 어디에서 시작했느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갈 거냐. 순례길은 몇 번째냐 같은 질문을 했다. 이곳에 모인 순례자 대부분은 프랑스 영토인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카미노를 끝낼 예정이었다.
지트에서 제공된 음식은 애피타이저로 역시 여러 채소와 과일이 들어간 샐러드를 그리고 메인은 닭고기.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리고 파티처럼 진행된 만찬은 마지막에 남자 주인이 순례자 찬가인 'Ultreia". ( 울뜨레이아라는 영어로 "Let's go further" or "Keep going"의 의미) 악보를 나누어주고 모두가 합창을 하면서 저녁 식사를 멋들어지게 끝냈다.
오늘은 출발부터 가론 운하를 따라가는 카미노 루트가 시작되었다. 이곳은 현지 사람들에게 멋진 산책길이기 때문에 오전 일찍 운하를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쳤다. 총길이가 240킬로나 되는 운하는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대서양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물자를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게 수출하는 운송수단으로 활용하여 프랑스 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지금은 성능이 좋은 화물차들과 고속도로가 발달하며 한마디로 효용성 없는 고물이 되어 버렸다. 서울의 한강과 인천 앞바다를 연결하는 경인운하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수년째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의 가론운하는 그동안 산업화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경인운하는 계획과 달리 선박이 지나다니지 못해 유람선만 가끔 운영하고 있다.
운하를 따라 걷는 동안 순례자의 앞 코가 벌어진 신발 모양을 나무로 조각하고 색칠을 덥힌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곳에는 가끔 자동차가 세워져 있고 그곳에는 낚시꾼들이 한적하게 의자에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어떤 사람은 낚싯대를 운하에 세워놓고 그 옆 작은 텐트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운하를 건너가는 다리 교각위로 카미노 표시가 보였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운하를 건너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를 따라 걷다 왼쪽 야산의 숲으로 들어갔다. 숲길은 습기가 많고 축축하게 젖어있어 조심히 지나가야 했으며 조그만 달팽이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움직이고 있는 광경이 나타났다. 가끔 시골 순례길에서 보이는 한 두마리의 달팽이들은 귀엽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많은 달팽이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곳에서는 나름 조심스럽게 그곳을 피해 갔다. 프랑스에서는 식용 달팽이가 고급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라고 들었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런 달팽이 요리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어제 확인한 오늘 날씨 예보에 오전에 비가 내릴거라고 했지만 다행이 하늘에는 회색 구름들이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었고 다행히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Malause 마을에 들어왔다. 도로에 가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자동차들도 지나갔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조그만 바를 만났다. 나는 간단한 메뉴를 골라야 했는데 치즈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했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이 나올 때까지 휴대폰으로 한국 소식을 들여다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사회가 얼룩진 분위기로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억압당해야 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씩 밀려나갔다.
샌드위치를 먹고 바에서 나와 카미노 루트를 다시 찾아 들어갔다. 얼마전에 걸어왔던 운하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 걸어야 했다. 꽤 오랫동안 걸어야 했던 운하는 마침내 Auvillar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면서 벗어났다.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마을 4위로 뽑힌 오빌라(Auvillar)는 진입 초기부터 줄곳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가야 했다. 오래전 세워진 성벽을 따라 길이 나 있었으며 오늘 카미노를 끝내려는 집념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성곽은 10세기부터 많은 외부 침략을 받아 성벽이 무너졌지만 이후에 관광객들이 몰려올 만큼 큼 재건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곳에 어디쯤 지트가 있을까 하고 구를맵을 켜고 주소를 찾아 걸어갔다. 오래 걷고 경사진 길을 걸어서 그런지 갑자기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져 배낭에서 무릎보호대를 꺼내 바지를 무릎까지 올린 다음 단단히 묵고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거침없이 오르던 길은 중앙 광장에 이르러 끝이 났지만 그곳의 모든 길들은 마찬가지로 아래에서 계단이나 고갯길을 지나야 도시의 중심에 도달한 듯했다.
광장에서 다시 아래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오다 지트를 찾아냈다. 'Accueil cathilique' 이름의 지트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한 느낌의 가정집 이층을 순례자들에게 내주는 지트였다. 여주인이 나를 맞이했고 나는 거실의 식탁에 앉아 일단 체크인 절차를 진행했다. 키친에서 주인이 시원한 레몬이 들어간 물을 내왔다. 거실에는 여러 곳에 성모상과 가톨릭 성물이 진열되어 있어서 주인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을 느꼈다.
거실을 나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도착한 침실은 예상외로 상당히 고급스러운 집기와 소파 그리고 깨끗한 타일의 화장실과 욕조가 구비되어 있고 바깥으로 테라스가 있어서 순례자들이 정원을 내려다보며 편안한 하루를 지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여주인이 체크인할 때 내가 무릎보호대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걷기 힘들면 내일 조금 차로 태워주겠다고 해서 사실 내일은 다음 지트까지 32킬로를 걸어야 해서 중간에 숙소를 예약할까 했는데 먼저 제안을 해주니 고마웠다.
체크인을 할때 오후 6시에 근처 성당에서 미사가 있다고 알려주어 나는 미사 시간을 기다리며 침대 위에서 '카미노' 카페에 일기를 작성하고 내일 걸어야 할 루트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성당에 가기위해 밖으로 나왔더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서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아주 작은 비상용 우산이라 머리와 어깨정도만 가릴 수 있는 처지였다. 성당은 지트에서 골목을 따라 걸어 자동차들이 자주 다니는 길을 건너 언덕에 있는 회색빛 건물의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의 무거운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 뒷쪽 자리에 앉았는데 의외로 순레자 복장을 하고 미사에 참석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순례길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 다들 나타났을까 신기했다. 흑인 신부님께서 제단으로 걸어나와 미사를 집전하시기 시작했다. 신부님의 강론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일단 미사에 참석해서 영성체를 받고 기도를 올렸다는 것에 나는 더 평안함을 갖는 시간이 되었다. 미사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고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이 순례자들을 앞으로 불러서 모두에게 축복을 해주셨다.
오늘 지트에는 순례자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일 층으로 내려갔더니 여주인이 나에게 필요한 음식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마치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버린 느낌으로 나는 여주인과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주인은 나에게 산티아고까지 걷는지 물어왔고 어디에서 카미노를 를시작했는지 간단한 영어로 대화를 했다. 내가 이해가 잘 안되거나 그녀가 궁금해하면 나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손수 성의껏 준비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으려고 했다. 홀로 지내는 순례자에게도 그녀는 프랑스의 가정식 음식인 도마토수프와 메인으로 감자가 들어간 돼지고기찜(?) 그리고 요구르트와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
그런데 내일 예약 변경을 요청했던 지트에서 나에게 메일로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왔다. 내가 주인에게 사실을 말하고 내일 도착하는 Lectour에 아는 지트가 있으면 예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곳 지트에도 여유있는 침대가 없어서 주인은 다른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다행히 한 곳을 예약해 주었다. 주인은 나에게 내일 묵을 지트의 주소를 메모지에 적어서 주었다.
새벽까지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한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일단 비는 소강상태로 들어간 것 같았다. 오늘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은 없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빗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고 난 뒤 아침에 일어났더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아래층으로 난 계단을 따라 식당으로 갔더니 여주인 'Bianco'가 벌써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바구니에 빵과 버터, 그리고 하얀 요구르트. 오렌지주스. 커피. 잼. 과일로 사과와 오렌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아직 식지 않은 빵에 쨈을 발라 오렌지주스를 컵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다 먹었다고 일어나니까 Bianco가 남은 빵과 요구르트. 사과를 랩에 싸서 주며 걸어가면서 먹으라고 주었다. 나는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출발할 준비를 하고 내려와 그녀에게 " 지내는 동안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밖으로 따라 나와 나에게 원하는 곳까지 차를 태워주겠다고 하면서 집 앞에 세워둔 'CLIO'를 가리키며 자기 차에 타라고 말했다.
여주인이 차에 올라타면서 나에게 내릴 지점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출발한 자동차는 시골길을 잠깐 달려서 기분 좋게 출발점 'Saint Antoine' 마을에 도착했다. 자동차에서 내린 나는 그녀에게 "하느님께서 내게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라고 하며 감사하다고 다시 인사를 했다. 비안코는 나에게 "나의 모든 일은 성모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부디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도착하라고 답했다.
Bianco가 자동차를 돌려 돌아가자 나는 왠지 출발을 못하고 잠시 그곳에서 서 있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려는 욕심없고 참된 사람, 정의롭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주택의 담벼락에 그려진 카미노 루트를 확인하고 꼬불꼬불한 골목을 빠져나가 다시 자동차 도로 옆으로 조성된 흙길을 걸어갔다. 하늘은 아직 구름으로 꽉 채워져있고 계절은 이제 완연한 가을의 초입으로 들어갔다. 이미 말라버린 해바라기 잎사귀와 씨앗들이 이제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가이드북에 오늘 Lectoure 루트는 경사가 별로 없고 평탄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Saint-Antoine를 출발한지 한 시간 뒤에 Flamarens를 지나갔다.
오늘도 순례길을 걸으며 숙소에서 같이 지냈던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프랑스 남자 순례자를 만났다. 걸음이 빨라서 나를 지나쳐간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가끔 지트의 식탁에 같이 식사를 할 때 나는 그와 프랑스어 번역기를 사용해 순례길에 대한 얘기를 몇 번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나가다 나를 만나면 항상 "천"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걷는 거 괜찮아' 하고 확인을 하고 지나갔다. 나는 카미노를 몇 번 걸으면서 동양인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배려하는 외국인 순례자들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가 나한테 관심을 갖고 나의 건강을 염려해 주는 배려에 무척 고마워했다.
정오가 훨씬 넘은 시간에 미라독스(Miradoux)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과일과 채소, 그리고 수제쨈등을 파는 화물차량이 있었다. 나는 납작 복숭아 두 개와 토마토 두 개를 사고 레몬이 들어있는 음료수를 마시고 일어났다.
오후 세 시가 넘어 렉토르(Lectour)에 들어갔다. 어제 지트 주인이 예약해서 적어준 주소를 보면서 오늘 지낼 지트를 찾아갔다. 지트 이름이 출입문 어디에도 표시가 없는 집에 도착했다. 오래된 목조 건물 앞에서 문을 두드렸더니 중국계 프랑스인 여주인이 내 이름을 듣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주인은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오래된 목조 건물의 실내는 상당히 어두어서 실내등을 켜야 하고 거실에는 어지럽게 널려진 가구와 소파까지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로 상당히 칙칙한 느낌을 갖게 했다. 주인이 내 크리덴셜에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내일 콘돔(Condom) 가는 길이 32km라고 말해주면서 La Romeiu로 돌아가지 않고 짧은 길이 있다며 지도를 펴서 설명을 해주었다. 즉 Lectoure에서 출발하여 GR65 르퓌길을 걷다가 Chapelle & Abrin에서 직진하면 La Romieu를 거처 가는 것보다 Castelnau-sur-L'Auvignon에 빨리 도착한다고 했다. 나는 사실 내일도 32킬로를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여주인이 나에게 오후 1시에 Condom 가는 말레(Malle) 운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하며 예약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일단 예약을 신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인이 안내하는 침실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 3층 다락방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이 층으로 내려와 이용을 할 수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빨래를 하여 1층의 좁은 베란다로 나가 햇볕이 겨우 비치는 줄에 빨래를 걸어놓고 다시 3층으로 올라왔다.
일곱 시가 되어 식탁에 모인 순례자는 모두 4명이었다. 두 명의 독일 순례자와 한 명의 호주 여자 순례자 그리고 나는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그들은 나에게 한국의 남쪽인지 북쪽인지 물었다. 가끔 나의 국적을 물어보는 순례자들에게 남쪽이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 모순된 순간들이 안타갑기도 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순례자들이 7시에 아래층 식탁으로 모였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주인에게 '말레 운송버스'가 너무 늦은 오후 1시에 도착하니 취소하고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게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했더니 표정이 달라지며 나는 택시 예약을 못해주니 관광안내소에 가서 부탁하라고 했다. 나는 주인의 행동에 당황해서 주춤거리다 배낭을 가지러 3층으로 올라갔다. 르퓌길의 지트 주인들은 대부분 순례자들에게 친절하고 도움을 많이 주는 편이었다. 나는 평소 중국인에 대한 편견은 없었지만 여주인의 불친절한 태도와 지트의 비위생적인 환경에도 참았던 불만이 터지기 전에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관광안내소를 찾아 걸어갔다. 이때 마침 앞에서 택시가 나타나 나는 얼른 택시를 멈춰 세우고 다음 마을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기사는 지금 호출을 받아 갈 수 없으니 다른 택시를 불러 주겠다고 하며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한 후에 다른 택시가 이곳으로 20분 후에 픽업을 할 것이라고 알려주고 떠났다.
나는 그곳에서 햇볕이 들어오는 벤치에서 기다리다 20분이 될 때 길에 나가 택시를 기다렸다. 그때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다음 마을 마르소란(Marsolan)에 내려달라고 했다. 택시가 마을의 좁은 길을 벗어나 곧바로 넓은 시골길로 들어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킬로 떨어진 마르소란에 내려 주고 떠나고 나는 오늘 카미노를 시작했다.
따뜻한 햇살이 길에 내려앉아 걷는 길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카미노를 시작하고 한 시간이 좀 지나갈 무렵 나는 Chapelle & Abrin 삼거리에 도착했다. 어제 지트 주인이 나에게 직진해서 걸어가면 Caelnau sur l'Auvignot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자동차 도로를 걸어가는 일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정상적 루트인 La Romieu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제 카미노는 두 시간을 걸어서 만나는 로미에우( La Romieu) 소재 대학인 Collégiale Saint-Pierre 교정을 지나가고 있었다. 철 구조물의 예술 작품들이 교정으로 들어가는 길목여러곳에 놓여있었다.
도시의 바에는 사람들이 모여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 한낮의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지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걸어가면 Chapelle & Arbin 삼거리를 지나온 길과 마주치는 Castelnau-sur-L'Auvignon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와 싸우다 전사한 이곳 마을 출신 군인들과 저항하다 죽은 마을 사람들의 사진과 이름을 돌에 새겨서 넋을 기리는 추모 공원을 지나가게 되었다.
오늘 구간은 길지만 그리 어려운 길은 없었다. 또 한 달간의 르퓌길 걷기의 절반은 지났으니 생장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힘이 나는 거 같았다.
파란 하늘에 뭉개 구름들이 몰려다니는 풍경이 계속 나타났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기르는 과수원 길을 지나가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도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지내야 할 콩동(Condom)은 한 시간쯤 지나 도시로 들어가는 인터체인지를 지나면서 오른쪽에 지트가 나타났다. 콩동(Condom)은 처음 도시 이름을 들으면 약간 머뭇거리게 된다. 참고로 '나무위키'에 들어가 보면 '콩동'을 소개하는 기록이 이렇게 되어있다.
*** 도시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촌구석이지만 지명 때문에 유명하다. 위의 철자를 보면 알겠지만 철자는 아예 '콘돔'과 정확히 같다. 심지어 콩동시 옆을 흐르는 '베이즈(Baise)'강의 발음은 프랑스어로 베즈(Baiser)와 비슷한데, 이게 속어로 쓰일 때는 베즈가 아니라 섹스라는 뜻이 된다. 콩동시 옆 섹스 강 비주는 키스라는 뜻이다. 이런 웃기는 제반 사정 덕분에 콩동시의 시민들은 다른 나라 국경을 넘어갈 때마다 세관원의 묘한 시선을 받았는데 1995년에는 콩동시장이 "이 도시에 세계 최대의 성애 박물관을 건설하겠습니다!"라며 Musée du Préservatif(Condom Museum)라는 박물관을 건설하겠다고 해서 콩동시는 정말로 콘돔 시가 되고 말았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특산물이라곤 푸아그라비아그라밖에 없는 도시에 예상 관광객이 연 2~30만은 될 것이라고. 그러나 이 박물관은 결국 2005년에 폐업하고 말았다.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지트의 큰 대문은 열려있었다. 건물은 밝고 깨끗하여 무언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잔디가 심어진 마당은 넓었는데 순례자들이 쉴 수 있는 테이블과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어 두어 지트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밖에서 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건물의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 "봉쥬루"하고 주인을 불렀다. 주방에서 일하던 젊은 주인이 밖으로 나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와 식탁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식탁에 있는 과일. 비스킷.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고 말하며 크리덴셜에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침실의 베드 커버는 깨끗했으며 특히 화장실 세면대에 비치되어 있는 비품들은 훌륭한 호텔에 비교되기도 했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식탁에는 모두 10명의 순례자들이 모였다. 젊은 지트 주인이 직접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다. 순례자들이 주인에게 요리를 어떻게 잘 만드느냐고 묻자 그는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다양하게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데 지트를 운영하기 전에 식당에서 요리를 하는 셰프였다고 했다.
주인이 만들어 오는 음식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프랑스 가정 음식이었다.
지트 이름은 'Gite d-etape le champ etoilet Condom'. 건물의 실내 인테리어와 구비하고 있는 집기는 특별한 인상을 주는 주인의 센스와 아이디어를 보는 듯했다.
프랑스 여성 순례자 한분이 내게 한국 아이돌 그룹 BTS를 알고 있고 딸이 내년에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또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성당에 한국에서 오신 뼤레레온 리(Pere Leon Lee) 신부님이 계신다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트의 젊은 주인(눈이 파란 프랑스인),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으로 갔더니 바게트빵, 요구르트, 사과, 쨈, 버터, 오렌지주스, 삶은 계란, 비스킷 등 주인은 지트를 찾아온 순례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더구나 삶은 계란을 바구니에 들고 하나씩 나누어주며 식탁에 있는 과일도 가져가라고 했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특별해서 순례자들이 대부분 문 앞에서 몇 번을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났다.
어제 지냈던 Lectoure 지트 주인에게 받았던 불친절로 상했던 감정은 이곳에서 받은 지트 주인의 친절함으로 상쇄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하루 저녁을 지내며 모든 면에서 여러 번 감동을 받아 나는 네이버 카페의 ' 카미노'에 이곳 지트를 매우 친절하고 깨끗하며 진정으로 진심을 다하는 젊은 지트 주인이 기다린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덧붙여 화장실과 샤워실에 헤어 드라이기. 샴푸. 바디젤. 알코올. 치약. 면봉. 1회용 티슈. 손톱깎이를 비치해 두었고 또 1인당 타월과 담요 2장을 침대 위에 비치해 두어서 순례자들이 개인용 침낭과 타월이 필요하지 않게 배려하는 세심함에 나는 감탄을 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나는 아침 식사 후에 지트를 나오면서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도 같이 찍고 헤어졌다.
Condom 시내를 지나면서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Musee de L'Aramagnae 박물관을 둘러보고 바로 옆에 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오늘 목적지 Eauze까지 잘 도착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아침 8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라 시내의 좁은 도로에 차들의 행렬이 길게 줄지어 지나갔다. 카미노 루트를 따라 걷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빨간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횡단보도 기둥에 녹색 버튼이 보여 그곳을 눌렀더니 비로소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카미노 루트는 횡단보도 건너편을 흐르는 바이즈(Baize) 강을 지나고 밀집되어 있는 주택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작은 도시라 카미노는 어느새 주택들이 드문 드문 있는 변두리 마을로 들어섰다.
아침에는 완연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약간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고 정오가 가까워오며 공기는 약간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적한 시골 마을 카미노 길을 지날 때는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어 나도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는 농촌의 넓은 밭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크기가 엄청나서 가끔은 드넓은 농지에 해바라기나 옥수수는 수확 시기가 지나도 그 자리에 그냥 내버려 두는 곳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며칠 전부터 지나가는 Lectoure. Condom. Montreal du ger. Eauze 지방에는 포도나무 밭이 많은데 알아보니 이곳에서 키운 포도로 코냑과 같은 40도 술 Armagnac (아르마냑)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정오가 지나갈 무렵 Montreal du gers 마을 광장을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이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 열리는 장날이었다. 손님들은 과일과 채소를 파는 곳에 모여있고 생선과 해산물을 차에 싣고 다니는 곳엔 손님이 없어서 한산했다. 내가 궁금해서 다가갔더니 포장마차 주인이 나한테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물건을 보라고 했다. 대구, 꼴뚜기, 고동. 홍합도 진열되어 있었다.
이 마을은 Condom. Eauze. Nogaro에 가까운 행정구역 도시였다. 오늘은 가이드북에 Eauze까지 거리가 33.4km 나와 있어서 어제 체크인할 때 지트 주인에게 단축 방법을 물었더니 Montreal du gers 가면 여행안내소에서 Eauze까지 택시를 불러준다고 했다.
시장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갔다. 무엇보다도 메뉴 사진에 있는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와 콩이 들어가 있는 요리가 좋아 보여 콜라와 함께 선택을 했는데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잘 마치고 나와 길을 걸어가다 BNP Paribas 은행을 만나 밖에 설치된 ATM기에서 유로를 인출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인출 취급수수료 6유로가 없는 은행을 만났다. 트레블월렛과 은행 간 수수료가 무료로 계약이 되어 있는 은행임을 확인했다. 다만 1회 인출가능액은 300유로 이내로 가능했다.
에오즈(Eauze)로 들어가는 길의 주택 담벼락에는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 주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재치있는 아이디어로 벽화를 그려놓았다. 벽에 그려진 그림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했다.
아침에 지트밖에 보이는 나무들이 물을 머금고 있었고 땅바닥은 젖어있었다. 밤새 비가 내려 기온도 많이 내려간 것 같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더니 잔뜩 잿빛 구름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찬바람이 지나갔다.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찬 기온에 나는 지트를 나서기 전에 긴팔 옷을 껴입고 나왔다.
지트를 나와 오늘 목적지 노가로(Nogaro)를 향해 카미노 루트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찾아서 걸어갔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 나왔다. 그리고 이쯤에는 르퓌길의 종착지인 생장피에드포르가 가까워진 까닭에 순례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이 길에서 가끔 만나는 순례자들은 서로 "봉쥬르"하고 반가운 얼굴로 서로 인사하며 지나갔다.
지트를 출발하여 3시간쯤 걸어 Manciet에 도달할 때까지 마을은 없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광장에 엔진룸이 넓은 '올드카'를 전시해 놓은 곳을 지나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바디 부분은 깔끔하게 광택이 나는 자동차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건너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잠깐 휴식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정오가 넘어가면서 이제 자동차가 가끔 지나가는 가로수 길을 따라 걸었다. 한낮이라 조금은 강하고 밝은 햇살이 도로에 내려 기온은 점차 오르는 듯했다. Manciet부터는 계속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걸었으며 길에서 만나는 차량들과 앞에 펼쳐지는 하늘의 하얀 구름들이 몰려다니는 풍경이 새삼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르퓌길에서 프랑스 시골은 스페인에 비해서 조금은 더 평화롭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대체적으로 주변은 건조하거나 마르지 않고 끊임없는 초록색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Condom 시내에서 휴대폰 유심을 새로 바꾼 후부터 인터넷이 시골 지역을 지날 때도 더 잘 연결되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CBS' 라디오 방송을 듣기 위해 앱을 켜면 한국 시간 4시에 '박승화의 가요 속으로' 이어서 6시에 '배미향의 저녁스케치'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데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주 시골 지역을 지나갈 때는 잠시동안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부터 받아둔 음악 앱 "멜론"을 열어 이미 저장해 둔 음악을 들으며 걸어갔다. 오늘은 가수 '규현'이 부른 '광화문에서'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JTBC 방송의 '싱어게인' 프로그램 우승자 김기태 노래도 자주 듣고 있었다.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다 길옆에 근사하고 정원이 넓은 집 앞 담벼락에 주저앉아 조여있던 신발끈을 풀었다. 그리고 콩동(Condon)에서 유심을 교환하러 갈 때 마을 어귀의 베이커리에서 사서 담아둔 크림빵을 주스와 함께 먹으며 파란색으로 변해가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 높은 하늘에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가 이리저리 자맥질하듯 날아가고 있었다.
Nogaro 방향으로 앞서서 천천히 걸어가는 세 명의 순례자들이 있었다. 내가 앞질러가며 "봉쥬루"하며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들처럼 친구들끼리 걸어가는 모습은 혼자 걷고 있는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하였다. 넓은 초원 위에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런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야 했다.
카미노는 노가호(Nogaro)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섰다. 프랑스 남서부 제르주의 도시이며 아르마냑 브랜디(Armagnac brandy)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한적한 시내로 들어가 자동차 도로를 걷다 지트가 있는 길로 들어섰다. 근처에 까르푸 마트가 있고 규모가 큰 베이커리 건물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서 진열장에 있는 여러 종류의 빵들을 둘러보았다. 겉은 울퉁불퉁하지만 속에는 크림이 들어있는 소보르빵과 카스텔라를 사들고 나왔다.
오늘 지트는 Nogaro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지트였다. 넓은 건물에 청소년 수련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넓었지만 저녁식사는 제공하지 않고 대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주방이 있어 알아서 해결하고 다만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제공한다고 했다. 그리고 건물 바로 뒤에 넓은 럭비 경기 운동장에서는 선수들이 시합을 하고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카레이싱하는 트랙도 있었지만 담이 높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좀 늦은 점심을 오랜만에 한국에서 가져온 미역국과 된장국 블록을 뜨거운 물에 풀어서 마시고 누룽지를 같이 먹으니 속이 아주 개운해졌다.
옆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미국인 여자가 오이를 사용하고 남았다고 나에게 줘서 나는 문득 고추장을 오이에 발라서 먹을 생각을 했다.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고추장을 가져와 오이에 발라 먹는 모습을 미국인이 쳐다보며 웃으면서 무엇이냐고 물었다. "코리안 레드 페퍼 페이스트"라고 말했다.
요즘 해 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서 7시가 넘어야 밖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오늘 일출시간은 7시 48분이다.
지트의 아침 식사는 두 가지 빵과 오렌지 주스, 우유, 사과, 쨈과 버터. 바나나 등 그런대로 격식을 갖춰 준비해 주었다. 식사를 하는 테이블에는 마침 독일인 남자와 프랑스 여자와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독일인 남자는 르퓌길을 걷는 게 아니라 독일에서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로 넘어가는 루트를 걷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트레일 코스가 있다고 설명했는데 그는 트레일에서는 거의 다른 트레커를 만날 수 없어서 비상식량과 침구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어제 Nogaro 지트 근처 까루프에 가서 오늘 마실 생수와 간식거리를 사고 돌아올 때 공원 마당에서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도 그곳에서 들려주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깊은 잠을 못 들었다. 이곳 시골 젊은이들이 공원에 모여 야외 파티를 하며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카미노 루트도 좀 평탄한 시골길로 이어졌다. 대부분 드넓은 포도나무 농원 옆을 지나가는데 이 지역 포도를 홍보하는 패널에 'Saint mont 포도는 피레네산맥을 따라 재배하는 우수한 포도 품종'이라고 안내하는 패널을 만났다.
그리고 포도나무이 밀집한 농원을 지나가는 길로 들어서자 프랑스의 사진작가 'Jean Michel Danard'이 카미노를 걷고 있는 각국의 순례자들의 얼굴 표정을 찍어 대형 패널을 제작하여 걷고 있는 길에 세워두었다. 사진들에서 보이는 다양한 모습의 순례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즐거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걸었더니 발목이 조금 저려와서 길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어서 열을 식히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사둔 빵과 까루프에서 산 '카프리 주스"를 꺼내 먹었다.
'에흐-슈흐-라두흐(Aire-sur-Adour)'로 들어가는 행정구역 표시를 만나 구글맵을 켜고 지트를 찾아갔다. 마을 외곽을 따라 흐르는 아두흐강물을 보며 지트 'Chapelle des Ursulines'를 찾아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고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바깥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동안 햇볕이 강하게 내리는 분주한 시내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도시의 외각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지트로 향하는 언덕길은 상당히 가팔랐다. 에흐-슈흐-라두흐 (Aire sur Adour) 중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높은 언덕의 옛 성당 건물이 오늘 묵어갈 지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1797년에 세워진 성당과 부속 건물. 그러나 지트 이름이 적힌 성당 건물 대문에는 체크인 시간이 3시라고 적혀있었으며 입구의 계단에는 일찍 찾아온 순례자 한 명이 앉아서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문이 열릴 시간까지 다시 아래 마을로 내려가 우선 생수와 간식거리를 사고 바에서 콜라를 마시기 위해 움직였다.
정확히 3시가 되자 건물 안에서 호스피탈레노가 출입문을 열고 나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지트로 사용하는 이곳은 성당의 천장과 벽. 제대는 그대로 두고 오래된 반주용 오르간부터 예전에 성당으로 사용하던 비품이 보였으며 벽 쪽에 있던 소미사실을 숙박하는 룸으로 개조하고 신자들이 앉던 긴 의자들 대신에 식사용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침실은 하얀 베드커버가 잘 세탁되어 보송보송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거의 30명 정도 순례자들이 긴 테이블에 양편으로 착석을 했다. 식사는 뷔페 형식으로 여러 종류의 음식을 제공했으며 와인이 먼저 제공되었고 강낭콩 수프와 구운 소고기 필레와 감자를 준비했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 디저트도 제공되었다. 옆에 앉은 외국인 순례자가 르퓌길을 걸으며 동양인을 처음 만났다고 하면서 한국인들은 이곳을 많이 걷는지 물어왔다. 건너편 순례자가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는데 그는 먼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남쪽이냐고 확인하였다.
식사 전에 식탁에 놓인 와인이 금세 바닥이 났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남녀 모두 와인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 앞의 순례자가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는 모습을 보고 내가 신기한 표정을 했더니 자기도 멋적은지 그냥 웃어보였다.
오늘 구간은 지명 이름 읽기도, 쓰기도 어려워 몇 번을 외어야 하는 아르자크-아라지게(Arzacq-Arraziguet) 마을로 가는 날이다. 르퓌길에서 제일 긴 34km 거리의 구간이었다.
어제 지트에서 다른 순례자들한테 내일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Miramont sensation'까지 가는 사람과 그다음 지트가 있는 'Pimpo'까지 간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가이드북 구간별로 미리 지트를 예약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어떤 방법이라도 그곳까지 가야 했다. 그래서 지트 주인에게 내일 너무 구간이 길어서 Latrille까지 가는 교통편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낼 아침 8시 30분에 배낭을 운송해 주는 차를 예약했으니 픽업하러 오면 타고 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 나는 자동차에서 내려 24킬로를 걸어 'Arzacq Arraziguet'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아침 8시 30분, 정확히 트랜스포터가 도착해서 이곳에 배달된 캐리어 2개를 내려놓더니 나를 앞 좌석에 올라타라고 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도로를 따라 지나가는 시골 풍경을 보고 있는데 기사가 내게 '한국인'이냐고 대뜸 물어왔다. 그는 내가 맞다고 하니까 자기 회사가 작년에 르퓌길의 운송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어 버전이 있다고 홍보 카드를 건네주며 QR코드를 찍어보라고 했다.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했더니 대한민국 국기가 그려진 한국어로 제작된 운송 안내서가 있었다. 나는 상당히 놀라서 기사에게 어떻게 한국어 버전을 만들게 되었냐고 질문을 했다. 그가 요즘 한국사람들이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르퓌길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어 버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한국 순례자들에게 홍보를 해달라고 하며 내가 Latrille 마을에 도착해서 교통비 25유로를 지불했더니 나에게 5유로를 돌려주면서 20유로만 받겠다고 했다.
내가 내린 곳은 르퓌길 번호인 GR65에서 2.3km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르퓌길에 접어들기 위해 구글맵에 나타난 방향선을 따라 걸어가 원래의 GR65 길에 들어섰다.
Miramont Senacq 마을을 지날 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000km 남았다는 거리 표지석을 만날 수 있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들이 있는 마을을 지나갈 때 유치원에서 어린 아이들이 남자 산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운동하는 것을 보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갑자기 내 앞에 멀리 피레네산맥의 능선이 길게 나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2011년 4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 날 피레네 레포에더 능선을 넘어 스페인 땅으로 넘어가며 흘렸던 땀을 생각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나게 될 피레네산맥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때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다시 떠 올랐다. 그런데 오늘은 피레네 산맥을 바라보며 걷는 지역에 들어왔음을 실감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와 글로만 읽었던 피레네산맥의 풍경은 정말 장대하고 위엄 있는 산으로 내게 다가왔다.
Voie du puy en velay 마을로 들어왔다. 성당 앞 조그만 공원에서 바라보는 피레네산맥은 장관이었다. 하얀 부분은 눈이 녹지 않고 남아있는 곳이라고 카페지기 배언덕님이 지난번 '아를길'을 걸으시면서 올렸던 글이 생각났다. 이곳에는 피레네산맥을 설명하는 보드가 설치되어 있어서 나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갈길을 재촉했다.
르퓌길을 걷기 시작한 지 25일째, 오늘은 아르테즈-드-베아른(Arthez de Bearn)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며칠 전에 내가 순례길 일기를 작성하고 있는 네이버의 카페 '카미노'에 올라온 회원분의 글에 이곳에 한국 여성분이 살고 있으며 매주 장날에 한국 음식을 팔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내가 댓글에 한국분의 인스타 또는 카톡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folee_coree'가 주인공이라고 알려왔다. 2023년 9월 19일 아침, 어느 때보다 들뜬 기분으로 지트를 나섰다. 그곳 마을에 가면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서둘러 걸어가야 했었다. 나는 그분의 인스타그램 아이디에 접속하여 쌀밥과 김치, 카레, 돈가스, 그리고 김치 라면 2개를 사전에 주문했다.
르퓌길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스페인 순례길에 비해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올해는 '카미노'카페에 르퓌길을 걷고있는 순례자들의 글이 늘어가고 있어서 관심의 정도를 알 수 있었다. 네이버의 카페 '카미노'에서는 유럽의 순례길 걷기를 희망하는 회원들을 위해 '경험자 설명회'를 몇 차례 열고 구체적인 경험을 나누고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지트를 나와 마을의 골목길을 지나 넓은 호수를 지나갔다. 카미노 길에는 다른 지트에서 머무른 순례자들이 벌써 드문드문 앞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잔잔한 호수에는 윤설이 투영되어 반짝거리고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에 여명이 점차 퍼지며 세상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풍경들은 나에게 벅찬 감동으로 크게 다가왔다.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신비를 내가 마주하며 걷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나는 너무 행복했었고 이런 풍경을 내가 선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격려해주는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카미노는 호수가를 지나자 도로 건너편 나지막한 야산으로 나 있었다. 누렇게 변해버린 참나무 잎들이 계절을 실감하게 했다. 숲길이 끝나자 바로 아스팔트가 포장된 시골길로 나왔는데 그곳은 옥수수를 수확하고 밭에 버려진 말라버린 잎들이 널부러진 밭 사이를 지나갔다.
넓은 밭고랑을 지나 축사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지나갔다. 소의 분변들이 축사밖에도 널려있어서 냄새가 풍겼지만 이제는 별로 거부감을 갖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때로는 마치 구수한 옥수수 차에서 나는 향기 같아 그런대로 괜찮았다.
오늘은 Arzacq Arraziguet를 출발하여 25Km 떨어진 Castillon에 도착하면 한국인 이지은씨가 3시30분에 성당앞에서 픽업을 해서 Arthez de Bearn 지트로 가기로 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주인공은 프랑스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니 나는 많이 궁금했다.
정오를 지나 중간 마을인 Larreule와 Uzan를 지나갔다. 이런 작은 마을에도 지트가 있었고 거리를 지나가다 도로 옆 주택 건물 벽에 마치 집주인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듯 벽화를 보고 나는 그만 웃음이 나왔다. 마치 걸어오고 있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 나게 그림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카미노 루트에는 가끔 맞은편에서 단체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남자와 여자들은 백팩을 메고 여러 명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으며 이곳에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는 듯했다.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곳에 하얀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남자가 앉아있었고 내가 다가서며 "봉쥬르"하고 인사를 하자 그 사람도 "봉쥬르" 하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는 머리에 얇은 중절모를 쓰고 있어서 순례자라기보다 멋을 내고 있는 서양 멋쟁이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걷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14마일 이상은 걷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Pomps'까지 간다고 했다. 그래서 거리를 mile로 말하는 것을 듣고 혹시 미국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하며 걷기가 끝나고 동부의 '보스턴'으로 가서 자기 부인을 만나 결혼기념일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순례길을 걷고 다른 멋진 여행 계획을 갖고 있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옆 테이블에서 하얀 색깔의 껍질을 자랑하는 자작나무 숲을 보며 시골 마을 베이커리에서 구매했던 빵을 오렌지주스와 함께 점심을 해결했다. 슈퍼마켓에서 구매한 주스는 대부분 1리터 병으로 팔기 때문에 무겁기도 하지만 배낭의 공간을 차지해서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먼저 개봉하여 한 컵을 마시면 나머지는 작은 플라스틱 병으로 옮겨 가지고 다녔다.
르퓌길은 이제 가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완연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제 길에는 플라타너스에서 떨어지는 낙엽들이 길에 많이 쌓이기 시작했다.
Castillon 마을로 들어왔다. 구글 맵에서 성당의 위치를 따라 걸어갔다. 성당의 문은 잠겨있었고 입구에 벤치가 있었지만 햇볕이 강해서 조금 더 걸어갔다. 마을은 깨끗하고 멋들어진 주택들이 있었으며 근처에는 광장과 주차장 그리고 벤치들도 있었다.
나는 이지은씨와 마을 성당 앞에서 3시 30분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성당이 보이는 주차장 벤치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네이버의 뉴스도 검색하고 음악도 들었다.
이지은 씨로부터 성당에 도착했는데 내가 보이질 않는다고 카톡이 왔다. 성당 앞에 청색 르노 승용차가 보여 내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자동차가 광장의 주차장으로 들어와서 나는 배낭을 들고 자동차로 다가갔고 그녀가 차에서 내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르퓌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났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나는 배낭을 뒷좌석에 두고 조수석에 앉아 이지은씨와 Arthez de Bearn 마을로 갔다.
자동차 안에서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생각을 물어봤다. 이지은씨는 울산이 고향인데 그곳 회사에 다닐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8년 전 남편의 희망에 따라 그의 고향인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을 학교에 가서 픽업해 집에 데려다주고 나를 픽업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만들어 매주 주말 장터에 가지고 가서 팔고있는데 의외로 잘 팔린다고 했다. 남편을 따라 멀리 이곳 시골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역시 씩씩한 한국의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시골길을 잠깐 달리던 자동차는 마을로 들어가며 어느 주택앞에 멈추었다. 나는 메신저로 사전에 지트 이름을 이지은씨에게 알려주었다. 문이 열려있는 지트로 들어가자 이지은씨가 지트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지트 주인이 밖으로 나오며 그녀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대화를 했다. 이지은씨는 지트 주인이 남편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로 남편도 아버지라 부를 만큼 절친한 사이라고 했다. 그리고 6시쯤 음식을 준비해서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지트 주인이 내가 지낼 방을 알려주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지나 침대가 하나있는 넓은 방으로 안내를 했다.
드디어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이지은씨가 가방에 주문한 음식을 포장하여 가져왔다. 사전에 카톡으로 주문한 돈가스와 카레 비빔밥. 그리고 손수 만든 김치와 김치맛 신라면 두 봉지를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40유로를 봉투에 넣어 주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25유로만 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김치가 아까워서 조금씩 먹었지만 식사가 끝날 때는 김치통을 완전히 비우고 말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김치맛 신라면 두 봉지를 배낭 깊숙한 곳에 잘 보관해 두었다.
어제 지냈던 지트는 나이가 연로한 주인이 운영하는 상당히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대부분 시설이 낡았고 불편했다. 순례길에서 지트를 운영하는 젊은 주인들은 대체적으로 편의 시설이나 집기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깨끗했다. 반대로 나이가 많을수록 새로운 시설이나 위생적인 부분이 뒤 떨어져 있었다.
어제는 르퓌길에서 처음으로 김치를 많이 먹은 날이어서 아침에 속이 좀 편한 느낌이었다. 역시 김치는 며칠 전부터 생긴 변비도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오늘 카미노 루트도 넓은 옥수수 밭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이 수확철이라 커다란 농기계가 밭을 지나다니며 누렇게 익은 옥수수를 탈곡하여 알맹이를 버켓에 담아 기다리고 있는 대형 트럭에 옮겨 어디론가 떠나는 풍경도 이채로웠다.
베아른(Bearn)을 출발하여 18km 떨어진 Seuvelade 마을의 언덕길을 지나가다 지트와 바를 함께 운영하는 건물에서 재즈 음악 소리가 들려서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자 주인이 음악에 맞춰서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일을 하고 있길래 인사를 했더니 매우 반가워했다. 이곳에는 마트처럼 음료수. 과일. 스넥과자. 빵 그리고 약간의 일상용품을 팔고있었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바구니에 담겨있는 바나나 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와 건물 밖의 테이블로 나와 앉았다. 날씨가 좋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한가로운 휴식을 취했다.
카미노 루트에는 여러 곳에 마을 주민이 만들어 놓은 아주 센스 있고 아이디어가 좋은 장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순례자의 심볼인 가리비와 시계 시침과 분침을 그리고 스푼과 포크를 붙여서 걸어둔 작품도 있고 대형 색연필 모양을 만들어서 길에 세워둔 집도 있었다.
메리테인(Meritein) 마을을 지날 때는 이 지역에 풍경이 좋은 넓은 호수가 있으며 낚시터도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길에 세워있었다. 이곳을 지나 곧 Navarrenx 마을로 진입할 때는 보기 드물게 초입에 규모가 대형인 오리 농장이 있었다.
길에서 잠시 걷기를 멈추고 구글맵으로 오늘 묵어갈 지트 이름을 입력하니 시내를 지나 약간 외곽에 위치한 곳으로 거리는 약 900미터 정도를 더 걸어야 했었다.
지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안 되어 나는 대문 입구 의자에 앉아있었다. 세 시가 되자 지트 문이 열리고 여주인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물론 신발은 신발장에 그리고 배낭에서 저녁에 방에서 사용할 물건을 바구니에 담아 2층으로 올라가도록 했다. 나는 밝은 창쪽으로 놓여있는 침대 옆에 바구니를 놓고 다시 지트 밖으로 나와 별채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정원의 화단에는 잎이 말라가는 장미꽃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트 주인이 손수 만들어 걸어놓은 여러 장식물이 이채롭게 보여왔다.
정원은 크지 않지만 순례자가 도착하면 그곳 테이블에서 주인은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시원한 레몬이 들어간 물을 주며 약간 쉬었다가 방으로 가도록 했다. 그런데 테이블에 앉아있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지트에서 호스피탈레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인이 소개를 했다.
나는 주인에게 점심을 못 먹어서 이곳에서 라면을 끓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주인은 흔쾌히 식탁의 냄비를 사용하여 라면을 끓이도록 해 주었다. 나는 어제 베아른(Bearn)에서 구입한 김치맛 신라면 한 개를 가져와 벌써 펄펄 끓고 있는 물에 라면을 수프와 함께 넣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 나는 남아있는 국물까지 모두 마시면서 든든한 속을 채웠다는 생각으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여주인이 마을 성당에서 6시에 순례자 미사가 있으니 다녀오라고 하면서 저녁 식사는 8시, 아침 식사는 7시라고 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했으나 익숙하지 않은 낮잠은 쉽게 들지 못했다. 5시가 되었을 때 다른 순례자 부부가 지트를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순례자 부부와 함께 성당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트를 나섰다. 성당에는 일반 신자들과 몇 명의 순례자들이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를 끝내고 순례자들을 위해 간단한 파티 시간을 갖었는데 우리는 저녁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성당을 나왔다.
지트 주인의 음식 솜씨는 창의적이었다. 주인은 우리에게 자신이 '베지테리언'이라 고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음식 재료는 대부분 근처 밭에서 재배한 야채를 직접 사용한다고 했다. 저녁 식사에는 여주인과 호스피탈레노 남자와 여자. 그리고 프랑스 남자와 프랑스 부부 7명이 참석했다.
처음 애피타이저로 나온 꽃을 올린 샐러드는 주인의 정성 어린 준비에 모두가 감탄했다. 주인은 근처에서 자라는 꽃을 꺾어서 장식을 했다고 했으며 옆 순례자가 주인이 창의적인 메뉴를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메인 음식은 감자를 원료로 다른 채소들을 섞어 치즈와 블루베리도 토핑 되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오븐에 구운 음식이 나왔다.
새벽부터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일기예보에는 11시부터 비가 시작된다고 나와 있었다. 나는 일곱 시에 아래층으로 내려와 준비되어 있는 식사를 하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지트를 나와 골목을 지나고 큰 도로에 들어섰을 때 멀리 시내 쪽에서 배낭을 메고 걸어오는 순례자들이 있었다. 이제 3일 후에 다들 최종 목적지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하게 될 순례자들이다.
카미노 루트는 나바헝스(Navarrenx) 시내를 벗어나면서 16세기에 프랑스 최초의 망루가 있는 성곽을 지나가다 광장에 반듯하게 세워져 있는 순례자 동상들을 만났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 꺄브 돌로 흥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갔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이제 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흙길이 시작되었다. 어제 내린 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어서 잘 보면서 걸어야 했다. 그런데 어제 숙소에서 같이 지낸 프랑스인 부부가 뒤에서 따라왔다. 나는 그들에게 "봉쥬르"하고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걸으면서 부인에게 계속 말을 하는데 부인은 일체 말을 하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카미노는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는 산림지역을 지나가고 가끔 물이 흐르는 계곡도 만났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나의 오른쪽 발목 윗부분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르퓌길을 첫날 출발할 때 나타난 왼쪽 발목의 통증이 이제는 오른쪽으로 옮겨간 듯하였다. 나는 납작한 작은 바위에 앉아 신발을 벗고 근육통 젤을 발목에 겹쳐서 바르고 어느 정도 마른 다음 통증 부위에 화끈거리는 파스를 붙였다.
하늘에는 비가 올 것 같은 기운의 잿빛 구름들이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비가 오기 전에 최대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해서 벌떡 일어나 배낭을 메고 조금씩 걷기로 했다. 그러나 발목 통증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나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제발 비가 천천히 왔으면 하며 걸었다. 지트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며 인내를 가져야 했다.
오전 11시쯤 정말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옷이 비에 젖으면 감기가 걸릴까 싶어 즉시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카오흐(Cahors)에서 구입한 노란색 우비를 꺼냈다. 처음 입게 될 우비는 두께가 이전에 입던 우비에 비해 확실히 두껍게 보였는데 밖에서 스미는 습기를 차단하는 대신에 무게와 부피를 차지해서 배낭의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런데 우비를 입는데 문제가 생겼다. 우비를 펴서 머리 뒤로 넘겨도 배낭에 걸려 입혀지지 않아 허둥대고 있었는데 마침 뒤에서 두 명의 남자 순례자가 걸어오다 내가 우비를 제대로 입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지 "도와줄까요?" 하고 영어로 물어왔다. 우비를 뒤에서 입혀주는 남자가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기들은 미국 LA에서 친구와 같이 왔으며 생장피에드포르까지 걷고 돌아간다고 했다. 남자들은 나에게 먼저 가겠다고 하며 앞서 떠났다.
나는 아직 불편한 발목 때문에 힘을 주지 못하고 약간 불안정한 자세로 걸어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주변은 어두워지고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점점 비가 억수같이 내리쳤다. 이때부터 빗물이 얼굴에 부딪히며 스틱을 쥔 양손에도 빗방울이 계속 부딪히며 손이 시리고 몸에 추위까지 느껴졌다.
아루에(Aroue) 마을이 멀게만 느껴질 때 전면이 개방된 창고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목재로 세워진 창고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여러 농사기구도 걸려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우비를 벗어 귀퉁이에 걸어놓고 배낭에서 긴팔 옷을 꺼내 입었다. 당장에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메고 우비를 입으려고 했지만 다시 등뒤의 배낭에 걸려 애를 먹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는 순례자가 또 나타나서 나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동안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이제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신작로의 가로수 나무들은 아직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으며 아스팔트에 생긴 물웅덩이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며 크게 물을 튕기면서 한동안 긴장을 하며 걸어야 했다. 카미노 루트는 이제 자동차 길을 벗어나 나무들이 우거진 야산을 넘어가더니 다시 내리막 길에 들어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마을이 보이고 비도 이제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주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그곳에는 지트를 홍보하는 사진이 실린 광고판도 보였다.
지트는 Aroue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었다. 지트 이름은 'Aroue gite Ferme Bohoteguia'로 이름도 길지만 룸이 7개, 순례자를 약 30명쯤 수용하고 젊은 부부와 어머니, 손주까지 일을 도와 순례객들을 챙기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도착해서 식탁이 있는 로비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한쪽 진열대에는 몇 가지 과일과 캔디, 초콜릿, 비스킷 등 순례자들이 필요한 물건을 파는 장소도 있었다.
순례자 여권에 체크인을 끝내고 내가 아침부터 발목에 통증이 있어 걷기가 어려워 내일 생빨래(Saint Palaise)에 있는 순례자 병원을 택시로 가고 싶은데 예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지트 주인이 영어로 내일 아침 9시쯤 시장에 가는데 자기 자동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저녁 8시에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모였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15명씩 30명이 모여 주인의 어머니와 아들이 조리한 요리를 아내와 손주가 나르고 있었다. 음식은 와인과 수프가 먼저 나오고 다음으로 닭고기와 버섯과 당근이 들어간 리조토 같은 음식이 나왔다. 야채샐러드는 리필이 가능했다.
순례자들은 이제 이틀 남은 여정 때문에 모두 들뜬 기분으로 서로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맞은편에 식사를 하시는 노인분께 어느 나라 분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프랑스 사람이고 산티아고를 8번 다녀왔다고 했다. 내가 그분의 대답에 놀라서 나이를 여쭈었더니 금년 80살이라고 하며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꼬레아"라고 말씀드렸더니 남쪽인지 북쪽인지 물었다. 나는 그분에게 "나이에 비해 건강한 체력을 가지셔서 부럽습니다. "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많이 걸어 다녀서 건강하다고 했다.
어제는 발목에 통증이 있어서 걷는데 어려움이 많은 날이었다. 어제 지트에 와서 샤워를 끝낸후부터 근육통 젤을 자주 발라주었더니 아침에는 통증이 생각보다 많이 가라앉았다. 천천히 걸으면 이틀 정도 남은 거리를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아 오늘은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아침에 휴대폰에서 일기예보 앱을 열어 날씨를 점검했더니 오늘부터 3일간 비와 번개 예보를 알리는 표시가 나와 있었다.
Aroue 마을에서 19킬로 떨어진 인구 2,000명의 생빨래(Saint Palais)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 순례자 병원이 있어서 나는 발목 치료를 하고 오늘 목적지 오스타밧(Ostabat Asme)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지트의 아침은 매우 분주했다. 그리고 일곱 시가 넘어가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은 빵과 우유 그리고 바나나 한 개를 먹고 커피 포트에서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따라 마셨다. 식사를 끝내고 주인이 태워주는 자동차를 타고 생빨래에 내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계획을 접고 그냥 걸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8시쯤 주인에게 어제 저녁부터 발목에 젤을 바르고 한국에서 처방받아 가져온 소염제를 먹었더니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고 했더니 그래도 일단 자기 차를 타고 생빨래(Saint Palais)에 가서 치료를 받을 건지 그냥 걸을건지 결정하라고 했다. 그동안 비가 그치며 잿빛 구름들이 빠르게 몰려가고 있었다. 나는 주인이 태워주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출발을 했다.
생빨래(Saint Palais)는 구글 검색 결과에서 16세기 초에 세워진 도시로 생긴 인구 약 3,000명 정도의 도시로 매년 바스크 축제를 하며 또 매주 금요일에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여주인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시골길을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생빨래 도시의 건물 위 하늘에 갑자기 무지개가 나타나고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며 도시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지트를 출발한 지 이십 분쯤 지나 생빨래(Saint Palais)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나를 내려주고 다시 출발하였다. 나는 건물들이 많은 시내 중심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병원을 지나쳐서 곧장 건물들이 많은 도로를 따라 걸어가 이제 시내버스와 차량들이 붐비는 곳으로 들어갔다. 삼거리가 나타나더니 우측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골 장터를 만났다. 운수 좋게 오늘이 금요일이라 마침 장이 열렸다.
그렇게 규모가 큰 장터는 아니지만 가정 일상용품과 갖가지 옷을 파는 트럭이 있었고 좌판에는 현지에서 재배한 채소와 과일. 꿀과 잼들도 있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다 간단한 음식을 파는 트럭 앞에서 구경을 했다. 버섯과 브로콜리가 들어간 샐러드에 바게트 빵 조각을 올린 음식이 있었다. 음식은 종이로 만든 용기에 넣어 팔고 있었는데 나는 점심 식사용으로 한 개를 구매해서 배낭에 넣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이제 나는 생빨래에서 GR654 (프랑스 중북부의 Vezelay에서 출발하여 Ostabat Asme까지 걷는 Camino de Vezelay 길) 루트를 잠시 걸어가 Ostabat Asme에서 다시 GR65 루트에 합류해야 했다.
장터를 나와 GR654 표식을 찾기 위해 카미노 앱 'Via Podiensis"를 열어 루트를 찾아갔다. 생빨래 성당을 지나가는 길에 건물 벽에서 GR654 표식을 만났다. 프랑스 르퓌길 표식은 국기 색깔과 같은 하얀색과 빨간색의 심볼마크를 표시한다.
생빨래의 주택가를 완전히 벗어나자 내 앞에 오르막 숲길이 나타났다. 숲길로 들어서자 비가 그친 촉촉한 오솔길에는 기온이 내려가며 떨어진 낙엽들이 쌓여 있어서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느낌이 매우 푹신한 듯 좋았다. 오솔길을 벗어나자 바로 앞에 넓은 잔디 광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사진으로 보았던 3개의 석상인 'Sculptures atop Mont Saint Sauveur'가 앞에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석상뒤로 멀리 피레네 산맥이 지나가는 풍경도 들어왔는데 마침 벤치가 있어서 나는 조금전에 시장에서 포장해 온 샐러드를 꺼내 조금 맛을 보고 일어났다.
잔디 광장을 지나 언덕을 따라 내려오니 조그만 마을의 주택들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건너편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섰다. 앞에는 높은 언덕을 향해 순례자들이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언덕은 올라가면 다시 또 언덕길이 연결되었다. 힘을 들여 언덕의 정상에 올랐더니 조그만 공원 같은 장소에 가톨릭 공소 같은 건물이 있었고 건물 안에 성모마리아상이 있었으며 그곳 벤치에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버너를 켜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나는 건물 밖에 있는 작은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앞에 보이는 넓은 초원의 풍경을 먼저 감상했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우비를 다시 입고 산을 내려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커브를 돌아가는 길 옆에 순례자들의 피난처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두 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여러 순례자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비어있는 테이블로 가서 우선 우비를 벗고 시장에서 사 온 샐러드 도시락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말끔하게 먹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오늘 목적지 Ostabat을 향해 빗속을 걸어갔다.
오늘 지트는 Ostabat 시내를 훨씬 지나 1.6km 지점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트에서 바라보이는 피레네 산맥의 봉우리들의 절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런데 지트의 체크인 시간이 3시라고 적혀있었고 대문은 열리지 않아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내일은 마지막 목적지 '생장피데르포르'에 들어가는 날이다. 2011년 5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앞에 도착해서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렸던 나의 첫 번째 순례길 기억이 새롭게 나타났다.
체크인 시간까지 대문 앞 의자에 앉아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열어보았다. 지트 건너편에 있는 집에서 남자와 여자가 건물 쪽으로 걸어왔다. 주인은 예약 노트를 보면서 체크인을 하고 신발은 입구에 두고 배낭은 복도에 놓고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저녁 8시가 되자 순례자들이 식탁으로 나와 다들 자리에 앉자 주인 부부가 성심껏 준비한 요리를 하나씩 가져왔다. 식탁에 놓인 와인은 내일이면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다는 기쁨으로 대부분 순례자들이 많이 마셔 일찍 없어졌다. 그런데 내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젊은 순례자에게 옆 순례자가 질문을 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묻는 물음에 자신은 덴마크의 집에서 출발해 GR654를 걷고 있다고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여자 주인이 작은 칠판에 내일 구간에 대해 자세히 적은 정보를 보여주면서 세심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 다음에 남자주인이 아코디언을 가지고 프랑스 노래를 연주하며 흥을 돋우고 순례자들은 그의 연주에 따라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면서 박수도 쳤다.
이번에는 주인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하면서 순례자들에게 박수를 청했다.
르퓌길의 목적지 'Saint jean pied de Port'에 들어가는 날, 아침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2011년 4월과 2019년 5월에 생장피에드포르를 프랑스 길을 시작하면서 찾아갔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번에는 시작이 아니라 끝남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침 일찍 5시 30분쯤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가서 불을 켜고 식탁에 놓인 아침 식사를 챙겨 먹었다. 그리고 배낭을 챙기고 출발을 하려고 하였는데 밖이 아직 어둡고 비가 내리고 있어서 출발을 못하고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도 입구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있었다. 일곱 시가 되자 식탁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출발을 지체하였던 만큼 도착이 늦어질까 봐 마음이 심란하였지만 바깥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하자 나는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와 카미노 루트로 들어섰다. 비가 내려 길이 질퍽거려서 조심조심 걸어가야 했고 시간이 지나자 신발 바닥에 흙이 붙어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풀 위에 신발을 문질러서 흙을 떼어내고 걸어갔다.
카미노 루트는 이제 숲길을 나와 자동차 도로에 들어서고 갓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멀리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캐나다인 순례자가 보였다.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아스팔트길에 '생장피에드포르' 18.6km라고 적힌 표지판을 만났다.
어두웠던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어디론가 밀려가며 비는 그치고 가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와서 이제 한결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거추장스럽게 걸치고 있던 우비를 벗어 주섬주섬 접어 배낭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Saint jean pied de Port 4km 전 마을 Saint jean le Vieux 마을에 들어서면서 하늘에서 햇살이 뜨겁게 내려왔다. 나는 햇볕을 받으며 걸어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선크림을 발라야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아이들이 승마를 배우는 교육장을 지나갔다.
승마 교육장을 지나자 조금 걸어갈 때 이곳이 '생장피에드포르' 마을의 입구라고 생각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며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음이 점점 빨라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내 앞에 드디어 성안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문이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야 르퓌길 걷기의 끝이 앞에 있음을 실감했다.
성벽이 이어지는 길에 생자크(Porte St Jacques) 문을 지나 경사진 돌길을 내려가자 그곳에는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을 위해 순례자 여권을 받기위해 순례자 사무실(Accueil St. Jacques)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생장피에드포르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도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르퓌길 순례자 여권에 마지막 스탬프를 받기 위해 긴 줄의 마지막에 다가갔다. 한국에서 오신 두 여자분들이 내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먼저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에 한국말이 나왔다. 그들은 자매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오늘 이곳에 도착했다고 했다.
내 차례가 다가와서 나는 순례자 사무실로 들어갔다. 예전처럼 자원봉사자가 내가 내민 순례자 여권을 보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몇 번이나 카미노를 걸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다섯 번째라고 했더니 그는 나에게 이곳에 와서 한국 순례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왔다.
순례자 사무실을 내려와 오랜만에 생장피에드포르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니베강을 지나갔다.
나의 르퓌길 걷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나는 이제 순례길 걷기가 끝났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안고 오늘 지낼 지트를 찾아갔다.
르퓌길에서 얻은 외로움의 경험은 스페인 순례길을 걸을 때 얻은 기억들과는 많이 달랐다.
프랑스 르퓌길에서 체험한 나의 추억은 이제 오랫동안 기억 될 것이다. 프랑스 알프스 자락이 지나는 마을들을 걸으며 매일 지트에서 얻은 프랑스 가정 음식 또한 나에게 큰 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한 달간의 걷기를 끝내고 이제 루르드 성모 성지를 다녀올 계획이었다. 생장에서 기차를 타고 바욘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루르드로 가는 기차로 환승해서 갈 예정이었다........